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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צַו 짜브" : 3월 25일 토라포션 in 5778
레6:8-8:36(To), 렘7:21-8:3,9:23-24(Haft), 히7:24-8:6(Brit), 롬4:1-8:39(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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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예배
* MVC 10주년 영상
Art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도* 집사님이 영상을 정말 잘 만들었다. 긴 여정을 지나며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낸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엘가나 톨도트의 부르심이 있는 것 같다. 태*이와 함께 춤으로 그 마음을 담아내고, 영상으로 담아내고.. Art이다. 전달하는 부르심이 있다.
내년 비전트립이 이미 기대가 된다. 그런 영적인 실제들이 우리에게 내려오자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일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육체였다는 것을 보게된다. 그래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비전하우스가 세워지고,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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וַיִּקְרָא 바이크라 : 부르심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제로 부르시면 부르심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이크라이다. 그러나 바이크라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어찌 보면 우리 라* 집사님도 저 양반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토라의 신비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을 창조해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육신을 머리 삼고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만약 그 아들에게 삶의 데스티니를 이루라고 물질과 돈을 주셨는데 만약 돈이 목적이 되고 그것을 사랑한다면 아버지는 돈을 무척 미워할 것이다. 그것을 제거하고 없애버릴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누구인지 알도록 하기 위하여 물질을 주시고 물질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이것만을 목적으로 삼고 이것을 실제라고 하는 순간 하나님의 분노가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의 멸망케 하심이 드러난다. 이것을 칼라라고 한다.
כָּלָא 칼라 : 멸망시키다. 영원히 없애버리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내가 멸망할까봐, 사라질까봐 느끼는 두려움이다. 그것이 칼라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영원을 주시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아들을 스포일시키고 부패시키는, 영원이 아닌 일시적인 것을 택하면 아버지는 참지 못한다. 아버지 분노는 결국 아들이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을 선택하는 것에 분노하신다. 아버지는 절대로 아들에게 분노하거나 아들을 없애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계속 기다리신다. 아들이 깨달을 때까지 하나 하나 훈련시킨다. 그것이 아버지 사랑이다.
כָּלָא 칼라 : 다 이루다. 성취하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다 이루고 성취하는 존재이다.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룬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천지와 만물은 다 칼라를 위한 것이라고 하신다.
כָּלָא 칼라 : 신부.
칼라는 또한 신부라는 말이다. 천지와 만물, 천군천사마저도 신부를 위한 것이라 하신다. 그것이 창세기 2장에서 선포하신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칼라,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이와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칼라, 다 이루었다. 다 성취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육신 덩어리로 오랫동안 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이기적인 존재를 없애는 것이다. 멸망시키는 것이다. 칼라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칼라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이것을 위해 오셨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칼라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성취하기 위해 산다. 이렇게 탄생한 칼라는 오직 아버지만을 사랑한다.
히브리어의 신비는 정말 놀랍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다. 육신의 모든 죄를 정하셨기 때문이다. 육신의 모든 죄는 육신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칼라를 탄생시킨다. 이 아들을 하탄이라고 한다.
חָתָן 하탄 : 신랑. 생명(ח)을 주는 것(תן).
하탄은 신랑이다. 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신랑은 생명을 주어버린다. 그리고 이 아들은 사라진다. 신랑이란 그냥 주고 사라지는 존재이다. 신랑은 칼라를 완성한다.
토라는 정말 놀랍다. 이 전체를 에하드라고 한다. 어떤 분리도 없고 다 하나되게 한다. 그래서 칼라는 또 무슨 뜻이냐면 며느리이다.
כָּלָא 칼라 : 며느리. 교회. 만물(כל).
신부, 교회는 아버지께 드려진다. 또한 콜, 만물, 만유는 아버지께 바쳐진다. 아들은 교회와 신부를 완성하고 다 아버지께 바친다. 이것이 인류의 마지막이다. 아버지의 모든 사랑은 신부를 향해 있다. 이것이 토라가 이야기하는 전부이다. 아버지는 오직 신부만을 사랑한다. 칼라. 다 이루었도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육체라고 하면 어떠한 아버지도 경험할 수 없다. 아버지가 뭔지 아들이 뭔지 신부가 뭔지 알 수 없다. 그저 나를 만족시키는 몸뚱아리를 신부라고 할 뿐이다. 그러나 드디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열리는데 그것은 아들을 통해 가능하다. 아들은 자기의 죽음을 통해 신부를 완성한다. 이렇게 사람의 모든 부르심은 바이크라 안에서 설명되어진다.
* 토라포션
פָּסַח 페쌐 : 유월절 어린양. Passover. 넘어가다.
צָו 짜브 : 명령하라.
우리는 이번 금요일 페쌐 만찬을 명령함으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의문을 제기한다. YVC는 왜 부활을 안 지키냐?
부활절을 왜 지킬까? 어디에 나와서 지키는 것일까? 애써 내가 부활했음을 알리려는 것인가? 애써 내가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토라는 왜 부활자를 얘기하지 않을 것일까? 하나님 말씀에는 부활절이라는 것이 나와있지 않다. 흔적 조차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부활절을 지키는 것일까? 내가 부활했다고 해야지 천국 가니까 그런 것 아닌가? 우리는 왜 부활했다고 하는가? 하나님 영광 돌리기 위해서? 그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뭐가 들어있는 것일까? 말씀을 완성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데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그분이 행하신 일을 칭송하고 높이는 것이 아니다. 부활했다 하자. 그러면 그 부활이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전제가 있다. 그런데 토라는 왜 부활에 대해 얘기하지 않냐면, 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육신적이기 때문이다. 죽을 육신이 안 죽게 되었다 하는 것. 그러나 우리는 원래 안 죽는 자들이었다. 아멘 하지만 절대 믿지 않는다. 그분을 믿어야지 내 죽을 몸이 안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부활절이다. 사실 부활절도 아니고 Easter 이다. 토깽이 신. 가장 육체적인 바벨론 신에서 온 것이다. 그래도 지키고 싶은 분들은 지켜도 된다. 저는 절대 지키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절대로 지키지 않을 것이다. 육신을 더 육신되게 하는 것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지키는 분들을 판단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제자도를 전하고 싶은 마음, 영의 실제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페쌐은 단지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은 그릇이다. 이 그릇 속에 영이 담긴다. 그래서 부활이라고 하는 개념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 아니다. 자기가 영적 존재임을 아는 것이 부활이다. 육신적인 것은 없어져도 된다. 영의 세계라는 것은 육신을 벗어야 갈 수 있는, 육체가 죽어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육신의 세계를 다스리는 지금 드러나는 것이 영의 세계이다.
