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HEAVEN 제품인 신부단장품을
지금 100% 바겐세일을 하고 있으니
값없이 많이 사가시기를 바라면서
첫째. 사랑의 단장품.
고린도전서 15: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만일 신랑을 사랑하지 않는 신부가 있다면 혼인이 가능할까?
주를 사랑함이 없는데 그냥 환란이 무서워 휴거를 기다린다면
과연 휴거가 가능할 것인가?
분명코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겠다고 했으니
여기에서 말하는 저주가 무엇이겠는가?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없는 것보다
더 큰 저주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신앙의 년조도 있고
성경의 지식도 탁월하며
봉사도 앞장서서 열심히 잘 해 왔으며
교회에서는 약방에 감초 같은 존재와 같이
또 화려한 직분도 가지고 있을지라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채워져있지 아니하면
그 마지막은 저주일 뿐이다.
사랑은 입술로만 고백하고 끝을 맺는 것이 아닌,
주님을 위하여,
또는 형제를 위하여 몸으로 희생을 할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는 마음의 각오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믿음이
MADE IN HEAVEN 제품인 사랑인 것이다.
이런 사랑이 신부의 으뜸 단장품인 것이다.
만가지 단장품을 갖추었어도 사랑이 없으면
신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둘째, 희락의 단장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신부의 특징중의 하나가
가슴설레이는 희락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해야할 신부의 얼굴에 희락의 모습은 없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면 이는 필시 문제가 있다.
과거에 사귀던 남자?
내놓고 말못할 사연이 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1982년도로 기억되는 초년 목회시절에
중동에서 기름밥을 먹던 우리교회 여집사님 남편이
오랜만에 귀국하는데 누구보다 더 반갑고 즐거워해야할
여집사님의 얼굴에는 기쁨이나 즐거움 보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왜 그럴까?!
아주 오랜만에 신랑을 맞이하는 얼굴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것이 당연한 일인데 왜 그럴까?!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즐거움의 희락이 있음이
너무도 당연하지만 만일에 희락 대신에 어두운 그늘이 있다면
문제가 있음이 당연하다.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과 하나님만 아는 일이 있으므로
이것을 걷어내어 희락으로 단장을 해야할 것이다.
시편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 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주님을 기다리며 설레이는 즐거움이 회복이 되도록
회개하여야 할 것이다.
희락의 단장을 못하면 세마포의 단장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세째. 화평의 단장품.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화평은 죄를 짓자고 꾀이는 사람들과도
너좋고, 나좋고 우리 모두 좋은 길로 가라는 말씀이 아니고,
내가 희생을 하고 손해를 본다해도 넉넉히 감수하면서
상대의 유익을 도모하는 화평의 관계,
곧 나의 희생을 기반으로 사랑의 관계를 가지므로
상대가 주님을 가까이 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러한 인간관계가
거룩함의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 하면서도 물질적인 문제나,
다른 인간적인 관계로 사람과 원수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주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을 도모하는 것이
최고의 단장이다.
화평의 사람이 되어서 과연 하나님의 다웁구나!하고
이방인들에게라도 칭찬을 듣는 사람은 화평의 단장품으로
아름다운 단장을 하는 신부인 것이다.
네째, 오래참음의 단장품.
말세에는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서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서울 방배동에 중대형 교회 어느 목사는 강단에서
"요지음 말마다 사람들이 말세 말세 하는데
그 말세가 초대교회부터 말세라 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그 말세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난다"
고 짜증을 부리면서 주님이 오실려면 3대는
지나야 오신다고 했다하니 과연 기롱하는 자들이
나온다는 성경 말씀이 응하는것 같다.
주님의 재림이 더딘것은 우리때문에 오래참고 계시기에
주의 재림은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중에 하나가 오래 참으심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무던히도 참아오셨다.
내가 거듭나고 변화되기까지 무던히도 참아주셨다.
그러고보면 내가 이만큼이라도 된것은 하나님이
오래 참아주신 덕분이다.
그런데 벌레같은 인간들이 오래참아주시는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의 속을 쑤셔대므로 진노하게 하신다.
