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찬이 부 도리깨를 들고 귀찬이와 퇴장. 국서의 처 혼자 함지를 꿰어맨다.
개똥이 일하다가 집 뒤에서 헛간으로 들어온다.)
[개똥이] 어머니!
[처] 마구깐은 다 치웠니?
[개똥이] 대강 치우느라구 치워 놨어---그런데 저 어머니---
(말똥이 등장. 시름없이 감나무 밑에 다시 앉는다.)
[처] (말똥이를 보고 있더니) 너 성 녀석이 대관절 왜 그러니? 뭣이 바위에
틀려서 저렇게 왼종일 우거상을 하고 있어? 응?
[개똥이] 몰라요. 장가를 안 보내 주니가 뱃대가 꼴려서 그러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게으름을 막 피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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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장가를 안 보내 줘서?
[개똥이] 몰라요, 나는. 그저 내버려 두어. 저렇게 약이 오른 걸 함부로
건드리다가는 혼나요.---그런데 어머니! 이것 봐! 저--- 우리집 송아지 말이야.
그것 그만 팔어 버리는 게 어때? 나쁘지 않지? 응? ---어머니! 좀 틈을 타서
어버지에게 그렇게 권해 봐, 어머니가---
[처] 소를? 이크, 이놈아! 그런 것은 네가 물어 봐라. 공연한 에미에게 벼락을
맞히지 말구.
[개똥이] 내가 몇 번 말해도 안 들어요. 아버진 어떻게 딱딱한지 바로 담벼락에
송곳질이야요. 실상 말이지, 소를 두면 뭘 해? 이전과 같이 소구루마 세월이나
있구 간혹 가다가 연자방아나 찌을 데나 있으면 모르지마는, 요즘은 어디 그런
것조차 있나요. 아침 저녁으로 트란큰지 뭔지 하는 것 몇 차례씩 읍내로
뿡뿡대구, 그리고 만신에 기계방아가 생기구 해서 지금 세상에 소를 키운댔자
아무 잇속이 없어. 사람이 먹고 살기에도 어려운데 어디 콩이 흔해서 쇠여물은
쑤어댄단 말야. 공연히 혼만 나지.
[처] 그렇지만 이놈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려무나. 너두 아디시피 네
아버지는 집안 식구보다도 소를 훨씬 소중하게 여기지 않니? ---사람은 안 먹어도
소는 먹여햐 한다는거다. 농가에 자랑꺼리는 소라니까- 이렇게 늘 말하시지 않든?
[개똥이] 쓸데없는 소리야. 소가 없으면 농사는 못 짓나? 자기 소 먹이는 공력
가지구 남의 병작소 먹이지. 다른 집에서도 다 그렇게들 해도 농사만 잘
지어먹는데-
[처] 에그, 철따구니 없는 소리 작작해라! 그런 어벙한 생각 허지 말구 너두
인제부터서는 농사에 좀 착실하도록 하려무나. 아주 무슨 큰돈이나 벌어올 줄
알고---이 자식은 그저 배탈 보냈다가 버렸어.
[개똥이] 도시 농사 같은게 손아귀에 차애 해먹지---어머니, 이것 봐! 나 소
팔어가지구 그만 만주 갈 테야. 거기서 돈 많이 벌어오면 그만이지. 만주 가서
돈벌이하기는 그야말로 자는 놈 뿔짜르기래. 참 벌이꺼리가 많대. 생각해 봐요.
우리가 여기서 농사를 지어서 언제 허리를 펴 볼 건지. 우리두 어서 돈을
모아가지구 규모 있게 살어 봐야죠. 여봐란 듯이 살지는 못하더래도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해봐야 하지 않어. 그러찮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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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솔깃이 끌려서) ---만주란 덴 그렇게 돈벌이가 많으니?
[개똥이] 이 멍텅구리 봐! 박면장 집 큰아들이 불시에 부자됐단 말을 못
들었수? 그것이 다 만주 가서 이태 동안에 벌어들인 돈이야. 불과 이태 동안이야!
[처] 그럼 나두 한번 네 아버지를 구슬려 볼까?
[개똥이] 정말 그래 줄 테야! 그래야 우리 어머니지!
[처] 나도 말해 볼 테니까 너두 이치를 잘 따져서 순순히 여쭈어 봐.
[개똥이] 그럼 잘 말해 주. 어머니!!
[처] 음 해보지. ---겨우 다 집었구나. 나는 이 함지를 가지구 타작마당에 가
봐야겠다. 이게 급하대. (함지를 겨우 다 꿰어매 가지고 집 뒤로 퇴장)
[개똥이] (혼자서 좋아서) ---옳지! 어머니가 꼴라대면 응당 아버지는
들으렷다. 나는 그저 소만 팔리기만 하루 바삐 만주로 뛰어야 해. 그래야 살지.
---가서 쇠여물이나 쑤어 줄가? 흥정할 적에 한 푼이라두 값을 더 받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