우리는 이것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육체의 힘이 너무 강하다. 우리는 육체를 너무나도 실제라고 믿어서 벗어나질 못한다. 여기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힘이 유월절 어린양의 힘이다. 이것이 의, Righteousness이다. 그래서 義에 어린양이 있다. 의가 우리를 구원한다. 의가 우리 눈을 뜨게 한다. 의가 혼돈과 공허 속에 있던 우리를 꺼내서 자유를 경험하게 한다. 의가 귀머거리를 듣게 한다. 양이 우리를 살리게 한다. 그것을 유월절이라 한다. 유월절을 통하여서 실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넘어가는 것은 그것이다. 실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유월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짜브를 알아야 한다. 도대체 짜브는 무엇인가? 짜브와 바이크라는 거의 같은 토라포션이다. 고목사님 유사모님 결혼기념일이 어제 있었다. 두분의 결혼 토라포션이 바이크라이다. 두분에게 어울리는 토라포션 같다. 육신을 다 도살하신다. 죽임의 천재이다. 그것이 바이크라이다. 저와 고마리아 사모의 결혼 토라포션을 아시는가? 교회 토라포션과 같다. 마토트 마세이.
결혼은 그냥 나 잘 살자고 내 몸뚱아리 즐겁게 해줄 남자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왜 같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여러분의 만남도 하나님께서 다 정하신 것이 있다. 아담의 콜링. 사람의 콜링이 뭐냐? 사람은 무슨 콜링을 가지고 왔냐? 출애굽기의 마지막 페쿠데이. 성막의 가운데는 언약궤가 있다. 성막은 교회이다. 성막은 신부이다. 아버지는 오직 신부에게 오신다. 오직 신부와 결합하고 하나된다. 신부란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적용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자기가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려면 육신을 자기라고 하면 도저히 훈련할 수 없다. 육신을 본질로 보면 의심 밖에 없다. 일단 내가 살고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도 분명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 99%. 믿으려고 듣는 것 같지만 의심하기 위해서 듣는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의 사실은 육신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첫번째가 자기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육신은 자꾸 죽어간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한다. 가장 육신적인 관계가 부부관계이다. 전 우주에서 전 역사 속에서 육신의 결정체를 부부라고 한다. 내가 이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 육체여서이다. 그리고 이 여인이 내 아내일 수 있는 것이 육신이기 때문이다. 육신이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고의 우상이다. 육신이 최고의 생명이다. 그래서 육신이 육신을 낳는다. 그래서 자식이 왜 자식인가? 육신이기 때문이다. 왜냐? 이들에게 사랑은 육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부가 사랑하면서 끊이지 않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부부가 서로 믿을 것 같는가? 내 아내가 어젯밤 호텔에서 어떤 남자랑 나왔다. It's okay, 믿을 수 있는 분 계신가? 내가 안전장치를 만들어놓고 토라를 배우게 하고 위협하기 위해 교회로 데려온다. 안 그러면 내 의심 때문에 미친다. 그 안심을 얻기 위해서. 자식을 왜 데려오는가? 자식을 믿지 못한다. 딴짓하고 다니면 죽을 것 같다. 사고치고 돌아다니면 돈 벌어놓은 것 다 날아간다. 끊임없이 교육시키고 협박한다. 육신은 평생 의심하며 살아간다. 마치 자기 콜링인 것처럼. 그리고 이 의심을 지혜라고 착각한다. 자기가 지혜와 지식이 풍부한 것을 미리 알고 그 방법을 배우려고 교회를 열심히 배우고 좋다는 것 다 한다. 하야, 새벽기도, 금식기도..
그런데 믿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못 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아멘이다.
אָמֵן 아멘 :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어머니는 샤다이를 가지고 있다.
שַׁדָּי 샤다이 : 전능함. 유방.
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만난다. 내가 뭐하러 왔지? 그런데 샤다이가 눈 앞에 보인다. 전능함이다. 유방이라고 번역한다. 그래서 샤다이를 빨기 시작하자 기본 신뢰가 생기게 된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의심해서 안전하다 믿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믿을만 한가 아닌가? 못 믿는다. 그러나 샤다이 안에 있는 자들은 모든 것을 믿는다. 그것을 아멘이라 한다.
우리는 왜 믿음생활을 하지 못하냐면 육신은 절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상관 없다. 자식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내가 짜증나는 날에는 걸리적거린다. 그러면 짜증내버린다. 내가 화가 겁나게 났는데 화를 돋구지 않는가? 육신은 최초의 삶의 원인이고 삶의 목적이기 때문에 나부터 살고 본다. 내가 우울하면 내 자식을 기쁨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니다.
이 육신의 세계 속에서 절망하는 자들이 이 소명을 듣는다. 바이크라. 바이크라는 육신을 부르는 소리이다. 의심 속에서 절망하는 자들을, 그 육체를 부르신다. 그 육체를 가지고 와라. קָרָא 카라. 제발 그 육체를 가져와라. 그 시체를 가져와라. קַר 카르, 그 차가움을 가져와라. 너는 차가운 개구리이며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차가운 우박이다. 사람들을 맞아죽게 하는 너에게부터 나오는 떨어지는 사랑은 다 우박덩어리이다.
