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국내여행 한려수도 2박3일
1. 여행에 앞서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한진관광에서 기획한 “고품위 국내여행 신한국기행”의 프로그램중 하나인 “한려수도 2박3일”을 다녀왔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국내여행을 해 보았지만, 개인 자동차를 이용하거나 국내전문 소형 여행사, 또는 현지에서 여행가이드와 봉고차를 가지고 관광안내를 겸하는 운전기사 등을 이용해 왔고, 소형 여행사를 이용하여 완도, 청산도 등 남해안을 여행하는 경우 보통 1인당 경비가 30만원 정도에 4인 1실을 기준으로 하여 방 1개를 추가하는 경우 하루 2만원을 더하고, 저녁 한끼 정도는 자유식사로 바닷가 수산시장에서 회를 사서 2층에 가서 술과 함께 마셨으며 땅끝마을의 경우 케이블카 탑승비용을 개인부담으로 하는 등 서비스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진관광의 “고품위 국내여행 신한국기행”의 경우 4인 이상 여행객이 있을 경우 출발이 확정되고 기사와 안내원이 동승하며 5성급 또는 숙박지 최고급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식사도 고급으로 제공되며 가이드 팁이나 입장료 등 옵션도 없어 갔다온 사람의 평이 좋더라고 우리 여행멤버의 하나인 이사장이 적극 추천하여 여행멤버 4가족이 찬동함으로서 이번 여행이 이루어졌다.
우리 여행멤버들은 2002년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면서 술을 좀 자제하겠다는 의미로 면세점에서 양주 한 병도 사지 않았다. 어느 여행사인지 잊었지만 우리 일행은 부부 4쌍, 여자들만 5명으로 모두 13명이었다. 첫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남자 넷중 한 분이 안포켓에서 500cc 옥수수수염차병 하나를 꺼내들더니 “이거 양주인데 한잔 하시겠습니까?”하는 것이었다. 남자 넷 두가 반색을 하였고 이윽고 이사장은 코카콜라와 사이다를 각 2병씩과 얼음을 조금 시키더니 사이다는 여자들에게 권하고 코카콜라와 얼음을 채운 잔에다 옥수수 수염차에 담긴 양주를 40%정도 섞어 일동에게 권하는 것이었다. 이사장 부부는 30여년 미8군에서 근무하다 당시 63세로 퇴직을 하였는데 부부가 다 영어에 능통하고 이사장을 직업상 주로 양주를 마신 결과 기호주가 되었다하였다. 다들 양주가 준비되어 돌아가며 술을 내었고 술을 준비못한 나는 하노이 대우호텔에서 술을 사서 접대했었다.
술 좋아한다는 공통점만 가진 일행은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고, 통상 여행시에서의 이런 약속은 귀국후 흐지부지해지기 마련인데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지 채 두달이 안되어 제일 연장자인 신회장으로부터 분당 어느 일식집에 토요일 12시까지 모이라는 연락이 왔었고, 그 다음 나이 차례로 두어 달마다 국내에서 한차례 술모임을 가졌으며, 그 결과 해마다 한번 이상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을 같이 하게 되었다. 제일 연장자는 올해 88세인 신회장님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졸업한 대구사범을 박대통령보다 10년 늦게 해방되던 해에 졸업을 하고 고려대와 일본 대학에서 석박사를 하시고 일본 대학에서 교수를 하시다 지금은 분당에서 일본 약품 수입, 판매를 하는 “한국 멜스몬(주)”라는 회사 회장으로 아직도 현역에 계신다. 그리고 분당에 오래 살다 최근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사하신 이사장과 강남 삼성동에 사는 박사장은 현재 75세로 우리가 신회장을 만났을 때와 같은 나이다. 박사장은 진도출신으로 목포 문태고를 야당중진인 박지원씨와 같이 나왔으며 집안 숙질간으로 “지원이, 지원이”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친숙한 모양이다. 전에 건설업을 했다는데 모두들 상당한 재력을 가진 분들이다.
