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나 그림책에서 누구나 한번쯤 봤을 고성(古城),
독일 남부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입니다.
독일어는 잘 모르지만 영어로 치면 노이(new) 슈반(swan) 슈타인(stone)이어서
글자 그대로 옮기면 '반석 위에 지은 새 백조'의 성이라는 뜻이 됩니다.
'슈반슈타인'은 12세기 이곳 기사들의 성에서 따온 고유명사라고 합니다.
어쨌건 한 마리 백조가 우아하게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이지요?
백조의 성은 19세기 중반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2세가 지었습니다.
그가 성 이름 앞에 노이(new)라고 접두어를 붙인 연유는?
부왕 막시밀리안 2세가 백조의 성 저 아래 알프 호숫가에
역시 백조를 테마로 지은 호헨슈반가우성보다 새롭다는 뜻이겠지요.^^
미리 실망스런 얘기를 드리자면, 백조의 성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됐습니다. +_+
'촬영 금지'라는 루브르박물관, 대영박물관, 바티칸박물관 모두
동서양 가리지 않고 모든 방문객이 디카 플래시까지 터뜨리며(아무도 제지하지 않고)
사진을 찍던데 -_-;;
백조의 성에선 영어 가이드가 이끄는 소그룹으로 따라다니다 보니
차마 철커덕 하고 셔터를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플래시 없는 사진 촬영은 허용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새삼 솟았지요.^^;;
대신 백조의 성에선 이런 북쪽 풍경.
이런 서쪽 풍경이 내다보이고.
그리고 성을 바라보는 뷰포인트를 성에서 보는 풍경도 전해 드립니다. ㅠ_ㅠ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서유럽여행 셋째 날이자
독일여행 마지막 날인 5월 30일
오스트리아 접경 도시 퓌센으로 갑니다.
독일 정부가 1960년대부터 관광상품으로 설정해 세일즈해 온 여러 여행코스 중에
로마로 가는, 가장 인기있는 로만틱 가도의 남쪽 종점에서
어느 미치광이 군주의 미치지 않은 예술 사랑과, 매우 인간적인 정치 혐오를 봅니다.
19세기 독일에 할거한 여러 왕국 중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이어 세번째로 강력한 군주국가가
뮌헨을 수도로 한 '남 바이에른'이었습니다.
왕정이 급격히 쇠퇴하고 시민사회가 커가면서 쇠락해가던 바이에른 왕국의 영화가
퓌센 시가지에서 남쪽으로 4km 떨어진 슈반가우 숲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세계적 관광지가 된 이 북알프스 호반도시의 주차장에 서면,
왼쪽 언덕 위에 분홍빛 사암으로 올라선 성이 보입니다.
루드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의 호헨슈반가우성이지요.
이 성 안 '백조의 기사'라는 홀엔 독일의 민족 설화
'로엔그린'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바그너의 오페라로 세계에 알려진 이 설화의 시작 부분만 소개하자면,
중세 안트워프왕국의 장군은 모시던 군주가 누나에게 살해됐다고 누명을 씌운 뒤
영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왕 하인리히는 장군과 왕의 누이, 양쪽의 진실을 결투로 가리라고 하고
공주를 대신해 결투해 줄 흑기사 로엔그린이 백조가 끄는 배를 타고 와
나쁜 장군을 한칼에 벱니다.^^*
어린 루드비히 2세는 이 벽화를 보며 아버지보다 더 멋진 성을 짓겠다고 맘먹습니다.
아버지 성벽 위에 올라앉은 백조상에서 아들이 펼칠 꿈의 날갯짓을 봅니다.
주차장에서 저 멀리 동쪽 절벽 아래 아들의 '새로운' 백조의 성을 쳐다봅니다.
백조의 성은 19세기 중반, 세계가 이성과 과학으로 흘러가던 근세에 지어졌지만
신비와 낭만이 가득합니다.
