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당의 얌체
그날 저녁식사 때 그녀가, 상해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서 자기가 잘 아는 식당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식사하자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 음식은 많이 먹어 봤고, 중국에 왔으니까 중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 왈,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아서 한국 분들이 싫어한다면서 끝까지 우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녀와 함께 택시 비 20웬 인가를 들여서 조금 먼 거리에 있는 한국식당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 경복궁(?)이라는 식당 간판이 달린 곳으로 들어갔는데, 그녀는 자리를 잡자마자
잠깐 신랑에게 전화하고 오겠다면서 밖으로 나간다.
그녀가 없는 사이에 나는 음식 메뉴 판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김치찌개와 육계 장이 40웬, 장어 회가 200웬 정도나 되었던 것이다.
‘아니, 세상에! 한국하고 음식값이 거의 같네. 식당 종업원의 1개월 봉급이 800웬(그 당시 한화 약 76,000 원)도
안 된다는데 웬 음식값이 이렇게 비쌀까?
그리고, 음식 재료도 당연히 값싼 중국 재료를 쓰면서 말이다. 아무리 고추장 같은 양념들을 한국에서 가져다 쓴다고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은가.’
거의 한국 사람만 식사하러 오다 보니 그런가 보다. (지금 한창 쾌속 발전중인 중국은 매년 경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이 10% 좌우인데, 중국에 있는 한국식당의 음식값은 더 이상 오르지 않은 채,
6년 전인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 이런 현상은 중국의 한국식당들이 주로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그때, 전화하러 같던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사장님, 우리 신랑을 여기로 오라고 하면 안 될까요? 아직 저녁도 못 먹고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데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또, 여동생도 결혼해서 이 부근에 사는데
같이 오라고 하면 안되냐고 묻는다.
어째 씁쓸한 느낌이다. 오늘 와서 내가 뭘 했다고 만찬 부터 하나.
오랜만에 자기 식구들끼리 모여서 한국 음식을 먹으며 회식을 즐기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남자가 먹는 것을 가지고 째째하게 뭐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럼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말 그대로 부리나케 튀어나갔다. (중국에는 일반 가라오케도 많지만, 한국식당들도 식당 한쪽에다
방을 몇 개 만들어 놓고 노래방 기기를 설치해 둔 곳이 많은데,
그 기계들은 국산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팁을 받고 시중드는 술집 아가씨들도 있어서 그들을 부를 수도 있다.
가라오케 이용료는 한 시간에 50웬 정도로, 일반 가라오케보다 조금 싼 편이다.)
그녀의 남편과 여동생이 와서 우리는 함께 식사하고 나서 가라오케에서 맥주 한잔하며 노래도 불렀는데,
그날 식사 대와 가라오케 이용료를 합쳐 모두 250웬(한화 약 23,000원)이 넘었다.
마지막에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주인이 그녀를 불러 안으로 들어가기에 왜 그럴까 싶어 창문 너머로 슬쩍 들여다보니,
주인이 그녀에게 50웬 을 건네준다.
그날 밤, 200웬 을 주고 중급 호텔에서 잤다.
상해의 실정과 백여우
다음날 아침, 8시(한국 시간 9시)경에 그녀가 호텔로 찾아왔다.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그녀와 호텔을 나서는데 그녀가,
어제 그 식당으로 갈 거냐고 묻는다.
재미를 본 모양이다. 하지만 끌려 다니기가 싫다. 그래서 내가, 다른 한국식당을 가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럼 그렇게 하자며 택시를 부른다.
또 택시비가 20웬 이 넘는다. 이래서 중국을 자주 다니지 않은 한국인이 중국에 오게 되면 비교적 돈을 많이 쓰게 된다.
한 끼 식사를 위해서도 왕복 두 번의 택시비가 들고, 식사 대에다 호텔 숙박료까지 포함하면
하루 숙식에 최하 500웬(당시 한화 약 48,000원)이 들고, 그 외에 또 자기의 일을 보거나 관광을 위해
택시를 여러 번 타야 한다.
