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노매드 | 최초 작성일 : 2005 12 19 | 최종 수정일 : 2006 3 31
먼저 아래에 따라오는 몇 가지 질문에 기꺼운 마음으로 대답해보시오. 각 보기와 연결되는 지침에 따라 당신의 다음 스텝이 결정된다.
● 단순하지만 명쾌한 몇 가지 질문
1. 당신은 바쁘고 타이트한 일상에 지쳐가는 현대인인가? ① 그렇다. (2번으로 이동) ② 아니다. (TYPE. A)
2. 복잡한 도심 거리에서 때로 벗어나고픈 충동을 느끼는가? ① 그렇다. (3번으로 이동) ② 아니다. (TYPE. B)
3. 가끔 나무와 하늘, 바람과 새와 대화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가? ① 그렇다. (4번으로 이동) ② 아니다. (TYPE. C)
4. 서울랜드와 서울대공원 중 어디가 더 끌리는가? ① 서울랜드 (TYPE. D) ② 서울대공원 (TYPE. E)
● 당신에게 딱 맞는 다음 스텝
TYPE. A 당신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과 정신적 여유조차 없이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초특급 현대인이거나, 바쁘고 타이트한 일상을 즐기는 ‘명바기형’인간이다. 이거든 저거든, 당신은 선유도 공원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오.
TYPE. B 벗어날 용기가 없는 건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보고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오.
TYPE. C 나무와 하늘, 바람과 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뺀지놓지 마시고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오.
TYPE. D 정말? 이 글 읽은 다음에 다시 한 번 대답해보라.
TYPE. E 동물원만 없다 뿐이지 선유도 공원도 비슷한 삘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오.
밤늦게까지 유흥을 즐기다가 택시비는 물론 찜질방비까지 똑 떨어져 터덜터덜 집까지 걸어가야 할 땐 ‘서울도 꽤 넓은 곳이구나.. 우리나라 넓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서울은 좁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1200만 인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고 하기에 민망할 만큼 좁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처연한 순간, 당신을 위로할만한 곳을 소개한다.
선유도 공원. 사실, 알 만한 사람 다 아는 곳이라는 거 안다. 근데 그 알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 대부분 디카 들고 예쁜 사진 찍으러 어디 갈까 고민한 사람들이다. ‘내 눈에 무엇을 담을까, 내 마음에 무엇을 담을까’하는 생각보다 ‘카메라 렌즈가 무엇을 즐거워할까’를 먼저 생각한 안타까운 사람들. 카메라는 그냥 집에 두고 선유도로 가보자. 마음이 피곤한 요즘이라면 친구도 필요 없다. 그냥 혼자 가서 쉬다 오시게나.
● 선유도 가는 길
지하철로 가는 게 제일 편하다. 2호선과 6호선이 환승되는 합정역 8번 출구로 나온다. 선유도 공원까지는 약 1.5km 거리로 토, 일, 공휴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맞춤버스가 운행된다. 그냥 걸어도 괜찮을 거리다. 걸어도 15분이면 간다. 급하지 않게, 그러나 경쾌하게 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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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자마자 보이는 표지판을 따라 쭉 걸어간다. 당신은 차가 아니니 강변북로로 빠지지 말고 양화대교의 인도로 진입한다. 포은정몽주선생상이 먼저 당신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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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름하시지? 살짝 인사드리고 쭉 가면 선유도 공원이 곧 나타난다는 표지가 다시 등장한다. 양화대교의 중간쯤이다. 아참참, 양화대교 중간까지 가기 전에 간단한 먹을거리는 역 근처에서 사가는 것이 좋겠다. 공원 내에는 매점 겸 식당이 딱 하나 있는데 정확히 ‘유원지 가격’이다. 몇 백 원 차이로 짜증날 것 같으면 미리미리 준비해서 가기를 추천한다. 차량, 인라인, 자전거 등 휠체어 빼고는 바퀴달린 모든 것들 금지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선유도공원 입구에 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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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면 매우 편한데, 굳이 버스를 타겠다는 분들을 위해 안내해드린다. 초록버스 - 7011, 7012, 7013 파랑버스 - 271 ‘합정역앞’이나 ‘선유도공원’에서 내리면 된다.
○ 공원 이용 시간 실외시설 : 06:00 ~ 24:00 실내시설 : 09:00 ~ 18:00
○ 2005년 5월부터 선유도공원은 ‘정원입장제’를 시행하고 있다. (입장객이 몰리는 4월~10월) 과도한 입장객이 동시에 몰리면서 선유도공원내 선유교에 다리흔들림현상이 발생해 취해진 조치다. 동시입장객 1000명, 하루입장객 8700명으로 제한되니 휴식 좀 하겠다고 가더라도 부지런하셔야겠다. 공원입구에 현재누적입장객수가 표시된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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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다리가 짧거나 허리가 긴가?
‘네!!!’라고 대답했다면 아마도 나랑 비슷한 종족일거다. 마음 아프게도, 다리가 짧거나 허리가 긴 사람들은 어디 앉는 것을 참 좋아한다. 당신 맘 내가 안다니까.. 선유도공원에 의자가 참 많아서 다행이다. 다리가 길고 허리가 짧은 사람도 괜히 서있지 말고 의자에 앉아라. 주중 혹은 날이 밝을 땐 사람도 많지 않으니 드러누워도 눈치 주는 사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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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 아예 길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놓은 스케일이 방대한 의자, 맥X모카골드 커피 광고에 나올법한 분위기 넘치는 의자가 일렬로 쫙. 왜 의자를 저렇게 많이 갖다놨을까? 누우라고? 맞다. 누워서 자라고? 맞다. 그리고 또 하나. 돌아다닐 데가 많으니까 의자도 많다는 게 참 그럴싸하다. 만사 귀찮고 조용한 데 찾고 싶어 왔다면 이것저것 다 무시하고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여도 좋지만 가자마자 지친 마음이 회복되고 활력이 넘쳐 몸에서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거나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픈 자들은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자.
