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푸트
[9]
일단.. 귤은 큰거 보단 작은게 맛이 좋다. 큰건 보기에만 좋지 맛은 맹하거든. 근데 작은건 보기엔 좀 그렇지만 맛은 달고 좋거든. 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만..
“역시 안 받아..”
이에 전화연결시도를 포기하고 열심히 걸으면서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최강현.. 최강현..”
강현이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개인정보를 뒤지는 중..
“여깄다.”
강현이의 집주소를 찾아낸 채원은 강현의 집으로 향했다.
* * * * *
강현의 집 앞.
음층.. 으리으리하다..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기 전.. 자신을 엄습해 오는 이 커다란 철대문 앞에선 채원은 이유 없이 벌렁거리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초인종을 누른..게.. 아니라..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를 연습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현이 학교 선생님 한채원이라고 합니다. 강현이가 많이 아프데서요. 감기엔 귤이 좋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귤을 사왔어요. 문열어주세요. 얼릉요.”
..라고 말하면 예의가 없는 건가.. 뭐야..
혼자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발동동 구르며.. 철대문 앞에만 알짱거리고 있는데.. 이때.. 급작 쥐구멍만한 웬 구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CCTV로 다보여요. 콜록.. 귤사왔으니까 문열어주세용얼릉용. 콜록콜록..”
CCTV로 사람 행동거지 감시할 여력이 있으면은.. 전화나 받아.. 라고 말하기엔 선생님 체면이 있으니깐.. 근데 최강현이 이렇게 나오니까 뭐라고 하고 싶잖아..? 근데.. 뭐라고 말하기엔 선생님 체면이 있으니깐.. 그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으니깐..
“참! 참! 참! 콜록콜록콜록.. 다시 해봐요. 걸리면 한 번에 한쪽 이마빡 꿀밤 서너대..”
한방에 한쪽 이마를 꿀밤 서너대를 먹이겠다고!?..이런 도둑놈심보를 갖은.. 이런.. 강아지 같은..!!!
선생님 체면 차리려 했던 고뇌에 찬 그 행동이.. 한낱.. 참참참 게임으로 밖엔 안보였다.. 이 말이지..?
“문 열어!”
“콜록콜록콜록콜록..”
어째.. 너는.. 갈수록 기침하는 횟수가 늘어.. 이에 쿠크다스 심장을 갖은 채원은 급낮은 자세로 쥐구멍만한 구멍에다 대고.. 말.. 이 아니라..
“문 안 열어!!!!!!!!!!!”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이 귤 사왔다고~
“귤 먹자고!!!!!!!!!!!!!”
철컹..하고 열린 문..을.. 무슨 귀신 보듯.. 바라보는 한채원. 그래도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우아하게~ 주변 곳곳을 살피며 집안으로 들어서서는 안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어쩐지.. 좀 모자란 사람처럼 보였다.
“집안으로 들어오면서까지 참참참해요? 참! 참! 참! 걸리면 한 번에 한쪽 이마빡 꿀밤 서너대~”
문자를 보내도 꼭 이딴 문자를 보내요.. 문자값 아깝게..
감기로 다 아파 죽어가면서도 이런 상태란 말이지..?
자꾸 참참참을 외쳐대는 그 입에.. 자꾸 걸리면 한 번에 한쪽 이마빡 꿀밤 서너대..라 외쳐대는 그 입에.. 귤 10개를 까서.. 쑤셔넣어 주겠어. 기대해도 좋아요~
참참참 문자를 확인한 채원은 저기.. 저.. 너무 멀어 콩알만하게 보이는 집 문으로 빨간마후라를 본.. 황소마냥.. 음층 뛰어 가고 있었다.
참고로 뛰면서 귤에 반은 다 떨궈트리며 달렸다. 하지만 그것을 알리 없는 채원은 본의 아니게 땅바닥에 쓰레기를 투척한 나쁜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었다. 반면.. 굶주린 동물들에겐 맛있는 먹잇감을 나눠주는 착한 인간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멍청한 한 인간에 실수일 뿐이었는데..
“.............”
문이 잠겨 있어..?
사람을 문 앞에 세워 놓고 문전박대하는 거야.. 뭐야.. 지금..?
근데... 문에 누가 이렇게 예쁜 그림을 그려놓았대?.. 이 문.. 너무 예뻐서 집에 갈 때 잡아 뜯어가고 싶었다. 그럼 다음에 올 때.. 문 열라고 소리칠 일도 없을 거야.
예쁜 문은 내 손에 들어오고.. 문 열릴 때까지 기다릴 염려 없고.. 이것이야말로 1석2조네!
두 팔 걷어붙이고 그렇게 채원은 지금 축구왕 슛돌이 접신했으용.. 작태로.. 문을 향해 발차기를 하고 있을쯔음.. 문자가 왔다.
“화장실 앞에서 뭐하고 있어요..?”
이쯤되면 이어지는 전화연결시도..
“문자로 해요. 지금 내 목소리 들려주기 싫어..”
느끼한 80대 대머리 아저씨가 꽃뱀 언니 유혹하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 나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원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너. 나. 와. 이 세 글자에 얼마나 큰 의미가 담겨 있는지 넌 모르지?!..
“귤 사왔다면서요. 귤이 어딨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휙 돌아보니.. 빙산 정상 서너번은 족히 올라갔다 내려 온것 같이.. 얼굴이 시뻘건 강현이가 귤에 행방을 물으며 콜록대며 서있었다.
“들어오다가 다 까먹었죠..? 아깐.. 귤 한 박스 정도 사온 사람처럼 소리치더니.. 허세쩌네..”
내가 한 박스는 아니어도.. 한 봉지........는..
“잠.. 잠깐만..”
그래. 어느 순간부터였던거 같다.. 그래.. 귤을 든 손이 자유로워졌던 그 느낌이 든 것은.. 그래. 어느 순간부터였었던거 같다. 근데.. 그게 언제였는지가 문제지!!!!!!..
“너랑.. 나.. 사이좋게.. 한 개씩....... 한 개씩..... 먹자.. 까먹어.. 먹어~ 그래.. 집이 어디라고...!?”
채원은 넉살 좋게 검은 봉지 안에 달랑 2개 남아 있던거를 탈탈 털어.. 한 개는 자기가 지금 까먹고 있고 한 개는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상당히 무서운 몰골로 하악하악 거리며 서있는 강현이의 손에 곱게 쥐어주었다.
그렇게 먼 길 떠나는듯했던 채원이.. 순간 경직된채 제자리에 서게 된건..........
“콜록콜록콜록.. 내꺼 왜 이렇게 떫어요? 콜록콜록콜록.... 이걸 지금 사람 먹으라고.. 준거예요? 콜록콜록콜록..”
실은.. 내 귤도 떫은 귤이야. 이히히.