택시 비에 대해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94년인 그때도 상해의 택시 기본요금이 12~14웬(한화 약 1,100~1,300원)
정도였는데, 이는 중국의 도시들 중에서 제일 비싼 편이다.
물론, 상해가 다른 도시들보다 좀더 발전하여 물가가 비싸고 봉급 수준이 높은 곳이라서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일반적인 소득 수준에 비해 택시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94년 상해 시 일반 회사원의 봉급 수준이 1,000~1,500웬(그 당시 한화 95,000~140,000원) 정도인 것에 비하면
무척 비싸다.
그래서 상해 같은 큰 도시에서는 바쁜 일이 있거나 일부 여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50전,1웬 정도 하는 버스나 전차(중국에는 아직도 우리 나라의 50~60년대같이 전차가 다닌다) 또는,
상해에 1개 노선이 있는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그래서 중국에는 거의 집집마다 한 대 이상의 자전거가 있으며,
그때 만 해도 상해도 출퇴근 시간이 되면 자전거의 대부대가 시내를 가득 메워서 무척 혼란스러운데,
각종 차량과 자전거가 뒤엉켜 교통 질서가 말이 아니다.
(참고로, 중국의 각 지방별 택시 비는 상해가 14웬 정도, 북경, 천진 등 인구 1천만 명 정도인 도시가 10~12웬,
심양, 대련, 청도 등 인구 4~6백만 명인 각 지방의 중심 도시들은 6~8웬 정도이다.)
그녀와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시내로 나오니, 마침 주말이라서 길에는 온통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나는 그녀에게, 한국에는 주말에 대부분의 회사가 쉬므로 사람들이 집에서 쉬거나 야외로 놀러 나가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시내에 사람들이 많으냐고 묻자 그녀는,
중국은 토요일과 일요일 양 이틀을 쉬는데, 개인 소유의 자가용이 거의 없는 데다가 여가 활동에 대한 개념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휴일에 나들이 갈 곳이라고는 시내에 있는 공원이나 동물원밖에 없고,
그곳에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거나 한가하게 산책을 하며 지낸단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이나 의복, 신발 등을 사기 위해 시내로 쏟아져 나온다고 하며,
이런 현상은 대도시나 지방도시들이 거의 비슷하단다.
그래서 그런지 중심 가의 거리들과 상점들마다 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보인다.
한마디로 고기 반, 물 반이다. 그리고 몇몇 중앙로에는 주말이면 사람들이 워낙 붐벼서 토․일 양 이틀간
차량 통행을 막았는데, 그런 길들은 사람들로 넘쳐 나서 그들을 헤치고 나가기가 힘들 정도이고,
그곳에 있는 백화점들과 길가의 각종 상점에는 상품을 매입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던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아! 이 돈 밭들…….’
(이는 그 당시의 내 생각이고, 중국에서 장사하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차차 깨닫게 되었다.)
상해가 아무리 1천 4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엄청나다.
중국에는 일반적인 서민 백화점과 고급 백화점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고급 백화점의 경우, 주말이라 할지라도, 외제품이나 외국과의 합작 제품들이 많아 정찰 제가 많고
가격이 비싼 편이라서 일반 서민들이 많이 찾지 않아 그리 붐비지 않는 반면,
주로 중국 제품을 판매하는 일반 서민 백화점이나 일반 상점들의 경우, 주말이면 엄청난 인파로 득실대며,
가격도 능력에 따라 많이 다운시킬 수 있다.
그리고 평일에는 주말보다 덜 붐비는데 그 이유는, 대도시들의 일부 대형 백화점이나 외제, 합작제품
전문매장들을 제외한 일반적인 백화점들과 상점들이 퇴근 시간인 오후 4~5시쯤에 모두 문을 닫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해, 북경 등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러한 현상들이 조금씩 개선되어 가고 있지만,
중국의 이런 점들을 보노라면, 아직도 중국이 근대화가 늦다보니 우리 한국인들에 비해
근,현대상술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면이 있다 하겠다
그녀와 함께 상해의 중앙 통에 있는 고급 백화점이란 곳에 들어가서 둘러보았다.
