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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문협☆활동상 스크랩 넓은내(홍천) 이야기
drdol(돌박사) 추천 0 조회 40 09.02.03 21: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넓은내 이야기

                                           석도익 작 수필

                            <화양강(홍천강) 전경>

 서울에서 한강을 옆으로 바라보며 거슬러 올라오다보면 서울시민의 생명수인 풍만한 팔당댐을 보게 되며 다시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류지점인 두물머리를 지나노라면 거대하게 뭉쳐있는 남한강의 물가에 청둥오리들의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용두리에서 횡성을 지나 강릉으로 가는 6번 국도는 영동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오지가 되어버리고 44번 도로가 속초를 이어주는 직통도로로 이용되고 있는데 청운면 삼성리 신당고개 정상에서부터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이자 홍천의 관문이다.

 홍천군은 전국에서 제일 넓은 1,817.94㎢지역으로  산간 지역으로 홍천읍 시가지를 관통하는 북한강 지류인 화양 강이 태백산맥의 분수령으로부터 서쪽으로 흘러 겅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북한강과 합류하고 있으며 이 강 유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상들이 터 잡은 작은 분지로 이루어진 넓은 내(洪川) 홍천이다.

 동북쪽으로는 인제군과 양양군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횡성군과 평창군 서쪽으로 경기도 양평군과 북쪽으로 춘천시 와 접하고 있다.

다시 봉긋한 산길을 빠져나오면 길 양옆으로 중앙고속도의 홍천 나들목이 있고 시야에는 넓은 강이 바라보인다.

 이 강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명을 그대로 붙여 부르기도 하는 화양 강이다.

 

                                 홍천강 발원지 미약골

 홍천강 이라고도 하는 화양강은 홍천군 서석면 생곡에서 발원하여 10개읍면의 지류를 다 합쳐서 청평의 북한강으로 흐르는데 우리나라의 강들은 대부분 발원지에서 여려 고장의 지천을 합하여 흐르기 때문에 지명을 따서 강 이름을 부르는 예가 없으나 이 화양강은 홍천군의 전 지역의 지천만 모였을 뿐 다른 지역의 물이 유입되지 않은 순수한 홍천군의 물이 홍천 땅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지명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 부른다 해도 강 이름에 크게 손상을 주지 않을 것 같다.

 물안개 피는 강 언덕엔 까마득히 오랜 옛날, 선사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유적지가 있어 선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강변을 바라보며 홍천읍에 들어서면 강 하구에 바라보이는 산업도로 옆에는 농공단지가 있고 굽이도는 상변 삼각지에는 우리나라 굴지의 하이트 맥주공장이 홍천의 맑은 암반수로 만들어내는 맥주가 전국 애주가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강벼랑위에 우거진 송림에는 고고한 자태의 학이 무리지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송학정이며 시내로 진입하기 전 로터리에는 관문 수문장격인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곳은 무궁화의 고장을 알리는 무궁화 공원이다.

 

                                     (무궁화 공원)

 이곳에 무궁화 나무를 심어 무궁화 꽃을 그려놓은 공원으로

무궁화 보급운동의 창시자인 구한말 애국지사 한서 남궁억 선생 비를 비롯하여 군민헌장기념비, 충혼탑, 3·1만세탑, 6·25당시 전적을 기린 홍천지구 전투전적비, 국회부의장을 지낸 동은 이재학 선생 기념비와 광장에 건립한 반공희생자 위령탑 과 역사적 고증인 각종의 비석 등이 있고 향토 사료관이 있어, 여가선용은 물론 향토애와 나라사랑의 산교육의 도장으로서 잠시 들러볼 수 있는 곳이다.

 시내 북편으로 봉긋이 솟아있는 두꺼비 산은 망루가 있는 산성 터이며 봉화를 올리던 곳이라 한다. 맥을 같이하여 석화산이 버티어 있고 그 자락에 홍천군청이 자리 잡고 옆에는 향교가 동방의 효와 충의에 예절을 지키며 후세에 전하고 있다.

 홍천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화양강의 물비늘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황홀함을 바라보며 거슬러 올라가면 시내중심가에서 동으로 444번 분기점에서 동쪽으로 가면 이괄 장군바위가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고 동학군이 포진하여 관군과 싸우던 성전 터인 성수리 마을이 있고 수변공원에는 작고한 향토시인 이종호의 시비가 나그네를 맞이한다. 