저는 18년만에 그것을 깨달았다. 제 육신의 사랑으로 아내가 맞아서 얼마나 죽었는지. 다행히 우리 아내가 죽지 않는 존재여서 죽지 않았지만, 그 우박 덩어리에 얼마나 맞아 죽었는지.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이 육신이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주님은 이것을 깨달은 자들을 콜링하신다. 그 육신을 나에게 가지고 오라. 내가 죽여주겠다. 이것이 유월절이다. 너는 스스로 못 죽인다. 육신을 고쳐쓰려 하지 말아라.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동의하더라도 내가 고쳐 쓰려고 한다. 육신은 고쳐도 육신이다. 육신이 성령을 받으면 무당이 된다. 육신이 치유받으면 그리고 그것으로 간증하고 돌아다니면 하나님께 영광인가? 아니다 사람을 더 육신적으로 만들어버릴 뿐이다. 내가 부자 되어서 간증하고 다니면 수많은 사람들을 맘몬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
회막 문 앞에 가져와라 그리고 그것을 죽여라. 인류의 소명은 제사 지내는 것이다. 인류는 제사 지내기 위해 산다. 동물을 제사 지내는 것이 아니다. 교회 오는 것이 아니다. 예배 드린다는 것은 네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이다. 내 육체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짜브는 이 부르심을 가진 자들이 믿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짜브는 자기가 살려하지 않고 자기를 죽이는 자들이 뭘 하는지 얘기해준다. 짜브는 그래서 명령이라는 기가 막힌 것을 주신다. 명령의 핵심은 제사의 실제이다. 명령은 이타적 욕구를 명령한다. 짜브가 오기 전까지 육신은 이타적 욕구를 절대 가질 수 없다.
이 세상에 있는 제일 큰 거짓말 중 하나가 '네가 먹는 거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이다. 그래서 요새 애들은 절대 그런 말을 안 한다. 솔직해서 그렇다. 우리 베*로 애들 과자 일단 내가 먹고 본다. 베*로가 거듭나니까 애들 과자에 손을 안 댄다. 왜 그럴까? 그러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것이 사실이었나? 사실이었다. 육체적인 세상의 사실이 아니라, 내가 배고플 때 나랑 하나였던 자를 먹이면 그 만족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줄 아는가? 육체이다.
하나님이 육체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아시는가? 육체는 타인의 필요를 알도록 창조되었다. 타인의 배고픔을 느끼기 위해 나의 배고픔이 있고, 타인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나의 고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육체는 내가 아프지 말아야지 이렇게 얘기한다. 다시는 배고프지 말아야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지. 그것을 이기적인 것이라 한다.
이번에 고마리아 사모님이 비전하우스 세우고 계시는데 모든 이유가 아버지의 비전 때문이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정말 저를 모든 의심에서 구원한 믿음. 라* 집사님이 고마리아 사모님을 엄마라고 불렀는데, 사실은 내가 엄마라고 불렀다. 믿음을 내게 주신 분. 삶의 이유가 이타적 욕구에 있는 것이다.
제 전처 이야기인데, 제가 맨날 말씀 준비하고 있으면 저에게 와서 나 좀 봐 한다. 그러다가 포기하고 그래 내가 사탄이 될 수 없지 말씀 연구해. 그런데 그러다가 카톡하고 있으면 집을 다 태워버릴 것처럼 자기가 그렇게 희생하고 있는데 나랑은 시간 보내지 않고 카톡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카톡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죽을 것 같다. 그렇게 18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 여인이 쿠웨이트에서 말씀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반대가 되었다. 나 좀 봐! 제가 말씀 연구할 때 아내는 죽어갔다. 그런데 아내가 말씀연구를 하기 시작하자 내가 의심에서 벗어났다. 차이가 무엇인가? 제 아내는 샤다이의 삶을 살아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게 주님의 젖을 빨게 하는 것이다.
제 아내가 말씀연구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서이다. 그게 아주 작은 일인 것 같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어서 했다. 저는 말씀 전하는 것 좋아한다. 저는 제가 아프면 아내가 아이고 말씀 며칠 못 전하겠구만 하곤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면 괜찮아요 내일 말씀 전하고 좋아질거에요. 나는 내가 받는 인정이 좋았다. 그래서 누구를 닮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왜? 내가 잘 하니까. 그리고 이것을 도울 자들이 필요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워치만 니. 키스 인트레이터. 기가 막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토라 안에 들어오니 수천년 동안 엄청난 랍비들이 무성하게 있었다. 이것은 정말 노다지! I will be great. 이것이 나의 육신이었다. 나는 어마어마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죽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계속 우박에 맞아 죽어가는데 나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허상과 망상 속에서 살았다.
우리 아내는 오직 아버지를 적용하고 훈련하기 위한 칼라의 삶으로 갔다. 그러자 쿠웨이트 제자들이 저에게 그런다. 목사님 희한해요. 고마리아 목사님은 말만 하면 되어요. 이것이 믿음의 삶이다. 짜브이다. 온 우주는 하나님 명령으로 일어난다. 칼라, 신부란 이타적 욕구이다. 교회는 칼라이다. 저는 그 세계를 보며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웨이트는 차가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저의 아내가 비전하우스를 하면서 차가 있어야겠어 말을 했다. 그러면서 더 아버지의 기쁨이 되고 더 닮아가고 싶다 했는데, 그 순간 카톡이 날라왔다. 어떤 분이 비전하우스에 차를 살만한 헌금을 하셨다. 저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와 나 둘 중 누가 더 영적이라 생각했던 것 같은가? 질투인가? 아내를 통해 저는 엄마를 만난 것이다. 샤다이의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라고 하신다. 그분의 나타나심이 저를 계속 온전하게 한다. 이 육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수십년의 삶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그런데 더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데 얼마 안 있다가 카톡이 또 왔는데 아내가 뭐라고 했냐면, 그래서 차를 사기로 했는데 차를 사서 새 차는 아버지를 드리고 아버지가 타던 차를 타고 싶다고 했다. 제가 뭐라고 했는가? 어연하시려고..