그래도 하나님은 꾹 참고 계시는 것은
구원을 받아야할 자들이 바로서기까지 참아주고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오래참는 성품을 길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까지 오래참고 기도해야하고
형제의 잘못을 대하여도 오래참고 기다려줄 인내심을
길르므로 오래참음의 단장을 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끝까지 견디는자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같이 믿음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우선 편하고 좋은
넓은 길을 가버릴적에도 고지식하게 좁고도 좁은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은 오래 오래 참는 성품이 없이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잘 참고 살아왔는데
오늘 넘어져 낙심해 버린다면
이제까지의 공든탑이 다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많은 괴로움의 연단속에서
오래참는 성품을 길러야 할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으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래 참는 성품이 생긴다.
다섯째. 자비의 단장품.
자비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도 자비의 성품을
기르시기를 바라고 원하신다.
법과 원칙만 내세우면서 율법을 따라 살면서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잘하던 사람들에게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내려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마침 제사장이 그 길로 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고,
그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주면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와서
갚으리라,고 당부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듣는자에게 이르시기를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물으시니
자비를 베푼자라고 대답하매
너도 가서 이와같이 하라,고 당부하셨다.
주님은 우리가 무엇보다 더 자비의 사람이기를 원하신다.
자비로 단장하여 어떤 상황속에서도 자비를 사람을 불쌍히 여겨
능히 자비를 베풀어 돕는자가 되기를 원하신 다는 것이다.
여섯째. 양선의 단장품.
은혜받고 예수님을 닮기를 원한다면서도 양선의 열매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양선(讓先)이 무엇인가?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덕을 말하는 것이다.
좋은 것을 남에게 베풀줄도 알아야하는데
시장에서 물건을 살때도 너무 좋은것만을 고르고
값을 깍기를 좋아하여 싸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은
양선으로 단장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주님은 천국의 좋은 것을 다 주시려고 하셨고
마지막엔 당신의 몸까지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내 놓셨다.
주님은 한번도 당신 것을 먼저 챙기시고
물건을 한번도 지나치게 깎으시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물건을 깎아 사는 것들이
버릇이 되고 생활화 되어 양선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일곱째. 충성의 단장품.
“나의 원데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데로 되길 원하나이다”
겟세마네 동산의 마지막 기도데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하신 주님은 우리에게도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바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원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눈가림 식의 삶이 더 많은 것 같다.
심지어 기도 하는 일 까지도 하나님께 보이기 보다는
사람에게 보이려는 눈가림식의 기도도 있었다.
주님은 어떤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가?
크고 엄청나고 굉장한 일을 할때 주시는가?
아니다,
작은일에도 죽도록 충성할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덟째. 온유의 단장품.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렇다,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신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침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아도, 갖은 모욕을
당해도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라는 등의 위협적인 말로
되갚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셨던 것이다.
사도 바울도 다 큰 어른이 전도하다가 매를 맞고
갖은 수모를 당했어도 참고 또 참았던 것은
그는 주님께 온유함을 배웠으므로 온유한 사람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이 온유하지 못하면 매맞고 갖은 모욕과 후욕을 당하며
까닭없는 멸시와 천대를 견디지 못하고 죽기살기로 폭팔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말 한마디도 참지를 못하고 혈기를 부린적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도 주님께 배워서 온유로 단장을 해야
그리스도의 신부로 당당히 서게 될 것이다.
아홉째. 절재의 단장품.
우리 속담에 넘치는 것은 모자란것만 못하다고 했다.
절제(節制)가 쉬운것 같아도 제일 어려운 것이 절제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하여 지나치지 않게 한다는 것이 쉽지않다.
나 좋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던지 말던지
상관없이 해 버리는 사람은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유아(幼兒)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기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서는 참으며 사용하지 않는 다고 하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까지 먹지 않았던 것이다.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늘 절재를 하려고 힘쓰는 것을 볼때 아름답게 보인다.
절제로 단장한 사람은 너무도 품격있게 보인다.
이렇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없이는
고급스런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을 할 수 없다.
또 성령의 전적인 도우심이 없이는
성령의 열매로 단장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겸손히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길 바란다.
그러므로 돈없이 값없이 많이 퍼가시길 바란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