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鑑賞 作品 |
양 말
유 지 매
당신이 신으실 양말이라면
난 흰 털실로 웃으며 짜드리겠소.
혹 신으시다 해어진 날엔
난 붉은 털실로 거침없이 깁어드리죠.
그러나 길고 먼
인생의 나그네 길에
당신의 마음이 해어진다면
난 무얼로써 깁어야 할까요.
감상 ․ 권인기
사랑은 인생의 향기요, 가정의 화목을 다스리는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가진 가정은 가난하지 않고 진실하고 건강한 가정이다.
이 작품은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리고 싶도록 정열이 넘친 마음을 노래했다. 웃음과 진실을 잃지 않은 부끄럼 없는 인생의 사랑을 보다 강한 정열로 감싸고 이끌어 나가도록 표현했다.
이 작품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면 이 세상은 한결 맑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고 느껴본다.
어머니
한 하 운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줄으실 때
날 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선
말이 없는 어머니
감상․김 두 명
이 작품은 아주 쉬운 말로 압축된 군더덕가 없으며, 또한 비우가 전혀 없다. 어머니란 이 시에서 한 하운씨의 처절한 울음 소리가 우리들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고 있다. 어설픈 비유보다 더 깊은 감동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日記抄
장 만 영
네 사진을 앞에 놓고
웃는 네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파랑잎 냄새같은
네 냄새가 풍겨온다.
귀뚜라미 소리가
성가대 합창처럼
그렇게 들려온다.
그리고 날 찾아 네가 올 것만 같다.
그렇게에 당나귀처럼 내가
자주 바깥소리에 귀를 쫑긋
거리는 것이다.
감상․김화삼
가을날 낙엽이 지고 장독가 섬돌 밑에 귀뚜라미가 우는 고요한 긴 가을 밤, 그리운 사람의 사진을 앞에 놓고 드려다 보고 있으면 마음은 어느듯 그리운 이의 체취를 느낄 수 있고, 귀뚜라미 소리는 또한 그 속삭임으로 변하는 것이다.
잠 못 이루는 긴 겨울밤에 이러한 작품을 통해 보고싶은 이의 음성이라도 귀를 기울어 봄이 어떨까.
◇수 필◇
살아있는 도화지
陸 壽 範
(농촌지도소 근무)
딸이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여름 방학이 되어 이웃처럼 가가운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들락거리더니 하루는 거북한 얼굴로 신문 한 장을 들고 와
“집 주소를 어떻게 적어 보낼까요?”
하며 신문 광고란을 내 밀어 보였다.
「주소를 찾습니다.」라는 란에는 딸아이의 이름 석자가 너무도 뚜렷했다. 무슨 영문인지 처음은 당황했지만 한번 더 살펴보니 정말 반가운 광고였다.
소년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이 공동 주최한 어린이 글짓기 공모에 응모한 작품이 동시 분야에「장원」으로 입상되어 주소를 연락하면 상패를 보내겠다는 대견스러운 광고였다.
글을 짓겠다거나 글을 짓도록 종용해 본 일도 없었는데 그렇다고 어린 것이 언제 글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없었는데 느닷없는 광고를 대하고 보니 가슴은 동해 바다의 그 높은 파도가 철렁 와 닿듯 그때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직장을 따라 식구 모두가 울릉도로 이사를 하였지만 도서관을 맞은 편에 둔 사택 생활이 다시 한번 고마웠다.
반가운 손님 기다리듯 며칠이 지난후. 아직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선생님 두 분이 찾아오셨다. 반가운 얼굴로 다급한 인사를 나누었으나 눈은 네모난 봉투 속의 상패를 먼저 볼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을 모셔보지 못한 미안함과 상장 한 장 뚜렷이 남기지 못한 지난 날이 이런 짧은 생각들이 함께 떠 오르며 딸아이의 상패를 들여다 보던 그 때의 부끄러움을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확 달아 오르는 듯하다.
부인도 선생님도 온 가족이 함께 좋아했던 그 날이었다.
반가운 소식들이 늘어갈 때마다 멀기만 하던 울릉도는 이웃에 온듯하고 직장의 근무도 힘이 솟아났다.
칠백리 뱃길을 험한 줄 모르고 드나 들었다.
나날이 변해가는 울릉도의 발전은 누구에게나 고향 일처럼 자랑하고 싶었다. 어업 전진기지로서의 저동 항구 시설이며 일주 도로의 공사 진행이며 합승 버스의 첫 운행, 헬리곱터의 처녀 시험 비행 등 반가운 일들의 연속에 섬주민 모두는 신명이 났다.
나라의 발전의 외딴섬 주민에게까지 이렇게 용기와 힘을 불어주는가 싶었다.
힘차게 울리는 건설의 메아리는 파도 소리보다 더욱 힘찬 듯 하였다.
어려운 일에도 자신을 가지고 보람으로 살아가며 숙명보다는 개척의 정신을 앞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가운 얼굴로 수없이 찾아드는 관광객을 만난수록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지켜보는 듯했다.
더 좋게 다듬어 보려는 땀의 노력도 있었지만, 천혜적인 자연 경관은 어데라도 좋았다.
땅덩어리 모두가 자연의 신비 그대로였다.
관광 명소로서 푸른 바다 가운데 이 만한 곳이 또 어데 있을까.
우리의 조국이 금수강산이라고 하지만 동해에 우뚝 솟은 울릉도는 금수강산의 반짝이는 보석같이 보였다.
그 때 딸아이의 글 제목은 ‘유리창은 살아있는 도화지’였다. 교실 유리창으로 공이 솟아오른 운동장 밖을 작은 눈으로 한 폭 도화지에 담은 내용이었다.
울릉도를 떠나온 지 몇 해가 되었지만. 그 대 어린 딸은 왜 유리창을 니다왔을까 하는 생각이 차장을 내다보는 지금 또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동해안 고속도로 주변은 마치 정원을 지나가는 듯 주면 모두가 아름답다. 한 눈으로 펼쳐 보이는 시원한 차장,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도화지」입에 틀림이 없다.
동해의 푸른 바다 출렁이는 파도를 담고 굽이를 돌아가면 나지막한 산들이 또 자리를 한다. 아름다운 이웃들이 찾아오기도 하며 군맛이 당기는 횟집이 들어서기도 한다. 틈틈이 결실을 향해 진한 초록을 자랑하는 들판이 비치고 길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철모르게 피어 번겨주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차창의 화폭은 싫증나지 않는다.
소달구지 덜거덕거리던 먼지 투성이의 도로가 지금 이렇게 훤하게 튀어 포장가지되어 반겨주고 있으니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언이 새삼스럽다.
바람이 지나가며 나뭇잎을 태극기 흔들어 환호하듯한 모습으로 바꾸어 준다. 살아 있는 도화지 위는 생생한 기억들까지 함께 흘러 들어온다. 이젠 차창 위에 오선을 그려 봐야지. 마음을 담아 차창에 그려 놓은 오선 위에는 한 줄씩 산봉오리가 높고 낮은 음표가 노래를 담아 흥을 높여준다. 고향 벗들의 얼굴들이 골짜기 마다 떠 오르고 함께 불러보던 노래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고향 향기가 담뿍한 옛정을 잊고 떠난 사람들이 자꾸만 아이들 마음처럼 기다려진다. 엉뚱한 생각이 바람일 듯 하였지만 벌써 차창가엔 낯익은 마을이 들어온다. 내 고향 오십천의 냇물 소리가 더 큰 소리로 들려 온다. 고통을 이겨낸 수고의 댓가가 땀을 달래며 추억으로 이어지고 아쉬운 귀향길엔 바쁜 내일이 보인다. 땀흘린 모두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려야지.