믿음은 나의 필요를 채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영은 모든 것을 가졌다. 영은 어떤 결핍도 없다. 영은 그저 명령만 하면 된다. 단 무슨 욕구가 있어야 하냐면 이타적 욕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레6:8-9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레6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명령하라.
צַו אֶת־אַהֲרֹן וְאֶת־בָּנָיו 짜브 에트 아하론 베에트 바나브 : 에트(את) : 알렙과 타브이신 주님.
알렙과 타브는 아하론과 아들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하론이란 아버지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조건 없는 사랑이다. 육체가 가미되지 않는 아버지이다. 저는 우리 *늘이를 떠나보내야 함을 알고 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육체의 일을 해결할 때 마지막 하셨던 말씀이 아자브이다.
עָזַב 아자브 : 떠나보내다
אֵזוֹב 에조브 : 우슬초
아자브는 우슬초와 발음이 비슷하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육체를 정하고 떠내보낼 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첫번째로 명령하시는 것이 육체의 부모를 떠나는 것이다. 관계를 끊으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육신의 부모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의 의미를 아는 자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필요를 섬긴다.
육신을 떠남은 완성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첫번째가 자기 사는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가 그런 것이 아니라 육신이 그런 것이다. 아무리 해도 나도 좀 살아야 한다. 어쨋든 내가 상처받으면 내가 또 상처받는다. 그러나 아하론이란 보상받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다. 바브(ו)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제사는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시키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가고 아버지 집을 세우는 것 밖에 없다. 이 세상 물질 어떤 것도 가치가 있는 것이 없다. 아버지 아들 관계를 건축하고 이루어내는 것, 그것보다 높아지는 것이 있을 때 진노하고 불태우신다. 삶에서 여러분 꿈을 이루고 싶다고 한다. 육신의 꿈.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 모든 것은 아버지 아들 관계를 결합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명령의 1차적인 것은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너의 삶에 이런 결합이 있게 하라. 아버지를 온 마음과 힘과 혼을 다해 사랑하라. 그런데 문제는 이 아버지가 영적 아버지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이시다. 영이란 무엇이냐면 영의 생각이다. 육이란 뭐냐하면 육의 생각이다. 육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평화이다. 우리는 매일 아버지와의 결합 속에서 이타적 욕구를 가지고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아버지를 닮아가지 않으려는 한 어느 누구도 명령을 수행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명령을 하게 되면 내 자신에게 하게 된다. 그래야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싶었던 The Son 오직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아버지 뜻 아니면 아무 계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The Son 이 나타나는 것이다. 토라는 이것을 죄 자체라고 하는 것이다. (?)
토라는 The Son을 믿는 자들을 a son, sons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son들이 제사를 드린다. 제사의 처음은 번제이다. 케뎀에서 나오는 불이 꺼지면 안 되는 것이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불이다. 불이 꺼지면 시체가 되고 시체는 곧 사탄이 된다.
אֵשׁ 에쉬 : 아버지의 형상
아버지를 형상화하겠다. 우리는 아버지를 향한 사랑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모든 제사는 번제단의 불이 있어야 드릴 수 있다. 이것을 또한 첫째날이라 한다. 욤 에하드. 에하드의 불이다. 우리는 하나이다. 육체는 절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육체는 이것을 sex로 밖에 이해 못한다. 그러니 주님은 우리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에하드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의 명령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란다.
* 성찬식
우리가 성찬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휘장을 다 찢으셨다. 주님은 육체의 죄를 다 정하시고 육체를 다 찢으셨다. 육체를 벗으시게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나라 안에 들어오시길 소망한다.
기도합시다. 주님 당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모든 죄를 육신에 두시고 육신의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제가 이제 이타적 욕구로 명령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버지. 이제 그 사랑을 보기를 아버지만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는 내 육체의 사랑만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영이 아버지만을 사랑하고 온 마음으로 온 혼과 온 힘을 다해 영원히 아버지를 닮아갈 것입니다. 영원히 아버지 명령으로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 또 식후에 잔을 가지고 이르시되 이 피는 너희를 위해 흘린 새 언약이라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피로 언약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피로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갈 길을 여셨습니다. 지성소에 아버지가 계십니다. 주님의 신부 교회 아버지와 하나되어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살 것입니다. 칼라. 아버지만을 적용하고 훈련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이제 완전한 사랑.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The Son. The Father. 두 분의 사랑이 우리를 살립니다. 두 분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되게 합니다. 이제 육신이 살려고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만을 사랑하고 이타적 욕구를 가지게 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내 영혼에 영원한 사랑 아버지를 배웁니다.
아버지. 그 아름다운 이름 아버지. 나의 구원의 근원 아버지. 그 사랑을 만납니다. 그 사랑이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된 사랑이 나를 살게 합니다.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하며 그 사랑이 우리 모두를 살게 합니다. 그 사랑이 나에게 명령을 주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명령을 지키리니. 주님 감사합니다.
2부 예배
우리 아버지는 한분이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 땅에서 아버지가 없어야 하는 줄 안다. 하나님만 아버지라고 하면 아버지라고 섬길 수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란 누굴까? 사탄은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망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못만난다. 그래서 그 짓을 한다. 또한 영의 아버지의 대한 생각을 망치면 하나님 아버지를 못만나다.
저는 육신의 아버지에 생각을 통해서 아버지의 개념이 왜곡된 제자들이 아버지를 못만나고 자기에게 물질을 공급시키는 사람을 아버지라고 여기고, 물질, 육체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고 토라를 가르쳐도 모른다. 오직 자기에게 풍성한 공급을 해주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금송아지를 섬기면서 자신이 제자, 영적이라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제자를 가지고 있다. 언제 이 제자가 돌아올지, 하나님을 알게될지 모르겠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말이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경우는 영적 아버지의 대한 왜곡이다. 정말 심각한 케이스다.