하지만 이건 입 밖에 나오지가 않는 말이었다. 딱.. 결론적으로 이 상황을 보면은.. 그 과일가게에서 떫은 귤 한 바구니를 채원에게 팔았단 얘기가 되는거였다. 참.. 사람들이 양심도 없지. 이런걸 사람들한테 팔면서 한 봉지에 그 많은.......은 아니지만..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 돈이 어디 땅 파서 나오는 돈이냐고.. 아무튼.. 그런 식으로 장사해서 사람들 주머니에서 돈 빼내가고 싶을까..? 근데.. 이거 입에 물고 있다가 천천히 씹어 먹으니까.. 맛있다. 그래.. 떫은건 입안에서 천천히 녹여 씹어 먹는 거야.. 그럼 신기하게 살살 녹아.. 응. 떫게 녹아.. 떫게..
근데 진짜 그 많던 귤이 다 어디로 갔지..?
* * * * *
역시.. 부잣집 도련님네 집은 뭔가 달라도 달라..
강현의 집에 들어선 채원은 집안구조도 구조지만.. TV며.. 가구며.. 뭐.. 풍기는 분위기며.. 이건 너무 뭐 너무 럭셔리해서.. 현기증까지 일기 시작했다.
오.. 너님.. 떫은 귤이 마땅히 화가 날만한 재력을 가진 도련님.. 오.. 너님.. 너님이 달라 보인다.
“자요.”
“응?”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바구니에 귤이 옹기종기 담겨져 있었다. “이야~ 이 귤.. 꼭.. 내가 사온 귤이랑 똑같이 생겼네?”
같은 과일집에서 샀나봐..라고 하기엔.. 네가 너무 잘 사는 집 사람이라.. 그런 과일집에서 과일을 사서 먹을..리가.. 없을거는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이 귤.. 내 귤..이랑 닮았지..?
급기야.. 채원은.. 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너.. 어디서 왔니..?”
하지만 귤은 아무 말도 없었다. 급기야 채원은 귤에 매직으로 눈코입도 그려 넣을 기세였다.
“여기 와서.. 앉아서 귤이나 까먹어요.”
의자를 통통 치며 채원을 부르는 강현이의 저 손길이 마치 강아지한테 오라는 손 모양새 같았던건 채원의 착각이었을까..? 이것은 마치 조련 당하는 기분.. 하지만.. 다리가 아프니까 가서 앉을 수밖에.. 배가 꼬륵꼬륵 고프니깐.. 저기 가서 앉아서 귤을 까먹을 수밖에.. 그렇게 앉아서 귤 한바구니 껴안고 신나게 귤을 까먹고 있는데..
“잘 먹네~”
강현이의 저 말이 마치 먹이 먹는 강아지한테 잘 먹는다고 칭찬하는 모양새 같았던건.. 채원의 착각이었을까..? 이것은 마치 조련당하는 기분.. 하지만.. 귤이 맛있으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귤을 계속 까먹을 수밖에.. 근데 진짜 이것은 마치.. 조련 당하는 기분..
“왜 안 나오시지..”
“뭐가요?”
TV 보면서 킬킬 거리다가 채원의 이 혼잣말에 돌아보며 묻는다. 마치 잘 놀고 있는 강아지를 보는 눈빛을 하고서.. 뭐지.. 이것은 마치 조련 당하는 기분..
“어르신 분들이 안보여.”
이쯤 되면 나오실 때도 됐는데 말이야..
“그야 없으니깐요. 없는 분들이 어디서 나와요.”
그렇담..
“지금 여긴 선생님과 저 둘뿐이에요. 아시겠어요..?”
이것은 마치 조련 당하는 기분.. 어르신들을 집안 어딘가에 꽁꽁 감춰두고 안 내놓는게 분명해. 아니면 어르신 분들이 나를 피하는건가..? 그렇담.. 왜..?
“너 솔직히 말해봐.”
“뭘요?”
“너..”
“악.. 캬캬캬.. 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 캬캬.. 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기도 하고 기침을 하기도 하고..
“.......내가 창피하지..?”
“캬.. 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
채원의 이 말에 사레가 걸린 강현은 아까보다 얼굴이 더 빨개져서는 기침을 음층나게 해대기 시작했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걸 보면..
“진짜 너 내가 창피하지..?”
웃으려다 사례 걸린 사람한테 잘~하는 짓이다. 근데 기침을 하는 모습이 예삿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보여서.. 그제야 상황에 사태를 파악한 채원은..
“약 어딨어?”
기침 때문에 말은 하지 못하고 한쪽 방문만을 가리켰다. 이에 채원이 그 방에 들어가 첫 번째 눈에 보인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뒤지고 있던 서랍엔 없었고 대신 책상 위에 약봉지가 있었다. 이에 약봉지를 챙겨서 주방 쪽으로 가 쟁반에 컵과 약봉지를 담아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강현이한테로 가는데.. 이때 무언가가 문득 생각이 나서 순간 우뚝 멈춰 서게 됐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책상 위의 저 사진.. 어디선가 본거 같은 사진 때문에 약간 주춤 했지만 강현이에게 다가가서 감기약을 먹이고는 귤을 까먹여 주었다. 보통.. 사탕을 주는데.. 근데 사탕이 없으니깐.. 귤을 주었다. 그 귤.. 떫은 귤이었으면 좋으련만.
“괜찮아..?”
“퉤..”
방금 입에 들어간 귤을 몇 번 씹지도 않고 뱉은걸 보아하니.. 떫은 귤이구나~ 아싸. 한채원 한건 했다!
“귤 맛있지?”
“강냉이 나가요.”
“너 여자도 패니?!”
“선생님이 여자에요?”
“그럼 내가 남자야?!”
“어딜 봐서 여자야..”
떫은 귤 어딨어..?
“배 안 고파요?”
“너 아까 내가 물은 말에 대답 안했잖아.”
“그야..”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았다.
“라면 먹을래요?”
“라면..?”
“라면 먹을려면 여기 앉아 있어요.”
식탁 의자를 빼서 통통 두드린다. 저건 어디서 본 장면인데.. 이것은 마치.. 조련 당하는 기분.. 하지만 배가 고프니까.. 강현이가 마련해준 자리에 앉아서 요리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냄비에 물을 올려놓고 라면을 4분할 해 부순다. 물이 끓으면 라면을 개봉해서 4분할 라면 조각을 한 조각, 두 조각, 조각조각 순서대로 끓는 물에 퐁당퐁당 투하시킨다. 그리고 그 위에 건더기 스프와 분말스프를 각각 뜯어 넣어 뿌린다. 플러스.. 취향대로 계란을 넣을려면 넣고 파를 넣으려면 넣고 그 외 각종 부가재료를 넣을려면 넣어 라면을 맛있게 조리....... 하는게.. 라면 끓이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는데..
