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릉시의 유래
강릉시는 옛부터 예맥족이 살던 곳으로 기원전 129년에는 위만조선에 영속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128년에 예맥의 군장인 남려가 위만조선의 우거왕을 벌하고 한나라에 귀속, 창해군의 일부가 되었다가 고구려 미천왕 14년(313년)에는 고구려 세력에 합치게 되어 하서랑 또는 하슬라라고 불리었다.
그후 신라 진흥왕 11년(550년)에 신라의 영역으로 되었으며, 경덕왕 16년(757년)에 명주라 하였고, 고려 충열왕 34년(1308년)에 강릉부로 개칭 되었다. 공양왕 때에는 강릉대도호부가 있어 북쪽으로 원산에서 남쪽으로는 울진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를 관할하였다. 조선시대로 들어 태조 4년(1395년)에 강원도로 개칭하였고, 고종 33년(1896년)에 강릉군으로 되어 21개면을 관할하였다.
일제 시대인 1931년에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 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55년에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합하여 강릉시로 승격과 동시에 강릉군을 명주군으로 개칭 분리 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 강릉시, 명주군을 통합하여 통합강릉시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2.성산면
보현산성이 있어서 성산면이라 하였다.
3.관음리
관음리는 1916년 안곡(안국동), 개자리(가좌리), 괴일(고곡동)을 합하여 관음리라 했는데 이는 본동 입구 북쪽 골에 관음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4.산북리
산북리는 원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새재(왕산면 도마리와 경계)뒤가 된다고 하여 산 뒤, 산두라 했는데 1916년 나맬, 버당말, 자포골, 좌망두를 합하여 산북리라 하여 하구정면에 속했다가 하구정면이 구정면으로 될 때 구정면에 속했다. 그후 1983년 2월 15일 '읍면 행정구역조정'에 따라 성산면에 편입되었다.
산북리는 새재 뒤가 된다고 하여 '산 뒤' 또는 산두라 하기도 하고, 구정리에서 볼 때 산을 넘어서 북쪽 언덕에 있다.
5.송암리
송암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1916년 거릿말, 광양, 미리재, 안마을을 합하여 송암리라 했는데 마을엔 소나무와 바위가 많이 있다.
6.보광리
보광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보현촌, 보광동, 보갱이라 하다가 1916년 무일동, 삼왕동, 무시골을 합해 보광리라 했다. 신라때 낭원대사가 세운 보현사의 '보'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7.금산리
금산리는 조선조 11대 중종때 김관헌이란 분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갱금)라 하던 것이 1916년 장안동, 제동, 구동, 성하를 합하여 금산리라 했다. 금산리는 강릉 최씨(평장공파)의 시조인 최입지 공의 묘가 있는 산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옥녀탄금형)이여서 금산이라 하다가 강릉김씨들이 많이 산다고 하여 거문고 '금(琴)'자 대신 음이 같은 쇠 '금(金)'자를 써서 금산리라 한다.
8.위촌리
위촌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우출이라고 하다가 1916년 골아우, 새잇말, 송두골, 항생골, 지암돌을 합해 중국 주나라의 재상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와 같다고 하여 위촌이라 했다.
위촌리의 속명이 우출인 것은 마을 제일안쪽 골아우에 있는 와우형의 묘자리에서 소가 나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그러다가 300여년전 풍기 고을원을 지낸 위천 김세록이란 분의 호를 따서 위천이라 하다가 그후 “천” 자 대신 “촌”자를 썼다. 위촌은 조선조시대 그림을 잘그린 명서였는데 특히 대나무를 잘그렸다. 그가 그린 대나무에서 밤에 바람소리가 났다고 한다.
9.구산리
구산이란 이름은 중국 노나라 때 공자의 어머니가 이구산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공자를 낳아 공자의 이름이 구인데 이곳이 공자의 어머니가 치성을 드린 이구산과 비슷하게 생겨 이구산이라 했다. 그후 '이'자를 떼내고 그냥 구산이라 하다가 성현의 이름(공자의 이름이 구)은 함부로 쓰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고 하여 '丘'자와 음이 같은 '邱'자를 써서 邱山이라 했다
10.어흘리
어흘리는 주위의 여러 지역을 총칭한 지명인데 '어울리다, 만나다'라는 뜻인 느느리, 느러리 라는 말을 음차한 것이다. 그리고 어흘이라는 것은 여러 골짜기의 물이 합수하는 곳의 지명이다.
11.오봉리
오봉리는 1916년 오봉산 밑에 있어서 오봉리라 했다. 마을 뒤에는 대관령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낙맥에 제왕산을 중심으로 산봉우리가 5개가 나란히 서 있고, 마을 뒤엔 오봉서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