1층은 생활 소품들과 외국 햄버거, 유명 아이스 크림 등을 팔고 있고, 랑콤, 시세이도 등의 외제 고급 화장품이나
라도, 오메가 등을 파는 시계 전시장도 있다.
그리고 2층은 고급 숙녀복과 가죽제품, 3층은 고급 신사복과 남성복, 4층은 유아용품과 아동복, 장난감 등을 팔고 있는데,
이곳에는 생각보다 한국제품이 적고, 유아나 아동복의 경우 다른 것들에 비해 가격은 비싸면서도 품질이 형편없다.
그리고 매장 전시 방법으로 보아 여성 고객 위주로 타켓을 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점들은 한국보다도 더 심하며 중국의 보편적인 현상인데, 중국의 생활 수준이 향상될수록 여자들이
많이 치장하는 편이고, 남자들은 대체로 수수하게 사는 편이라서,
남성복들은 그리 화려하거나 고급제품이 별로 없다. 한마디로, 여권 제일주의인 나라인 것 같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겠다.
백화점을 한 바퀴 둘러보고 1층으로 내려왔는데, 이 여자가 외제 화장품 코너 앞에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갈 생각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못 본 체 외면하고 있는데,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그녀는 나에게,
‘저한테 선물 하나 사 주시지 않을래요?’ 한다.
‘아! 당했다. 앙큼한 것 같으니라고.’
세상에 이러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강한 남자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꼼짝없이 그녀에게 400웬(38,000원 정도)짜리 외제 콤팩트를 사 주고 말았다.
우리 아내도 이런 걸 마음대로 사서 못 쓰는데 말이다.
나중에 차차 알게 되었지만, 통역이나 가이드를 하는 이런 조선족들의 심한 행태에 거부감이 느껴질 때가 꽤 많다.
이 여자만 해도 공짜를 엄청 바래서, 툭하면 시내 구경 가자고 유혹(?)하여, 그곳에 가서 물건을 만지작거린다든 가
사 달라고 졸라댄다. 또 한국으로 돌아갈 때면 영락없이, 자기들로서는 너무 비싸고 귀한 물건들을 한국에서
사다 달라고 부탁한다.
참고로, 중국의 조선족들의 부탁을 받고 보온밥통이나 시계, 화장품 등을 몇 번 사다 줬다가 원가로라도
받아 본 기억이 내겐 거의 없다.
한번은 그녀의 남편과 아이와 함께 식사하다가, 5살 먹은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내가 50웬 짜리 중국 돈을 주자,
그녀가 바로 하는 말이, ‘100웬 이라도 주지 50웬 을 주느냐’면서 자기 딴엔 웃으면서(?)면박을 준다.
심한 말로, 손이, 두 손 따블로 올라가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아니, 내가 자기하고 손을 한번 잡아 봤나? 뽀뽀를 한번 해봤나? 아님 이런 저런 일로 몇 차례 만나기를 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나.
세상에~~어디가 예쁘다 고 어린아이에게 100웬 씩 이나 주나?’
우리 애들도 그렇게는 팍팍 주면서 안 키웠었다.
정말 미칠 지경이다. 그러나 내색은 못 하고 술만 시켜 연신 퍼마셨다. 왜냐고?
중국에 처음 와서 하루밖에 안 된 내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이들이 한 손들며 ‘안녕~’ 하면,
중국말을 몰라 벙어리 삼룡이보다 더한 신세인 나는 졸지에 길 잃은 미아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괘씸하지만 강한 인내심으로 이빨을 소리 안나게 바드득~ 갈면서 무던히도 참다가,
그 얼마 뒤에 한 가지 불미스런 일로 이 여자하고는 영영 안녕 이 돼 버렸지만, ,
그래도 이 여자는 다른 가이드나 통역 자들과는 달리 대학을 나온 여자라서 똑똑하기는 했다.