근데.. 저 아이는.. 물이 끓지도 않았는데.. 다~ 때려 넣고.. 팔팔 끓이기 시작한다..?
“야!!!!!!!!!”
이것은 마치.. 조련 당하는 기분.. 주인님이 주는 밥이 정상적인 밥이든.. 개밥이든.. 주면 뭐든 먹어야 하는.. 이것은 마치.. 조련 당하는 기분..
“라면을 누가 그렇게 끓여!!!!!!”
강현의 등 뒤로 다가간 채원은 강현이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한 짝 빼앗아..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이렇게 위협적이게 말했다.
“너.. 라면 거지 같이 끓이는건 그렇다쳐도 왜 라면이 한 개야?!”
보니까.. 쓰레기라곤 너구리 한 봉지 껍데기뿐이었다. 라면 끓여준다고 해놓고 라면 한 개 끓여서 자기 혼자 다 먹을려고..? 먹는 것 같다가 이러면 너는 천벌 받아.
“설마 너 혼자.. 먹..”
“저 감기 걸렸잖아요. 그러니까 따로 먹어야죠.”
채원을 스윽 지나쳐 냄비 하나를 더 꺼내더니 그 안에 적정량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는 지금에야 끓기 시작하는 너구리 옆에 착 얹고서 냄비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는 아까 자기 것과 똑같이 했던 것처럼.. 냄비에 라면재료를 한꺼번에 때려 넣었다.
“야!!!!!!!!!!!!..”
라고 외쳐 보았자 이미 라면재료는 냄비 속으로 사라진채.. 거기서 끝이었다.
먼츰 끓이기 시작한건 어느새 다 끓여서 너구리라면 모양새를 띄어가고 있었고 나중에 끓이기 시작한건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라면사리와 재료가 하얀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만 있었다.
“끓일라면 같이 끓여야지.”
상반된 모양에 두 라면을 보며 채원이 힘없이 말했다.
“자. 앉아서 빨리 먹어.”
다 완성된.. 한 냄비에 다 때려 넣어 완성시킨 너구리라면을 꺼내.. 식탁에 놓여져 있는 예쁜 큰 사기그릇에 쏟아 담아서 강현의 자리에 우선적으로 놓아 주었다.
“근데 감기 걸렸는데 밥먹어야하지 않아? 아픈 사람이 라면 먹고.. 돼?”
라면을 먹으려고 젓가락을 든 강현에게 젓가락을 빼앗고는 라면그릇을 자기 자리로 밀어 넣었다.
“밥 먹어.”
계란만 있음.. 계란국 할 수 있으니까.. 계란국 해서......... 밥을.. 먹이면............... 되는데..
“밥....”
밥통에.. 밥이 없다..?
그럼 쌀통에서 쌀을 꺼내서 밥을 하면 되지~
“잠깐만 기다려. 쌀 씻어서 밥해줄게. 선생님이 계란국 맛있게 끓이는데 그거 해서 먹으면 될...........”
쌀통에.. 쌀이 없다..? 쌀통이.. 텅텅 비어 있다..?
“아. 맛있다~”
그리고 이때 들려온 후루룩 쩝쩝.. 이 소린..?
강현이가 라면을 먹는 소리였다.
그래. 라면 맛있지.. 근데.. 왜 밥이 없어. 쌀 어디 있어.
“여기 도둑놈 살지..?”
“선생님은 도둑놈 있으면 같이 살아요?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가게 하지.. 미쳤다고 같이 사나..”
맞아. 그건 그래..
“근데 왜 밥통에 밥이 없어. 왜 쌀통에 쌀이 없어. 밥이랑 쌀 어디 갔어?”
“그런거 없이 지낸지 꽤 됐는데..”
“아~ 떨어졌어?”
밥이랑 쌀 찾다가 어느새 완성되어 있는 라면을 보고 있는데.. 오.. 생각보다 맛있게 보이는데..? 그래서 냄비째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럼 집에 가기 전에 쌀 주문해놓고 가면 되겠다~”
채원이 라면을 한입 먹고 김치 가질러 가면서 이렇게 말하자..
“그러지 않아도 돼요.”
“왜?”
김치를 찾으면서 물었다.
“안 먹어서요. 그러면 버리게 되잖아요.”
“왜 안 먹어?”
“안 먹으니깐 안 먹죠.”
뭔 말이야.. 저건? 안 먹으니깐.. 안 먹죠..?
“즉석 식품에 익숙해진 너는 밥을 안 먹는다 쳐도.. 어르신들은 그럼 뭘 먹어..?”
“선생님이 아까부터 말씀하시는 어르신분들 없다니까요? 여기 나밖에 없다니까요.”
이 큰 집에 너밖에 없다는게 말이 돼?
“너.. 그 긴 콧대 어디다 숨겼어..”
김치를 찾아와 자리에 앉아서 물었다.
“뭔 소리야..”
“자꾸 거짓말 하면 콧대가 길어져.. 너..”
“밥이나 먹어요.”
“이건 밥이 아니잖아..”
“헛소리 좀 그만하고 라면이나 먹어요.”
헛소리.. 하.. 정말.. 헛웃음 나오게 하네..
라면을 다 먹은 강현이가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하려나 보......
그래. 라면을 끓여 준건 너니까 설거지는 내가 해야지.
근데 저 혼자 먼저 다 먹었다고 자리 비우는 저 버르장머리를.. 어떻게 뜯어고쳐야!!!..
그렇게 분노에 찰대로 차서는 김치 찢기를 하다가.. 그만 옷에 김치 국물이 쫘악.. 튀어 버렸다.
“강현아.”
“캬캬캬캬캬..”
배도 불렀겠다.. 아까 보던 개그콘서트를 이어 보면서 좋다고 웃다가..
“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
저렇듯 미친듯이 기침을 하다가..
“아.. 캬캬캬캬캬.. 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좋다고 웃다가.. 정신없이 기침을 하다가.. 그렇게 그걸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강현이 때문에 김치 국물 묻은 옷을 입고 계속 식사를 이어가야 했다.
* * * * *
설거지를 마치고 TV 앞에 앉았을 때..까지도.. 강현은 캬캬와 콜록을 반복해대고 있었다. 이에 채원은 세계지도처럼.. 그래. 이제는 마치 한 폭에 그림처럼 좀 예쁘게 변한 김치 국물 묻은 옷을 입고 앉아서 후식으로 귤을 까먹고 있는데.. 어디서 쉰내가.... 코끝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 쉰내..는 바로 이 김치 냄새..
흠.. 근데 이것도 나쁘지 않아.. 뭔가 개성 있고 독창성 있어..
그렇게 나름대로 지금 이 상황 자기 합리화를 하며 열심히 귤을 까먹고 있는데..
“잠깐만..”
“왜요..?”