틈이 있으면 딸아이와 함께 새로운 눈으로 더 고마운 마음으로 겨레의 젖줄을 따라 시원한 차창을 내다보며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도화지 위에 다시 한번 담아 봐야지. 내 고향의 새로움도 그려 봐야지.
8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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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 트
반 지
趙 龍 澤
날은 한껏 찌푸러져 갤 줄을 모르고 지루한 장마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내일이면 방학이 시작되니 교무실은 잡무 처리로 온통 수라장이다. 일직이니 연수니 하는 것들이 방학 때 마다 놀고 월급 받는 것이 질투나 나듯 필요한 날짜마다 용하게도 찾아온다. 서울 친구로부터 자기 예쁜 딸 구경도 할겸 한 번 다녀 가라는 편질 받고 방학 중에 짬을 얻어 서울 나들이를 하려고 맘 먹은데 배당된 출근 날짜가 엉망이다. 그러나 막상 이리저리 바꾸고 시간을 얻어 떠나려고 하니 내키지 않는다. 노처녀인 내가 시집가 오봇이 사는 친구 모습 보는 것도 그렇게 신나는 일도 아니고, 옆에 동행해 주는 남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혹시 아나, 오고가다가 멀쑥한 남자 하나 만날는지, 그리고 그게 인연되어 너도 빨리 시집 갈는지 누가 아나.” 하는 친구 편짓글이 나를 유혹한다. 하여튼 맘은 뒤죽박죽이다.
용기를 내어 떠나는 날은 그래도 날이 개었다. 포항행 버스를 타고 영덕을 떠난 지 한 시간 남짓 되어 포항 고속 버스 터미널에 닿았다. 차표를 구하러 매표구 입구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정면으로 어떤 남자와 부딪혔다. 부끄럽기도 하고 께적지근한 맛 때문에 묵례로 사과만 하고 그대로 들어섰다. 서울행 12시 50분 발 차표가 맨 뒷좌석 하나 남아 있었다. 서울 친구에게 7시경 도착하겠다고 약속했길래 뒷좌석도 감지덕지다. 발차 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대합실 창가 의자에 앉았다. 남자들은 이런 시간에 답배가 피운다고 하는데 난 뭘 하고 보내지. 아무렇게나 챙겨 넣은 책을 꺼냈다. 여행할 때마다 소설책을 꼭준비했던 버릇은 읽기 위함보다는 자기 방어용으로 주로 이용했다. 옆자리 남자가 맘에도 없는 말로 칭얼될 때 책을 열심히 읽는 척하여 외면했다. 책 갈피를 퍼 몇 줄 읽지도 못하고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아까 매표구에서 마주친 키가 크고 살 색이 허연 얼핏 본 남자 얼굴이 떠올랐다. 싫지 않은 얼굴이다. 운이 좋아 그 남자와 같은 자리가 되어 서울까지 갔으면……. 장가는 들지 않았을 것 같고……. 온갖 잡다한 생각이 머릴르 스쳐 지나간다. 갑자기 대합실이 바빠졌다. 출발을 기다리던 승객들이 승차 하기 시작했다. 맨 앞 자리라 서둘 것도 없이 천천히 탔다. 대합실이 텅 비어 갈 무협 발차 시간 3분을 남기고 차례 올라 자리를 찾아갔다. 어른들이 대다수 타서 그런지 차 안은 조용했다. 입구에 올라서는 순간 모두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뿍쩍될 때 같이 탈걸 괜히 늦게 타서 노처녀 얼굴만 붉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뒷좌석까지 왔다. 왼쪽 끝 자리 45번 여기가 5시간 동안 내 몸뚱이를 맡끼고 영혼의 나들이를 시켜야할 곳. 44번 좌석 손님이 다리를 한 쪽으로 모아줘야 앉기가 쉽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저 자리입니다” 하니 손님은 다리를 모아줬다. 무심코 눈이 마주친 손님은 바로 매표소 앞에서 부딪친 그 남자가 아닌가? 세상에 이런 기적도 있구나.
버스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효자 검문소에 잠시 멈췄다가 허둥지둥 무엇을 쫓기는 사람같이 바삐 떠났다. 다른 여행 때처럼 책을 꺼내지는 않았다. 온 몸에 좀이 쑤시듯 좌불안석이다. 경주가 가까워지고 있다.
어느 책에 보면 이 시간쯤 되어 남자가 먼저 어디까지 가십니까? 하고 물어왔는데, 이 남자는 어이 된 셈인지 돌부처다. 책을 꺼내 읽는 척 했다. 버스는 경주를 지나 멀리 경산이 보이는 곳을 지나고 있다. 몇 줄 읽지도 못하고 머리만 아프다. 맞다! 내가 책을 보고 있으니 처녀 앞에 예의를 차릴 줄 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이 남자에게 말 건낼 시간을 주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집어 넣었다. 그리곤 차창 밖에 펼펴진 싱그러운 여름이 길다랗게 누워 있는 곳으로 시선을 보내면서 생각했다. 이 남자가 말을 건네오면 뭐라고 꼬투리를 잡아 오래오래 얘기할까를. 시시껄껄한 일상적인 물음부터 시작되겠지. “어디 샤느냐 왜 서울 가느냐? 뭘 하고 있느냐?” 등등, 혼자 기와집을 많이도 지었다. 부셨다 하느라고 시간이 꽤 지났나 보다. 차는 대구를 지나 왜관 옆을 지나고 있다. 이 남자 혹시 벙어리가 아닌가? 아직도 돌부처다. 졸장부같이 여자 말을 조금도 헤아릴 줄 모르는 멍청이 자식. 이렇게 얌전한 척 하는 남자라면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고 했는데 별볼일 없는 자식이군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차는 어느 듯 숨가쁘게 달리는 듯 하더니 추풍령 휴게소에 내리면 뭔가 간식을 사 먹어야 도리를 다한다는 생각인지 화장실에 갔다온 손님들이 점포 앞에 줄을 섰다. 나는 그냥 차에 올랐다. 좌석 앞에 왔을 때 남자는 의자 위에 두었던 내소지품을 얼른 들고 다리를 모아 앉기 쉽게 도와 준다. 뜻밖에 호의를 받고 엉겹결에 ‘고맙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멍청이 돌부처는 아닌가 보다. 아까 내 생각은 잘못 된 거야. 어떤 사업을 구상하느라고 정신 없이 지나왔거나 아니면 차창의 새로운 풍물에 젖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관상은 조금 볼줄 안단 말이야. 관상을 너무 잘 봐 자금까지 시집 가지 못하고 시골 학교 교사로 콧대만 높아져 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자위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라고 이제 얘기를 걸어 올께다. 내 얼굴이 그렇게 못 생긴 것도 아니고 몇 번 맞선을 봤지만 그 때마다 딱지는 내가 놓지 않았던가? 얌전한 처녀태와 교양 있는 여성은 이런 모습이다 하는 식으로 앉아 아무리 기다려 봐도 허사다. 차는 영동을 지나 대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이 양반 봐라. 자고 있지 않는가, 정말 엉터리 같은 친구군. 기대는 접어 넣는 게 낫겠다. 괜히 혼자 허둥거리던 모습이 가관스럽다. 애라, 모르겠다. 나도 잠이나 자자. 막 눈을 감는 순간이 머저리 같은 친구가
“여기가 어딥니까?”
하지 않는가? 나도 모르게 눈을 뜨고
“대전을 지났습니다.”
했다.
“아 ! 내가 깜박 졸었구나”
하면서 태연스럽게
“아가씨는 서울가십니까?”
한다. 그럼 이 차가 서울행이지 신의주까지 가는 차란 말인가? 어처구니 없지만
“예”
했다. 어차피 내가 기대하고 갈망했던 봐가 아닌가. 이 번엔 내가 물었다.
