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를 건너며 / 이길영
여행은 곧 출발이라 했습니다. 퇴직한 당신과 함께 그것도 아이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는 행운이 우리에게 찾아와 주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가족을 위해 온몸을 바친 당신을 위해 딸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제2의 인생 시작이라 불리는 퇴직. “자유로운 영혼이 된 당신, 설레지요?” 나도 당신처럼 가슴이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철없는 작은 새 하나가 내 안에 들어온 듯 설레발을 칩니다. 해외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영어권이 아닌 이탈리아 여행이라니 꿈같은 일이지요.
늘 국내 여객기만 타던 우리가 에어프랑스를 타러 가는 것부터가 새롭습니다. 외국 항공사는 전동차를 타고 가서 만나는 게이트였기에 딸아이의 모습을 온전히 눈에 넣고는 바지런히 움직여 에어프랑스에 탑승했지요. 경쾌하고 뚱뚱한 남자 승무원 덕에 타국의 맛을 제대로 본다며 우리는 마주 보고 씩 웃었습니다.
파리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항공편은 시간의 차이가 있었지요. 덕분에 우리는 한나절을 덤으로 얻었습니다. 에펠탑에서 센 강변으로, 명품거리로 유명한 파리 시내에 우리의 발자취를 남겼지요. 이름 있는 곳에서 식사도 했지요. 새로운 음식을 좋아하는 당신은 맛있다고 했지만, 입맛에 너그럽지 못한 나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습니다. 파리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네 하며 새처럼 베네치아로 날아갔습니다.
베네치아의 첫인상은 당연히 압권이었습니다. 눈이 가닿는 곳곳마다 ‘나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다.’라며 외치고 있었지요. 앞과 뒤, 좌우를 빙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물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당도할 즈음 비까지 내려 천지가 온통 물뿐이었지요. 베네치아는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 공화국의 요지였지요. 오늘날에는 운하·예술·건축과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알려진 곳이지요. 베네치아의 많은 운하는 백여 개 섬을 이어주는 수로 역할을 한다지요. 당신이 우리 가족을 튼튼히 지켜온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했고 베네치아인은 베네치아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4m 통나무 말뚝 110만 개를 습지 바닥 개펄에 촘촘히 박아 넣어 나무기둥을 만들었다 했지요. 나무는 잘 부러지고 뒤틀리고 부식되어 내구성이 약하지만, 물속에 박으면 공기와의 접촉이 없게 되어 곰팡이나 벌레가 끼지 않아 썩지 않는다지요. 소금물에 의해 단단히 경화된 나무기둥은 돌처럼 굳어져 강해지는 것이지요. 그 위에 세워진 베네치아는 몽환의 도시가 분명했습니다.
수로 앞 호텔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우산을 쓰고 산마르코 광장으로 나섰지요. 양쪽이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되어 아케이드가 둘러싸인 이곳은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했다지 않습니까. 소문으로 이 광장의 많은 관광객 인파와 비둘기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지금은 강한 비바람으로 사람보다 버려진 우산이 더 많습니다. 광장에 수북이 쌓인 우산이 쓰레기 무덤 같았습니다. 약해진 빗줄기였지만 갑자기 닥친 강풍으로 내가 가진 우산도 홀랑 뒤집혀 누드가 되어버렸지요. 하는 수 없이 나도 우산의 무덤을 크게 만든 장본인이 되어 난감해했지요. 문득 우리나라의 우산 고치는 기술자가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저 우산 무더기들을 고치면 제법 돈이 될 텐데 하고요. 아 참! 여기 손재주 좋은 이들은 한 땀 한 땀 명품을 만드는 곳임에 수지 타산을 혼자 해보았습니다.
마치 길을 잃을 것 같았지요. 도시의 좁은 골목을 채우고 있는 상점 진열품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길의 모양이 산만하게 흐트러지고 빠져나갈 틈이 없을 듯했습니다. 옷가게와 공예품들이 볼거리를 제공해서 길을 잃고 헤매도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명품 골목과 공예품 거리를 누비다 보니 걸음은 신선한 피곤함과 함께 몸을 다독였지요.