● 대세는 재활용
아파트에서도 재활용가능 쓰레기들은 매주 정해진 요일에 분리해 버리고, 쓰고 버린 식용유도 비누로 재생하고, 유통기한 지나 상한 음식물도 어린이집 급식으로 재활용하...앗, 이건 아니다. 어쨌든, 대세는 재활용, 환경친화적인 삶의 양식이 이미 하나의 코드가 됐다. 이 공원도 그렇다. 과거의 정수장 건축구조물을 재활용해 국내 최초로 만든 ‘환경재생생태공원’이다.
원래 선유도는 조선시대부터 ‘한강의 절경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그런데 1925년의 대홍수와 1965년의 선유정수장 건설로 그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렸었다. 그러다 정수시설을 폐기하고 생태공원으로 재조성해 2002년 개방했다. 고건 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 공원이 개방돼 공원 입구 주변에는 고건 씨의 이름으로 기념식수가 심어져있다. 그런데 그 소나무가 별로 멋있게 자라지 않고 있다. 소나무의 상태로 봐서는 고건 씨가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봐야 별 볼 일 없을 것 같다.
고건 씨 지지자들은 괜히 삐지지 말고 선유도에 집중하기 바란다.
이 공원이 ‘환경재생생태공원’인 이유는 단지 이 부지가 과거 정수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공원 시설을 옛 정수장 시설을 이용해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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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럼틀인데 옛 정수시설을 그대로 이용한 미끄럼틀이다. 예전엔 저 커다란 원통 속으로 서울의 수돗물이 콸콸 흘렀는데 이제는 서울 시민이 쭉쭉 미끄러져 내려온다.
미끄럼틀 뿐 아니다. 재활용의 묘는 곳곳에 드러나 있다. 정수장 벽을 이용한 인공폭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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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음산한 정원이 하나 만들어져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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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둥 역시 정수시설의 일부였다. 이름이 ‘녹색 기둥의 정원’인데 지금이 가을이라 녹색이 아닌 것을 양해 바란다.
옛 정수시설을 최대한 이용해 공원을 꾸민 탓에 인공적인 미가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자연이 느껴지는 곳이다. 갖가지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있고 물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새소리도 들리고 심지어 염소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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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큰 개가 돌아다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나 외양을 자세히 관찰한 후 저것들이 염소라는 것을 확신했다. 염소가 살만한 곳이면 사람도 살만한 곳이다. 염소가 저렇게 쉬고 있는 곳이면 사람도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 도시 속의 왕따
도시의 생활은 바쁘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은 도시인의 미덕이 아니다. 치열함과 경쟁이 도시인의 키워드다. 걸음걸이는 빨라진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PDA로 주식거래를 하고 밥 먹으면서 하루의 계획을 짠다. 도시인은 점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존재로 바뀌어간다. 눈빛은 점점 매서워지지만 동시에 공허해진다.
엄마뱃속에서 열 달을 가만히 있던 우리들이다. 인간은 태생부터 쉼이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제발 쉬어라. 수십 층짜리 건물에서, 찻길인지 주차장인지 모를 곳에서 찌들어 버린 당신, 잠깐만 정신을 놓고 쉬러 가자. 멀지도 않은 곳에 있는 공원 얘기하면서 너무 비장하게 말해서 미안하다. 선유도 공원의 느긋한 기운이 나를 너무 진지하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추가-
‘별점매기기’는 참으로 식상하지만 참 알아듣기 쉽다. 선유도공원은 별 네 개다. ★★★★ 만점은 별 다섯 개인데 하나를 뺀 이유를 간략히 알려드리겠다.
○ ‘아리수’를 돌려놓으라.
아리수는 서울의 수돗물 이름이다. 실제로 수돗물을 음료로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아리수는 식용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수질을 자랑한다. 그 아리수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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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물이 안 나온다. ‘서울의 수돗물, 맛있게 드세요.’라고 써놓고는 물이 안 나오면 속상하다.
○ 내 차는 차고 당신 차는 신발인가?
공원 입구부터 ‘차량진입금지’라는 안내가 몇 번이나 등장한다. 공원의 쾌적함 유지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마땅한 처사다. 자가용을 갖고 이곳까지 온 경우 근처의 양화지구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공원에 들어올 수 있는 차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공원시설관리사무소의 직원들이 사용하는 차는 공원 구석구석 ‘출입금지’지역에 주차돼 있었다. 가끔 차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차량진입을 금지한 본래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선 직원들의 차량인 경우에도 양화지구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 식당을 식당답게.
식당이 없는 건 아니다. 한 군데 있다. 그런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불쾌한 냄새가 코를 강타한다. 정말 강타한다. 세련된 인테리어를 요구하진 않지만 깔끔한 위생 상태는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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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사용하지 않는 냉장고가 주인보다 먼저 보이고, 음식물 얼룩도 바닥에 있다. 치킨, 돈까스, 볶음밥, 음료수, 맥주 등의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는 것만큼 쾌적한 식당 분위기에 신경을 써야 21세기에 어울린단 말이에요, 아주머니.
이런 이유로 별이 하나 깎였다.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하나 깎으면 100점에서 80점으로 내려가는 거지만 사실 선유도를 찾은 사람에게 크게 방해될 부분들은 아니다. 걱정들마시라.
아침 여섯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참 오래도 문 열어놓는다. 이게 다 바쁜 당신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