모든 이단은 영적 아버지의 대한 것을 왜곡시킨다. 사람들이 정말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파괴를 가져온다. 우리는 이 시대 가운데서 아버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을 Fatherless generation이라고 한다. 어느 누구도 아버지가 되려고 하지 않고, 아버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한다.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한 수단으로 아버지를 생각할 뿐이다. 왜 마지막때는 사랑을 모르고, 식어지고, 불법이 성립할까? 아버지와 아들간의 사랑이 없다면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법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한 법이다. 토라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법을 이야기한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사랑이 인류를 구원한다. 그것을 The Love라고 한다. 그 사랑이다. 완전한 사랑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아들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에하드, 한분이시다. 우리는 너무나 물질적이여서 물질을 센다. 토라가 숫자를 가르치는 이유는 우리의 소유를 세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몇개를 가질 수 있는가 말이다. 하나님은 1개를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다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을 히브리어로 보면 하나님은 אֶחָד 에하드이시다는 것이다.
에하드에서 모든 바드는 나왔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에하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하나다 라고 하는 것이 에하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말을 אָב 아브라고 한다. 아브는 신성(א)이 거하는 집(ב)이다. 이 세상에서 신이 거할 수 있는 집은 아버지 밖에 없다. 아버지라는 말 자체가 사랑, 모든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물질을 공급하고 나를 잘되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불행하거나 행복하게 되는 상관없다. 아버지는 나랑 하나였던 분이다. 우리의 죄는 육체에 있다. 육체를 생명이라고 한다. 가장 육체적인 사이를 부부라고 한다. 육체의 결정판이다. 왜냐면 육체를 보고 결혼했다. 육체가 아니면 내 아내인 것을 알아볼 수 없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육체에 집어 넣는다. 육체 때문에 우리는 나를 살리려고 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지만 부부는 육체로 결혼한다. 육체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육체를 또 낳는다. 그런데 모든 육체는 첫번째가(Priority) 내가 살고 행복한 것이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한다. 그런데 육체는 내가 사는게 뭔지도 모른다. 사는게 뭘까? 일단 내가 숨쉬어야 한다. 내가 만약에 숨막힐 것 같다, 결혼을 했는데 이 인간이 나를 숨막히게 하면 어떡해야 할까? 숨쉬게 하기 위해서 이 인간을 변화시키던지 다른 인간으로 바꾸면 된다. 나의 기쁨, 행복이 우선이다. 이것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부는 너무나도 육체적이다. 그럼 하나님은 왜 육체적인 부부를 만들어내실까? 우리는 이 육체가 되지 못해서 안달이다. 육체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래서 부부가 육신이 가장 생명이 된다. 당장에 내 파트너가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삶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집에 갔는데 지*이가 영으로 존재하면 수*이가 같이 살 것인가?
부부는 육신이 가장 핵심이다. 육신이 최고로 좋은 것이다. 이 남자가 육신이기 때문에 쓸모가 있고 내가 필요한 것을 가져오고 출근을 하고 돈을 벌어오고 집 청소를 한다. 그런데 육신을 가지고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안한다. 분리 수거조차 안한다.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옆집 육신을 가진 남자가 쓰레기를 버리면 열 받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할 육신이 어디갔어? 그 육신이 중국에 가있다.
그래서 부부 사이를 통해서 육신이 최고다, 영 필요없다 하면서 부부가 결혼하면 가장 육신적이 된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섬긴다. 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전처 이야기다. 육신적인 생활을 하면 또 육체를 산다. 육체가 너무 사랑스럽다, 언제나 육신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일단 내가 살고봐야해서 내가 죽겠으면 잘 돌보지 않는다. 내가 화가나면 화를 낸다. 엄마가 아빠한테 화났을 때는 심기를 건드리면 안된다. 건드리면 아빠 맞을 것까지 내가 맞고 본다.
육신들은 절대 사랑할 수 없다. Never. 왜? 먼저 내가 살아야 한다. 자식을 낳아도 부모를 사랑할 것 같은가? 다 자기 먼저 살려고 한다. 그래서 육체가 하는 것이 의심이다. 자기가 살려고 하면 모든 것을 의심한다. 의심은 선, 악, 나는 행복해질 수 있고 불행해질 수 있는 기로에 서있다. 항상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자식이 아무리 이쁘고 잘났어도 이 녀석이 무슨 짓을 할 줄 모른다. 항상 의심해야 한다. 좋은 교육을 시켜야 한다 왜? 내가 원하는대로 자라야 한다. 잘못하면 나중에 돈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 사고 한번치면 합의 하나로 돈 모아둔것 다 날아갈 수 있다. 요새는 사고 안치면 효도라고 한다. 모든 것이 나에게 어떻게 할까이다. 이것을 의심한다. 육체는 절대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육체가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의심 때문에 그렇다. 아버지는 믿음의 영역에 있다. 아버지가 신성의 집이라는 것은 믿음의 집이라고 한다.
אֵם 엠 : 어머니
- 아버지와 에하드인 존재
어머니가 믿음을 주관한다. 어머니의 속성을 가진 아버지는 엘 샤다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샤다이를 가지고있다. 엄마의 젖을 빨면서 모든 사람은 기본 신뢰를 가진다. 기본 신뢰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אֶל שַׁדָי 엘 샤다이 : 전능의 하나님 --> 어머니의 속성
샤다이 : 유방 --> 기본신뢰 = 무조건적인 믿음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첫번째로 엄마의 의해서 만나는데 무조건 믿는 것이다. 아버지만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에게는 어떤 문제가 없다는 것을 무조건 믿을 때 영의 세계가 열린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어둠도, 불행도, 저주도 임할 수 없다는 것을 무조건 믿으시나? 오늘밤 꿈자리 뒤숭숭하면 어떡하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돌보심을 정말 믿는가?