공무원 또는 특허법인 변리사로 시간적 제약도 많았고, 이제 69세로 나이와 경제적 차이도 커서 그동안 이 분들과 보조를 맞추는데 힘들었는데 다행히 작년 말 리앤목 특허법인에 퇴직원을 냄으로서 공무원 35년 변리사 8년 등 43여년의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두고 나도 이제 여행과 취미생활 등으로 장시간 노는 “장노”급 인생을 즐기게 되어 시간적 제약만은 나머지 분들과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만난 이래 지중해, 동유럽, 서유럽, 미국 서부, 대마도, 북해도, 동경 북쪽 등과 중국 운남성, 항주, 소주 등 해마다 한번 이상 해외여행을 같이 했고, 작년에는 크로아티아 인근 3개국을 7박 9일간 여행했으며, 금년 4월에는 일본 중부 (고마쓰~나고야)를 3박 4일로, 그리고 지난 11월 4~6일에는 설악산 백담사, 통일전망대, 건봉사, 신흥사, 권금성, 오색 등을 2박 3일로 갔다왔다.
설악산 여행시 신회장이 죠니워카 블루 1병과 일본산 고구마소주 25도짜리 1.8리터를, 이사장이 죠니워커 블랙을 한 병 가지고 오셨고, 박사장이 목포 후배로부터 홍어회 1상자(분량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3일을 8명이 맘껏 먹었음)를 가져와 첫날 저녁은 물치항에서 광어와 방어 비슷한 모양의 고기를 회떠 그 활어회집 안에서 난생 처음 먹어보는 고급술 죠니워커 블루 한 병을 비웠었고, 둘째날은 생선구이를 먹기로 했으나 술안주로 마땅치 않아 속초중앙시장으로 가서 참돔 6만원짜리 한 마리 회를 떠고 서더리탕용 조개 1킬로와 돼지고기 3근, 김치, 파, 된장, 약간의 쌀 등을 사서 숙소인 대명콘도로 와 음식솜씨 좋은 전남출신 박사장 부인과 이사장부인이 그릇 등의 부족으로 연이은 콘도 간을 왕복하면서 돼지고기를 두 냄비 삶고, 참돔 뼈와 조개로 서더리탕을 뚝딱 끓여내어 도미회와 함께 늘어놓으니 풍성한 저녁상이 되었고 여기에 홍어회를 더하여 삼합(홍어회, 돼지고기, 김치)와 도미회를 안주로 죠니워커 블랙 한병을 비웠다. 몇 년전 까지는 신회장님도 술을 같이 하였으나 80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확 줄더니 요즈음은 한두 잔 정도 맛만 보시다가 속초 여행시는 몇 잔 자시더니 발이 부어 잘 걷지 못하게 되었다. 일행은 분당 회장님댁 앞에서 모여 이사장이 새로 산 제네시스를 자랑하며 회장 내외를 모셨고, 내 차로 박사장 내외를 모셨는데, 내 눈이 침침한 관계로 운전은 거의 아내가 했다. 속초 여행시는 회장님 가져온 일본소주 1.8리터가 남아 분당에 도착, 흑돼지구이 집으로 가서 홍어 남은 것과 함께 비우고 헤어졌었다. 본래 남의 음식점에 술과 다른 안주를 반입하면 꺼리는 법이나 신회장님과 이사장이 분당에 오래 사셨고 단골집이 많아 술집 사장이 와서 인사를 할 정도여서 문제가 되질 않았다.
2. 여행 제1일
속초 여행 직전 이사장이 전화로 한려수도 여행에 대한 나머지 3명의 의사를 물어 좋다고 하자 혼자 8인분 예약금 80만원을 미리 냈다고 말하며 각자 여행비는 출발 1주일전 문자가 오면 납입하라고 하여 납입은 하였으나 여행 직전 일기예보를 보니 여행기간 내내 남부지방은 비가 온다고 하여 여행의 연기를 여행사에 문의해 봤으나 해약과 재예약을 해야하고 하루전 해약할 경우 여행비 80%이상을 위약금으로 내야한다기에 날씨 나쁘면 어디 가서 술이나 먹지 하는 마음으로 예정대로 참가하기로 하였다. 그전에 한진관광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니 11원 11일부터 14일까지 이 코스에는 21명의 신청자가 있었으나 이번 여행은 날씨 탓인지 우리 일행 8명이 전부였다.