어두운 삶의 그림자를 짙게 남긴 채
물거품처럼 스러져버린 감수성 덩어리 군주,
근대의 시대착오적 왕 루드비히 2세를 저 성에서 만납니다.^^
대부분 관광객들처럼 셔틀버스를 타고 서쪽 언덕을 올라
오른쪽 슈탄도르트라는 곳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예외없이 그 오른쪽 위 다리로 몰려 갑니다. ^^
아찔한 계곡을 가로질러 백조의 성보다 더 먼저 지어진 마리엔 브리케(다리)입니다.
루드비히 2세의 어머니인 여왕 마리의 이름을 땄답니다.
그렇게 오래된 다리에 한 자리 비집고 서기가 힘들도록 관광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을까 겁날 정도입니다.^^;;
저 아래 쏟아지는 폭포에서부터 높이가 무려 92m입니다. -_-;;
그렇게 아찔하고 좁은 다리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건
거기서 인증샷 한 장을 찍기 위함이지요.
동쪽으로 백조의 성이 그림엽서처럼 펼쳐지는 뷰포인트이거든요.
회백색 대리석 성채 왼쪽 위로 푸른 첨탑이 머리처럼 솟아 있는 게 백조 같지 않나요?
루드비히 2세는 어려서부터 시와 노래와 미술에 능했고 건축도 깊이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술적으로 민감한 소년이 열일곱 살에 아버지와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본 뒤
로엔그린의 백조의 전설과, 작곡가 바그너에 심취합니다.
그는 열아홉 살인 1864년 바이에른 왕에 오릅니다.
그 무렵 사진(성 안 기념품가게에서 찍었지요^^;;)에서 루드비히 2세는 상당한 미남입니다.
키도 190cm나 되는 거구였다고 하네요.
그는 막대한 유산을 지닌 오스트리아 공주와 약혼했다가 파혼한 뒤
(그가 게이였다는 설도 있구요^^;;)
더욱 스스로의 세계에 침잠합니다.
왕위에 오른 5년 뒤 성을 짓기 시작해 무려 17년 동안 왕가의 돈을 퍼부어 백조의 성을 짓습니다.
그러면서 뚱뚱하고 볼품없는 남자로 변해갔다고 하지요.-_-;;
그래서 다시는 초상화도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면서 성 건설과 함께 착수한 일이 바그너 후원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바그너는 입신은커녕 빚에 쪼들려 도망다니던 신세였는데
루드비히 2세가 스위스 루체른에 집도 지어주고 생활비도 풍족히 대주면서
대 작곡가로 설 수 있게 됐지요.
급변하는 19세기 정세와 무관하게 살고 싶었던 루드비히 2세는
백조의 성 짓는 일과 바그너를 예찬하는 데 모든 걸 바쳤고
파티에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처럼 차려입고 나타나거나
밤이면 황금으로 장식한 마차를 타고 성 주변을 달렸다고 합니다.
보불전쟁을 앞둔 비스마르크는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2세에게 비상한 정치적 처신을 요구했지만
그 모든 것을 모른 척하고 회피했던 이 낭만 군주는
결국 신하들에 의해 아버지의 호헨 백조의 성에 감금된 지 사흘 뒤
호수에 변사체가 돼 떠오릅니다. 1886년 나이 마흔한 살 때였습니다.
마리엔 다리에서 백조의 성으로 가는 숲길에서, 태엽을 감았다 푸는 악기로
독일 가곡을 연주하는 거리 공연자를 봅니다.
그 깊섶에 우리 민들레 비슷하면서도 키가 훨씬 더 큰 홀씨가 늦봄을 말합니다.
이제야 성 앞에 섰는데 마당이 너무 좁아 성채를 잘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_+
150년 전 성인데, 유럽여행 며칠 동안 너무 옛날 것만 봤는지
고풍스런 기분이 덜하기도 했습니다.^^;;
성채 위 하늘에 떠다니는 패러글라이더들이 부럽습니다.^^
광각렌즈로 성채 오른쪽 모습도 담아보구요.^^
성 안마당으로 들어갑니다.
여행사에서 단체예약을 해서 왼쪽에 단체 번호가 나올 때
지하철 출입구처럼 티켓을 넣고 들어가게 해놓았습니다.
