고고학적인 악수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박종인
그 옛날 음양의 조화가 일하던 때 호모 사피엔스라는 직립인간이 설계를 시작했다 가파른 절벽에 그 일대기를 병풍처럼 펼쳐놓았다 고래 늑대 토끼 호랑이 멧돼지 곰… 그가 사냥할 짐승들의 목록, 그물을 던지는 어부와 다산을 기원한 흔적들이 그곳에 살고 있어 위령제를 지내는 제사장의 염원은 아직 유효하다 뼈가 훤히 드러난 소, 누가 살을 다 발라먹었을까 X레이 화법(畵法)이 소의 내장까지 제거했다 오랜 기간 짐승이 이곳으로 하나씩 이주해오고 절벽의 식구들이 추가되었다 그때마다 연기를 피우고 사람들은 짐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청동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단단한 쇠붙이로 돌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절벽은 조금씩 제 몸을 허물어 세상을 기록하고 박물관이 가라앉는 암각화를 건져내어 악수를 한다 물에 잠겨도 찢어지지 않는 암각화의 판권은 아직 절벽이 가지고 있다
-「다층」2013.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