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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 교회에 다니며 사람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지옥으로 보낸 거짓말은 뭘까? 그게 바로 거짓 구원론입니다.”(벤자민 오 목사)
“칼빈은 믿기만 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순종의 열매를 맺지 않아도 구원받는 생각을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님의 말씀이 좀 이상합니다. 순종의 열매를 맺기 때문에, 순종의 열매를 하나님이 보시고 구원을 주시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 만일 칼빈이 정말 저렇게 가르쳤다면, 그를 종교개혁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은 아무 공로, 자격없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믿음을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하심으로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 인간의 순종, 노력, 회개 ... 등은 전혀 끼어들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앞으로 순종할 것 같으므로 구원을 주셨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것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그 사람의 것으로 여겨주심으로 구원이 발생합니다. 칼빈이 이런 성경적 진리를 몰랐거나 왜곡했을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왜 박영돈 교수님이 순종이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처럼, 또한 순종이 없으면 다시 구원이 취소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순종이 구원과 무관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구원받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순종이 먼저 있었으므로 구원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구원받은 사람의 순종이 부족하다고 다시 구원에서 탈락되어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믿음을 통해 구원하신 사람은 이후 반드시 삶이 변화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박영돈 교수님의 위의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지만, 이후 인간의 합당한 행위(회개, 순종, 성화)에 의해 구원이 완성된다는 행위구원사상을 지지하는 것으로 충분히 오해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다. 행함은 구원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상급에 관계된 것이다. (앞부분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맞지요? 행함은 상급에 관계된 것이다. 이것은 요? 이것이 왜 그럴듯한 거짓말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성경은 한 번도 믿음과 행함을 분리한 적이 없다. 둘째, 믿음이 진짜 믿음이면 반드시 행함이 뒤따르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을 아주 교묘하게 나눈 것입니다.”(벤자민 오 목사)
위의 말을 통해 벤자민 오 목사는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파괴하였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행함이 구원을 유발하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구원은 언제나 오직 믿음으로만 얻습니다. 그리고 행함은 구원과 더불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행함은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삭개오도 구원을 받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합당한 행위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를 수는 있겠으나, 구원을 받음과 함께 올바른 행함이 시작되기 때문에 구원과 행함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구원의 근거이고, 행함이 구원의 완성을 위한 필수적 요소라고 암시하는 벤자민 오 목사의 말은 분명히 거짓말입니다. 언제나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는 순간부터 그 사람을 하나님 백성다워지게 만드는 ‘성령의 법’(롬 8:1)이 역사하므로 올바른 행함은 구원과 함께 반드시 시작됩니다.
성도의 올바른 행위는 구원에 수반되는 결과적인 것이지, 구원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원인이 아닙니다. 성도의 올바른 행위도 구원받은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 아니 계시면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함으로 구원을 얻거나, 유지하거나, 완성하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벤자민 오 목사는 행함이 구원을 시작하고, 구원을 유지하는 것처럼 암시하는 말을 하며 복음의 영광을 훼손했습니다.
“행함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행함이 없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행함은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해 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검증에서 탈락한 죽은 믿음이지요.”(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님이 행위구원사상을 가르치는 분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위 내용은 행위구원사상을 지지하는 말로 여겨지기에 충분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행함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행함이 없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박영돈 교수)
이 표현은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이후 신자의 행위(회개,순종)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행위구원 가르침과 너무도 일치합니다. 구원과 함께 시작되는 성화의 과정에서 반드시 올바른 행위가 나타나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박영돈 교수님처럼 표현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광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오해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입니다. 만일 저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겠습니다.
“행함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후에는 죄의 오염을 치료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행위가 시작되게 되어있다. 그것이 없으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정이철 목사)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아멘! 그러므로 행함은 구원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것이 너무나 그럴듯한 거짓말이었고, 무수히 많은 교인들이 이 거짓말에 속에서, 아마 제가 아직 안 가보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억울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누는 이야기는 똑 같은 맥락에서 정말 신학적으로 아주 치명적인 구원론의 오류인데, 그게 뭐냐하면 ‘구원은 칭의에만 관계된 것이고 성화는 상급에만 관계된 것이다’라는 거짓말이지요.”(벤지만 오)
‘제가 아직 안가보았지만’...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벤자민 오 목사는 자신이 이후 지옥에 가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벤자민 오 목사는 행함이 구원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암시(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파괴하고, 반대로 구원 이후에 시작되는 ‘성화’를 구원의 근거(요소)라고 암시(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완전하게 완성된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원 이후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의 오염을 치료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성화가 구원에 또 무슨 영향을 어떻게 미치다는 것일까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얻는 구원은 이미 완전한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얻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성화가 부족하면 구원에 악영향이 들어간다고 암시하는 벤자민 오 목사의 말은 거짓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 만큼 성화되면 구원에 좋은 영향이 들어가고, 또한 어느 정도 이하로 성화되면 구원에 악영향이 들어간다는 것일까요?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와 연합의 바탕 위에서 믿음과 회개, 칭의와 성화는 긴밀하게 연합되어 그리스도인의 삶 전 과정에 함께 갑니다. 따라서 성화없이 칭의에 근거해서만 구원받지 못하듯이, 행함없이 즉 순종과 회개의 열매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지도 못합니다.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에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동시에 거듭나서 하나님의 법을(말씀을) 즐거이 순종하는 삶을 살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를 의롭다하는 믿음은 반드시 순종의 열매를 산출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가능케하는 유일한 은혜의 체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하는 교리를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회의 만연한 값싼 구원의 복음이 얼마나 종교개혁자 칼빈의 구원론과 거리가 먼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박영돈 교수)
위에서 박영돈 교수님의 이 말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행위구원론자 벤자민 오 목사가 아주 좋아할 말을 하셨습니다.