사람이 이 땅에서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엄마의 젖을 빤다. 이 땅에 자기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그런데 자기 앞에 있는 어머니의 샤다이를 빨면서 신뢰가 커져간다. 샤다이는 두개의 산을 의미한다.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도 나를 살리는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샤다이다. 무조건적인 신뢰가 부모님으로부터 온다. 육체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것을 못한다. 육체는 나에게 고난이 오고 산이 나타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의심한다.
우리가 육체에 대해서 계속 배우는 이유는 우리는 육체로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육체로 사는한 어떤 경우도 믿음을 가질 수없다. 하나님 아버지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부르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기본 신뢰를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잘 나타내고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는 존재들을 하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하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고는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께 인도할 수 없다.
제자도가 단 하나의 비전인 이유는 제자도는 아버지와 아들의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그것이 아니고는 아무에게도 믿음을 가르쳐줄 수 없다. 아버지란 내 육신을 낳은 존재가 아니다. 영*리가 베*로하고 나이 차이가 3살이 난다. 베*로가 3살 때 낳았다는 소린데 얼마나 황당하나? 너무나 육신적이라서 그렇다. 아버지를 육체로 알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육체로 알고 있으면 그 존재는 끝짱이다.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가장 파워풀한 단어가 아바이다. 아버지라는 소리다. 이 단어를 육체로 알고 있는한 가능성이 없다. 영생이란 영이신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육체적인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가? 우리가 쉽게 아버지라고 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육체는 자기 살려고 아버지도 제거해버린다. 아버지는 유일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이시다. 사랑은 닮아가는 파워이다. 닮아가서 에하드가 된다. 에하드가 되면 똑같이 된다.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정말 닮아가겠다. 사랑이란 미치는 것이다. 사랑이란, 그것이 삶의 전부인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있어서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은 것인가? 그럼 사람이 없었다. 말하는 육신의 아버지 조차도 자기가 짤라 버렸다.
이 사랑을 주님은 다시 찾아 주셔야 한다. 아버지는 사랑이고 에하드이다. 아버지는 창세 전에 존재했던 하나이다. 그냥 닮아가고 싶은 것이다. 음식을 짜게 먹어야 할까 맵게 먹어야 할까 싱겁게 먹어야 할까?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나? 어떤게 맞나? 수*이하고 지*이가 결혼을 했는데 지*이는 싱겁게 먹는 것이 맞다고 하고 수*이는 아무렇게나 먹는 것이 맞다고 한다. 어느날 둘이 엄청 싸웠다. 이런 싸움은 사탄이 나타났을 때 일어나야할 분노이다. 그런데 어마어마하게 화를 내는 것이다. 육체는 내 방식대로 되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지*이는 스프라이트가 몸에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수*이는 가끔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수*이가 스프라이트를 시켰다. 스프라이트는 사고 팔아서도 안된다. 마지막때가 임했다. 짐승이 나타났다.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나? 뭐가 맞는 것인가? 육신을 살리려고 육신에 맞는 것을 찾는다. 육신은 못살리고 죽는다. 스프라이트 먹어도 죽고 안 먹어도 죽는다. 스프라이트 안먹고 더 일찍 죽는수가 있다. 그럼 자손은 더 스프라이트를 미워하며 살것이다. 육체가 어떻게 되는것에는 답이 없다. 여기와서 배우는 이유는 내 육체를 어떻게 해보려고 좋은거 배우려고 한다. 아무리 아버지 아버지 해도 저는 안다. 그 방법이 좋아보이니깐 육체를 살리려고 한다. 가만히 보니 좋은 것 같으니 아버지 아버지 한다. 이것을 낚시질이라고 한다. 끝까지 육체를 사랑하면 가롯유다가 된다. 주님을 배신한다.
오직 하나님만 아버지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나님이 믿으시겠나? 이 땅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모르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관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 같나? 자신을 세뇌하면서 안다고 한다. 아니다. 다 내 육체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근사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간다는 것이다. 나 잘살게 해주고 천국가게 해주니깐 아버지인 것이다. 이 상태로는 아무런 삶도 살지 못한다. 누구도 사랑하지 못한다.
저는 제 아내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살았다. 아내를 믿은 적이 없다. 틈만나면 의심했다. 지긋지긋하다. 여러분의 남편을 믿을 수 있을것 같나? 노! 내 남편이 어떤 여자랑 2박3일 여행을 갔다왔다. 어떨것 같나? 육체는 아무것도 못 믿는다.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저는 이 영의 세계에 들어오는 길이 우리의 구원이라고 믿는다. 무조건적인 믿음은 엘 샤다이의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우리 주님은 정말 놀라우시다. 영은 이 세상에서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영이 가진 특징이다. 여러분에게 제자가 생기면 무조건 믿으시길 바란다. 이 세상에서 삶을 얻었다면 무조건 믿기 바란다. 이것이 엄마가 있는 자들의 특징이다. 영*가 사모님을 엄마라고 하면서 엄마 보고 싶다고 울었다고 한다. 다 큰게 말이다. 잘모르시겠지만 영*는 여러서부터 이 세상은 자기를 살리는 곳이 아니였다. 집을 나가서 자기가 돈을 벌었어야 했고, 도둑질을 했어야 했고, 이날까지 이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 아니였다. 무조건적 사랑, 선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영*는 무조건 나를 살리는 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은 것이지 제 아내의 육체를 영*가 사랑하게 됐다고 사랑한다? 노!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엘 샤다이 성이다.
