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셋째 날
폰티아낙은 부족과 달리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이슬람 기도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하루에 5번씩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은지... 오래된 선교사들은 아예 그 소리가 안 들린다고 한다. 이슬람 모스크는 동네 어귀마다 하나씩 꼭 있다. 국민의 85%가 이슬람교도이니 그렇기도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가 각 종교를 위해 돈을 주는데 이슬람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공급하고 있다. 여러 가지 부정부패와 사회적으로 국민적으로 정직성이 결여돼 있는 나라이며 동시에 종교적으로 정부의 이슬람 우대 정책이 계속되고 있어서 가장 큰 선교의 장애이며 또한 국가적 손해이다. 이곳 사람들, 주로 자바, 술루웨시 등의 이슬람 사람들은 일하기를 싫어하고 돈이 있으면 그때그때 써버리는 사람들이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큰 기업들, 은행, 자동차 판매상, 대형매장 등의 모든 산업 및 기업 집단들은 거의 중국계 인도네시아 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중국인의 근면성과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하는 지혜가 오늘의 인도네시아를 있게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중국인의 경영과 기술이 필요하면서도 그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많은 자유도 박탈하고 있다. 98년도 금융 위기 때는 부패한 정치, 행정관료들의 책임은 뒤로하고 잘사는 중국인이 자기들의 부를 착취해 갔다고 상점들을 불지르고 공장들을 파괴하고 중국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기까지 했다. 정부는 이일에 한몫 도와서 자기들의 책임을 회피했다. 중국사람들은 그 후로 자기들의 자본을 인도네시아에 두지 않고 해외로 이동시켜서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경제가 회복되려면 먼길을 가야하는 입장이다. 우리 민족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IMF의 빚을 갚은 것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고 생각이 든다. 이곳 폰티아낙에는 약 70% 인구가 중국인이다. 그러나 만다린을 사용하지 않고 남부어를 사용하기에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이곳 중국인을 위한 사역을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에 David 선교사가 Kapuas 강 북부 Punan 지역과 그 곳의 일대의 부족현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강을 따라서 그리고 여러 지류들을 따라서 수많은 부족들이 자기들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부족들, 이름 하나 하나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어떤 부족은 천주교의 영향으로 애니미즘과 천주교를 혼합한 형태의 종교를 가지고 있고, 어떤 부족은 이슬람, 어떤 부족은 기독교인데 역시 혼합된 종교형태를 보이고 있다. NTM 선교회 외에는 어떤 선교회도 부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언어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서 교회는 여기 저기 있지만 복음을 정확히 배우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Silat, Kentuk, Daan, Punan, Sayut 등 많은 부족들이 같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Kentuk 은 넓게 분포되어 있는 부족인데 부족에서 초청이 온다면 팀이 들어가 사역 할 중요 부족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족을 어디로 인도 하실 지 어서 언어를 배우고 부족에 들어가고 싶다. David 선교사와 환전소에 가서 100불을 환전하고 점심을 사러 갔다. Java 음식을 사주겠다고 해서 어떤 곳인지 궁금했는데 동네 뒷골목으로 가서 허름한 가게에 테이블 몇 개 놓여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바나나 잎에 쌀밥과 염소고기, Jack fruit 이라는 열대과일 삶은 것 말린 콩 볶음 찐 계란에 양념한 것 등을 쌓아서 종이로 쌓아 봉지에 담아 주었다. 두 사람 몫이 우리 돈 1500원 정도 하니 한끼에 700원 .... David 선교사의 말을 빌리자면 선교지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기를 원하면 현지인 이 먹는 것을 먹고 현지인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반면에 부족에 가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먹고살려고 선교지에 와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David 선교사가 시내 구경을 시켜 주었다. 폰티아낙의 중심부와 Kapuas 강, 시장 그리고 중국인들의 농사지역을 둘러보았다. 중국인 지역에서 파파야를 샀다 약 3kg 정도를 샀는데 1000원 지불했다. 오는길에 적도 공원에 들렀다. 말이 공원이지 적도를 표시하는 조형물과 건물하나만 있을 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았는데 그새 차 앞유리에 종이 박스를 덮어놓고 Rp 2000 를 내어 놓으라고 한다. Mission Home 으로 돌아와서 내일 반둥으로 갈 계획을 위해서 반둥에 있는 Rich 선교사에게 이 메일을 보냈다. 자카르타에서 버스로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반둥에 갈 계획이었는데 기차표를 살 수 있을지 없을 지 아무 것도 정확하지 않아서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저녁때 Rich 선교사가 공항으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지내도 좋다고 연락이 왔다. 얼마나 고마운지... 전에 유럽과 이집트 등 다른 나라들을 여행할 때 보다 이곳은 더 어렵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좀처럼 만나기도 어렵고 또 인도네시아인 들은 외국인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외국사람을 존경하거나 친절하게 대하려는 생각이 없다고 한다. 오직 외국인의 돈을 어떻게 하면 빼앗아 낼까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들을 하도록 만드니 참 걱정이다. 저녁에 이곳에 있는 교회에 갔다. 부족의 젊은이들이 도시에 나와서 공부하면서 생긴 교회인데 부족교회에서 목사님도 파견하고 이곳 선교사들과 함께 예배하는 교회이다. 약 60여명 들어갈 수 있는 시멘트 예배당에서 20여명의 학생, 청년들이 예배하였다. Steve 선교사가 설교를 했고 학생들이 재미있게 듣는 것 같았다. 예배 후 Mission Home 에 돌아와 Bill 과 Rosie 선교사와 선교훈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교제하였다. 선교훈련 기간동안 부족한 재정이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했다는 이야기....하나님의 공급하심... 같은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나누는 교제보다 더 즐겁고 마음 통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내일은 주일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 맞는 주일.
