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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로 드래프트에서 동호회 MBS에서 활동했고 실업팀인 세종시 점핑호스에서 뛰었던 김정년이 전자랜드 4R에 뽑혔습니다.작년 김준성처럼 감격적인 장면이나 기사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는 대학에서 농구부를 그만두고 대학동아리와 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실업에서 뛰면서 프로를 준비했고 이번에 드래프트에서 뽑히게 된 케이스입니다.역대 생활체육계에서 뛰다가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선수는 총 3명이 있으며 그 선수들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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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년(G.MBS.2017 프로드래프트 4라운드 전자랜드 지명)
김정년은 팀이 우승권에 있던 팀이 아니라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작년 제가 MBS에서 뛸 당시에도 동호회 베스트 5를 뽑았을 때 유지호와 함께 동호회 최고의 가드로 꼽았을 정도로 실질적인 기량에서 탑클래스의 기량을 보여준 선수입니다.안양고 출신으로 고교재학 당시 고교 3관왕을 이끌면서 고교 랭킹 1위로 꼽혔을 정도로 유망주였으며 이후 우여곡절끝에 경희대로 진학했는데 이후 대학농구 생활을 제대로 못하면서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됩니다.
이후 경희대 스냅과 존에서 모습을 보이면서 대학동아리 생활을 했고 이후 MBS에서 뛰면서 그 기량을 보여주게 됩니다.사이즈는 크지 않지만 선척적인 근력과 이후 키운 웨이트가 좋고 볼을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는 핸들링과 곳곳에서 던져올리는 다소 무리한 슛들까지도 림을 가르는 정교함과 상대 가드들을 초토화시키는 수비능력 그리고 경기내내 성실하게 뛰는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필자가 사석에서 2016 동호회 가드 NO.1으로 꼽았던 선수였습니다.너무나 좋은 기량에 결국 다시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생활체육 농구를 하면서 접한 자유분방함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데 TV 프로그램 리바운드에서 현 LG감독인 현주엽에게 호통을 당하고 화제도 되었습니다.
이후 세종시 실업농구단인 점핑호스에서 천안펜타곤에서 뛰었던 전 프로선출 가드인 원지승등과 함께 뛰면서 농구생활을 이어갔고 실업에 간 덕분에 생활체육계에서는 사라졌습니다.다만 3X3 농구대회에 전상용 김상훈등과 함께 아울스로 출전해 정병국, 정영삼, 정효근, 강상재등이 출전한 전자랜드 A팀을 꺽는등 좋은 기량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전자랜드 현역 선수들과의 매치업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는데 그 결과로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에게 좋은 결과물을 남겼습니다. 그때부터 드래프트에서 다른 팀이라면 몰라도 전자랜드라면 뽑힐 수 있을 것 같디는 말이 돌았고 결과적으로 전자랜드에서 그를 픽업했습니다.선수활용을 잘하는 유도훈감독의 조련이 그를 통해서 빛을 발하고 이후 그가 생활체육 농구를 하면서 느꼈던 절박함으로 프로에서 부디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비운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프로드래프트에서 낮은 순번이긴 하지만 프로선수의 기회를 움켜쥔 김정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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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훈(G.업템포.2006 수련선수 입단 이후 SK나이츠 정식선수로 1군등록)
필자는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잦은 편입니다.대부분 농구동호인들인데 2000년대 이후 일반인들보다 꽤나 많은 경기를 보아온 필자에게 역대...최고...뭐뭐하는 질문을 많이 듣습니다.그중 2000년 이후부터 현째까지 역대 뛰었던 가드중에서 1:1로 보았을 때 최고는 누구였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그때 필자의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선수가 바로 최종훈이었습니다.