“근무처가 포항에 있는 모양이지요?”
“예, 대학 졸업하고 군에 갔다가 포철에 취직한 지 몇 달 되었습니다.
아, 그럼 나이가 28세나29세쯤 되겠구나, 나와 동갑, 동갑이면 어떤가? 딱지 놓았는 앞에 친구들 보담 훨씬 낫지 않는가? 막상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하니 기술이 없어 막막하다.
“서울 사십니까?”
“아닙니다. 여고에 근무하는데, 서울 친구집에 놀러 가는 길입니다.”
묻지도 않는 말에 신분까지 밝혔다. 여고 교사라 하면 낫게 봐 줄런지아나. 밑바닥 알량한 양심이 발동했다. 천안 휴게소에 차가 멈췄다. 이남자 오줌도 안 마렵나? 일어설 생각을 않는가. 가벼운 여자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난 일어났다. 화장실 볼일도 없고 해서 똑바로 가서 커피 두잔을 뽑았다. 혹시 이게 인연이 되어…… 자리 앞에 왔을 때 정중히 자리를 비켜 줬다.
“커피 한 잔 하세요.”
하고 건냈다. 왼 손으로 싱긋 웃으면서 받는다. 그런데 손가락에 흰 물체가 유난히도 눈에 들어온다. 허연 금속의 하얀 물체, 결혼한 남자 들이 아내의 예속을 받고 있다는 증거로 끼고 있는 결혼 반지다. 다리에 힘이 쑥 빠진다. 물거품 삭아지듯 모두가 허사다.
“결혼하신 지 오래 되세요”
“아니요 2개월 전에 결혼했습니다.”
속은 것이 분하여
“행복하세요”
하고 물어보고 싶지만 내가 미친년이 될까봐 참았다.
‘서울 친구집 지리는 잘 아십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제 차가 버스 터미널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목적지까지 바래다 드리지요“
어렴풋이 생각나는 지리지만 택시 타고 가는 것보다 여러 모로 편리할 것 같다. ―내게 화향끼가 조금만 있었다면 그래 주세요하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를 내가 뭘 믿고 탄다는 말인가. 눈 빼먹는 서울이라는데.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더 이상 속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노처녀 자존심이 발동했다. 차는 천천히 강남 터미널에 머리를 들어 밀었다. 웬 놈의 인간들이 이렇게 많노. 어둠살이 끼기 시작하는 거리엔 온통 시멘트 덩어리와 인간 범벅이다.
“안녕히 가십시오.”
인사를 한다.
“아 ! 예, 잘 가십시오.”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섯 시간 인연의 끝이다. 별 볼일 없는 남자, 뭐가 그렇게 급해 그렇게 빨리 장가 갔나하고 중얼거리며 택시를 탔다. 명멸하는 자동차 불빛 속으로 천 선 봤던 남자의 얼굴이 스친다.
□□□□
소년소설
노을 속에 핀 미소
이 장 희
성호와 동수는 여느 때처럼 학교 가는 길에 인식이를 기다렸다.
“동수야, 오늘은 왜 이렇게 늦을까? 인식이 말야.”
성호가 동수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여느 때 같으면 우리들보다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던 아인데.”
궁금한 듯 동수도 한 마디 했다. 그때 저 쪽 문방구 모퉁이에서 인식이가 이 쪽으로 뛰어왔다.
“야! 너희들 너무나 많이 기다렸지, 오늘 아침, 아버지 심부름을 하고 오느라 좀 늦었어. 정말 미안해.”
인식이는 동수와 성호를 번갈아 보면서 늦게 온 걸 변명했다.
성호, 동수, 인식이는 한 마을에 살며, 같은 반에서 공부도 잘 하는 아주 친한 단짝들이다.
세 아이는 발걸음도 가볍게 교문을 들어섰다. 운동장에는 몇몇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고, 여자 아이들 몇이 꽃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제각기 자기 자리로 가서 조용히 아침 자습을 하였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지만 세 아이는 성격이 모두 달랐다.
성호는 성격이 차분하고 착한 편이며, 인식은 반대로 매우 활달하고 명랑한 편이었다. 또한 동수는 남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잘 돌봐 주는 희생 정신이 강한 아이였다.
성격은 제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한 번도 다투는 일 없이 서로를 이해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마음씨이다. 그래서 눌 학급에서 모범생이고 선생님으로부터 귀여움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가정 형편이 가장 좋은 아이는 동수다. 동수 아버지는 공무원이며, 논밭도 많아 살기가 넉넉한 편이다. 성호와 인식은 집은 가난했다.
셋은 1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쭉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해 왔다.
오늘은 특활 시간이 들어 있는 수요일, 셋은 점심을 끝내고 한 자리에 모여 않아 시작 종을 칠 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땡땡땡.
오후 첫시간 시작 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오늘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신 박 선생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바라보시면서
“모두들 눈을 감으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모두 눈을 감았다. 선생님은 칠판에 무슨 글씨를 쓰기 시작하엿다. 잠시 후 글씨를 다 쓰신 선생님은
“자, 여러분, 이제 눈을 뜨세요. 그리고 칠판을 보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칠판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파랑색 분필로 ‘앞날의 꿈’이라고 큰 글씨로 써 놓으셨다.
“에, 이번 특활 시간에는 작문을 하겠어요. 이제는 너희들이 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공부하고 이 학교를 물러가게 될 날이 멀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여러분들이 커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장래의 희망을 글로 써 보면서 자기 나름의 꿈을 생각하는 시간이여요. 그러니까 그저 막연하게 ‘나는 대통령이 되겠다. 장관이 되겠다. 사장이 되겠다’하고 쓰지 말고 자기의 능력과 취미, 소질에 맞는 직업을 골라서 자세히 적도록 해요. 알겠어요?”
선생님의 자세한 말씀이 끝나자, 얼마 동안 빈 교실처럼 조용했다. 45명의 반 아이들은 저마다 장래 자기가 해 나가야 할 일들을 머리 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성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아,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6년 전 1학년에 입학하던 꿈같은 일들이 되살아났다.
낮선 선생님, 낯선 친구들과 앞 가슴에 콧수건과 이름을 달고 두 팔을 힘껏 뻗으며 줄을 서던 모습을 그려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인식이도 마찬가지였다.
‘아, 나는 커서 과연 어떤 일을 하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봄이 오면 새 소리 물 소리를 들으면서, 정다운 친구들과 손에 손을 잡고 초록빛 고운 잔디 위에 둘어 앉아 온갖 꽃 향기 속에 싸여 손뼉 치며 즐기던 봄 소풍. 가을이면 땀흘려 닦은 힘으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발을 구르며 두 주먹을 휘두르며 목이 터져라고 응원하던 가을 운동회! 외치고 또 외치고 기뼈 날뛰던 그 외침이 지금도 귓가에 메아리쳐 울리는 듯한 그날의 일들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인식이는 종이를 들고 한참 생각하다가 빙긋이 웃었다.
늘 텔레비전과 친하게 지내는 동수는 텔레비전에 비친 여러 가지 장면을 떠올렸다.
대통령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높은 어른이지만, 대통령보다는 용감하게 싸우는 군인이 더 멋있게 느껴졌다. 어깨에 별을 네 개 단 대장이 얼마나 멋이 있을까! 동수는 육군 대장이 되고 싶었다.
깊은 밤, 명화 프로그램에 전쟁 영화가 방영되면 가장 신이 났다. 넑은 들판, 험한 산악에서 적을 맞아 용감히 싸우는 군인들의 모습과, 작전을 세우고 지휘하는 사령관의 모습이 무척 훌륭해 보였다.