채널을 빙빙 돌리는 강현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우리 저 드라마 보자.”
재방송이긴 했지만.. 못 본 부분이라 꼭 봐야했다.
“저 드라마요?”
“응. 저거 내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거든.. 저거 재밌어~”
“선생님 집에 가서 봐요.”
“뭐?..”
“전 저거 안보거든요.”
저건.. 저 드라만..
“너 저게 어떤 드라만지는 알아?”
“드라마가 드라마지.. 뭔..”
저 드라만.. 저 드라마는..
“아.. 핫쿨에 라휸가 뭔가 하는.. 걔 나와서요?”
“방금.. 뭐..”
..라고..............
“숭아가 저번에 그러더라구요. 선생님 핫쿨에 라휴 팬이시라고.. 아니.. 근데 핫쿨은 20대 후반 팬도 있고.. 뭐.. 좀.. 성공했네.”
“저기 핫쿨이 아니라 핫타임이고 라휴가 아니라 류하거든!!!”
“핫쿨이든 핫타임이든.. 라휴든 류하든.. 그게 그거고 그놈이 그놈이죠. 뭔.. 이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별걸 다 가지고 트집이야..”
그래. 네 말이 틀린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채널을 돌려버리면....
귤 던진다..
여과 없이 강현의 이마를 맞고 퉁겨 나간 귤.. 이에 경직된 강현이의 얼굴표정..
“저기.....”
귤 던진 이유를 얘기 하려고 하는데..
“드라마 시작하는데요.”
벌떡 일어나 리모컨을 소파에 내던지고는.. 슝..
그럼 채원은 그런 강현의 눈치를 보다말고 귤을 까먹으면서 드라마를 보아가기 시작했다.
아이구.. 내 새끼.. 류하.. 예쁜.. 내 새끼..
그렇게 상황파악 못하고 좋다고 히히덕거리면서 드라마를 보다가..
“어.. 어어억......!!”
눈앞에 하얀 천 같은 무언가가 뿌려지듯 내려앉자 경기와 식겁을 하면서 발발 떠는 채원.. 나를 목 졸라 죽이려는건........가..
“쉰내 나서 같이 드라마를 못 보겠어요. 그걸로 갈아입든가.. 여기서 나가시던가..”
그냥 나가라고 하면 되지.. 이런 걸로.. 사람을..
“채널 돌리면 죽어.”
하지만 내 새끼 류하가 나오는 드라마는 꼭 봐야했기에 아까는 흰 천으로 보였던 이 옷이 다시금 보니까 파랑색 옷이었고 융드레스처럼 생긴 긴치마였는데 빛깔이 엄청 고왔다. 되게.. 뭔가 있어 보이는 옷이었다.
아무 방이나 들어가 그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더니.. 사람이 확 달라 보이는건.. 채원의 착각이겠....지..
그렇게 혼자 거울 앞에 서서 있는폼, 없는폼, 똥폼을 다 잡고 서있는데.. 채원은 거울 사이로 비친 한 얼굴 때문에 순간 주춤했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사진의 정체는 뒷벽에 큰 액자에 걸려 있는 한 여인의 사진이었다.
음.. 저 얼굴.. 어디서 본거 같은데.. 저 얼굴..
“누구였지..?”
가만히 거울 속에 비친 저 사람 얼굴을 보고 있는데..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날듯.. 하면서도 생각나지 않는.. 저 사람의 얼굴..
이때.. 밖에서 우글우글..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가보려고 하는데 치마가 책상 끄트머리에 껴서.. 그만.. 쭈.....욱.. 찢어졌고 치마 장식품으로 달려 있던 악세서리가 데굴데굴 떨어져 굴러서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란 채원은 침대 밑으로 손을 넣어서 악세서리를 주우려고 하는데 그 악세서리는 손에 잡힐듯 말듯 굴러다니고 있어서 그걸 꺼내려 오버스럽게 버둥거리고 있는데..
오.. 그러다.. 아예.. 침대 밑으로 쏘옥.. 기어들어 가게된 채원은 생각보다 먼지도 별로 없고 악세서리도 찾기 쉽게 한눈에 보여서 기분 좋게 악세서리를 집어 들고 나오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사람 다리 네 개가 시야에 잡혀 들어왔다.
혹시.. 어르신들..?!
채원은 뭐.. 잘못한거 없는데..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꼴이 되었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나가서 인사라도 드리자 싶어서 그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나가려고 숨죽이고 있는데.. 어르신들 치고는 하이톤에 목소리와 낯익은 목소리에 이 네 다리를 갖은 사람들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혼자 신나기도 하고 안도가 되기도 해서 바로 튀어 나가려고 하는데.. 그만 그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지안누나 얼굴 되게 오랜만에 본다~”
“아.. 맞다. 오늘 선생님 병원에 우리선생님 오셨었는데!”
“선생님?”
“응. 내가 등장을 짠하니까 모두의 시선이 나한테로 다 향하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어~”
이때.. 벌컥 문이 열리더니..
“야. 그 방 말고 저 방 들어가라니........ 근데 선생님 못 봤냐?”
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누구..?”
숭아의 목소리..
“뭐..?”
윤의 목소리..
“들어올 때 아무도 없었는데..?”
“그럼 저 방으로 갔나?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왜? 누구? 혹시 우리선생님?”
“어.”
“어딨어?”
“몰라.”
“모른다고?”
“어.”
“무슨 말이 그래. 선생님이 왔는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니..”
“그새 돌아갔나..”
강현과 윤이 채원의 행방을 쫓고 있는데..
“류하다~”
채원이 보고 있던 드라마를 발견한 숭아가 TV 앞에 앉아서 몸을 비비꼬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윤이 혀를 끌끌 차댔다.
“근데 진짜 선생님 어디 갔지..?”
“내가 좀 긁었거든.”
“긁어? 뭘? 왜? 긁을게 어딨다고 긁어?”
윤은 말은 강현에게 하고 있었으나 시선은 류하가 나오는 드라마에 가있었다.
“류하.. 같은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
“류하 팬이랜다.”
“그래? 숭아가 그러던데.. 류하는 숭아가 좋아하는 애고 선생님은 진이 좋아한다던데..?”
“진이는 어떻게 생긴 애냐?”
“있어.”
“설명을 해봐봐..”
“설명해도 넌 몰라.”
“설명을 하는데 내가 왜 몰라?”
“너 쟤들 그룹 이름은 알아?”
“핫..쿨.......이 아니라.. 핫타임.”
“너 쟤 알아?”
“라..휴..가 아니라.. 류하.”
“너 쟤들 팬이야?”
이 특종 사실을 캐낸 윤이는 숭아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최강현 핫타임 팬이래!”