똑똑하다 보니 너무 약은 짓을 많이 해서 탈이었지만…….
둘쨋 날 저녁에 그녀가 식사 후 호텔로 나를 바래다주면서 물었다.
“사장님은 아가씨 찾지 않나요?”
오잉?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가씨라니? 내가 알기로는, 중국은 결혼하지 않은 남녀간에는
같이 잘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기가 무슨 뚜쟁이인가? 내가 아가씨를 찾아 달라고 하면 소개해 줄 수 있다는 투의 얘기 같은데,
그럼 좋다. 한번 시험해 보자.
“아가씨도 소개해 줄 수 있어요?”
“그럼요.”
그녀는 바로 맞장구를 쳤다.
“아니, 이 나라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죠?”
이만하면 나도 꽤 음흉하다.
“어렵긴 해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야요. 중국에 오시는 한국 분들이 많이 요구해서 그런 여자들이 많아요.
원하신다면 제가 소개해 드릴 수도 있어요.”
그녀는 갑자기 눈빛이 반짝, 반짝, 작은 별~ 초롱초롱해진다. 아가씨를 소개하면 또 몇 푼이 생기겠지.
“얼마예요?”
“200~300웬(한화 19,000~28,000원) 정도 해요. 소개해 드릴까요?
그녀는 바짝 달라붙는다.
“그런 사람들은 조선족인가요?”
“조선족도 있고 중국 한족도 있어요. 어느 쪽을 소개해 드릴까요?”
이 여자는 내가 어떤 남자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이제 장난을 그만 두기로 했다.
“아줌마! 나는 정이 없는 상태에서 돈주고 그런 짓을 못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만 두죠.그냥 궁금해서 물어 봤어요”
그러자, 그녀는 실망하는 빛이 얼굴에 역력하다. 아까 화장품을 강제로 사 주게 된 데 대한 복수(?)를 한 셈이다.
그런데, 이때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나중에 한참을 혼날 줄이야.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는 데다 내 취향이 아닌 그녀가, 한국 사람 중에 나 같은 사람을 처음 본다며
툭하면 야리~ 끼리 한 눈길로 자주 쳐다보는 바람에 말이다.
호텔에서 푹 쉰 다음날 아침, 나는 그녀와 함께 바다에 접해 있는 황포 강의 공원으로 갔다.
이 공원은 시내에서 변두리 쪽에 위치해 있는 강변 공원으로, 나무는 거의 없고 시멘트로 잘 포장되어 있으며,
강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다.
강변 쪽의 얕은 담에다 양팔을 걸치고 강을 내려다보면 한눈에 좋은 전경이 다 내려다보이며,
또 망원경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멀리까지 바라볼 있다. 넓은 황포 강의 건너편에는 엄청나게 높은 철탑이 있는데,
그곳은 남산 타워처럼 승강기가 있고, 그 꼭대기에는 넓은 실내 관망대가 있다.
이 탑은 적어도 100m 정도의 높이에 크고 우람하다.
이 탑이 있는 강 건너에는 개발 지구로서 새로지은 신식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건물들을 더 짓고 있다.
강에서 시내 쪽인 이 공원은, 말로는 변두리라고 해도 시내 중심 가의 바로 끝 부분이라서 이 공원에서 강을 등지고
시내를 바라보면 바로 앞에서부터 고층건물들과 유럽풍의 옛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밤에는 이 건물들을 비추는 조명이 거의 환상적이다.
황포 강에는 중국 각지로 연결되는 대형 여객선들이 정박해 있고, 대형 유람선들도 있다.
이 강은 해상교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강 위에는 석탄이나 화물을 잔뜩 실은 대형 운반선들이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운행되고 있다.