11월 16일 오전 8시반 약속장소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일행 8명은 모두 모였고 버스는 예정대로 출발하였다. 버스는 45인승을 우등고속처럼 1렬 3석으로 하고, 앞 뒤 간격도 넓혀 27인승으로 하여 의자를 뒤로 재킬 경우 1단은 115도정도, 2단은 140도정도로 거의 침대수준으로 편안하였다. 버스 외부와 내부에도 “고품격 국내여행”, “신한국기행”이라고 표시를 하여 해외여행의 경우 가장 고가상품으로 이름난 한진관광이 국내에서 이 상품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전날 묘사가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구미시 양호동[옛날 인동장씨(仁同張氏)의 발상지인 인동면은 구미시에 편입되어 인동(仁同)이란 지명은 이제 없다]까지 왕복 450km나 운전을 하였고, 귀경길에는 차가 막혀 여섯시간 가까이 걸렸으며 16일 아침은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5시반에 일어나는 등 피로가 겹쳤으므로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었으며, 옥산휴게소에 들려 화장실에 가는 외에 점심때까지 계속 잤다.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대전외곽고속도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려 12시 30분경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위치한 남사예담촌이란 곳에 도착했다. 이 곳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꼽힌 마을로 경북의 하회마을이 있다면 경남에는 남사촌이 있다할 정도로 명문거족들이나 충신, 효자들이 많이 살았다한다. 그 중 한 곳은 경무공(景武公) 사당과 그 후손의 고가로서 경무공 이제(李濟 1365~1398)는 성산이씨로 이인립(李仁立)의 아들이며 고려 마지막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조카이다. 이제는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으로 제7자 방번과 제8자 방석 사이의 세 번째 공주인 경순공주(敬順公主)와 혼인하였으며, 정몽주 살해에 가담하고 태조의 등극을 추대하는등 공로로 개국일등공신 흥인군(興仁君)에 봉해졌으나 정도전과 함께 위사를 동원해 정안대군(靖安大君) 방원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정안대군(훗날 태종)이 일으킨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때 정도전, 방번, 방석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그 뒤 세종조때 복원되어 경무공이란 시호가 내려지고 태조 묘정에 배형되으며, 후사가 없으매 조카 이윤(李閏)으로 후계를 삼도록 하여 오늘날 많은 후예들이 사당을 세우고 조상을 기리고 있으며, 그 밖에 남사 옛 담장(국가등록문화제 제281호), 아버지를 대신해 화적의 칼을 맞고 죽은 효자 성산이씨 이모를 기리른 사당 효사제와 최씨고가, 이씨고가, 면우 곽종석 선생 유적, 박씨 선조 송월당 박호원을 기리는 나사제, 사양정사 등 옛 고가와 사당 들이 즐비한 전통 고택촌이 바로 남사 예담촌이다.(이 자료는 산청군 관광안내자료와 네이버 검색의 일부 등을 인용한 것임)
우리는 예담원이라는 전통가옥에서 약초밥상이라는 한식으로 점심을 하였는데, 산청군은 지리산 자락 청정지역으로 각종 약초가 많이 나온다고 하면서 생선구이와 함께 여러 가지 몸에 좋다는 약초로 된 반찬들이 한 상 나왔는데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돼지고기 수육이 푸짐하게 나온 것이었다. 이사장이 “수육이 이렇게 좋은데 한잔 해야지”하자 신회장께서 지난 번 속초여행에서 다리가 부은 것은 술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며 단골 의사로부터 혈관이 약해졌으니 당분간 술을 마지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선릉역에서 성형외과를 하는 아들 역시 술을 말리므로 “이번 여행에서 술은 금지다”라고 하셨다. 그러자 능청스러운 박사장이 “신회장 뜻을 따라 술은 먹지 말고 곡차로 바꿉시다”하여 결국 소주 서너병을 비우면서 점심을 끝냈다. 다행스러운 것은 술 좋아하는 우리 모임의 부인들은 남편의 과음에 대하여 전혀 잔소리하는 법이 없으며, 여행이 시작되자 부인들이 스스로 한 집에서 우선 5만원씩 돈을 걷어 술값 등 여행사에서 부담하지 않는 경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식사후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한시간가량 달려 오후 세시경 통영에 도착하였다. 원래는 동파랑마을을 먼저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날씨가 차츰 나빠지고 있어 미륵산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먼저 타기로 하였다. 케이블카는 미륵산(458.4m)정상 약 100m 밑까지 놓여 있었고 왕복 요금은 8,000원이었으며, 8인승 36대가 연속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다행히 햇빛은 없었으나 안개 또한 없어 멀리 대마도까지 볼 수는 없으나 근처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광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었다. 신회장 부부와 퇴행성관절염으로 계단에 약한 나는 케이블카 상부전망대에 남아 따뜻한 차를 즐기며 전망을 감상하고 나머지 5명은 약 15분 걸리는 정상까지 가서 가을산의 아름다움과 바다의 풍광을 함께 즐기고 돌아왔다.