“성화없이 칭의에 근거해서만 구원받지 못하듯이, 행함없이 즉 순종과 회개의 열매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지도 못합니다”(박영돈 교수)
이 말을 문자적으로 풀면 성화도 구원의 중요 근거라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과 회개도 구원의 필수적 요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우편의 구원받은 강도를 보겠습니다. 그 강도는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에게 구원을 간청하였습니다. 그 옆 십자가에 달려 고난 당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강도는 구원의 은혜를 얻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무 행함이나 순종없이 죽어습니다. 그러면 그 강도는 부족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께서 그 강도에게 약속하신 구원은 거짓입니까? 아닙니다. 강도가 자신의 죄로 마땅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 마지막 순간에 바로 옆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니 죄사함과 칭의가 주어진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의롭다하심, 즉 칭의를 얻음으로 발생합니다. 성화가 칭의와 구원을 일으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위의 말이 박영돈 교수님의 진심이라면, 박영돈 교수님은 천주교로 가셔야 하고, 고신교단은 박영돈 교수님을 파직하여야 마땅합니다. 행위구원사상을 공식적으로 가르친다고 오해를 받고 있는 감리교에서도 박영돈 교수님 같이 말하면 신학위원회에 불려가서 조사받을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웨슬리 구원론 논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입니다. 감리교 교수님들 중에도 성화가 칭의와 구원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웨슬리의 성령론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성화에 대한 강조이다. 성화는 구원의 여부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지만 구원받는 신자가 필연적으로 맺는 열매다”(감신대 임성모 교수, “웨슬리 관점에서 신사도 운동 비판”)
“행위는 결코 칭의에 있어서 아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이처럼 칭의에 있어서의 오직 믿음과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확고한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을 이어받은 감리교회의 중요한 유산이다.”(감신대 이후정 교수, 정이철 목사 문제에 대한 답변)
행위구원신학을 가르친다고 오해를 받고 있는 감리교단의 교수님들 중에도 행위와 성화가 구원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이처럼 분명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개혁교단의 조직신학 교수님이 행함과 성화없기 구원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은 큰 낭패입니다. 아마도 박영돈 교수님의 본 뜻은 구원을 받으면 반드시 행함과 성화가 따라 나온다는 의도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것을 벤자민 오가 최대한 이용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하는 교리를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회의 만연한 값싼 구원의 복음이 얼마나 종교개혁자 칼빈의 구원론과 거리가 먼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님이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매우 의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나,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결국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구원을 좌우하는 요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무 행함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의 영광을 훼손하게 됩니다.
아마도 행함이 없는 한국의 교인들에 대한 고민이 깊으셔서 이런 표현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이 선물하여 주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물해 주시는 그 믿음이 참 믿음이므로 이후 반드시 회개와 순종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회개와 순종을 보시고 구원해주신 것은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 한다”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와 같은 말은 행함이 있으므로 구원을 받고, 행함이 없으므로 구원을 못 받는 것 같은 오해를 유발합니다. 만일 행위구원론을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천주교라면 이렇게 말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얻음, 즉 이신칭의를 생명으로 여기는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저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믿음을 주신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어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 구원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성령의 법’(롬 8:1)이 역사하여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처음부터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동일한 삶의 변화가 일괄적으로 나타나는 않는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침묵기도, 중보기도, 방언기도」출판을 계획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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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17년 성탄절과 년말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동절기 카페지기 생활이 무척 어렵습니다...
이달에는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카페지기는 난방비,치료비.공과금.주거임대료
먹거리장만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후원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달 치료약값 30만원 공과금30만원 임대료 먹거리등을 사야 합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카페후원계좌-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선교후원-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
만일 저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겠습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에게서 삶의 변화가 일괄적으로 반드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구원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지식으로 아는 것일뿐 믿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믿는 것은 그의 삶이 변화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머리로 아는 것 말고 가슴으로 믿는 것이 구원이다"
"믿음으로란 뜻을 깊이 헤아려 보자"
믿음은명사가아니고동사다.그러기에믿음은행함을통해증명되는믿음이될때진짜믿음이된다.구원은행함이아닌믿음으로받는것이다.믿음으로구원받는것이진리다.그런데이믿음은교회다니는정도의믿음이아니다.영접했다는고백정도의믿음이아니다.믿음의대상이하신말씀을듣고말씀하신것을믿고말씀을순종(행)하는과정에어떤대가를지불하더라도행함을멈추지않고행하는진짜믿음으로구원받는것이다.행함으로증명되지못하는믿음은가짜믿음이다.행위를얘기한다고행위구원론자라고말하면안된다.행위를말하는것은행함으로구원받는다는것을말하는것이아니라진짜믿음으로구원받는다는것을말하는것이다.예수님을믿는다고말하는그믿음이진짜믿음인가를점검해봐야한다
정이철 목사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의 교훈 중에,
마7:21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해석을 정이철 목사와 벤자민오 목사는 해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박영돈 교수님은 정확하게 해석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