     다 털고 가는 구나

                               이 종 호

 해질 무렵

돌아갈 시간인데/

아이들은 땅뺏기 놀음에

노을마저 가는 줄 모르는 구나/

어미가 부르는 소리에

아이는 아쉬워  하는가/

땅을 보다가

손 털며 집으로 간다/

다 털고

가는 구나

 

   시비 저 너머로 공작산이 보인다.

공작산은 해발 887m로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홍천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며,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홍천 읍에서 바라보면 거인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단풍이 매우 아름다우며, 기암절벽과 분재모양의 노송군락, 눈 덮인 겨울산도 일품이다. 

 한국 100대명산 공작산 끝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 수타사는 신라 33대 성덕왕 7년(서기 708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대적광전 팔작 청기와 지붕과 1364년 만든 동종,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고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를 비롯한 대적광전, 범종, 후불탱화, 홍우당부도 등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영서내륙 최고 고찰이다.

 수타사에서 동면 노천리까지 약12km에 이르는 수타사 계곡에는 넓은 암반과 큼직큼직한 소(沼)들이 비경을 이루고 있고 계곡 양쪽으로는 기암절벽과 빽빽이 우거진 숲이 호위하고 있어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보면 비경삼매에 빠져들기 일쑤이다.

 동면 노천에서 좌운을 지나 횡성으로 나가는 길과 서석으로 넘어가는 양 갈래 길이 있다.

 다시 원래의 44번 국도 홍천 읍으로 이야기를 옮기면 그 옛날에는 나룻배가 서울 마포나루를 거슬러 올라와 포구를 형성했다는 구성포에서 춘천의 뒷편으로 이어주는 가락재 넘어가는 풍천리길이 열려있고 동으로는 내삼포 외삼포를 거쳐 서석면과 내면을 지나 운두령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길이다.

 화촌면과 두촌면의 경계인 말고개를 넘노라면 북괴군이 6. 25 남침을 준비하기를 위해 정탐 군을 자주 남침시켜 민간청년들을 무참히 살상시키기도 했으며 실제 적들이 처 들어 올 때나 후퇴할 때에 주 작전도로가 되었던 이곳은 육탄으로 적의 탱크를 맞아 싸운 육탄용사전적비가 있으며 지금도 피아의 시신발굴을 하고 있을 정도로 피의 능선인 곳이기도 하다.

 화양강의 끝자락을 수십길 벼랑 밑으로 내려다보며 말 고개를 넘으면 철정에 다다른다. 여기서 내촌으로 가는 분기점이 있고 역내리로 거슬러 가는 길 좌측으로 가리산이 있는데 해발 1,051m의 가리산은 산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시야와 발 아래로 펼쳐진 소양호의 풍경이 등산객들의 발을 묶는 곳이다. 또한 이 산의 1봉 남쪽 정상아래 바위 벽면사이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400리 홍천 강으로 흐르는 작은 석간수는 목마름에 지친 등산객들에게 청량감을 더해주는 자랑거리이기도하다.

               (가리산 큰바위 얼굴)

  산자락 밑에 위치한 조그마한 폭포의 물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며, 이곳에서부터 계곡과 능선을 따라 등산이 시작된다. 또한 가리산 정상에서 마주보이는 곳이 옛 이름은 천치리였으나 지명을 바꾸어달라는 주민의 청원을 받아드려 천현리로 개명한 샘재 마을에서 로또복권 사상 1등 최고액과 2등이 몇 주 사이에 당첨된바 있어 명당터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일대를 홍천군에서 자연 휴양림 지역으로 조성, 95년 7월 개장한 가리산자연휴양림이 있어 통나무집, 야영장, 체육 시설을 이용하는 가족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길 우측으로는 1억톤의 철이 매장되어있는 철광이 있으나 지금은 개발을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철산업에 한몫을 차지할 수 있는 국내 제일의 광산이 있다.