열 넷째 날
지금은 기차 안에 있다. 오늘 하루는 정말로 재미있는 날이다. 아침에 산책을 나섰다. 일곱시 반쯤 되어서 근처에 있는 체육공원(?)으로 갔다. 길가에 새장을 들고 모여드는 곳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새를 기르고 또 새소리를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일요일 아침이면 새소리 경연대회를 한다고 한다. 좀더 가니 테니스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 그리고 반대편에는 어수선한 공원을 정리하느라고 분주하다 풀을 깎고 나무를 태우고.. 눈앞에 축구경기장이 보였다. 작은 스타디움 형식의 축구장인데 축구를 하는 사람은 없고 스타디움과 경기장 모두 판자촌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연인 즉은 얼마 전 칼리만탄에서 종족간의 전쟁이 있었는데 그것을 피해 폰티아낙으로 온 난민촌이다. 폰티아낙 한복판에 축구장을 근거지 삼아서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곳 서부 칼리만탄은 인도네시아 선교지 중 가장 안전한 곳 중의 한곳이다. 그러나 언제 이슬람 정부가 맘이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어제 같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아침 9시에 예배를 시작하였는데 간증을 하고 찬송을 불렀다. 약 50여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 뒤편에는 부족에서 나온 학생들의 기숙사가 있었고 목사님의 사택도 있었다. 예배 후 선교사님들과 함께 시내 중국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작별을 하였다. Steve 선교사가 공항에 태워주었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자카르타에 도착하니 오후 2시 50분 Jiseoung Lee 라고 적힌 푯말을 찾으니 아무 데서 없었다. 약 2시간을 기다려도 온다던 렌터카 기사는 오지 않고 사기꾼 택시기사들만 주위를 서성거린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말을 건넸는데 중학교 동창생이었다. 인도네시아 공항에서 중학교 동창생을 만나다니...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던 중에 장가들러 한국에 간다고 한다. 녀석...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한다... Rich 선교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오후 4시 30분이 넘어서야 전화 통화가 되었다. 빌리기로 한 렌터카를 빌리지 못해서 몹시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마치고 공항에서 기차역을 가는 버스를 탔다. 마지막 버스라고 한다. 감사합니다. 주님! 약 40분 후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기차역은 정부청사와 중앙공원이 있는 자카르타의 중심부에 있었다. 버스 안에서 50대로 보이는 한 여자 분에게 말을 건넸는데 왜 인도네시아에 왔는지 그리고 한국의 여권신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은 질문을 했다. 알고 보니 정부 관료인데 이슬람교도이며 자국에 대해 실망이 많은 것 같았다. 여러 가지로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감사했다. 그러나 Don 선교사님 말을 기억하여 선교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추석명절 서울역처럼 많았다. 기차표를 구하러 갔더니 암표장사가 와서 오늘 표가 다 팔렸다며 126,000 루피를 내고 표를 사라고 하였다. 좀더 기다렸다가 매표소에 물어보니 기차표가 있었고 반대편 대합실에 가서 표를 구하라고 했다. 70,000루피에 기차표를 구입하고 승강장으로 올라가니 승강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밀려들어와서 큰 사고가 날것 같이 보였다. 정신없는 가운데 중국인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기차에 올랐다. 한참을 가다가 비행기처럼 식사가 나와서 먹었는데 나중에 돈을 받아갔다. (공짜인 줄 알았는데) 기차는 한 시간을 더가야지 Bandung 에 도착한다. 8시 40분 도착 예정인 기차가 1시간 연착해서 반둥에 도착했다. Rich 선교사가 기차역에 나와 있었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역까지 나와서 안내해 주는 정성에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 Rich 선교사는 이리얀자야에 선교사로 와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어를 공부하다가 9.11 테러사건이 있을 때 선교사들이 안전지역으로 철수해야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언어공부를 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30분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인 Sharon 선교사와 사이에 두 명의 딸아이가 있다.