동수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훗날 자기가 대장이 되어 많은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선생님께서
“자기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결정하느 데는 먼저 장래에 가져야 할 직업에 대한 팰요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냐, 그 직업에 대해 기능과 흥미가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난 다음 자기의 소질과 가정 형편등을 고려해야 한다.” 고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아이들은 여기 저기서 지우개로 지우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 희망을 마음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썼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난 성호와 인식이, 동수는 생각에 골똘히 잠겼다. 선생님 말씀처럼 장래 학교에 가거나 일자리를 얻을 때, 우선 수입이 많다고 하는 학교나 일자리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의 소질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골라 거레와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꿈을 다시 되살려 보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고객를 들고 교실을 빙 둘러보기도 했다.
종이 위에서 사각사각 연필 움직이는 소리에 따라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링컨대통령, 시바이쩌 박사, 맥아더 원수를 비롯해 과학자, 미술가. 음악가 등 온갖 인물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칠판을 바라보고 다시 교실 천장을 쳐다보던 성호, 인식이, 동수가 연필을 꼭 쥐었다.
어렸을 때, 아이들은 꿈이 참으로 많았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장관, 국회의원, 권투 선수. 영화배우, 회사사장등 좋다는 직업은 모두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부터는 꿈이 바뀌었다. 시간이 끝나자 선생님께서 원고지를 거두셨다.
“자, 빨리 내요.”
몇몇 아이들은 아직도 쓰고 있었다. 원고지를 다 거둔 다음 선생님께서
“오늘 이 시간, 너희들이 쓴 글은 다음 특활시간에 각자 나와서 한 사람씩 자기의 글을 읽도록 하겠다.”
라고 하시며 가정 학습과 청소에 대한 주의를 주신 다음 교실을 나가셨다. 아이들은 와,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짝끼리 또는 친한 아이들끼리 어떻게 썼느냐면서 서로 물었다.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달랐다. 밝은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며, 시무룩하니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가 파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호, 인식, 동수는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셋은 걸어가면서 오늘 특활시간에 쓴 ‘앞날의 꿈’ 이야기를 한 사람씩 하면서 걷기로 했다. 성급한 동수가 성호를 보고
“성호야, 너부터 쓴 것을 얘기해 봐.”
하고 독촉했다.
성호는 대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성호는 큰 꿈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리 말해 봐, 어서.”
인식이가 삿대질을 했다.
“나는 너희들이 쓴 얘기부터 듣고 난 다음 마지막에 할테니 너희들 먼저 말해봐.”
“아니, 누가 먼저 해도 상관 없잖아, 어서 말해 봐.”
동수와 인식이는 성호를 향해 재촉했다. 성호는 너무 희망이 작아서 부끄러웠으며 먼저 말하기가 싫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개울을 건너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셋은 잠시 쉬기로 했다. 다시 오늘 쓴 ‘앞날의 꿈’ 얘기를 끄집어냈으나 아무도 먼저 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부터 얘기를 하기로 하자.”
인식의 말에 동수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성호도 하는 수 없이 그러자고 했다.
‘가위, 바위,보.“
모두 바위를 냈다. 다시 시작했다.
“가위, 바위, 보.”
이번에는 모두 보를 냈다.
“가위, 바위, 보
이번에는 셋 모두가 가위를 냈다. 번갈아 한 번씩 가위, 바위. 보를 불렀으나 세 번까지 모두 같은 것을 냈다.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했다. 네 번째는 인식이와 동수가 바위를 내고 성호가 가위를 내 성호가 졌다.
“그것 와, 어차피 네가 번저 하는 게 순서가 아니니?”
“그럼 하늘이 다 정해 주는 거야.”
인식이가 맞장구를 쳤다.
성호는 하는 수 없이 먼저 얘기를 하기로 했다.
“사실 너희들이 잘 알고 있듯이 내가 텔레비전 권투 중계에 미쳐 있었잔항, 훅이니. 잽이니, 어퍼커트니, 다운이니 하고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될 때마다 나는 언젠가 권투 선수로서 챔피언이 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처음에는 권투 선수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썼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권투선수 생활은 도저히 못할 것 같았어, 왜냐하면 밤낮으로 얻어 터지는 연습을 해야 하니까 말아.
그렇게 되면 젊어서는 모르지만 나중에 골병이 들어오래 살지 못할 것같은 생각이 들었지. 더구나 우리집에는 형도, 동생도 없고 오직 나 혼자밖에 없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실망하시겠니? 그래서 그 꿈을 바꾸고 말았어.
그 꿈이란 다름이 아니고, 내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처럼 청소부가 되어 청소차를 운전하는 운전 기사가 되기로 했지, 또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우리 나라를 만들어 세계에 자랑 하겠다고썼던 거야.“
성호의 이야기가 끝나자. 동수와 인식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보았다.
“성호야, 너는 참 훌륭한 꿈을 썼구나, 나는 지금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청소부를 하고 계신 네 아버지가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러한 청소부가 없는 거리는 얼마나 지저분하겠니? 우리가 단잠에 빠져 있을 때 청소부 아저씨들은 매일같이 새벽 일찍 거리로 나와 동네 구석 구석을 말끔히 청소를 하지잖니?”
도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성호의 이야기를 흐뭇하게 생각했다. 인식이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음은 인식이 차례다. 성호처럼 처음에는 엉뚜한 욕심을 내어 썼다가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썼었다.
“나는 처음에 유명한 시인이 되겠다고 썼었지. 그렇게 썼다가 생각을 달리했어. 왜 개 있잖아. 1분단 맨 앞에 앉은 글짓기 잘하는 길남이 말이야. 지난 번 전국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혀 문교부 장관 상장과 누런 금메달을 받아 왔어요. 이 어린이는 우리 학교가 개교된 후 장관상은 처음 받아온 재주꾼입니다. 여러분, 박수로 축하애 줍시다.‘ 하고 소개하셨어. 학교 운동장이 떠나갈 듯이 박수 소리가 요란했잖아.
나는 그 때 길남이가 탄 금메달과 교장 선생님 길남이와 악수하는 장면이 너무나 부러웠던 거야.
그래서 나는 처음에 훌륭한 시인이나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쓴 거야. 그렇게 마음 먹었다가 성호처럼 다시 곰곰히 생각한 끝에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이어받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나도 아버지가 못 다 이룬 큰 농장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싶다고 쓴 거야.“
상호와 동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동수 차례가 되었다.
“나도 처름에는 아주 큰 포부를 썼지, 국회의원이 꿈이라고 썼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국회의원의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소질과 능력, 취미, 가정형편을 생각한 끝에 훌륭한 농민 후계자가 되어 앞서가는 농촌 개발에 보탬이 되기로 마음을 바뀌 먹었어.”
동수의 말이 끝나자 열심히 듣고 있던 성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장래 희망을 결정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처해 있는 형편이라든가 특히, 소질과 능력을 잘 생각해서 꿈을 계획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다 이룰 수가 있을 거야.”
“그래, 성호 이야기가 맞아.”
인식이 역시 맞장구를 쳤다.
세 아이의 생각은 거의 비슷한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농촌을 사랑하고 훌륭한 농민, 깨끗한 농촌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 또한 참으로 든든했다.
세아이는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꿈을 바꾸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 보자며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들의 미소는 붉게 물든 저녁 하늘에 은은히 타 오르고 있었다.
讀者 作品
望 鄕․外 1首
朴 宗 洛
만고에 솟아있는 고래 山 그리워라
고가의 우리집을 너만 보고 말 것이냐
이국의 독숙공방에 눈 감으니 보이네.
人 生
냇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돌아가고
인생은 여인후의 한붐 흙이 되는구나
다 두고 몸만 가나니 인생인가 하노라.