 또한 용수계곡은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하여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에 이르는 10km의 계곡으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우거진 숲과 곳곳에 펼쳐지는 소와 너래바위들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내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봄에는 철쭉이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갈대와 어우러지고, 여름철에는 시원함을 주는 이 계곡에는 옛날 절터와 삼층석탑이 아직 남아 있으며, 이 삼층석탑을 옮기려 할 때 호랑이가 나타는

바람에 옮기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용소계곡은 가족단위의 등산이나 산림욕 코스로 적당하며 당일 산행으로 알맞은 곳이다.

 홍천과 인제군의 경계지점인 두촌면 장남리 산기슭 도로변에는6.25사변당시 참전한 프랑스 의무장교 장루이 소령 동상이 서있다.

 1951년 5월 8일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전투에서 한국군 부상병을 구출하고 34세의 꽃다운 나이로 이억 만리타국 땅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그를 위해 그는 갔으나 그가 남긴 자유수호의 의지와 전쟁의 와중에서 주민들까지 치료해준 인도주의적 정신을 이 땅과 전 세계에 길이 기억되게 하기위하여 동상을 세웠다. 동상에서 조금 더 올라가 고개 마루에서 44번 국도는 인제군으로 보내진다.

  두촌면 철정 삼거리에서 우측도로로 들어서면 철정 국군병원이 있고 산세 좋은 고개를 넘고 맑은 냇물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면 충렬의 땅 내촌면에 다다른다.

                        (가령폭포)

  내촌면으로 하여 인제 상남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아홉 사리 고개 밑에는 가령폭포의 물줄기는 천상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환상을 자아내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폭포로 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예부터 시인 묵객의 글을 감탄사로 만들어 놓았다.

 아홉 사리라는 국수사리 같은 아홉 개의 고개를 넘어가면 인제경계이며 과거에는 이곳까지도 홍천 땅이었으나 수복 후 인제지역의 빈약성에 의해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제군에 편입된 상남면이 나온다.

 도관리를 지나는 길의 우측방향 깊숙이 들어선 동창마을은 일찍이 동서를 있는 물류통로로서 창고가 있고 마방이 있던 곳으로 인적교류가 많아서 문화예술에 바탕을 둔 유적이 많은가  하면 선각자적 역할을 했음으로 동학의 마지막 결전지가 되었고  민족자존의 삼일독립운동의 확산지가 되기도 한 충렬의 고장이다.

 독립지사들이 은거하며 나라 일을 걱정하였던 그곳에 삼일운동의 불꽃이 당겨지고 일본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팔열사를 기리기 위한 팔열사 위령비가 있으며 문화제급의 각종 불교예술품이 존치되어있어 역사적 가치가 많다. 또한 독립만세운동의 장두 김덕원의 후손이 이곳에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이곳을 성역화 사업을 하고 있어 역사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동창의 팔열사)

  전라도에서 일어난 동학의 민중봉기는 관군에게 밀려 홍천의 동면을 거쳐 내촌으로 다시 서석으로 후퇴하다 자작고개에서 많은 전사자를 내고 마지막 서석에서 관군에 의해 모두 패하고 전사하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민중봉기는 몇백명의 시신을 묻은 무덤만을 서석면 풍암리 마을 뒷산에 남기고 역사를 마감했다.

 서석 풍암에서 횡성으로 빠지는 길이 있고 내면으로 치닫는 산길 옆에는 홍천강의 발원지인 생곡의 미약골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인간의 원천을 만드는 여인의 은밀한 곳같이 아름다운 곡선의 산속에는 모태의 샘터같이 생긴 곳에서 생명의 젖줄 같은 샘물이 솟아올라 아래로 르고 산 아래에는 내면 뱃재의 분수령에서 흐르는 계곡천과 함께 아래로 내려 홍천군의 각 면마다의 개천을 합하여 화양강을 만든다.


                              (삼봉약수) 

 서석을 지나 뱃재고개를 오르면 홍천의 오지 내면이다. 청정자연속에 열묵어가 서식하고 곰취가 자생하는 첩첩산중 골마다 시린물이 흐르고 한여름에도 목욕하기가 힘든 이곳에는 삼봉약수가 도심에 찌는 마음까지 씻어주고 칡소와 살둔 계곡은 지친 도심인의 발길을 묶는다.

 지난날에는 무장공비가 자주 출몰하여 독가촌을 이주시켰으나 이제는 도심 부자들의 별장 휴식처가 계곡마다 생겨나고 있다.

