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옥이 현재의 삶을 다룬 글에서 많이 말해지는 주제는 늙어감이다. 나이들어감이 아니고 늙어감으로 말하는 이유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바뀌어 간 인생행로를 고영옥은 약간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모든 사람이 겪는 공통 심리이다. 세월이 흘러가면 세상도 변화고 내 몸도 변하는 것이다. 변화를 겪는 개개인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놀라움은 당연하리라.
고영옥의 수필에서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이라면 ‘잡은 손’으로 표현한 내용들 이다. 여기서는 가족 간에, 부부 간에, 또는 벙어리 연인 사이까지도,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이야기이다. 이런 것은 도덕적이고, 인간애를 말하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수필가들이 이런 표현 방식으로 따뜻한 인간애를 강조한다. 고영옥의 수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필이 윤리적인 내용으로 흘러가면 독자는 진부함을 느낀다. 그러나 고영옥의 경우는 실제의 삶과 일치하는 내용이라서 거부감이 적다. 무리하게 운동하다 근육통을 않게 되는 이야기도, 너무 논리적인 삶을 살려고 하면 오히려 탈이 난다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로봇 소피아’도 변해가는 세상 이야기다. 고영옥의 수필에서 세월따라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이야기는 새로울 것도 없다. 누구나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이 인간애이다 보니, 인간애가 고영옥의 수필세계이기도 하다.
고영옥의 수필세계를 말하려 하면, 뗄래여 뗄 수 없는 부분은 목회를 하는 남편과 함께 진량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돌보는 일이다. 외국인 근로자를 돌보는 일은 그의 삶이고, 생활이다. 그의 수필세계도 외국인 근로자와 관계를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삶이다. 고영옥의 수필세계는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하는 삶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고영옥이 천사라서 아무런 심리적 부담도 느끼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의 수필을 재미있게 읽는 이유라면, 외국인 근로자에게 봉사하는 과정에, 그가 겪는 심리적 갈등도 잘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봉사자로 나서는 사람에게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목석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여기는 일이다. 정말 그렇다면 수필세계가 만들어 질 수 없다.
수필 ‘너 안에 사랑은 있니?’가 이런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너 안에 사랑은 있니?
고영옥
사방이 온통 잿빛이다. 곧 비가 올 기세이다. 마흔 나이에 산모가 된 이국 여인의 얼굴도 잿빛 구름이다. 그녀의 얼굴을 보노라니 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비가 오기 전에 병원에 같이 가 보자는 눈치를 자꾸 주었다. 임신한 채 4개월 째 접어들었다. 노산이라 양수 검사는 필수라고 했는데 내가 우겨서 혈액검사로 대산한 것이 화근이었다.
혈액검사에서 고위험군 태아로 분류되는 다운증후군이 의심된다면서 양수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 잔꾀를 피우다가 오히려 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3년 전에 한국에 왔다. 코로나로 공장 문을 닫는 곳이 많아지면서 일자리를 잃고 벌어 둔 돈마저 까먹는 처지였다.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활하고 있는 그녀에게 도움은커녕 오히려 혹 하나를 더 붙여 준 꼴이 되었다.
그녀는 작년 이맘때, 열 다섯 평도 되지 않는 작은 외국인 노동자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부모 친척들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친구들의 열열한 축하를 받으면서 사십 대의 부부가 탄생하였다. 부부가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는 모두의 눈시울을 젖게 했다. 한국의 생활이 녹록하지 않았기에 마음으로 우러나는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캄보디아에서 이혼한 지 오래 된 이들은 마음이 맞았는지 결혼하였다. 일 년이 되어갈 무렵, 그녀가 함박웃음으로 다가왔다.. 임신하게 되었다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선뜻 축하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이도 많고, 전 남편과 아내에게서 자녀가 있으니 이제 낳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혼자 했었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산모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아프지 말고 태아에 이상이 없기를 바랐다. 그런데 임신하기가 바쁘게 병원비가 물새듯 나갔다. 그때마다 산모는 내 눈을 쳐다보았다. 돈을 빌려달라거나, 아니면, 좀 싸게 진료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눈길이었다.
수소문 끝에 양수 검사를 싸게 해주겠다는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를 보더니 이번에는 태반의 위치가 좋지 않다며 종합병원으로 안내했다. 허겁지겁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정오였다. 접수하고 나니 오후 다섯 시 반에 오라고 했다.
병원식당은 아주 넓고 깨끗했다. 산모가 의자에 앉자마자 급하게 점심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건너 띈 모습이었다. 불룩해진 배를 안고 밥을 먹고 있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짠 하였다. 점심밥을 먹고 나더니 게슴츠레 눈을 가누지 못한 듯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 깊은 잠에 빠진 그녀는 침까지 흘리며 코까지 골았다. 노산으로 인한 다운증후군 양수 검사가 어떨지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없이 자는 산모를 지켜보고 있자니 나도 자꾸 누꺼풀이 내려앉았다. 머리까지 흔들며 잠을 쫓아보지만 소용없었다.
잠을 쫒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빨리 오라는 전화가 왔다. 드디어 그녀는 의사와 마주 앉았다. 다니던 병원에서 가지고 온 혈액 검사지를 자세히 살피던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태아신경관 결손이 발견되어서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염색채 이상을 발견하기 위한 검사로 양수검사를 하려면 적잖은 비용이 드는 것을 임산부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확인하라고 했다. 의사의 말을 대강 알아들은 그녀는 내 눈을 쳐다보았다.
진료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 섰다. 계산기를 보면서 진료비를 내라는 간호사의 말을 외면한 채 그녀는 또 나의 눈을 쳐다보았다. 턱없이 비싼 검사비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녀는 계산하지 않고 급히 화장실로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궁할 때마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절뚝거렸다.
나는 산모가 올 때까지 계산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계산도 하지 않고 급하게 화장실부터 간 그녀가 염치 없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빨리 수납하라는 직원의 목소리를 귓바퀴로 넘기면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고 몇 번이나 얘기 했는데, 알아 듣지 못한 것 같은 그녀를 보며 혀를 찾다.
그녀는 지난 일 년 동안 일거리가 없었다. 틈틈이 대추를 따거나 마늘을 뽑는 농장에서 일한 것이 전부였다. 남편은 고향의 가족과 자녀를 보살피랴, 병원비 대랴 허리가 휘어졌다. 생활비가 모자라서 쩔쩔 매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이들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본인의 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생각으로 굳어 있는 나에게 다른 내가 물어 보았다.
“니 안에 사랑은 있니?”
선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나의 가슴에 화살촉 하나가 매정스레 꽂혔다. 신용카드를 만지작 거렸다.
힘들 때마다 번번이 진료비를 내주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더 큰 진동으로 굳어진 마음을 흔들었다.
“진짜 니 안에 사랑은 있니?”
다시 지갑 깊숙이 있는 카드를 만졌다. 진료비를 계산하고 나니 저만치 화장실에서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절룩거리며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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