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Mata Hari 1876년~1917년)는 네델란드 출신의 무용가인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
(Margaretha Geertruida Zelle)의 가명이다. "마타 하리"라는 이름은 말레지아와 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 이라는 뜻으로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자바섬에 살던 당시 배운 춤과 이국적인 외모로 돈을
벌며 파리로 와 물랭루두등을 무대로 선정적인 복장에 선정적인 춤을 추는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네덜란드의 시골 출신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신의 정체에 대해 수많은 헛소문을 뿌렸다.
인도 어느 지역의 사제라는 것부터 자바의 공주라는 것 등의 헛소문과 억측이 난무하는 중에 팬들의
열정은 더욱 깊어졌
특히 언어에 재능이 있었는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베를린에 있던 마타 하리는 독일 정보기관에 2만마르크를 받는 조건으로
포섭돼 암호명 'H21호'로 연합군 고위장교들을 유혹, 군사기밀을 정탐해 독일군에 제공해 왔다.
당시 그가 수집한 정보는 연합군 5만 명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고급정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영국의 정보기관이 베를린-마드리드간의 외교통신을 해독, 그녀가 스파이임을 밝혀내 프랑스 정부가
파리에서 그녀를 체포해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마타 하리가 실제로 첩자였는지, 아니면 그것도 그녀가 뿌린 수많은 헛소문들 중 하나였는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논란이 가중된 것은 1999년 영국 정보부 MI5가 한 정보보고서를 공개하며
마타하리가 'H21호'이라는 암호명으로 독일군에 주요 군사정보를 빼돌렸다고 자백했다는 프랑스측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혀 마타 하리 처형에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상류 사교계에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육군 정보부에서 그녀에게
접근하여 거금을 주기로 약속하고 프랑스 육군 의 정보를 빼내기로 그녀와 계약한다.
당시 그녀가 출연하는 클럽은 프랑스의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사, 외교계 고관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어서
독일측은 많은 기대를 했으나, 그녀는 그다지 많은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그녀를 통해 독일이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프랑스 고관들의 사생활에 관련된 정보뿐이었다고
말했을 정도. 이 과정에서 프랑스 육군항공대 의 에이스 파일럿 샤를 눈제서 등의 유명인과 염문이 나돌기도 했다.
대전 중반, 프랑스 육군 정보부에서도 스파이 행동을 눈치채고 접근하여 오히려 독일측의 정보를 빼내올
이중 스파이로 만들고 독일 방첩기관장을 유혹하여 접근 시키기 위해 스페인으로 보낸다. 그러나 이 임무
역시 독일측이 눈치채서 실패. 독일은 오히려 역정보를 프랑스에 흘려 프랑스측은 그녀가 여전히 독일을
위해 일한다고 판단하여 그녀를 체포하였고, 마타 하리는 파리 교외에서 반역 혐의로1917년 10월 15일
총살형에 처해진다.
사망 당시 나이는 만 41세. 죽을 당시 마타 하리는 모든 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서인지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미소 지으면서 사수들에게 "어서 쏴요. 그걸 계속 들고 있는 것도 힘들지 않나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시신을 맡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니 그냥 인체 해부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생전에 밝혀서
사형 집행 후 시신이 그대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마타 하리는 스파이가 아니라는 말이 나돌았고, 팻 시프먼(Pat Shipman)이 쓴 마타 하리에 관한
책인 팜타팔(Femme Fatale)에서 마타 하리는 스파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스파이가 아닌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어왔다. 하지만 실제 스파이였다는 점은 틀림없다. 기밀해제된 독일군의 문서에서 첩보
활동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1915년에 독일군의 스파이가 되었고 쾰런에 머무르는
동안 첩보 훈련을 받았으며 뒤셀도르프로 보고서를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