五十川의 꽃잔치
千 鐘 萬
盈德을 마냥 묻고
사뭇 버는 도저한 벌
푸른 살 힘찬 어깨는
곤한 잠을 받쳐 업고
불당겨 놓고 마파람은
3박자로 으스댄다.
움추린 앙금들은
몰바람에 고개들고
만 이란 푸른 뜻이
팔짱 풀로 환호하는
실바람 따뜻한 손길
피가 서는 안마에
연어 들 둥지 찾아
맴돌아 九天을 안고
靜友亭 처마 밑에
세월 접는 은어 깨워
몽매도 그리던 회포를
가슴으로 나누는 날
유년이 바지 벗고
숭어사는 들녘은
봄볕에 씻긴 바다
분홍 물결 일렁여서
강속은 꽃장판 깔고
산을 베고 눕는 구름
진동하는 꽃향기에
거나한 들판이여
핏대 세운 돌개바람
시름 녹는 삭신들
그 불꽃 어제와 오늘이
엉기어 타는 잔치
하늘과 땅마저
살 맞대고 두근대는
수렁같은 이 신명에
허위대는 한 고비를
이 정검 놓치기 싫어
여울저리 목메느니.
오십천에 나가․外 3篇
이 옥 경
새벽 오십천에 나가
불면을 종이배에 띄우고
홀로 웅크리며 오십천을 보는 깊이
어느 산협에서부터 모인
푸른 이름의 물방울이
유유히 失笑하며
담즙의 바다로
순례의 길 떠나는
강의 속마음을 나도 몰라
역사의 부성한 소리 들으며
부딪히며 아우성대는 세월에 물들어도
가장 침착하게
화해의 바다로만 나서는
하강의 질서
동트는 곳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어머님의 음성처럼
성가신 아픔도 고요로운 몸짓으로
간지럽히 깨우고
소슬히 떠나는 강의 속마음을 보느니
새벽 오십천에 나가 앉아.
東海에서
죽은 떡갈나무 속으로 스미던 비가
가을의 깊은 개울을 건너서
오늘은 東海까지 닿아 파도를 일어선다.
파도 속으로 안기는 정직한 아름다움,
이제 바다는 꿈이다.
혹은 고통이다.
해원의 푸른 언덕 위에 겹겹이 꿈을 적시던
半祼의 어린 군상들 보이지 않고
멀리 北區로 떠난 새의
날개 쭉지 하나.
다시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幻影을 본다.
비 내리는 날은
산 아래 마을에 살던 바다가
마을을 바다의 한 조각 풍경으로 몰아붙이고,
물을 향한 匍匐으로
날이 선 칼날을 거느리고 돌아오는
파도는
수 천의 음계를 딛고
한 소절 음악으로 풀어져 귀를 적신다.
지상의 한 모퉁이에서
내가 바다의 內密을 더듬는 시간은
너무 촘촘하고 자애로와서
사위는 꽃잎들이 세월에 떠밀리는 듯 하다.
이제 내 눈을 떠나는 수평선,
수평선으로 기어오르는 어둠 속에서
바다는 빈들처럼 누워
파도를 일구고
서치․라이트의 불빛에 들며
어둠 저쪽 푸들푸들 떨고 있는 물새들의
섬섬한 눈빛 속에 바다는
그의 가장 비밀한 꿈의 燈을 켠다.
江이여, 침묵으로 흘러도
저기 강이 널려 있네.
잃을 것 없어 자유롭던 흐름에서
기가긴 신음으로도 울다가
슬픔도 외치지 않고
이제 조금
서럽던 이마 내보이며
저기 새로이 널려 있네.
맨살의 우리들 너그럽게 안아주던
보이지 않은 손을 감추고
江이 별을 향해 울음 울던 날
얼싸안던 꽃구름도 떠나고
성성하던 전설 끝에 남아 있던
낡은 呪文만이
참답지 않은
새들의 죽음을 부르며
한 時代의 江은 무너지고 있었다.
江이 되고 싶어
천년을 참아
세월의 두꺼운 틈을 열고
빼어난 강이 저기 널려
얼룩져 너그럽지 못한 것들 도망가고
끝내 돌아온 미지의 새들
강이여, 침묵으로 흘러도
마침내 바다에 이르고 있네.
桃花記
복사꽃이 환히 내다뵈는 창밖에
그리움처럼 봄이 와 설랜다.
겨울동안 눈멀었던 가지에
귀가 열리고
침묵하는 것들과 다시 인연을 맺는다.
창문엔 절로 분홍색 커텐이 쳐지고
나는 종갈새처럼
꽃바람에 목젖 적시며
보리밭에 꿈을 꾼다.
木炭으로만 꽃을 그리던 동생도
하루종일 꽃 속에 섞여
그들의 표정을 읽고는
꽃이 되고 싶어했다.
바람 한줄기 지날 때마다
이랑도 없이 넘실대는 꽃물결이
아스라이 분홍바다로 일어서고
선혈처럼 불게 퍼진 잎맥은
끝간데 모를 情恨으로 흘러
내 가슴 한 줄기 불꽃으로 남았다.
초록 이파리들의 춤이 어지럽던 날,
뜨겁던 꽃잎 하나
외진 내 마음 한 구석 홀로 떠돌다
끝내 자릴 비우고
마른땅 더듬으며 쓸쓸하게 사라짐이
그토록 눈물겨울 줄이야.
고 향
이 영 희
구월의 바람은
가슴 속에 애틋한
사랑 하나를 몰고
서산 넘어가는
저녁 노을을 흔들며
아직도 잊지못할
내 유년을 깨운다.
그곳은
더러더러
돌담 밑에 피어있는
하늘 향한 꽃과
이름모를 산대들이
진실을 얘기하는 곳
보리밭 파도치는
삶의 터전 위에
누에고치처럼 살아온
내 어머니가 기침하며 돌아눕던 곳
곱게 여문 씨앗이 되거라 딸아 !
가장 잘 익은 보리처럼
그렇게 살거라던 젖은 어머님 음성.
세상은 늘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새벽 안개를 걷고
때론
광물질의 향기를 내뿜어도
아름다운 곳이 아니더냐?
모세가 걸어간
바다속을
오늘도 걸어가고 있다.
지금 하십시오
손 병 순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가슴이 설레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正初의 바람에게
정 라 곤
지난 밤 내내
바람에게 시달리며
바람을 미워했다.
한번 토라지면 거칠게 분풀이 하는
비위를 맞출 수 없어
또, 어떻게 하면 그의 맘을 달래는 건지.
바람의 속성을 몰라서
그저 바보처럼 징징 울기만 했다.
바람은
천(千)의 얼굴과
만(萬)의 몸짓거리 자랑스레 흔들며
우리들의 속살 가장 연한 곳에
푸르게 멍덩이 만들어 놓고
저만치 달아나 망을 보고 있다가
다시 뒷설음 치며 우리 가까이 다가와
껄걸 웃으며
온갖 유희(遊戱)다운 毒舌을 퍼부어 댔다.
아침이 되어서도
지난 밤의 일들이사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고
아무리 떠올려도 기어나지 않을
다만 하나의 꿈이었으면, 하고
그러길래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렇듯 바람을 두려워하기는
정말이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바람은, 늘
누구에게나 공정했고
어둠을 두루 비춰주는 밝음도 간직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한치 思惟의 키를 높혀
바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면
그리하여 바람에게 슬며시 다가가
부드럽게 입맞춤이라고 하여 준다면
아, 아, 그때는 바람도
지난 날 욕된 세월의 껍질을 벗어
바람결에 훌훌 날려보내고
빛과 희망의 실로 촘촘히
웃음의 옷을 짜고
햇살의 가장 고른 부분을 골라
행복의 수(繡)를 놓아서
끝내는 天國보다 더 좋은 세상을 우리에게 주리라.