그것이 무언인지 실체를 알 수 없어서 하나님이 너희들이 육체가 되어서 가르쳐주라고 한다. 여기에 있는 자매님들 가운데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엄마가 되고 싶었나? 그 생명을 주고 사랑을 주고 제자 삼고 싶었나? 실제가 없으면 육체는 낚시질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영*에게 낚시질을 했다. 아내 증명 사진을 줬다 ㅎㅎ. 그 육체가 엄마라는 소리가 아니다. 엘 샤다이가 우리의 엄마이다.
אָמֵן 아멘 / 엄마(אֵמ)가 신실(ן)하게 작동하는 것
아멘은 육체가 원하는 대로 될지어다가 아니다. 원래 죽음이라는 없다는 것이다. 원래 행복, 선악 자체가 없고 생명만이 있는 것이다. 엄마가 생명을 낳는 것이다. 이 생명은 육체가 아니라 영원이다. 사도바울이 해산하는 고통이라고 할 때 영혼을 낳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영혼이 생명이 된다는 것이다.
저는 아내의 의해서 생명이 되어간다. 너무나 육체적이였다. 이 육체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이 육체가 극강의 도를 닦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가 그랬다. 철학과스럽다. 수염도 안깎고 머리도 안깎고 말이다. 어느날 양복 입고 학교를 가는데 아무도 못알아 봤다. 극강의 도를 닦으면 기독교도가 되어서 닦았다. 그러면 이론을 알게된다. 이 세계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 극도를 닦는 사람들의 특징은 말에 발이 달려서 말빨이 좋다. 그리고 실제를 체험하지 못하니 이 세상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해야한다. 이 도를 닦으니 하루에 8시간 이야기를 해도 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하루에 8시간 설교를 해보았나? 준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책을 열면 말씀하나로 다한다. 극강의 도를 닦으면 이론을 안다.
제 아내와 저와 누가 더 영적일까? 저는 한번도 아내가 영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본적이 없다. 왜냐면 아내는 이론이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저의 무기가 그거였다. 저한테 뭐라고 하면 좋다 오늘부터 바꾸자. 그러면 아내가 나쁜 인간이라고 했다. 내가 뭔말을 해! 그런데 이 도 닦은 사람의 특징이 유리 상자 밖에서 보면서 자기가 그 안에 있는줄 착각한다. 자기가 들어와있는 줄 안다. 일종의 이스라엘에 한번 간 사람이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아는것과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다. 이론과 실제는 다른다. 이론은 선악과이고 실제는 생명나무이다. 실제를 사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생명이 살아난다. 그러나 실제를 살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기도 살리지 못한다. 나 살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한테 공급이 안되면 나 사랑하지 않고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거야? 저는 이 막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거야? 아내가 늘 저에게 하는 말이 왜 또 아우라 풍겨? 찬란하다 그 아우라의 불빛이여.
육체는 실제를 흉내도 못낸다. 육체는 오직 자기 밖에 사랑하지 못한다. 아주 차가운 사랑이라고 한다.
קָר 카르 : 차가운 사랑
모든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을 자기 사랑이 다 얼려버린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세상을 축복하고 사랑을 내려보낸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하늘에서 끊임없이 비처럼 내린다. 그런데 인간들의 자기 사랑은 그것을 얼려버려서 우박으로 만든다.
아내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지는 차가운 사랑에 의해서, 우박 재앙을 맞고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여러분 주위에 우박 재앙애 죽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희 아내가 실제 속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생명, 저의 생명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영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아내를 엄마로 만나자 기본 신뢰가 회복되었다. 아멘이라는 것은 그대로 된다. 말만하면 된다. 참 희한하다. 제 반쪽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닮아가고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것을 알 때 나머지 반쪽이 살아난 것이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기쁨을 사는 것이, 제자도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자 이 사랑의 실제를 살기 시작했다. 비로소 아버지를 만났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알겠다, 어떻게 하나님께 가는지 알겠다.
모든 육체가 사라지고 에하드만이 남았다. 그러나 아내에게 임한 것이 엄마 됨이였다. 아내는 저를 낳았다. 우리는 이런 놀라운 생명을 낳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다. 사람이 육체만 극복해도 하나님 아버지랑 사랑한다. 사랑은 절대 육체를 사랑하게 되어있지 않다. 아무리 해도 절망만이 온다. 옆에 있는 육체를 사랑해도 어느 생명도 낳지 못한다.
제가 하나님 아버지의 실제를 인정하게 된 경우가 *늘이가, 제가 낳은 육체가 어느날부터 자기 소속을 MVC라고 하고 자기 아버지라고 해도 고목사님이라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세계를 케뎀이라고 하는데 영의 세계이다. 영의 세계에서 *늘이는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있다. 내가 난 것은 육일 뿐이다. 영을 내가 창조하지 않았다. 그러면 *늘이의 영은 나이가 얼마인가? 케뎀에서 창조되었다.
영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것이다. 영*가 베*로를 보면서 3살 많다고 하는 것은 육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자기도 육이 된다. 영*가 그렇게 펑펑 운 이유는 베*로의 영을 만난 것이다. 영이 실제라는 것을 모르면서 하나님의 영을 만날 수 없다. 끊임없이 내 나이,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는 불가능하다. 베*로의 영혼은 창세전에 이미 영*와 하나였던 것이다. 베*로는 그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한발 앞서 있던 아보트일 뿐이다. 내 육신을 살게하는 돈 많은 똑똑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그분을 알기 위해서는 케뎀의 실제를 알아야 한다. 케뎀에서는 우리는 하나였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마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의 주된 사역은 아버지를 버리게 하는 것이었다. 배를 버린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낫띵이라는 것이다.
עָזַב 아자브 : 버리다
육신에게 죄를 당하셔서 죄를 육신에 두시고 처리하신 것이 아자브이다. 육체를 살게하는 또 하나의 힘이 아버지이다. 육체를 살리는 파워를 사실 아버지라고 한다. 육체를 공급하는 파워를 아버지라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지 않으면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 아버지가 맨날 나를 패고 공급하지 않으면 아버지라고 말은 해도 여기지 않는다. 육체에게서 아버지란, 물질을 공급하고 나를 풍요하게 하는 파워에 지나지 않는다.