통영은 예부터 갓과 자개의 산지로 유명하였다. 이름높은 통영갓은 시대의 산물이 되어 생산의 맥이 끊어졌으나, 자개는 아직 명맥을 잇고 있어 자그마한 자개전시장을 방문하였다. 문이 8조인 약 4m 가까운 자개장농 전면에 큰 소나무 두그루와 십장생 등을 현란하게 장식한 자개장은 시가가 3억원, 길이 60cm 정도의 문서함은 3천만원이란다. 명함만한 크기에 끈을 꿰어 목에 거는 자개장식패는 3~10만원인데 박사장이 두 개를 샀으며, 내 아내는 3천원짜리 실내용 덧버선 한 켤레를 샀다.
이윽고 오늘 관광의 마지막 코스인 동파랑 마을과 수산시장을 둘러보고 저녁식사로 해물구이를 먹는단다. 동파랑 마을은 재개발 대상의 낙후한 마을의 벽에 지역 화가들이 갖가지 그림을 그려 관광명소가 됨으로써 매일 수백, 수천명씩 찾아와 마을의 발전과 함께 그 밑 중앙시장까지 발전하였으며 특히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와 가거대교 등으로 대전과 부산에서의 방문시간이 절반이하로 줄어 관광수요가 크게 늘었다 한다. 박사장은 양주가 있다고 하면서 생선구이로는 안주가 그렇다고 하고, 또한 음식점에 회를 떠가기도 어려워 가이드와 의논, 또하나 통영의 명물인 굴철이 막 시작되는 점을 감아하여 약간의 굴을 사가서 맛보면 어떻겠느냐에 대해 식당의 양해를 구해달라 하였고, 식당에서도 이의가 없단다. 그래서 동파랑 관람후 어시장에서 굴 2kg을 사서 깨끗이 씻어달라하고 초장도 한 병 샀다. 굴은 kg당 12,000내지 14,000원이었으나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초장과 함께 3만원을 지불했다(20일 김장을 한다고 평촌 수산시장에서 굴을 조금 샀는데, 통영굴은 400g 한 근에 1,3000원이란다. 현지 가격이 서울의 절반도 안된다). 여자들은 또한 “1박2일”을 통해 유명해진 충부김밥과 꿀빵도 맛봐야 한다며 이것도 샀다. 굴 2kg은 큰 접시 둘을 채우고도 남았다. 그래서 가이드와 기사도 얼마간 나누어주었다. 생선구미는 큰 도미를 1인당 1마리씩 굽고 그 밖에 각종 해물안주가 함께 나왔으나 싱싱한 굴에 젓가락이 먼저 갔다. 박사장은 버스안에서 양주 1리터를 삼다수병 500c 두 병에 나누어 가져왔고, 콜라 2병과 사이다 두병을 시켜, 여자들은 사이다로, 나와 이사장은 양주와 콜라 반반씩인 캭테일로, 박사장은 스트레이트로 양주 1병을 후딱 비웠고 그 밖의 다른 음식들은 어떻게 먹었는지 잘 모리겠다.