“거짓말 치지마~ 강현이는 연예인 잘 몰라~”
“진짜라니까! 쟤 그룹 이름이 뭔지도 알고 있고 쟤 이름도 알고 있었어!”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거겠지~ 윤아. 나 드라마 봐야돼. 이제 그만 쉿~”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하다가 급조용해진 윤이도.. 금새 드라마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것들은..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혼자 채원을 찾는데 그 어디에도 채원은 보이지가 않았다.
* * * * *
이 시각 채원.
배도 부르고 바닥도 따뜻한게 너무 좋고 그래서 땅바닥에 배 깔고 붙어서 쿨쿨 자는 중..
* * * * *
“선생님 집에 갔나 봐.”
숭아와 함께 보던 드라마가 끝나고 강현과 함께 채원을 찾으려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지만 채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이건..?”
숭아가 채원의 가방을 들고 달랑달랑 흔들어 보였다.
“화장실에서 똥 싸다가 변기 막혀서 못나오고 있는거 아니야?”
평소에 공부할 때만 굴리던 그 머리를 굴리고 굴려 생각해낸게 고작.. 이거라니.
“윤아.. 넌 상상을 해도 꼭.. 그런 식으루..”
“좀 그런가..?”
윤은 자신이 생각을 해도 이것은 뭔가.. 굉장히 더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일생일대에 가장 큰 말실수라 생각돼.. 자신의 입술을 손등으로 북북 열심히 문질르고 또 문질렀다.
“근데 말이 안되는건 아닌거 같애.”
숭아의 이 말에 입술을 문지르던 동작을 멈추고 두 눈을 반짝 빛내며 강현의 반응을 살폈다.
“강현아.. 화장실도 찾아 봤어?”
“어.”
하지만 돌아오는건.. 이 허무한 어..단어 한 개뿐.. 이 기분은 바람 빠진 풍선이 하늘로 높이 날아 올라가는걸.. 그저 풀린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느낌..
“강현아 좀 많이 나아져 보인다~”
“어. 약 먹어서.”
“내가 준 약 잘 들지?”
“응. 고맙다.”
“고맙긴~”
숭아는 아침 학교를 땡땡이 치고 감기약을 사들고 강현의 집을 방문한 자기 자신이 엄청 뜻 깊은 일을 한 것 같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늦었는데 그만 가자..”
윤이가 나가자고 보채고 숭아도 졸린지 하품을 하며 강현의 집에서 나갔다.
강현은 침대에 앉아서 채원의 가방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실은.. 자신이 앉아 있던 침대 밑에 채원이 있었는데.. 것도 모르고들 지나치고 있었다.
* * * * *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침대 밑에서 자고 있던 채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 * * *
“형 왔어?”
“감기는?”
감기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숭아에게 들은 은현이 동생이 걱정도 되고 집도 한번 둘러 볼겸 여차여차 강현의 집에 들렸다.
“소문이 거기까지 났어? 감기.. 죽을병도 아닌데.. 뭐..”
“숭아가 걱정 많이 하더라.”
목을 꽉 쪼이는 넥타이를 푸르며 말했다.
“형, 숭아한테 관심 없는척 굴더니.. 계속 숭아가 그러니까 관심이 가져져?”
“그런 말 하지마라~ 숭아 남자친구 있다~”
계속 목을 쪼이던 넥타이가 느슨하게 풀어지자 좀 살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봐.. 숭아랑 숭아 남자친구랑 깨졌으면 좋겠지?”
“난 꼬맹이는 절대 사절이다. 누굴 범죄자 만들려고..”
“하긴.. 숭아가 형 취향은 아니지.. 맞아. 확실히 아니지..”
“근데 너 감기 걸린 놈 맞냐?”
“숭아랑 같은 소리하네.”
숭아랑 은현이 어떻게 보면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그렇게 턱을 괴고 곰곰이 은현을 살피는 강현..
“숭아 얘기 그만하고..”
강현이 피식 웃었다.
“너야말로 좀 수상한거 같은데..”
“무슨..?”
“아.. 아니야.”
“싱겁다. 최은현..”
“음..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돼?”
눕기 좋게 잘 정리정돈 되어 있는 침대를 보자 눕고 싶어졌다.
“언젠 허락 맡고 잤어? 새삼스럽게..”
“내가 요새 그런다..”
“요새?”
“아.. 아니야. 피곤하다. 좀 자야겠어.”
“안 씻고..?”
“오늘은 그냥 좀 자고 싶네.”
“더럽게.. 그러다 감기 걸려.”
“감기 걸린 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좀 웃긴데..?”
“불꺼줄까?”
“아니. 내가 끌게.”
“그래.”
강현이 문을 닫고 나간 뒤.. 은현은 침대에 누우려고 침대쪽으로 다가섰는데 이때 느껴진 발밑에 물컹한 이 느낌.. 필시 이것은.. 무언가를 밟은 듯한 느낌이었으며 필시 이 느낌은.. 이 물컹한 느낌은.. 예삿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강하게 드는 순간이었다.
“뭐지..?”
은현은 자신이 밟은게 뭔지 살피려고 바닥을 내려다보려 할 때쯤.. 벌컥 문이 열렸다.
“배 안고파?”
“어?”
“거기 주저앉아서 뭐해?”
“아.. 아니야. 아무 것도..”
강현은 바닥에 어정쩌한 자세로 주저앉아 있는 은현을 의아한 눈빛으로 쓰윽.. 보다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몇 초 안되어 닫혔던 문은 다시 벌컥 열렸다. 순간 은현의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우리 쌀 배달시킬까?”
“쌀..?”
“응. 쌀.”
“밥..?”
“응. 밥.”
“네가 웬일로.....?”
“응. 밥이 먹고 싶어졌어.”
밥이 먹고 싶다는 강현과 방금 자신이 밟은게 사람 손이었다는 사실에 은현의 심장이 또 한 번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아까 병원에서 벽을 보고 있던 액자를 가리키던 손.. 그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지금 이 공간 침대 밑에 쭈욱 뻗어 있는 손에도 껴 있는걸 보고 침대 밑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예측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 쌀 배달시키자.. 밥 먹자.”
“좋았어!”
강현은 오랜만에 쌀 주문을 할 생각을 하니 설레고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문을 닫고 나갔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분 좋은 사람이 한명 또 있었다.
침대 밑으로 사람 손가락이 보이는 오싹한 이 상황에서도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씨익.. 지어지는 최은현..
“한채원..”
은현이 채원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자 채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
그러자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에 심장 철렁함..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철렁했던 그 심장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다가도.. 처음의 자신의 옷이었던 것마냥.. 꼭 맞게 보이는.... 그 여자의 옷을 입은 한채원. 그 여자의 옷을 입은 이 여자를 보고 있으면 심장의 뜨거운 피가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침대에 눕히려고 채원을 안아 들었을 때 느껴졌던.. 차마 말로는 뭐라고 딱..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뭉클함까지..