제자 중 하나가 저를 아버지라고 하는데 얘한테는 풍요롭게 하는 파워가 아버지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아니고 바로 버린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창세전에 하나였다. 아버지는 물질을 공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하나되게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이 사랑은 영원히 존재한다.
육체가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버리지 않는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
마5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늘의 계신 아버지를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육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육체는 끊임없이 육체를 아버지라고 한다. 유대인에게서 황당한 것이 30살 먹은 청년이 나타나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라고 한다. 내가 아브라함 전에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육체적이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예수님의 사역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겠나?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밖에 없다. 사람들은 여자랑 사랑해서 너를 위해 존재할거야 하는게 사랑인 줄 안다. 인간은 자기 반쪽을 위해서 살면 안된다. 짐승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쪽과 반쪽은 하나되서 아버지만을 사랑하고 닮아가는 것이다.
바이크라와 짜브는 제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레위기는 시체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네가 육신을 깨달았느냐? 육체적이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것을 부르시는 것이다. 바이크라는 하나님이 육체를 부르시는 것이다. 자기가 영적이라는 사람은 절대로 레위기에 못들어간다. 에수님이 오셔서 베드로, 안드레, 요한을 부르신다. 그들이 응답해서 나가는 것이 자기가 육체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면 주님은 육체를 가지고 회막문 앞으로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죽여라, 이것을 제사라고 한다.
모든 복음은 육체를 다 죽이는 이야기다. 우리는 또 육체를 육체로 생각한다. 이것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물질하고는 억하심정이 없으시다. 나를 사랑하는 생각들, 이것을 죽여라 도살하라. 산 제물로 드려랴, 이것을 도살하는 방법이 짜브, 명령이다. 명령으로 도살한다.
우리 안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있다. 명령이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제자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가르치는 이유는 아론과 그 아들들, 아론은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시키는 것을 명령하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결합, 너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아버지와 아들의 결합으로 나와라. 너에게 명령해라. 그러면 사람은 육체를 도살할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이 모든 것을 위임받아서 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 주님은 이것을 받고 제자들에게 위임하신다. 이 위임에 의해서 제사가 계속 되게 하신다. 이 위임은 아버지와 아들의 결합하는 사랑밖에 없다. 위임 받으면 그거 명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 가지고 싶지 않으신가? 쿠웨이트 제자들이 하는 소리가 고마리아 사모님이 이야기하면 다 된다고 한다. 짜브를 할 수 있는 것은, 짜브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결합이 일어난 자들이 짜브를 한다. 이타적 욕구만이 짜브를 할 수 있다.
모든 영적세계가 나타나게 하고 사랑이 나타나게 한다. 아버지의 사랑이 하는 짜브이다. 온 우주에는 아버지와 아들 밖에 없다. 다른 존재가 있는 줄 아나? 두 존재 밖에 없다. 아들들에게 있어서 다는 아버지 밖에 없다. 아버지만을 생각하고, 원함을 생각하는 것이다. 저는 제 아내가 짜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뭐든 아버지의 기쁨을 위해서 한다. 자기가 공부를 해서 왜 공부하냐고 하면 새벽기도 시키실지도 모른다고 한다. 자기가 말씀을 공부하는 것조차도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놀라운 경지이다. 모든것을 살린다.
כַלָה 칼라 : 신부. 교회
이 여인을 칼라, 신부라고 한다. 교회는 다 신부이다. 아버지를 적용(כ)하는 위대한 파워가 등장한다. 말만 하면 된다. 카톡으로 이야기하다가 육체적인 사랑하지 말자, 이랬는데 차가 필요해서 육체를 제거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누가 비전 하우스에 차값이라고 헌금을 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새차를 산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버지를 드리고 아버지가 타던 차 탄다고 한다.
왜 사시냐? 내가 좋은차 탈라고? 이 세상에 아버지를 사랑하는것 이외에는 아무 목적도 없다. 어느날은 사모님이 오더니 초6때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 공부와는 담을 쌓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공부가 좋아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어느날부터 밤을 새워서 공부한다. 인간의 모든 삶의 목적은 아버지 밖에 없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이 정답이다. 모든 인류의 정답이다.
도 닦는 자들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는 자들에게는 정답을 다 알고 있다. 유일하신 하나님, 에하드이신 아버지가 영생이다. 그리고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
* 성찬
주님께서 마짜를 다 쪼개셨다. 그리고 이것은 너희를 위해서 쪼개진 나의 몸이라고 하시고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육체를 쪼개셨어야만 했다. 주님은 당신의 살을 찢으셨다. 육체는 찢어져도 된다. 휘장은 반으로 찢어져도 된다. 왜냐면 우리의 실제는 에하드, 영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찢어질 때 내가 에하드의 존재임을 영임을 우리는 비로소 알게되어있다. 육체를 사랑하지 않게되길 축복한다. 육체를 벗어던지게 되길 축복한다.
주님은 이 땅에 아들로 오셔서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사셨다 그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하나님 당신이 아버지임을 알게하십시오. 육체를 생존시키기 위한 지긋지긋한 육신의 삶에서 나가게 하십시오.
하나님 이 시간 주님의 몸에 참여합니다. 육신은 이렇게 찢겨져도 우리가 영이기에, 육신의 찢어짐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 나의 아버지에게로 우리가 나아갑니다. 아버지와의 하나됨으로 나아갑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식후에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니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한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온 세상에는 아버지와 아들됨 밖에 없다. 우리는 그의 아들로 부르심을 받았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목적과 정답이 되기를 축복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사랑, 그 사랑, 완전한 사랑,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 이제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던지고 땅의 지체를 죽이고 그 사랑 가운데로 나가게 하십시오. 나를 살리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노동을 멈추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십시오.
다비드리 목사
작성자 Daniel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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