호텔에서 일찍 일어나 덧창을 열고 비 그친 운하를 내다보았습니다. 집집이 정박한 배로 출근하는 듯도 하고 과일을 파는 가게 배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그사이 근처 새벽 산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함께 로비로 내려가니 로비에는 물이 차진 않았지만 호텔 문 앞의 길은 물이 찰방찰방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호텔 로비가 물에 잠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네치아의 주요 광장과 건물 일부는 1년 중 60일 이상을 물에 잠긴 채 보내고 있다 했습니다. 구두에 물이 들어올 듯 찰방찰방한 골목을 걸으니 장화를 신은 이가 많았습니다. 도로는 강수량에 따라 달라지기에 가방에 장화를 넣고 외출하는 이가 많다 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뱃길 외에는 두 다리로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엊저녁 도로 한 편에 성인 허리춤 높이의 철재 앵글들이 줄지어 있어 궁금증이 동했는데 답이 풀렸습니다. 전날과 다르게 철재 앵글 아래에는 물이 그득했습니다. 모두 철제 앵글 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강수량에 따라 도로 사정이 달라진다는 말이 딱 맞았습니다. 이 앵글들은 작은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앞으로 오십 년 뒤면 역사책에서나 찾아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베네치아가 바닷물에 잠기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합니다. 매년 4.6밀리씩 수위가 올라간다 하니 향후 백 년간 베네치아를 둘러싼 바다의 수심은 이십삼 센티 가량 높아질 것임에 이 섬이 곧 가라앉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지금도 건물들의 일 층은 빈 곳이 많다 하고 바닷물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한다고 했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한숨처럼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이곳이 물속으로 잠긴다 하니 안타깝습니다.
베네치아도 좋지만 우리는 알프스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이곳 도심에서는 자동차를 모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베네치아가 바닷물에 잠기는 요인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심도로를 타고 구시가까지 들어온 자동차는 시 외곽에 마련되어 있는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알프스로 가는 길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에 대한 낭만과 아름다움에 빠져 곳곳에 내려 경치를 즐기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눈길의 알프스는 몽환의 길이 아니라 걱정이긴 했습니다. 트리 모양의 키 큰 나무와 깊은 골은 우리를 눈 속의 하이디로 만들어 낭만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가 또 두렵게도 하였지요.
내리는 눈이 겁이 나 우린 결국 돌아올 길을 포기하고 민박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민박을 하려면 생필품도 필요했기에 가게와 민박을 찾으며 어두워져 오는 눈길을 조심조심 나아갔습니다. 가게를 찾기 전에 민박이 먼저 구해졌습니다. 다행히 우리의 짐들은 차에 실려져 있어서 생필품 가게를 찾지 못해도 크게 아쉽진 않았습니다. 이곳의 수돗물은 석회가 많아 끓여도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도 아이러니하게 마실 물이 없다 했습니다. 사방이 바닷물인 데다 땅은 진흙이어서 지하수가 나오지 않아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물들은 정수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물인데 말입니다. 하기야 우리의 그 시원한 우물물도 땅이 오염되어서 그냥 먹으면 안 되는 곳이 더 많긴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식음으로 할 수 없는 이곳의 물을 생각하면 우리의 좋은 자원을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외국에 나가봐야 애국자가 된다더니 내가 딱 그랬습니다.
그 밤 알프스의 눈 속에 쌓인 아늑한 밤은 동화 속에 갇힌 듯 환상적이었습니다.
알프스의 가장 큰 적도 지구 온난화입니다. 산 위를 하얗게 덮고 있는 만년설이 점차 줄어들면서 꼭대기가 하얗게 물든 마터호른과 몽블랑을 볼 수 없을 거라 합니다. 고작 사십 년 뒤에 일어날 일이라 하니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7월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무더운 달이었기에 이런 현상이 지속한다면 알프스는 만년설 없는 산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곤돌라 사공이 말했지요. “흔들리는 곤돌라에서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으면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아요.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마음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앞으로 나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흔들리는 세상에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으면 내가 살아가지 못하지요. 흔들리는 세상에 함께 적응해 가다 보면 움직이는 세상으로 앞서 나가게 되지요.
끝은 시작의 다른 말이라 했습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더구나 점점 없어질 저 물이 넘치는 베네치아와 눈 속의 알프스를 건너면서 베네치아가 잠기고 몽블랑의 만년설이 없어진다 해도 우리는 또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합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함께 건너며 가족들의 더운 숨결을 느껴보았듯이 삶의 여로 또한 그렇게 손잡고 한발 한발 나아가려 합니다.
바람 불면 갈대처럼 몸을 누이고, 눈비가 오면 제 속으로 습한 기운을 받아들여 자양분으로 삼아가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애틋함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