지금 이 공간 이 분위기 이 존재는 은현의 심장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채원을 침대에 눕힌 뒤.. 목까지 끌어 올려 따뜻하게 이불을 덮어주고 편안히 눈감고 자고 있는 채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은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전혀 감지가 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은현의 모습은 길을 가다 한 가게 앞 쇼윈도우 앞에 서서 가게 안 오르골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과도 같이.. 사기엔 뭐하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애매모호한 순간에 놓여진 것과 같이.. 그러면 이때 엄마가 나타나서.. 은현아 뭐하고 있어. 빨리 안와?.. 라며 그만 그 순간에서 깨어나라 신호를 보내도.. 별 동요 없이.. 무언에 흔들림 하나 없이 그대로를 유지하고 선..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 대상 하나에만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7살에 어린아이 모습과도 같이..
“숨바꼭질 끝.”
은현이 덮어 주었던 이불을 슝 벗겨내고 곤히 잠들어 있는 채원을 가뿐히 들어 올려 다른 방으로 옮기려 등 돌린 강현은 아직까지 의자에 앉아 넋을 놓고 있는 은현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잡생각 지우고 헛소리 하지마.”
“누가 뭐라고 하냐..”
은현이 벌떡 일어나 강현을 지나쳐 먼저 방을 나갔다.
“걱정 안한다.”
강현이 채원을 다른 방으로 옮겨 눕혀 놓고 나오자 은현이 말했다.
“무슨 걱정?”
“채원 씨 손에 껴있는 반지 커플링 같던데.. 네가 임자 있는 사람한테 그럴리는 만무하고.. 그렇지만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게 좋겠지.. 형은 그것도 걱정 안한다. 근데 문제는 저번과 이번이랑은 좀 다른 문제 같아서 그게 좀 불안해서 그렇지.. 근데 형은 걱정 안한다.”
그렇게 뭐에 홀린 놈처럼 혼자 중얼중얼 거리다가 방에 들어간 은현은 씻지도 않고 바로 침대로 올라가 두 눈을 감았다.
강현은 혼자 서 있다가 소파로 성큼성큼 걸어가 벌러덩 눕고는 두 눈을 감았다.
살짝 열린 방문 틈새 사이로 둘이 대화하던걸 한 개도 빠짐없이 모두 다 듣고 있었던 채원은 그 말들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신공을 펼쳤다. 그러고 난 뒤.. 아까 낮에 먹었던 떫은 귤이 생각이나 또 먹고 싶은데 그걸 가지러 나가면 소파에 누워 있는 강현의 잠을 깨울 것만 같아 문고리를 붙잡고 이 방을 나갈까 말까 고뇌에 찬 표정을 지으며 1분 1초를 그 고민거리 아닌 고민을 붙잡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떫은 귤.. 떫은 귤.. 귤.. 귤.. 귤 먹고 싶어.. 떫은 귤.. 중독성 있는.. 그 떫은 귤.. 귤.. 귤.. 귤..”
채원은 무서운 속도로.. 입맛을.. 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 다셔갔다.
“아..”
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
“제발.. 귤.. 귤 한 조각만..”
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쩝..
그렇게 셋은 각자의 고민거리를 떠안고.. 절대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올리 없는 이 셋은 저마다 뜬눈으로 이 밤을 홀딱 지새웠다.
* * * * *
아침에 일어나 보니.. 셋 다 눈이 퀭해서는.. 그 몰골로 식탁 앞에 식사를 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너구리 세 그릇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 뭔가 아직도 선잠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이 몽롱함..
기분이 나쁘진 않아.. 그렇다고 좋지도 않지.. 도대체 이건.. 뭐지.....
“채원씨.. 채원씨..?”
“아.. 네!”
젓가락을 물고 졸고 있다가 은현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깬 채원은 젓가락을 치아로 깨물뻔 했다. 깨물면.. 치아가 겁나 아프겠지.. 큰일날 뻔했네..
“어제 많이 놀라셨겠어요.”
“아.. 저도 모르게 졸려서.. 오히려 선생님이 놀라셨을거 같아요. 그러고 있는 저를 처음 발견 하신게 선생님이시라고.....”
넘어가지 않는 밥을.. 아니.. 라면을 겨우겨우 씹어 삼키며 말을 잇는 중..
에휴.. 정말.. 이게 무슨 망신이야..
“저야.. 즐거웠는걸요.”
“즐.. 즐거우셨다니 다행이에요. 호호호~”
이 어색한 호호호..
“밥상머리에서는 대화는 되도록 삼가야 한단거 몰라?”
따가운 눈초리에 최강현..
맞아. 근데.. 어제 라면 먹을 때도 대화 많이 했었던거 같은데.. 넌 앞뒤가 안 맞는.. 위선자야. 위선자..
위선자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채원은 속으로 강현을 보며 이.. 위선자.. 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위선자..라 중얼거리며.. 라면을 한줄기.. 한줄기.. 쪽쪽 건져 빨아 먹어 갔다.
“근데 이거 먹으면서 생각한건데.. 왜.. 서랍에 있는 라면은 다.. 이거뿐인거야..? 라면 종류 다양하잖아..? 신라면도 있고 틈새라면도 있고 나가시끼도 있고.. 근데 너구리만 한.. 세 박스 되는 것 같던데..?”
아니~ 이런~ 너구리 부자 같으니라고~ 아낄낄~
“왜 젓가락이 콧구멍으로 가요..?”
“어..?”
진짜 그러고 보니 채원의 젓가락은 입이 아닌 콧구멍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 이럼 안돼.. 진정해.. 젓가락은 입.. 입으로.. 가야돼~
“아~”
이때 느껴지는 이 따스함.. 뭐지....
“..............”
콧구멍으로 향하던 채원의 손에 자신의 손을 덧씌어.. 친절스럽게.. 아~하며.. 먹여주려는 최강현이..
“푸웁..!!”
이때 건너편에서 신랄하게도 넘어 날라 오는 너구리 라면의 이 화려한 잔재들.....
“최은현씨..?”
뭔가 못 볼걸 본 것 마냥 화들짝 놀라 먹던 너구리를 뿜어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급기야는.. 사레까지 들려서는..
“콜록콜록..”
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콜록..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강현아.. 너 감기는 어때..?”
이 기침소리를 듣자 어제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기도 하고 기침을 하기도 했던 강현의 모습이 떠올라 강현에게 몸 상태를 물으니..
“아~”
몸 상태를 말해주기는 커녕.. 한껏 조련질을 하고 있었다.
진짜.. 이것은 마치.. 조련 당하는 기분..
“아.”
그럼.. 마지못해.. 아~하고 받아먹지요. 아낄낄.
“푸웁..!!!”
라면에 이어.. 이젠.. 물세례가....