식사후 버스를 타고 거제도로 들어가 5성급 호텔인 삼성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은 최근에 지은 듯 깨끗했고 우리가 투숙한 방에는 트윈베드로 되어 있어 부인들이 좋아했다. 투숙객에게는 사우나가 무료로 제공되나 음주한 사람은 사우나를 조심하라고 해서 부인들은 사우나로 가고 나는 호텔방에 딸린 욕실에서 목욕을 한 다음 텔레비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3. 여행 제2일
아침 6시반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천천히 세수를 하고 7시 반쯤 호텔 뷔페로 내려갔다. 다른 분들은 벌써 내려와 있었다. 부지런한 박사장과 이사장은 아침에 샤워장에서 땀을 빼고 왔단다. 천천히 식사를 하고 각기 방으로 가서 짐을 싸서 9시경 버스를 타고 호텔을 떠났다. 원래 9시에 와현선착장에서 배를 탈 예정이었으나 바다의 사정이 좋지 않아 10시 이후 배가 뜨고 오후에는 풍랑이 세어져 배가 뜰 수 없단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날씨가 나빠도 배가 떳으나 세월호 사건 이후 해경의 통제가 심해져 해경 허락없이는 함부로 뜰 수가 없단다. 열시에 출발한 유람선은 거제 해금강을 한 바퀴 돈 다음 10시 30분 외도선착장에 도착, 하선을 하도록 하고 12시에 승선해야 한다고 앴다. 외도는 원래 개인섬이었으나 70년대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장사를 하던 이모씨가 우연히 낙시를 왔다 이 섬을 발견하고 교사를 하던 부인과 의논, 이 섬을 사들인 다음 47,000여평에 각종 수목을 사들여 인공정원을 조성하고, 1995. 4. 15.부터 해상식물공원으로 일반에게 공개를 하였으며, 그 후 2003. 4월 남편은 유명을 달리하고 지금은 그 부인이 운영하고 있다 한다. 나는 1990년대 말 이 섬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해상의 섬이다 보니 어느 정도 경사가 있어 아픈 다리에 다소 부담이 있을까 염려되기는 했으나 그래도 죽기 전에 언제 다시 이 곳을 방문하랴 싶어 아내를 따라 관람로글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약 1시간이 걸렸다. 얼마 못 올라가고 쉬고 계시는 신회장님 부부를 보니 나도 언젠가는 저러리라 생각이 들었고 두 분의 외롬을 다소라도 덜어드리고자 관람을 서둔 것도 사실이었다. 1~20분 후 이사장, 박사장 부부도 내려왔고, 일행은 배를 타고 와현항으로 건너왔고 점심은 통영의 명물이라는 멍게비빔밥으로 했다. 각종 TV에 36회나 소개되었다는 이 집 멍게비빔밥은 다른 집에서는 생멍게를 사용하는데 비해 멍게를 짤게 썰어 각종 양념과 함깨 약간 냉동숙성시킨 것으로 밥의 열에 녹아 비린내도 없고 맛이 독특하다고 종업원이 자랑을 하였으며, 제조방법은 특허를 받아 다른 집에서는 흉내를 내어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식사후 다시 버스를 타고 지난 2003년 우리 기술만으로 건설한 최초의 현수교라는 사천시 삼천포~창선도~거제도를 잇는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 남해도 독일마을로 향했다. 독일마을 입구에 있는 기념관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원들의 이야기, 박정희대통령의 독일 방문시 정상회담과 광부, 간호원과의 만남 등을 소개하는 영화를 보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전교조나 야당이 기를 쓰고 반대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경제대국을 건설하는데 기여한 박대통령의 발자취는 군데군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독일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가게에서 독일맥주와 과자, 술 못하는 부인들은 허브차 등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승차시간보다 30여분 지체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1973년 한국에서 최초로 건설한 현수교인 남해대교를 빠져나와 여수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 오늘 마지막 관광지인 오동도 관광은 생략하고 저녁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는 한정식이었는데 산양삼, 각종 회, 전복회, 전복구이 등 안주가 풍성했다. 전복회와 구이에 내장이 없기에 서비스하는 아가씨(?)에게 얼마간 팁을 주면서 물어보니 내장은 젓갈을 담그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밥과 된장 등 반찬이 나왔는데 반찬 중 얼마간의 전복내장젖갈이 있었다. 1인분에 얼마나 하느냐고 물어보니 3만원이란다. 서울에서 6~7만원하는 한정식보다 훌륭하였다. 회와 전복구이등을 안주로 소주 몇 병을 비운 후 호텔로 돌아오니 8시가 넘었다. 호텔은 “히든베이호텔”이라는 역시 5성급으로 여수엑스포때 지었는지 새 건물이었으며. 방마다 더블베드와 싱글베드가 있고 잠옷도 3벌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3인가족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었다. 또한 호텔 뷔페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보니 양측이 바다로 경관도 훌륭하였다.
