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 부터 짠 내가 풍겨나는 바닷가를 좋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주로 많이 다녔던 여행지는 모두 섬 지방이나 혹은 바다 냄새가 나는 어촌 지역이었던 것 같다.어느덧 중년이 되어서 살고 있는 곳도 바다가 가까워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바닷바람을 맞으러 갈 수 있는 시애틀에 산다는 것이 때로는 행운처럼 느껴지곤 한다.
사람들이 이처럼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를 가까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고향이 바닷가가 아니더라도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사람은 누구에게 서나 인간으로서의 동일한 감수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꽃을 보고 꽃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상 꽃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짓 이겨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증오를 느끼고 미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제공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우린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간혹 노트 한 권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산이나 시골의 장터에서 라든지 섬이나 이런 곳을 가고 싶은 때가 있다. 어린 시절 혹은 바닷가에 여행을 가본 사람은 맨발을 벗고 모래 위를 거닐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뛰어가다 물살에 밀려 뒤로 넘어진 적이, 혹은 파도를 뛰어넘어 본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러나 지금 필자가 다루고 싶은 것은 단순히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 보자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요즘 잠시의 쉼을 누리기 위해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상태이긴 하지만 가끔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과 두려움이 문득 떠오르려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면서 가슴에 음성처럼 다가오는 음성은 내가 예수님의 삶을 살수 없다는 한계 혹은 자신의 삶을 온통 불살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선교사들의 삶을 살아갈 수 없더라도 잠시 잠깐 번 아웃에 빠져 있었던 나의 삶이 정말 부끄럽게 여겼던 일들이 있었다.
잠시 묵상에 잠겨 있다가 또 다시 떠오른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다. 언젠가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대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내가 그들의 모든 짐을 질 수 없는 형편이기에 내가 결코 그들의 삶을 온전히 다 책임질 수 없는 능력이 나에겐 소유하고 있지 않기에 그들을 제대로 지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기에 나의 마음은 상당히 곤혹스럽기도 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때로는 많은 갈등과 인내가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나의 삶으로 그것을 드러낼 수 없음은 여전히 내가 성장하지 못한 존재임을 증거하고 있음을 내 스스로는 알고 있다. 좋은 나무가 동시에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열리게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용한다면, 너희가 어찌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두 주인을 섬긴다 하느냐 ?
요즘은 자주 유튜브 음악 중에 복음 송을 듣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한다.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바닷가를 나가서 넘실거리는 물결을 보면서 파도를 타려던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것은 깊은 묵상 가운데 떠오르는 생각들인데 그것을 우리의 삶에 비유하면서 우리는 파도를 뛰어넘는 행위가 그저 낭만적인 모습인지도 모르지만 파도를 뛰어 넘는 행위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생사를 건 모험 일수도 있다.
가끔은 파도를 뛰어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상하여 지치게도 되고 혹은 우리가 뛰어넘기 힘든, 뛰어 넘을 수 없는 파도도 함께 밀려온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언젠가 영화에서 원드써핑 (파도타기) 장면을 보았다. 큰 파도가 밀려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되기까지의 장면을 함께 생각했다. 인생은 결코 낭만적인 부분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어려움도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파도를 타듯 어느 정도의 여유를 부리며 넘어가는 기교가 우리에게 필요치 않을까?
고요한 묵상 중에 느낀 느낌이 좋다. 그 동안 내가 파도를 뛰어 넘으려고 만 애써왔다는 사실을 짚어보며, 이젠 파도타기 기술을 익혀 높은 파도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리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충남 아산시에서 출생 주로 사회복지 관련 업종에서 종사 2003년 7월에 미국 뉴욕 이민 2017년에 페이스 대학 교육학과 편입 2019년 졸업(워싱턴 주 타코마 소재) 2020년도 워싱턴 주 시애틀 이주 2022년 미주 문인 협회와 재미 수필가 문인 협회.워싱턴 기독교 문인 협회(알곡 문학) 뿌리문학(서북미 문인협회)를 통해서 등단함 주요 활동 단체는 뿌리 문학과 재미 수필가 문인 협회에서 활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