“최은현 아침부터 가지가지 한다~”
채원에게 라면 한 수저 먹여주고 물먹다 사레 걸린 형한테 고작 한다는 말이.. 아침부터 가지가지한다~~~ 하지만 그 말엔 반박에 여지란 없었다. 정말이지.. 가지가지 했기 때문에.
* * * * *
식사를 한건지 만건지 너무도 정신없는 이 아침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은현은 출근을.. 강현은 등교를.. 채원은 집으로.. 가기 위해 집에서 나왔다.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채원이 집근처에서 내렸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하룻 밤새 신세 많이졌어요~”
이 말에 끝으로 어떤 말이 들려올지 무서워서 채원은 뒤도 안 돌아보고 언덕길을 뛰어 올라갔다.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채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현이 내뱉은 말..
“체육선생님 해도 잘하겠다..”
* * * * *
집에 도착한 채원은 집안을 둘러보았는데 다행히도 집안에 엄마는 없었다. 그래서 외박을 한 채원은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 배터리를 챙겨서 나가는게 목표였던지라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사천리로 착착착 모든 일을 해나갔다.
어젯밤 외박을 했지만 지원이가 알아서 둘러대 주어서 일단은 그 위기에서 벗어날수야 있었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춰선 안됐다.
핸드폰 배터리가 부족한 상태해서 지원이와 어제 통화를 끝마치고 전원이 꺼졌었는데 지금은 배터리가 만빵~ 꽉 차 있는 배터리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안심이 됐달까?
꽉 찬 배터리를 보고 기분이 좋아진 채원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려 신발을 신었다.
헌데.. 이때 열리는 문..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자가 도착했다.
“엄.. 엄마.”
“왔어?”
“네. 어.. 어제는..”
“응. 지원이한테 얘기 들었어.”
“지.. 지원이가 뭐..라고 했어?”
“나라 만났었다고 그러던데 왜 집에는 안들렀다가 그냥 갔데?”
“아.. 아. 네. 맞아요. 엄마. 저 나라 만났었어. 그리고 아침에 볼일 있대서 일찍 내려갔고.. 응.”
한지원.. 넌.. 거짓말을 해도 꼭..
“나라한테 엄마 얘기 했어?”
무언가 기대감에 찬 엄마의 이 눈빛..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거지..
“그.. 그럼. 엄마가 보고 싶어한다고 말씀 전했어요!”
“그랬더니 나라가 뭐라니? 주말에 한번 내려오겠다고 하지?”
“그게.. 요즘 많이 바쁘데요.”
“얼마나 바쁘길래???”
“어제 보니까 좀 많이 바쁜거 같더라구요.”
“근데 채원아. 너..”
순간 뜨끔한 채원은 숨을 죽이고 엄마의 얼굴 표정을 슬며시 살폈다.
“꼬박꼬박 엄마한테 존댓말 쓰니까.. 너무 예뻐 보인다~ 예쁘다엄마딸~”
“아하하.. 엄마도.. 참.. 아하하하~”
“시간 한번 내서 집에 오라구해. 와서 밥이나 한끼 함께 먹었으면 한다고.. 응?”
“알겠어요~”
“그래. 그럼, 엄마는 김장이나 해야 겠다~”
사들고 온 배추를 덜렁 들어 보이며 환히 웃어 보이는 엄마에게 본의 아니게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어서.. 채원은 마음이 불편했다.
“저기.. 엄마..........”
“응?!”
오늘따라 기분이 좋으신지 너무도 활짝 웃으시며 뒤를 돌아본 엄마 때문에.. 고백하려 했던 그 말이 입안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딸~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아.. 아니에요! 저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하구..”
“네!”
채원은 헐레벌떡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온 채원은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고는 물처럼 이마에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부지런히 닦아냈다.
“한지원.. 넌..!!!”
지원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려고 핸드폰을 열었을 때.. 아까 도착해 있던 문자를 지금에야 확인하게 되었다.
'어떻게 선생님이 강현선배한테까지 그럴 수가 있어요?'
맨 먼저 도착한 문자인.. 이 문자를 기점으로 10몇 개가 되는 문자가 수두룩이 쌓여 있었다.
'두 학생과 양다리질이라니.. 그러고도 당신이 선생이야?'
'민준선배에 이어 강현선배까지.. 제정신이 아니시네요.'
'민준선배 일은 우연이겠지 했는데.. 강현선배 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네요.'
'5번째 문자는 사진이 첨부된 문자였다. 첨부파일은 강현의 집에서 셋이 함께 나오는 사진이었다.'
'6번째 문자 또한 동영상과 사진이 첨부된 문자였다. 첨부파일은.. 동영상으론 민준의 오토바이 동영상이었고 사진은 그 동영상 캡쳐본이 함께 첨부되어 있는 이미지였다.'
'강현선배 집에서 나오는 사진뿐이 아니라 동영상도 있어요.'
'그걸 풀면 어떻게 될까?'
'선생님 저한테 잘못걸리셨어요.'
'앞으로 각오 하시는게 좋으실 거예요.'
문자내용도 문자내용이지만 더 충격적이었던건 발신자번호였다. 그 번호는 바로 윤세영의 번호였다.
이때마침 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채원아 괜찮아? 너한테도 문자 갔어?”
“문자?”
“나한테 문자가 왔어. 오늘 아침에 너 누구랑 있었어? 아니. 어제 어디 있었어?”
채원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는데..
“내가 받은 문자 너한테 보내줄게. 잠깐만..”
뚝 끊긴 전화. 그리고 바로 도착한 문자. 경에게 보내진 문자는 자신에게 보내왔던 그 사진이 아닌 귤을 사들고 강현의 집에 방문한 사진이었다. 그 뒤로 자신에게 온 똑같은 사진도 함께 있었다. 파..파라치인가..?
“문자 확인해봤어..? 어제 연락도 안돼고..”
“경아 미안해.”
“뭐가?”
“나.. 어제 강현이네 집에 있었어.”
“뭐?”
“강현이가 감기 걸렸다고 해서 병문안차 갔었어.”
“근데 왜 아침에...... 그래. 나는 널 믿는데.. 근데.. 어........”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고 또 말하려다가 말고..를 반복하는 경이었다.
“우리 지금 만나자.”
“학교는?”
“내가 보기엔 별로 시간이 없을거 같다..”
그 말에 채원도 동감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누가 보아도 지금 이 상황은 채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게 확실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문제에 대해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일은 삽시간에 부풀려 커져갈건 그 누가 봐도 뻔했다.
* * * * *
노출되지 않는 곳에서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경의 차안에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네가 받았다는 문자 다 보여줘.”
하지만 채원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너랑 비슷한 문자였어. 크게 다른 점도 없었고..”