4. 여행 제3일
원래는 8시반 출발이었으나 여행자의 연령등을 생각해 우리가 9시 출발을 주장했다. 이에 가이드는 오후가 되면 중부지방에 비가 많이 내린다하고 전주 한옥마을을 갔다온 사람들도 많으니 어제 못본 여수 오동도와 순천만 갈대숲을 구경하고 바로 올라가는 것이 어떠냐고 했고 일행 모두가 좋다고 했다. 우리 팀 외에 다른 여행객이 없으니 일정변경 등이 편했다. 오동도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주차장까지 연육제(連陸堤)는 무궤도열차로 가는데 경로는 무료다. 내 아내는 곧경로고 나머지는 올경노이니 이런 점에서는 관광회사 이익창출에 조금은 기여를 한다. 오동도에 도착, 동백꽃 떨어진 숲길을 20여분 걸음으로서 오동도 관광을 마치고 순천만으로 향했다. 갈대숲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순천만 연안습지에 자연히 조성된 광활한 갈대밭을 나무다리를 통해 걸으며, 흑두루미떼의 비상도 보고, 갈대밭 사이 뻘에서 기어다니는 작은 게들도 구경하면서 1시간 가량을 보내고 식당으로 향했다. 순천의 명물은 장뚱어와 고막이란다. 우리는 고막비빔밥에 장뚱어탕을 더하여 점심을 하고 1시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다행히 오전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나 버스를 타고 조금 지나자 상당량의 비가 계속됨을 버스 앞창의 물방울과 와이프이 움직임으로 알 수 있었다. 차는 순천~전주간 도로, 호남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를 통하여 귀경하였는데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중 차령터널을 지나자 비가 그쳤으며, 입장휴게소에서 공금 남은 것을 보니 37,000원, 어제 남해군 독일마을에서 한 잔에 8,000원씩하는 생맥주와 허브차로 인한 지출이 컸다. 한 집에 2만원씩 더 거두어 5만원짜리 봉투 둘을 마련하고 남는 돈은 3,000원짜리 호두과자 다섯 봉지를 사서 운전기사와 안내원에게 한 봉지, 각 부부마다 한 봉지씩 나누었다. 출발에 앞서 신회장이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와 운전기사의 편안한 운전으로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됨을 감사하고 모두들 나이가 먹어 돈버는 재주가 없어 부끄럽지만 약소한 봉투를 준비했으니 작은 정성이나마 너그러이 받아달라는 인사말과 함께 가이드에게 봉투 둘을 전했다. 노팊이라 하나 작은 정성을 표하는 것이 서로간 좋았다. 오후 6시경 버스는 출발지인 앞구정동 현대아파트 옆에 도착, 일동 모두가 하차함으로써 2박3일간의 여행은 끝났고, 일행은 12월 12일 신회장님 주관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헤어졌다.
수십년내 최대의 가뭄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제한급수를 하는 등 물부족현상이 근심되는 이때에 단비는 반가운 것이었고, 다행히도 우기에 적절히 비를 피해가며 관광을 마칠 수 있어 더 좋았던 여행이라 하겠다. 또한 한진관광의 “고품위 국내여행, 신한국기행”이 그 이름에 걸맞게 차량이나, 숙소, 관광내용, 음식 등에 신경을 쓰고 있음이 보여 앞으로 자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우리 동문들에게도 이 여행을 권해볼만하다 생각되어 침침한 눈을 하고도 자판을 두드리며 졸필이지만 이 글을 작성하여 올린다.
2015년 11월 21일 장대성
첫댓글 내 컴퓨터 문제인가? 사진이 안보이네요.
사진 없습니다.
오랫간만에 대성이 글 보니 반갑다. 무릎 아프다더니 잘 다니는 걸 보니 보기 좋다.
'죽으면 썩을 몸 아끼면 뭐 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