그러면서 더욱 신바람이 나서 여기 저길 돌아다니며
病을 앓거나 외로운 者
가까이 혹은 멀리에
모든 이웃들의 바람(望)을 듣고는
건강과 만남을 준비하면서
또, 가난해도 열심히 사는 삶의 지혜와
풀어도 풀어도 다함이 없는 사랑의 타래까지
우리에게 가져다 주리라.
정말이지, 꼭두 正初부터
바람은.
■■■■
단편소설
어떤 流配
李 野 園
버스는 먼지 묻은 풀꽃 사이 외길로 접어들어 바다와 인접한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다.
비릿한 갯 내음이 서서히 풍겨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산과 바다를 양옆에 두고 갈 수 있어 설레기까지 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바로 눈앞이 동해인 것이다. 바다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멀미할 뻔했다.
비포장 도로의 먼지와 성냥갑 같은 버스 속의 더러운 공기와 비린내가 뒤범벅이 된 버스 속에서 시달린 나머지 비록 시원한 바람을 마실 수 없다 하더라도 바다만 보아도 바람 이상의 신선함이 느껴졌다.
하루 3회 운행되는 이 완행버스는 늘 복잡했다. 주로 통학생과 읍내까지 생선을 팔러 다니는 사람, 야간에 방위병들이 교대근무를 하기 위해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길다랗게 해촌(海村)을 이루는 부락을 운행하는 이 버스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시간도 일정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십여년 전 처음 이곳에 완행버스가 다녔을 때 차비가 무섭다고 읍내로 가는 지름길인 산을 타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통량이 적은데다 거의 이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늘 만원이었다.
이 복잡한 버스에 시달리면서도 지루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손님들의 무표정한 얼굴이나 혹은 말 많은 여자들의 억센 사투리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의 가난이 몰고올 혹심한 추위까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나는 꼭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이 버스를 타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꼭 들어야만 한다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이 버스를 탈 때 만은 나는 그들의 어려움을 깡그리 무상으로 받아주고 싶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나는 가끔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소공원 산중턱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이떤땐 이 도시는 새로운 느낌마저 한눈에 들어와 자신이 낮선 곳에서 이웃해 있는 다른 도시를 바라보는 듯 했다. 진부한 기교와 매연이 안개처럼 둘러쳐져 도시는 더러워지고 있었다. 산을 내려올때면 나는 그 도시에 섞여있는 답답함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도시를 누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들이 이제는 산중턱에 있는 소나무들도 누우렇게 묵어가고 새들도 그들의 둥지를 틀지 않았고, 나는 불청객처럼 허허롭게 서 있었다.
이상한 열패감은 나를 바도로 종용케 했다. 천진스런 바닷 바람은 나의 만용을 간지럽히며 어떤 방법적 법칙으로 내 가슴으로부터 받아 들여졌다. 흡사 생장 호르몬처럼 나의 온 몸을 돌며 스트레스의 진상을 밝혀내기도 했다.
바다는 또 내 유년기의 수채화 같은 몇 토막 삽화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새벽의 여명에 덕지뎍지 붙은 어둠의 떨어질 때 쯤 거룻배의 출범을 서두르시던 할아버지와 거룻배의 엄숙한 실루엣호수같은 봄 바다와 해당화의 선혈, 한복을 점잖게 빼입고 거드럼을 피우던 박수무당의 눈초리, 물안개, 보랏빛포말, 복사꽃 가지를 머리에 꽂고 돌아다니던 일비 큰 미친 여자, 그리고 그 작은 마을의 최후 운명같은 것을 느끼게 했던 황사현상과 날세고 꼬리 긴 소문들…….
낡은 스크린처처 희미하게 간직된 삽화들은 언제까지나 내게 수동의 몫으로 끝없는 정체(停滯)로 살아있을 것이었다.
바다가 바로 눈앞에서 크게 출렁거렸고 버스가 지나온 길이 아주 조그맣게 연색(鉛色)으로 빛나고 있었다. 멀리 수평선 부근의 산들이 희미하게 엎어져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수평선 위에 얹혀있는 희미한 산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일본이라고 했다. 그렇게 가까운 일본을 배만 타면 곧장 갈 수 있을 것 같아 할아버지를 졸랐던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위에 늘 희미한 산이 웅크리고 앉아 와 보라고 유인하는 것 같았어. 그곳은 나의 희망봉이었다.
그곳이 우리나라 지형의 돌출부인 장기곷이라는 걸 알면서부터 그저 외딴섬처럼 생각되었고 아무런 상상도 동원되지 않았다.
버스는 조그만 부대를 지나고 있었다.
버스가 높은 구릉지를 오를때마다 수평선이 차창 반쯤 들어와 나의 눈높이보다 낮게 달리고 있었다. 언덕이 굽이 돌 때마다 마을이 안개에 갇힌 듯 먼 곳이 더욱 요원하게 느껴졌고 희미했지만 긴 방파제가 뽀족하게 나와 있었다. 그곳이 고향 마음임에 틀림없었다. 동네마다 방파제가 그 동네의 이정표처럼 바다로 길게 누워 있는데 멀리서 보면 실지로 동네가 붙은 것처럼 보였다. 버스는 나를 비롯한 행인들과 보따리를 쏟아 놓고 휑하니 달렸다.
일본식 건물인 어협 조합 앞에 형태를 알 수 없는 오래된 화강암이 아직도 그대로 서 있었다. 이상한 힘을 지닌 듯했다.
마을은 화집(畵集)에서나 볼 수 있는 정물 같았다. 무거운 바다색이 동네를 죽이고 있었다.
내 앞에서 고기를 내려 놓고 그물을 털고, 깁고, 손질하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거북해서 그들의 눈을 피해 버스가 지나간 길을 따라 오르면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 보았다. 아직도 그들의 눈초리가 내 등을 따라오고 있었다.
모래사장의 말뚝에 매어 놓은 소는 하품을 하고 사나운 개들이 제멋대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내 방객이라고는 별로 없는 할머니께선 외롭게 나를 맞으셨다.
방안은 지화(紙花)로 가득했다.
할아버께서 돌아가신 후로 할머니는 꽃상여에 매달 지화를 만들기 시작하셨는데 할머니의 이 작읍은 다른 할머니들이 붉고 검은 침이 돋은 성게를 까서 푼돈을 버는 일보다는 수월하다고 했다. 모래사장에 앉아 꿈틀거리는 성게의 껍질을 가르며 그 안에 액상(液狀)으로 되어 있는 노오란 무질이 조심스럽게 붙어 있어 짭짤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데 그것을 가공하여 일본에다 수출한다고 했다. 성게의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짠물에 손이 거칠어지는 것보다는 지화를 만드는 편이 내게도 훨씬 마음이 놓였다.
“또 누가 죽었나보죠?”
“……”
할머니의 손놀림이 갑자기 흩어졌다.
“저승꽃 안만들어도 될텐데……”
“심심해서”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담뱃대를 집어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왜 흰색을 많이 쓰는지 아직도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렸을 때 어머미 따라 초파일 절에 갈때엔 더러는 흰 등(燈)이 눈에 띄어 어머니께 여쭈어 보면 어머니는 그 깨끗한 등을 가리키며 망자(亡者)의 등이라고 내게 일러 주었다.
흰색은 너무나 우리들 가까이 있다.
할머니의 담배 연기속에서 피어 오르는 회한을 보았다.