열 여섯째 날
오늘은 반둥을 탐사하는 날이다. Rich 선교사와 함께 IMLAS(인도네시아 선교 언어 학교)에 방문했다. 인도네시아 와서 1년간 언어를 배워야 할 학교이다. 인도네시아에 오는 선교사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려는 목표로 세워진 학교인데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학교의 책임자인 pak 아르만 선생님은 굉장히 친정하며 진지하게 나를 대해주었다.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철저하게 짜여있는 스케줄에 믿음이 갔다. 약 60여명의 사람들이 현재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약 50%의 학생은 서양인이고 나머지는 동양인인데 그 중에 한국인이 대부분 이었다. 한국사람은 선교사와 비즈니스맨으로 나뉘어지는데 한국인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언어 공부할 때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할텐데.... 학교는 1년 과정으로 9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20일간 수업하고 1주일을 쉰다고 한다. 매 단계마다 시험을 통과해야지 다음단계로 가는데 9단계를 마치면 고급 인도네시아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5단계를 마지막을 학교를 마치는데 NTM은 7단계를 기본으로 요구하고 있다. 학교에는 여러 명의 인도네시아 언어교사들이 있어서 소그룹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었다. 학교 근처에 집을 알아보았다. 집은 월 $100-$300 사이에 임대할 수 있는데 처음에 1년 치를 지불해야한다고 한다. 학교 구경을 마치고 택시를 대절하여 시내 탐사에 들어갔다. 슈퍼마켓과 전자제품 전문시장을 들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6시간 동안 택시를 대절하여 빌려 탔는데 약 20,000원을 지불했다. 오늘 반둥에서의 생활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약 100만원의 생활비가 들것으로 생각된다. Rich 선교사의 집에 가사 일을 도와주는 분이 왔다. 한 달에 약 5만원을 지불하는데 빨래와 식사준비, 청소를 해준다. 아내들에게는 배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도움이 된다.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하다고 한다. 학교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이 없이 때문에 가정에 아이 돌보는 사람을 고용한다고 한다. 두 명이 함께 있음으로 남자선교사들이 집에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시험에 드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두 명을 고용하고 있다. 내일은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열 일곱째 날
오늘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오전을 집에서 쉬다가 기차표를 샀다. 2시 35 분에 반둥을 출발하여 자카르타에 5시30분 정도에 도착하는 기차를 탔다. 기차역에 차가 막혀서 5분전에 도착했다. Rich 선교사 가족에게 작별하고 기차에 오르니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마음이 떨렸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간다... 반면에 이곳 선교지 인도네시아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마음에 다시 올 것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옆 좌석에 앉은 분이 영어를 하는 분이어서 여러가지 대화를 나눴다. 그 분은 반둥과 자카르타를 오가는 회사원인데 크리스천이며 술루웨시의 므나도가 고향이라고 한다. 현재 그 지역은 이슬람의 지하드(성전)으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고통받고 죽고 집과 교회, 학교 등이 불태워지고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자기 남편의 형제중 한 명도 그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 말루쿠와 암본 지역의 이슬람 폭동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크리스천들이 더욱 기도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인도네시아의 어려운 환경가운데 복음이 더욱 널리 확산되도록 믿는 자 가운데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기차는 한시간을 연착하여 6시 30분 경 자카르타 감비르 역에 도착했다. 옆 좌석 부인의 남편이 마중 나와서 나를 공항 가는 버스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빌어 주었다. 그도 크리스천이었다. 자카르타를 떠나며 그 분에게 받은 그 한마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한다는 말, 이미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주님을 알고 죄를 용서받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영원한 것에 삶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 복, 하나님의 선교의 일에 사용하시고자 부르시고 훈련시키신 것, 이곳 인도네시아로 인도해 주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의 대화와 기도를 통해 여러 가지 것들을 이해시키시고 가르쳐 주신 일들.... 얼마나 더 한 은혜와 복을 바라겠는가?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한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6시간 후면 한국에 도착한다. 다시 이 땅을 밟는 날을 고대하며 인도네시아를 뒤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