근데 내 티켓을 넣어도 바가 안 열려서 앞의 일행을 놓칠까봐 한참 당황하고 쩔쩔매는데
곁에 있던 갖가지 인종(?)의 관광객들이 "내 것 넣어 보라"며 응원하는 겁니다.^^
그중 한 백인 남자가 건네준 티켓(이 사람은 이 티켓을 안 쓸 거라며)이 먹혀서
뒤늦게 들어가게 됐는데
나중에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이었으면 어쨌을까' 생각하니
참 인상적인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인기 있는 관광지여서 개별 입장객은 기약 없는 줄을 서야 하지만
단체로 예약하면 기다리지 않고 제 시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단체는 보시다시피 영어와 독일어 두 가지 언어 가이드를 따라다니게 돼 있습니다.+_+
영어 가이드가 해설을 시작하는 초입
마지막 사진(^^;;)으로 루드비히 2세의 흉상을 찍어둡니다.
이 남자는 나라와 정치를 팽개친, 무능하고 정신 나간 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세기 반이 흘러 세계인들이 그와 백조의 성을 보러 퓌센으로 몰려옵니다.
지금 독일 관광의 상징이 된 그를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요.
대리석 바닥 위 빨강과 보랏빛 기둥들이 금빛 찬란한 천장을 받치는 대관(戴冠)홀,
바그너 로엔그린의 인물과 무대를 그려놓은 거실,
탄호이저의 모든 것으로 가득찬 서재...
문짝 놋쇠 손잡이까지 방 안 곳곳엔 백조상이 퍼즐처럼 조각돼 있었습니다.
결국 사진은 하나도 못 찍고, 돌아 내려오는 길 개방된 주방만 한 컷 남깁니다. ^^;;
항상 냉온수가 흐르고 자동으로 꼬치를 돌리는 시설까지, 당시로는 첨단 시설을 갖췄답니다.
내부 시설은 못 찍었으니 바깥 창으로 펼쳐지는 풍경이라도 찍어야지요.^^;;
성 북쪽 포르겐 호수와 유화 물감을 발라놓은 듯한 들녘과 마을을 봅니다.
서쪽으론 이런 산악이 펼쳐집니다.
성에 오기 앞서 성을 내다봤던 마리엔 다리입니다.
오후가 되면서 아까보다 사람들이 적어지긴 했지만
참 아찔한 곳에 놓인 다리입니다.^^;;
백조의 성 측면,
그 중간 베란다에서 내다보는 풍경입니다.^^*
조금 서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알프 호수가 보입니다.
숲과 알프스와 호수....
저런 호반에서 살고 싶습니다. ^^;;
그 오른쪽으로 루드비히2세 아버지의 호헨슈반가우성이 보입니다.
이국적이라는 상투적 표현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요. ^^;;
남편이 '백조의 성'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희희낙락입니다.+_+
독일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파리가 달라붙어 있더라는 글을
오래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오늘 실제로 목격하고 찍어 왔다는 겁니다. ^^;;
이 파리는 플러싱을 해도 그 자리에 꼼짝않고 있는데
진짜 파리가 아니라 변기에 사실적으로 그려놓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남편 말로는, 우리는 남자 소변기 위에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어쩌구 하는데
이 파리 한 마리 만큼 효과가 없을 거라고 합니다.
이건 남자의 '조준 발사 본능'과 관계가 있다고 하네요....^^;;
내려올 때는 반대쪽 완만한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갑니다.
거기서 올려다본 백조의 성 북쪽 모습입니다.
백조의 성은 잘 알려졌다시피
월트 디즈니가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애너하임에 디즈니랜드를 세우면서
백조의 성을 본떠 팬터지 랜드의 상징적 건물을 세웠다고 해서 더 유명하지요.
이제 저는 이 성을 볼 때마다
디즈니랜드보다는 어느 여린 독일 군주,
정치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 바이에른 왕을 연상하게 될 겁니다.
첫댓글 베리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