할머니의 당신의 죽음이 알맞은 시기에 와야 한다고 하셧다. 그 알맞은 때가 지금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할머니의 버선코만 문지르고 있다가 꽃더미 옆에 누웠다. 망자(亡者)와 나란히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따뜻해져오는 온돌방이 잠시 동안 주는 정신적 안정감은 나를 이상한 흐름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아궁이 속으로 벌겋게 타들어 가는 생 솔가지의 불빛들이 힘차게 살아 났다가 허옇게 시들어 갔다. 그 느낌은 참으로 묘했다.
갑자기 내가 어릴적 꺼려했던 보리밥과 입자 굵은 밀가루로 빚은 국수가 생각나서 그것을 다시 먹을 수 없느냐고 여쭈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웃으시기만 했다. 아마도 그때 끼니를 거부해 할머니 마음에 생채기가났던 때를 떠올리시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보리밥과 손으로 빚은 국수가 그리워졌다.
입맛, 성격, 느낌……. 나는 차차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방의 구서구석에서 어둠이 밀려 오기 시작했다. 너무 가까이서 들리는 파도소리와 아직도 지화를 손질하시는 할머니. 이런 이질적인 느낌이 지배되어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누우렇게 바랜 천장과 벽지는 파리 똥으로 더럽혀져 별로 밝지 않은 불빛과 함께 낭패감을 자아내게 했다.
가끔 자신의 방일(放逸)이 꿈꾸고 이곳으로 나를 조종해오지만 막상오면 오기전의 생각보다 더 단조로운 시간들이 나를 심심하게 만든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이 시간 나는 비스듬히 누워서 첩보 영화의 한 장면이 보여주는 위기일발의 순간들을 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눈을 감았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낡은 책상서랍을 열어 보기로 했다. 서랍 속이 궁금했다. 먼지와 화투짝. 이빠진 빗, 그리고. 너덜너덜 낡은 종이가 눈에 띄었다. 육군 병장이 막내고모에게 보냈던 낡은 연서였다. 고모를 향했던 사랑의 말도 이미 오래전에 바래진 듯 했다.
순간, 매우 불우했던 청년이 내게 죽을 만큼 쓸쓸하게 밤낮 보내왔던 편지가 생각났다. 그 편지가 얼마나 절망적이었던지 속속들이 나를 파고 들었다. 그는 무턱대고 나를 자신의 희망이라고 했다. 정말 투성이었던 그는 나란 존재에서 서서히 벗어나지만 내가 그의 눈부신 성공 사례를 들은 것은 눈 내리는 오후, 어두운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가로등 아래로 내리는 흰 눈의 분란(紛亂)을 보고 있을 때 우연히 마주친 그의 친구에 의해서였다. 그의 순조로운 앞날이 벌써 그를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의 사회 첫 출발이 화려했다.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우울했던 그때의 내 기분을 앗아가 나를 즐겁게 해 주었지만 그와 재회할 가능성은 없었다. 설사 재회한다 하더라도 서먹서먹할 것이다. 그가 내게로 향했던 뜨거움은 자신을 스스로 이기기위한 횡포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오랜 기억이 간절하게도 나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절망을 잘 다듬어 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어둠은 그때 사랑의 힘보다 더 강해져 나를 무미건조한 여자로 만들었다.
고모의 체취도 빠져 나가고 이제 다시 그때가 돌아오지 않는다.
할머니 방으로 건너갈까 하다가 할머니의 품안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내 몸집이 할머니보다 커서 어색할 것 같았다.
다시 불을 끄고 누웠다.
이상한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져 좀처럼 줄어들 것 같지가 않았다. 뒤죽박죽된 생각들은 일관성있게 흐르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허무감과 비슷하기도 하고 지극히 짧고 강한 느낌을 주었다.
절망, 고독, 사랑…, 그 모든 것들의 실체인 것 같기도 했고 그것의 끝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끝에 목조이고 매달려 간신히 살아나고 있었다. 그것에 저항할 힘도 없이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파도 소리가 심하게 들려왔다. 바로 눈앞이 바다이기 때문에 파도가 지붕 높이 만큼 치닫는 느낌 속에 잠을깼다. 놋요강에 안장 컴컴한 바다를 보았다.
파도가 와서 되돌아가는 여음은 산사의 산죽(山竹) 쓸리는 소리처럼 들였다.
걷지 않은 빨래들이 한 곳으로 몰려 제멋대로 날리고 있었다.
밤바다의 풍경은 자연스럽고 민첩한 것 같았다.
검은 바다에 한 두접의 불빛이 보이고 그곳이 수평선 부근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빛은 포경선 같기도 했다.
순식같에 서치, 라이터가 바다를 비추었다. 파도에 부딪힌 섬광과 방향각으로 쏟아지는 현란스런 빛은 파도에 부딪혀 파도의 흰 빛과 보랏빛의 뭉게 구름처럼 보였다. 그 빛깔은 너무 오묘하여 잠시 동안 꿈을 꾼 경황 같기도 했다.
써치․라이트의 빛에 무너지는 파도는 칼날처럼 나를 꿰뚫어 지나갔다.
그 빛은 이상하게도 내 부끄러운 부분의 일부를 비추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빛을 세차게 의식하면서 떨고 있었다. 그 광경은 섬뜩했고 그 빛이 지나자 다시 한번 그 빛이 되돌아와 주기를 바랐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 빛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내 가슴 한 구서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일몰이 시작될 때까지 어둠속에 앉아 있었다. 도시의 빌딩 위에서 해가 솟는 것보다 원초적이고 장엄한 광경을 상상하니 조급해졌다.
물살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붉그레한 기운이 창호지를 물들이자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수평선 부근의 일출의 배색(配色)처럼 검붉었고 이상한 모양의 구름이 덕지덕지 붙어 신기하게 보였다. 구름은 어선들의 실루엣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일출이 서서히 어둠을 벗기면서 나의 미짓한 제구 전신에 번져 내 얼굴을 흉안으로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사이 서치․라이트 빛이 간절케 했던 것을 감쪽같이 거두어가는 것이었다.
해가 조금씩 내밀기 시작했다.
아, 나는 황홀한 해돋이를 느끼고 있었다. 선홍색으로 떠오르는 해를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이 세상의 붉은 색 가운데 가장 신비하게 살아있는 색이리라. 그 빛깔은 물감으로도 만들어질 수 없는 색깔이었다. 빛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눈이 아파왔다. 아침 바다는 이제 무엇을 되찾은 듯 숨쉬고 있었다. 어쩌면 도깨비들의 음모 같았던 밤을 저토록 거두어가고 있을까? 빛나는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해가 떠오르자 햇살이 조금씩 빛을 풀었다. 그 빛살로 인해 바다속의 모든 생명들이 기어나올 것 같았다. 장엄한 서곡처럼 퍼져나오는 햇살을 받고 있음이 어떤 기쁨으로 내 가슴에 서걱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해가 수평선을 벗어날수록 마을은 싱겁게 보였다. 그것은 마치 놋뇨강에 앉아 방뇨뒤의 순간을 맞은 것처럼 허전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개운치 못한 기분을 오래도록 자아내게 했다.
아침을 먹고나니 할아버지의 산소에 다녀오는 일외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제멋대로 자란 마른 풀들이 누워 있었다. 잔디를 힘껏 밟았다.
무덤은 자꾸 내려가 평지에 가까울 정도였다. 생시의 할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내 머리 속에서 희미해지는 것처럼 무덤도 자꾸 내려가 평지에 가까워짐이 나도 언젠가는 할아버지를 깡그리 잊어버리게 되리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했다.
내가 할아버지 모습을 떠올릴때는 혹 버스를 탈 때 경로석이란 활자가 튀어나와 내 눈을 자극했을때라든가, 무더운 여름날 해진 뒤 아파트에 사시는 노인들의 옥상에 자리를 깔고 별을 쳐다볼 때뿐이었다.