 내면 뱃재마루에서 인제에서 출발한 도로와 합류하여 뱃재를 넘어와 내면 창촌에서 다시 갈라지는 길은 해발  1577m높은 계방산의 우람한 등선으로 올라 강릉으로 가고 또 한길은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나 홍천에서 재넘고 령넘어 가는 길은 모두 해뜨는 동해를 향하여 간다.

               (살둔계곡)

 이야기는 다시 화양강을 따라 내려가 보기로 한다.

 그 옛날에 한강의 마포나루까지 연결되었을 화촌면 삼포에서 가락제 넘어 춘천을 잇는 구성포 삼거리 다시 홍천읍의 중심부를 뚫고 내려온 강은 북방면을 휘감아 돌아가며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강 유역에 터 잡아 살던 선사유적지를 남겼다.

 이곳에는 한국 굴지의 맥주공장과 불소함량이 국내 최대인 온천이 샘솟아 홍천온천 레저시설이 들어서고있으며 북쪽방향인 성동리에는 우방을 지키고 국가재건에 이바지한 월남 파병부대의 선진인 맹호부대가 있을 당시 파병 훈련 중 부하장병이 잘못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장병들을 살린 고 강재구 소령의 숭고한 군인정신이 살아있는 강재고 공원이 있어 숭고한 군인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고 있다.

 또한 앞서가는 강원인의 자존을 건  환경보존사업으로 자연환경생태공원을 조성하여 환경오염으로 병들어가는 지구를 살리기위하여 세계여러나라와 함께 자연환경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더불어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는 견학장소로서 각광을 받고있는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이 아직 때뭇지않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금학산에서 바라본 화양강)

  5번 국도는 춘천으로 넘어가고 화양강물은 홍천읍 시내 중앙을 동서로 가로질러 븍방면의 지천을 합하여 서면으로 방향을 잡고 구비 구비 돌아가니 강변 바위벼랑마다 철쭉이 붉게 타고 꽃잎과 오색의 단풍을 태우고 흐르는데  금학산 정상에 오르면 구불구불 흘러가는 발아래 강을 굽어보라! 네 귀퉁이에 건·곤·감·이를 그려 넣고, 빨강 파랑 색을 칠하면 분명 우리나라의 태극기가 황홀히도 펼쳐져 있으니. 산태극 수태극이다. 이토록 완벽하게 태극 모양을 대자연이 그려낼 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싶다.

 

                   ( 팔봉산 공원)

 강물이 서면 팔봉에 이르면 설악산이 떠내려 온 듯한 작은 설악산 모형의 팔봉산이 봉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란히 한 형제인 듯 솟아있으니 괴암 비경을 오르는 사람마다 새로운 감회를 만들어준다.

 팔봉산을 감싸고 흐르는 강물은 밤벌을 지나 보리울에 다다른다.   유리봉에 피어나는 무궁화는 한말 애국지사인 한서 남궁억 선생이 독립의 한을 풀고자 후학을 키우고 무궁화운동을 장려한 곳이기에 홍천이 무궁화고장으로 태동한 곳이다.

 무궁화를 전국에 보급되게 하고 무궁화 선양으로 나라사랑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충정이 거세게 물결치며 화양강과 함께 우리나라 민족의 가슴마다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피어나게 하고 있다.

 

 

  강물은 다시 마지막 남면에서 흘러온 용수계곡물을 거두어 홍천군의 10개 읍면의 물을 다 합치고서  홍천강의 마지막 포구인  어유포를 지나 청평댐에 담수하니 그 길이가 장장 143키로미터  긴 물줄기는 합수에서 북한강과 몸을섞고 다시흘러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합방하여 한강을 이루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놓고있다.

 산맥이 인맥이요 수맥이 명맥이라  홍천은 조국을 수호한 애국지사에서부터 호국열사가 난시 난국을 이겨냈다. 사상가 정치가 문재들이 많으니 어찌 다 열거 하겠는가마는 한말의 정치가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으로 무궁화보급운동을 하다 간 한서 남궁억 선생이 나라사랑의 실천의 터인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으로 거듭 나고있으며, 격랑의 제1공화국시대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동은 이재학 선생의 업적 또한 커서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사상 유래 없는 옥중당선을 한 사실 또한 홍천의 역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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