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노세초등학교 이야기(3)
3학년 교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칠판에는 가네코라는 시인의 ‘나와 작은 새와 방울’이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 전문이 쓰여있다. 교실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은 ‘자기들이 잘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의 중간 연에 ‘모두가 달라요. 그래서 좋아요.’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수업은 학년 대표(한국의 학년부장)를 맡고 있는 40대를 갓 넘긴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교사가 하고 있다.. 발언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다츠야라는 아이가 '엉덩이로 글씨쓰기’라고 하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바로 아이들은 ‘다츠야는 엉덩이 글씨를 어떻게 쓰지?’하고 합창을 하듯 물었다. 그러자 다츠야는 의자 위에 올라가 자기 이름을 히라가나로 엉덩이로 쓰는 흉내를 냈다. 다츠야는 학급에서 인기가 있는 아이일 것이다. 또 다른 아이가 “나는 잘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교사는 “있을 거야. 생각해보렴.”하고 대꾸한다. 그리고 잠시 있다가 한 아이가 ‘스모’라고 소리친다. 교실 전체가 모두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찾아내려는 분위기이다.
수업의 마지막은 입을 모아 시를 낭독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시의 각 행의 첫 번째 단어를 남기고 나머지는 다 지우고 낭독. 두 번째는 행의 첫단어의 한 글자만 남기고 낭독, 세 번째는 전부 지우고 낭독. 아이들이 시를 낭독하는 솜씨는 놀라웠다. 외우는 소리도 낭랑하다.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은 몸 전체를 흔들어가면서 열창을 한다. 저렇게 몸을 흔들면서 하는 것이 있냐고 묻는 나에게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겁니다. 저 아이들이 하는 활동이 고학년이 되어서도 그대로 남아있으면 좋겠어요.’라는 교사의 대답. 3학년 아이들이 몸 전체를 흔들어가면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보통 학급의 수업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누노세학교에서는 이런 장면을 매일 볼 수 있다.
누노세의 아이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인상은 ‘잘 놀고, 잘 듣는다’는 것이었다. 먼저 그들은 정말 밖에서 자주 논다. 그것은 교사들이 누노세 학교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만들기’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으로 놀이를 중요한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에 2학년 교실을 들여다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토론 시간. 아이들이 하고 싶은 놀이에 대해 서로 말을 하면 담임 교사가 그것을 칠판에 붙인 종이에 써나간다. 아이들이 발표한 놀이는 다음과 같다.
‘주인의 신을 들고 따라다니는 하인 놀이’ ‘술래잡기’ ‘다카오니’ ‘우즈마키 가위바위보’ ‘카고메’(눈을 가리고 앉아있는 술래 주위를 여러 명이 에워싸고 노래하고 돌다가 노래가 끝나 멈춰서면 술래가 자기 등 뒤의 사람을 알아맞히는 놀이) 등 상당히 많은 놀이가 나왔는데 그 중에는 나도 모르는 놀이가 많이 있다.
그 중에 다카오니라는 놀이를 누군가 말했을 때 교사는 ‘다카오니, 안하면 안될까?’라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위험하니까요.’라고 소리쳤다. 교사는 “그렇지. 다친 00도 있었으니까. 고맙다.”라고 대답한다. 놀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동시에 안전도 충분히 배려한다. 교사가 아이들이 늘어놓은 놀이의 종류를 보고 이렇게 정리해간다. ‘놀이가 아주 많이 있구나. 1학기에 학급 놀이 시간이 20일 있으니까 하루에 2개씩 하면 40개의 놀이를 할 수 있구나.’
“와” 하고 소리치는 아이도 있다.
누노세에는 여러 가지 놀이 시간이 있다. 아침 8시 10분부터 수업 시작할 때까지의 아침 놀이시간. 매일 쉬는 시간에 규칙적으로 노는 모둠놀이, 주에 2번 학급 놀이. 더 나아가 주2회 방과 후에 만들어져있는 방과후 놀이가 있다. 보건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누노세 아이들의 보건실 이용률은 시내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스쳐서 다치는 상처나 타박상같은 가벼운 상처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깥에서 놀 때에 다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또 바깥 놀이가 많아서 누노세 학교 내의 일층 복도나 계단은 모래투성이인 곳도 있다.
아이들은 의리가 있어서 쉬는 시간이 되면 거의 매일 나에게 와서 놀자고 권했다.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쉬는 시간 10분 동안 피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땀이 범벅이 되어 목이 말라 참을 수가 없다. 아침 수업 시작 전에 모든 아이들이 교정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상당히 놀랐다. 그런 때 한 교사가 나에게 속삭여주었다. “비가 오면 교사들은 즐거워해요. 조금이라도 늦잠을 잘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 포인트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이다. 어느 교실에 가도 어린이들은 교사가 하는 말을 확실하게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라 반 친구가 발언을 할 때에도 확실히 듣고 있다. 대신 다른 아이가 발언을 할 때 떠드는 친구가 있으면 바로 주위에서 주의를 준다.
듣는 자세가 가능하다는 것은 타자를 존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의 단적인 모습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누노세 교사들의 지도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예를 들어 저학년 교실에서 말하기 듣기의 규칙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말해도 좋겠습니까?”