이 강변 공원은 밤늦은 시간까지 사람들로 붐비므로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편의점이 많고,
수많은 아베크 족들로 성황을 이룬다.
이들은 사람들이 무척 많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남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서로 껴안고 있거나
스스럼없이 진한 키스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에서도 특히 대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를 지켜보면서 나는, 이 사람들은 창피한 것에 대한 의식이 우리보다 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은 시내에 있는 고궁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레이스가 달리고 허벅지가 다 나오는 짧은 잠옷바람의 여자들이
고궁 공원을 활보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팬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여자 잠옷을 입은 채 돌아다니면서도
전혀 창피한 줄을 모른다.
그런 여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다른 지방에서보다 특히 상해가 더욱 그러하다.
한마디로, 상해는 다른 도시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앞서 가는 것 같다.
오후에 시내에 있는 고궁 공원을 다녀오면서 비교적 규모가 큰 금은방에 가 보니,
중국이란 나라의 경제 수준과 사회 정도를 일부 느낄 수 있다.
그곳에는 거의 순금반지나 목걸이로 진열되어 있는데, 그 제품들의 조각이나 디자인들이 한마디로 말해
너무나 조잡해서 우리 나라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금반지의 경우, 우리 나라의 아기 돌 반지처럼 아래가 끊어진 채 벌어져 있어서,
반지를 끼려면 아래를 서로 겹치도록 손가락으로 꾹 눌러 줘야 하는데, 순금제품은 거의 이런 실정으로 발달이 무척 늦다.
또, 금을 국가에서 관리하므로, 살수는 있으나 판매 허가나 가공은 국가의 허가를 받은 사람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에
금제품을 취급하기란 우리 나라보다 무척 까다롭다.
그러므로 일반 금은방에서는 금제품을 팔기만 하는 곳이 많고, 세공은 국가의 허가를 필한 일부 공장이나
길가에 가끔 있는 허술한 개인 집에 한 사람 정도 앉아서,
디자인을 바꾸려고 찾아오는 개인들의 순금제품을 다시 만들어 준다.
중국은 아직도 순금을 선호하여 금은방에는 순금제품들이 많다. 일부 18k 제품들도 있는데,
이는 거의 홍콩에서 들여온 완제품들로, 우리 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30% 정도 더 비싸며,
가운데에 루비나 사파이어, 또는 다이아몬드를 하나 박거나,
그 둘레에 큐빅이나 작은 다이아몬드들로 장식된 심플한 제품들뿐인데,
18k 제품은 금 중량을 전혀 따지지 않고 그런 개념도 전혀 없이 그냥 가격이 얼마라는 식으로 거래된다.
물론 다이아몬드의 감정서 같은 것도 거의 개념이 없다. 내가 북경이나 심양, 장춘 등의 대도시들과
여러 지방 도시들에서도 금은방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살펴보았는데, 대부분이 대동소이하다.
중국 비취 같은 보석들도 금은방에 나와 있는 것들은 양질의 품질이 전혀 없으며,
그런 형편없는 것들도 가격이 무지하게 비싸다.
한마디로, 보석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식수준이 아주 낮아서 이런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반지 디자인이 너무도 뛰어나서 북경이나 심양 같은 곳에 일부 한국의 세공 기술자들이 진출,
백화점 등에 가끔 공급하여 호평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 계통의 사람들이 많이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각 외로 어려움도 많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첫댓글 지금과는 다르지만 그때 당시의 모습이 그려지는듯... 재미있네요.. 담편은 내일 봐야 되겟당..
95년도에 중국에 갔을때가 생각이 나네요~~리얼하게 중국을 들여다 보았네요~~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혹시~ 위에 중국이 되는것도 없고 안되는것도 없다는 그 중국 맡습니까?
☞저도한마디... 그래서 저는 중국에서 사업하려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말"부터 배우라고요..중국에서 망하지 않은 중소기업인들은 대부분 중국어에 능통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통역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은 분들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