채원은 세영의 전화번호를 무의식적으로 의식을 하고 있었다. 분명 그 문자를 보낸게 세영이라는걸 알게 되면 대응책은 물론이거니와 진지한 대화 또한 물 건너 갈거란걸 채원은 경을 오래 알아 익히 알고 있는지라 최대한 그 문자에 대한 말을 아꼈다. 참고로 경에게 온 문자발신자 번호는 엉뚱한 번호 네 개에 숫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일을 해결을 하려면 어제 그 정황설명이 필요해.”
채원은 경의 시선을 피했다.
“있지 경아..”
경이 채원을 바라보았다.
“민준이때랑 같은거 같아.”
오랜 고민 끝에 이와 같은 말을 털어 놓자.....
“나도 그 생각 했어.”
채원은 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문자를 보내 올리 없잖아. 너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면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최강현인지.. 최강현이 너랑 무슨 사이인지.. 네가 최강현네 집에 드나들든지 말든지 상관할 필요가 없지.. 결론은 너랑 상관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 일이 문제가 되는 거야..”
채원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로써 분명한건 상대방의 타깃은 이민준도 아니고 최강현도 아닌 바로 한채원 너라는거야.”
이 말에 채원은 순간 오싹해졌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남에게 원한을 살만한 행동을 했었던 적이 있었나..?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기억이 잘 떠오르질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거지..란 생각을 해보았지만.. 일단 자신의 행동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채원은 간과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네 충고를 무시한 벌인거 같아.”
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네가 그랬지. 적당히 하라고. 근데 난 적당히가 안됐던거 같아.. 모든 상황이 내가 의도한게 아니라 그렇게 됐던거긴 한데.. 근데 내 부주의로 일이 그렇게된건 사실이니까..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던거야.. 맞아.. 그걸 부인할 생각은 없어. 근데..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뭘 의도했다거나.. 뭐.. 나쁜 생각으로 그렇게 한건 아니야. 생각이 짧았다면 짧았을 뿐이지.. 그런건 절대 아니야. 너는 알지?”
나를 믿지?..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라면 죄인 이게 결코 눈 한번 딱 감고 넘어갈 일이 아니란 것쯤은 채원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아. 그리고 믿어.”
이 말에 채원은 뭔가 기뻤다. 이런 상황에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크게 감사했다. 뭔가 축 쳐진 기운이 되살아 난 것 같은 느낌이었고 힘이 불끈불끈 솟아났다. 이런 기분이 오래도록 지속됐으면 하는 생각이 이 짧은 순간에 스쳐갔다.
“근데 나는 너를 알고 너를 믿지만.. 이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그 사람들은 너를 모르니까 너를 비난할거야.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일을 만들어낸 장본인을 찾아서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찾아야 하는데.. 근데 이 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누군지 모른다는게 문제지.. 그러면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고 그렇게 손 쓸 수도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건 최악의 상황에서.. 그렇단 거고..”
말을 하면서 채원을 살피던 경이 점점 얼굴빛이 어두워지는 채원을 의식해 위로차 내던진 이 말에.. 채원은 힘이 더 빠졌다.
“짐작 가는 사람 없어..?”
채원은 이 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누군지 알고 있지만 섣불리 발설을 하진 않았다. 그러면 일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안 좋게 흘러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응책을 함께 논의하고 그 대응책을 가지고 정면 돌파 해야지만 이 일이 해결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제대로 실행이 될지가 의문이었다. 타이밍 하나만 잘못 계산해도 여기서 펑.. 저기서 펑.. 결국은 우리 모두 펑.. 지금부터 심사숙고해서 모든 것을 결정, 실행, 결과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인지라.. 채원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래.. 장본인 찾는건 나중인거 같아. 일단 대책을 논의해보자..”
경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까 네가 그랬지.. 내 말을 무시해서 받은 벌 같다고..”
“응.”
“그럼 기억해..?”
“뭘?”
“내가 그 말을 하면서 함께 했던 말..”
채원은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갔다. 그리고 기억난 그 말들을 하나.. 하나.. 정리해 갔다.
“이민준 뭔가 석연찮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다. 다.. 석연찮아..”
“그 스카프.. 그 스카프는 왜 이민준이 갖고 있었던건데?”
“그럼 답은 하나네..”
“어떠한 뚜렷한 그 무엇도 없는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면.. 윤세영과 이민준의 사이를 한번 의심을 해봐봐.”
“최강현이랑 이민준이랑 친구잖아? 그럼 최강현이랑도 아는데 이민준이라고 모르겠어?”
“봐. 이민준과 윤세영이 서로 아는 사이이니까 그 스카프도 연결이 되는 거지.. 그 스카프 구하긴 쉬울 수 있어도 똑같은 스카프를 갖고 있을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아. 그 스카프가 브랜드가 있는 스카프도 아니고.. 무브랜드인데... 그런 상품.. 스카프를 세 명이서 동시에 갖고 있을 수 있다는게 너는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난 뭔가 수상쩍어. 이 기분이 단순히 첫인상 때문에 그런건줄 알았는데.. 이 부분만 봐도 그건 아닌거 같아. 뭔가..... 있어.”
"어떠한 뚜렷한 그 무엇도 없는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면.. 윤세영과 이민준의 사이를 한번 의심을 해봐봐."
..경이 했던 말들 중에서.. 유독 이 부분이 제일 또렷히 기억났다. 윤세영과 이민준의 사이.. 하지만 채원은 두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마구 쥐어박으며 이 망상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쳐댔다. 그런 채원을 겁을 잔뜩 집어 먹고 뜯어 말리는 경..
“왜 그래.. 진정해!!!”
무언가 자신이 한 말을 생각해 낸거 같은 채원에게 경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자.. 전화해봐.. 네 전화 받나.. 안 받나.. 전화해봐.”
“무슨 전화? 누구한테?”
채원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이민준, 최강현, 윤세영. 이 셋에게. 아. 부가적으로 숭아랑 윤이한테도 하면 더 좋겠지.”
지금 이 순간은 냉정하고 칼 같은 경의 이 성격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었다. 냉철하고 매서운 놈..
경의 핸드폰을 빤히 보다가.. 일단.. 밀어 올려 잠금 해제를 한 뒤.. 통화키 버튼을 누르고 주소록을 뒤져갔다. 하지만.. 목록을 내리고 또 내려도 아이들의 번호는 보이지가 않았다.
“애들 번호는?”
“내가 걔들 번호를 왜 갖고 있어?”
이와 같은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할 수 있는 경이.. 오늘따라 더 낯설었다.
“아쉬우면 애들이 먼저 전화하게 되어 있어.”
국 경.. 너의 그 아쉬우면에 속하는 그 아쉬운 상황이 과연 어떤 걸까..?
출처 : 그 달콤함♥ (http://cafe.daum.net/BESTks)
첫댓글 사랑해요~
재잇당><
재밌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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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다음편이 기대가 되는...
재미짱^^
잼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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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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