“ 네.”
“ 들어주세요.”
“네.”
등의 소통을 하는 목소리가 빈번하게 들린다. 또한 이런 이야기도 수시로 들린다.
“00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되어있지 않는 사람이 있네.”
“ 그렇게 앉으면 실례가 아닐까 생각해보렴.”
“ 손 무릎, 1,2,3, 네”
“ 집중”
“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한 번에 들어주세요.”
“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말으렴. 예의바른 태도로 들어주세요.”
또한 ‘화냄’ 지도라고 하는 것이 누노세에서는 철저하게 행해지고 있다. 4월 달의 일이다. 1학년 합동 음악 수업에서 교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학년 대표 교사가 엄한 목소리로 “00야! 일어나세요! 너는 00선생님에게 뭐라고 했니?”라고 묻자 그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연거푸 물었다. “00선생님이 똑바로 앉아주세요라고 말하니까 네가 뭐라고 했지? 바보라고 말했잖아. 바보, 시끄러워라고 말하지 않았니?” 이 일은 갑자기 발생한 일로 지금 막 입학한 1학년에게는 조금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할 정도의 느낌이 드는 꾸지람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꾸지람을 들으면서 흠찟 놀랐고, 그래서 조금 긴장된 분위기가 되었지만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또 온화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교사는 다른 아이를 엄하게 꾸짖었다. “너는 00 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거니? 방해하려고 한 것이잖아. 그것은 절대로 안되는 행동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아이에게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아이를 주의주었다.
교사는 어떨 때 화를 내야 하는 것일까? 그 기준은 아주 명확하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려고 할 때, 누노세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화를 낸다.
새로 발령을 받아 누노세 초등학교에 온 지 2년을 맞는 한 여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나는 아이들에 대해서 엄하게 추궁하지 못해요. 예를 들면 친구들에게 싫은 행동을 했을 때라든가, 공부를 확실히 하지 않을 때라던가 좀 밍기적거리면서 대강하려고 할 때라든가. 엄하게 추궁하지 못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학년의 선생님의 아이들 다루는 태도는 정말로 대단해요. 웬지 내가 교실 한 구석에 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결코 타협하지 않아요. 무엇을 꾸짖는가 하냐면, 다른 친구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했을 때는 특별히 그래요. 주변 아이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생각하면서 추궁하는 것이죠.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이 단지 피해를 받은 아이와 가해를 한 아이, 둘 만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대부분의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듣는 태도’를 키워주는 교육은 다 할 것이다. 그러나 누노세에서는 그것과 동시에 ‘화냄’ 지도를 하고 있다. 그런 엄한 지도를 통해서 아이들은 올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힘을 배우서 나와 같은 외부인이 보아도 놀랄 만큼의 듣는 태도를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저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아이들은 하나하나 지도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면, 엉망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지요. 그런데 모두 힘든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잘 해주고 있어요.”
위의 말은 누노세 초등학교 교사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것이다.
첫댓글 세번째 이야기 꼭지에서 '화냄'지도에서 조금 흔들렸습니다. 저도 이와 다르지 않지만, 늘 이것이 올바른 것인가, 공교육의 한계인가 싶었거든요. 필요할 때 화를 내야만 아이들은 엉망이 되지 않는 것인지, 그 필요할 때라는 것이 누구의 기준인지, 다른 이를 괴롭히고 상처를 입히는 행동에 대해 엄하게 대하는 것이 일본 특유의 문화는 아닌지,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우리네 문화에서도 늘 행해지는 '화냄'지도가 이들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이야기 끝까지 따라가보고 싶습니다. 번역하시느라 수고 많으셔요. 하지만, 저는 잘 그리고 깊이 읽고 있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화냄과 엄함을 구별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대해 엄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봐요. 따뜻함과 엄함이 함께 있어야하겠지요. 종순샘. 저도 잘 읽고 있어요.
뒤늦게 따라가고 있네요. 화냄지도에 대한 두 벗님의 생각에 공감해요. 전 학기초에 화를 내면 만원을 내겠다고 하지요. 그건 화를 내야하는 상황이 너무도 자주 찾아와 늘 화만 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한 뒤로 저 자신을 위해 내린 처방인데요. 그로 인해 사서 고생을 한 부분도 있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화를 내지 않고도 부드럽게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유익함도 있었지요. 그런 점에서는 DJ환님의 댓글에서 느끼는공감이 큰데, 화냄과 엄함을 구별하고 싶어하시는 배추도사님의 생각도 귀하게 여겨져요. 특히 초등학교 상황에서는... 메이가 종순샘이시군요. 전 낭만샘이에요. 인사드려요.
ㅎㅎ 제가 이웃의 토토로를 미친 듯이 좋아하거든요. 그 책에 나오는 두 자매, 사츠키와 메이를 너무 좋아해서...
사츠키는 일본어로 음력 오월이란 뜻이고, 메이는 영어로 5월이잖아요. 고고학자인 사츠키와 메이의 아버지 너무 낭만적이에요. 낭만샘도 혹시 메이의 아버지같은 고고학자같은 분인가요? ㅎㅎ
저도 선생님 닉네임 메이를 보면서 토토로의 그 귀여운 아이를 생각했어요 ^^ 맞았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