돌아가시기전에 할아버지의 돋보기 속에서 연한 유리구슬 같은 동공이 이상하게 확대되어 움직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할아버지의 노쇠현상은 내가 최초로 산다는 것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어럼풋하게 연결시켜 주었는데 그런 느낌들을 겪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유년기시절부터 마음 속 깊이 감춰 두었던 보석같은 감정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질기게 고수해오던, 것들이 바뀌는 만큼 두려운 힘 같은 것을 기르는 무장을 해야하는, 네게 분담된 삶, 그것이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그런 부담을 팽개쳐 버리고 싶을수록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 그 일은 놓게되면 네겐 너무나 많은 자유가 함께 찾아오지만 한편으로 그 자유를 완전하게 사용하지 못해 낙오자 같은 기분도 느낄 것이었다.
모든 것은 다 거역될 수 없는 공식처럼 받아 들여져야 한다는 생각이들 때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은 뜨거운 피처럼 나의 내부에서 들끊었다.
할아버지의 운명 소식을 듣고 나는 향(香)빠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술을 마셔 보았다. 죽음은 알코올 속에서 내게 너무 가까이 또는 너무멀리에서 이완 수축되고 있었다. 타인처럼 무관심했던 나는 그날만은 죄인이었다.
넓고 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멀리 모래사장이 좀 넓어보이는 곳도 들어왔다. 그곳은 십년을 주기기로 풍어제를 지내는 굿당이었다. 풍어제가 열릴때면, 읍내 밖에 사시는 할머니들 까지도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몇 날 며칠을 밤새우며 굿당을 지켰다. 풍어제가 시작되는 날임변 대나무와 오색 깃발이 나부끼고 고깃배들은 그날 작업을 중단하고 해변의 말뚝에 굳게 매어지고 사람들은 새옷으로 갈아 입는다. 규모가 작은 가설극장처럼 꾸며 놓고, 이 마을의 젖줄인 풍어를 빌고 바다에서 비명횡사한 넋들을 달래기 위해 무당들은 밤새도록 가무를 즐겼다. 할머니를 따라 굿당에 갔을 때 나는 무섭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여 일찍 돌아와서 잠들곤 했는데 할머니는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큰 긋 을 보기 위해 강릉까지 가신적도 있었다. 낮선 곳에서 금비녀를 도둑 맞고는 얼마동안 철사로 머리를 고정하고 있기도 했었다. 주로 한밤중 굿당의 여흥이 한층 고조될 무렵 금비녀를 도둑 맞았다는데, 금비녀를 도둑맞은 할머니들이 태반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부 네 사람을 고용한 꽤 큰 거룻배 한 척 가지고 계셨다. 손이 컸던 그 아저씨들은 늘 첫새벽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출범을 서둘렀는데 그들이 신은 고무장화의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내 잠을 깨우기도 했다.
그들은 방파제 부근의 주막에서 오뎅을 안주삼아 해장술을 마시고 배를 타러 나가곤 했다. 그들이 탄 배가 바다쪽으로 멀어져 감을 잊을 수 없다.
배는 칼라 화보의 서장에 나오는 그럼처럼 떠 있었다. 나는 덜 깬 잠으로 그를 하루의 시작과 끝을 상상해보곤 했다. 만선이 되어 돌아오는 기쁨은 그들이 부양하는 가족에게 멋진 선물이었다. 그들은 생업에 목덜미 잡혀 꼼짝하지도 못했다. 더러는 강원도 탄광으로 떠나 광부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수평선 부근에 뿌우옇게 보였다.
이곳의 봄은 바다 색깔로부터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람이 잔잔한 날, 바다는 호수 같았다. 그리고 바다는 참으로 여러 가지 색이었다. 옅은 곳과 같은 곳, 아주 깊은 곳의 색깔이 다 달랐다.
해당화 피는 5月의 바다는 정말 기관이었다. 북청색 바다와 그렇게 조화를 이룰 수가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한 무더기의 해당화를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불투명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흡사 성애 낀 창문 밖으로 동백꽃을 본 것처럼, 한참 지나서야 그 꽃은 생생하게 내 옆에 살아 있었다.
그것은 내 속에 바다처럼 살아있는 양심이기도 했다.
해안이 주는 단조로움에 다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릴적 나를 감싸 안으시던 할머니의 품 속 같았던 기류 동경의 바다가 기억될수록 이미 바래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또 이곳으로 언제 올것이가 궁금해질수록 빨리 떠나고 싶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맨 위의 집을 발견했다. 페허가 된 집은 입이 큰 미친 여자가 혼자가 살던 집이었다. 예전에 서 있던 복숭아 나무도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가가 궁금해서 그녀의 집 주위를 서성거리기도 했는데 그녀의 돌팔매질 때문에 감히 접근하질 못했다. 그녀의 돌팔매질에 내 왼쪽 이마가 맞아 크게 부어올랐던 기억이 나서 이마를 만져보았다. 그 날 할머니께서는 미친 여자를 상대할 수 없어서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가라앉히면서 안티푸라민을 듬뿍 발라 주셨다. 그리고 그곳에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그녀는 봄이면 복사꽃 가지를 꺾어 제멋대로 머리에 꽂고 돌아다니며 외롭게 미쳐가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6․25때 총살당했다고 전해진다. 내 기억으론 그녀는 무척 미인이었다. 여름엔 모시 옷을 걸치고 동네 우물에서 물을 먹기도 했는데 나는 그녀의 얇은 옷 속에 어른어른 비치는 속살과 젖무덤을 훔쳐보았다.
가끔씩 포성이 울리고 감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것이 특징인 이 마을에 과부들이 많았고 소문도 날세었다.
인근 부대에 근무하는 소대장과 국민학교 여선생님의 연애사건이 꼬리를 물고 다녔다. 이런 생각을 하니 이 마을의 내력에 함몰괴기 전에 빨리 달아나고 싶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야 떠나기로 한 나의 작정을 할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불편함을 눈치 채셨는지 만류하지 않으셨다.
눈물이 날 뻔했다.
미역을 싼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내가 올 때 내렸던 마을 조합까지 따라나오셨다. 우뚝 선 화강암이 믿음의 표상처럼 서 있었다. 필시 이 마을의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을 굳게 믿었다.
차창을 통해 할머니를 돌아다보았다. 차가 떠난 지 저 만큼인데도 할머니는 길모퉁이에 조그맣게 서 계셨다. 나중엔 한 점 지화(紙貨)로 보였다. 순간 할머니의 다리가 마비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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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별바리기님,
어디서 이런 자료를 가지고 계셨는지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마치 철모르고 문학을 하던 그 때 그 시절이 생경스럽습니다.
모처럼 과거로 흘러가는 시간을 얻었습니다.
디지털 시대!!
지나간 영덕문학의 흔적들을 이 카페에 새겨 놓고 싶습니다.
책장에 꼽힌 한 사람의 장서가 아니라
만인의 눈이 있는 곳에,
만인의 마음이 있는 이 곳에 남겨두고자 합니다.
시간 나는대로 조금씩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오우 귀한 자료 잠 담았습니다
소중히 ㅡㅡ 담고 가요
수고 하셨습니다
먼저 걸어 가신 ,,, 자취의 흔적 ㅡ 소중히 따라 갑니다
ㅎㅎㅎ
도움된다니 다행입니다.
1986년 칠령문학 제1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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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참 많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너무나 게으르고 늘 시간이 없다고 핑계만 댑니다.
그분들이 쌓아 놓은 성위에 성큼 발을 올려 놓고
그분들과 함께 가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뜻깊고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입니다.
현랑님의 좋은 글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원더 풀입니다. ^^
목표는 있는데 올리는 데까지 올려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