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스타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는 탤런트는 거의 없다.
모두가 스타의 꿈을 안고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어느날 스타가 됐을 때 스타로 군림하기 위해 자신이 포기해야했던 많은 것들 때문에 가슴 한구석 공허함을 안고 살아야한다.
<금잔화>로 스타의 대열에 성큼 올라선 나는 한동안 그 달콤한 희열에 정말 천국에라도 와 있는 기분이었다.
여기저기서 출연요청이 쇄도했고 CF교섭이 줄을 이었다. 밤에 집에 들어가면 침대머리에 수북이 쌓인 팬레터가 나를 맞았다. 장미빛 인생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곧 일에 치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1년이면 3백65일 중 하루를 맘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남들은 겹치기출연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바쁘냐고 말하지만 드라마 야외찰영, 스튜디오 촬영, 더빙, CF촬영, 각종 오락프로그램 출연 등에 일일이 응하다보면 매일이 파김치였다.
나는 스타가 된다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명성도 얻고 돈도 벌고 일석삼조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 한번 맘놓고 갈수 없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속에 나의 삶 자체가 방송일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
밤촬영을 끝내고 피로에 온몸이 축 처진 채로 집으로 향할 때면 차창문을 열어 맞바람을 쐬면서 나는 생각하곤 했다. '스타란 내 인생에 무슨 큰 의미가 있나. 결국 스타는 환상 속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대리충족시켜주는 역할에 불과하지 않나.'
최근 나는 내 탤런트생활에 약간의 공백기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지금 출연중인 <당신이 그리워질때>가 끝나면 6개월정도 쉴 생각인데 나 자신만을 위한 일들을 해 볼 계획이다.
예를 들라고? 무엇보다 유럽여행. 벌써 몇달전부터 경비까지 일일이 체크해가며 준비해왔다. 배낭족이 되어 유럽의 거리를 활보할 나를 생각하면 벌서부터 가슴이 뛴다. 타인의 스타가 아닌 나 자신의 스타로 서는 셈이니까.
SBS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지난해 8월이었다. KBS드라마 제작국의 이윤선 부주간님과 이영희 감독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새 일일연속극 <당신이 그리워질때> 출연교섭이었다.
SBS 시추에이션코미디 <오박사네 사람들>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고 SBS측으로부터 재계약요청이 들어오던 때였다.
사실 SBS를 떠날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나를 키워준 방송사였고 대우도 좋았다. 때문에 처음 KBS측의 교섭을 받았을때 거절을 했다.
하지만 이영희 감독님의 출연교섭도 집요했다. 어느날은 윤승원오빠랑 찍는 롯데삼강 야채믹스 CF촬영장까지 찾아오셔서 일단 기획안이나 봐두라고 그리고 차차 생각해보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그래도 별로 흔들리지않던 내게 마음을 바꾸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임예진언니의 전화였다.
하루는 집에 있는데 예진언니가 전화를 했다. 툭 한다는 소리가 "야 임마, 작가선생님(이금림씨다)이 너 꼭 쓰고 싶은데 니가 계속 뺀다며? 그러지말고 얼굴이나 한번 보고 결정해"였다.
예진언니의 주선으로 며칠후 63빌딩 일식집서 나, 예진언니, 이영희 감독님, 이금림 작가선생님이 모였다. 의외로 말이 너무 잘 통했다. 특히 이금림선생님은 알고보니 전주분이었는데 말투며 화제거리가 나와 비슷했다. 뭔가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후 6시반에 만난 저녁모임은 63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의 칵테일모임으로까지 끝났다. 아주 유쾌한 시간이었고 이금림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주는데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날로 출연제의를 승낙했다.
KBS로 옮기면서 무엇보다 기뻐한건 엄마, 아빠였다. 사실 SBS는 전국방송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주집에서는 유선방송을 달아 시청해야 했는데 엄마아빠는 서울서 잘 나가는 딸을 당신들만 보기가 아까웠던 모양이었다.
내가 KBS방송에 출연하고 동네사람들까지 다 "어이고 지영이 아주 잘하대요" 소리를 하기 시작하자 뿌듯해지셨다나.
모처럼 나도 효도하는 기분이 들어 내심 잘했다 싶었다. 日刊스포츠 스타고백을 통해 엄마랑 나랑 찍은 사진이 공개되자 신문을 사자고 난리였단다.
아빠도 "나랑 같이 찍은 사진도 내주지" 하셨다니, 재수시절 속썩인 부모님 속을 반쯤은 내가 풀어드린 것일까.
TV서 인기를 얻은후 흔히 받게 된 질문이 "영화는 안해요?"다.
왜 안하겠는가. 아직 좋은 작품을 못 만났을 뿐이지.
이제와서 말하지만 압구정동 소재 영화가 한창 붐일때 웬만한 영화들로부터 다 출연섭외를 받았다. 내가 압구정동풍으로 생겼다고 여겨지는 모양이었다(사실 나는 전혀 압구정동풍이 아니고 소위 압구정동족들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다 읽어봤지만 마음에 드는게 없었다.
이때 <투갑스>에서 지수원이 맡았던 역도 제의가 들어왔는데 역시 거절했다. 역 자체는 좋았지만 소위 버디무비 스타일인만큼 남자 두명이 주인공이라 들러리에 그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지금와서는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출연하고픈 영화는 일종의 컬트무비다. <아담스 패밀리>나 <베티 블루>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등은 내가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들이고 특히 <베티 블루>의 베아트리체 달같은 역할은 꼭 해보고 싶다.
<퐁네프의 연인들>도 6번이나 봤을 만큼 애정이 가는 영화다.
그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당장 달려가서 내게 역을 달라고 졸라볼텐데...
그럼 벗는 것도 불사할 거냐고? 물론이다. 단 아주 좋은 영화, 믿을만한 감독, 뜻있는 제작자라는 확신이 들때에 한해서.
<금잔화>에서의 야한 연기로 이미 도발적이라는 평을 받은 나다. 당시에는 부끄럽고 창피할 때가 더 많았지만 지금와서 되돌이켜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프로의 세계에 뛰어 들었고 프로는 자기 일에 철저해야 하니까.
나는 성격 자체가 복잡미묘한 것은 싫어한다. 칼처럼 명료한 것,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가릴 것 안 가릴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 그런 상태가 좋다.
영화도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명료하게 뛰어들 작품이 있었으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