최종훈은 중앙대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감독교체등의 시련으로 결국 농구를 그만두었습니다.이후 알바등으로 학업을 이어갔는데 그때 생활체육 농구계를 접하게 되었고 양진규등 당대 최고의 가드들이 풍부하며 동호회 最古의 팀중 하나로 꼽히는 페가수스(1975년도 창단)에서 모습을 보였는데 두가지로 센세이션했습니다.하나는 경기장에서 보여준 엄청난 다혈질 기질과 실로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돌파와 빠른 드리블 후 급제동 후 쏘아올리는 3점과 미들등의 공격력이 대단했습니다.웨이트가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공이 땅에 붙어다닌다고 할 정도로 낮고 빠른 드리블링과 상대의 자세를 무너트리는 돌파력은 지금까지 보아온 선출들중 최고라고 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KBL 전국 3:3 대회에서 대부분의 팀이 가드보다는 포워드 센터를 위주로 팀을 짜서 높이의 농구로 우승을 노렸는데 반해 최종훈이 나온 팀은 최종훈이 미스매치였음에도 대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끌어 전국을 놀라게 했고 또한 소속팀인 페가수스에서는 센터진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외곽을 넘나들며 상대 수비를 두드려 팀을 강호로 군림하게 했습니다.또한 당대의 쟁쟁한 선수들이 출전해 지금과는 다른 용호상박의 대결투를 벌였던 2004년 문광부 전국대회 청년부에서 서울을 우승으로 이끌고 MVP를 수상하면서 3:3과 5:5모두 평정했습니다.
이후 프로드래프트를 신청했으나 드래프트되지 못하며 꿈이 좌절되는 듯 했으나 수련선수로 SK에 입단하게 되었고 이후 1군 등록까지 하면서 입지전적인 기록을 쌓고 생활체육 농구계의 신화가 되었습니다.이후 프로의 알수 없는 높은 벽에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주특기인 공격이 아니라 전문 수비수로 기용되는 등 그를 살릴 수 없는 플레이를 이어가다가 은퇴했습니다.
이후 업템포에서 농구를 하면서 팀을 메이저 대회 우승과 입상등 뛰어난 활약으로 이끌면서 오랜시간 활약했고 37살이던 늦은 나이에 2015년 동아리농구방이 선정한 동호회 농구 베스트 5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면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현 휘문중 농구부 코치를 맡아 팀을 성장시키고 있고 올해 프로심판이 된 전 여자프로농구선수 박선영과 화촉을 밝히는등 좋은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같은 성격 하지만 너무나도 뜨거웠던 그의 농구열정이 부디 계속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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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성(G.LP SUPPORT.2016 프로드래프트 2라운드 SK나이츠 지명)
아마도 이후 생활체육 농구를 하다가 프로선수로 입단을 하는 케이스가 또 나온다해도 이 선수처럼 센세이션한 화제를 남기고 가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던 선수가 바로 김준성입니다.공교롭게도 생활체육 →프로선수로 간 케이스의 3선수가 모두 가드라는 점은 이색적인데 김정년이 듀얼가드에 가깝고 최종훈이 슛팅가드였다면 김준성은 퓨어포가였습니다.
명지대를 졸업하고 프로드래프트 신청을 했지만 떨어진 이후 김준성은 좌절했지만 이후 마음을 다잡고 사촌형인 장종복이 뛰고 있던 제니스로 등록 후 생활체육을 시작했습니다.이후 제니스의 소년가장으로 팀을 홀로 이끌었지만 어려움을 겪었는데 배재고 선후배 관계인 박민수가 있는 LP SUPPORT로 이적 후 활약하게 되었습니다.이후 박민수 오승준과 더불어 LP의 다이나맥 백코트를 이끌면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던 김준성은 명지대 시절 약점으로 꼽혔던 슛팅능력을 개선하면서 대학시절 보다 오히려 낫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다시 프로의 꿈을 꾸게 된 김준성은 놀레벤트 이글스라는 실업팀에 입단하게 되었고 이후 국제대회등을 뛰면서 감각을 끌어올렸고 그 스스로도 체력과 활동량등을 키우면서 프로를 준비했고 이후 2016년 열렸던 전국체전에서 이번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허훈과 프로와 국가대표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최준용이 버틴 강호 연세대를 8강전에서 극적으로 물리치면서 매체에서 주목받았고 그를 알고 있고 같이 뛰었던 생활체육 농구인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모두가 경악했고 환호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각종 매체와 동영상으로 퍼져나갔고 스포테인먼트를 추구하는 SK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2라운드에서 그를 뽑으면서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뉴스와 매체등이 그의 드래프트 인터뷰를 송출하기 시작했고 그는 단번에 아무도 몰랐던(생활체육에서는 유명했지만) 선수에서 일약 화제의 선수로 자리했습니다.
이후 주전의존도가 높은 SK의 특성상 경기에 나서기 힘든 상황을 맞이했고 간간히 등장 소식을 알리고는 있지만 생활체육 동호인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활약상을 보기 쉽지 않습니다.하지만 힘든 도전과 꿈을 이겨낸 김준성이기에 또 다른 도전에서 꼭 성공하고 자리잡을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