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남초등학교 8회 총동창회 제1회(2005.07.23)(1)
안녕! 친구들! 잘 지냈지?
아직도 남우8회 총동창회 제1회 만남의 여운이 상당히 남아 있을 텐데...............................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친구들과36년 만의 만남의 장이 된 2005년 7월 23일 토요일의 깊은 잔상들과 따스한 마음들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믿어!
모든 친구들이 36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리움에 내심으로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었지!
친구들 각 개개인 대다수가 너무도 순진하기에/ 너무도 참을성들이 많기에 / 너무도 우리 민족 고유의 본성인 수동성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 그 길고 기나긴 시간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애만 태웠었지!
◆그리고 그사이 우리의 소중한 몇몇 친구들은 그리움과 아쉬움, 안타까움 속에서 질기고 질긴 현실의 끈인 배우자, 가족, 친지, 친구들과의 인연의 끊김을 당하고 외로이 구천을 떠돌거나 일부는 중계에서 계속 그리움, 외로움, 아쉬움, 안타까움 속에 눈물 흘리고 애를 태우며 한이 쌓여가고 있었지!........................................................................
인연의 끈들이 / 먹고 사는데 너무 바쁘기에 / 흘러간 시간으로 인한 국소망각에 / 현실과 연결시킬 수 없는 상황들에 의해 /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삶이 좋다』는 이 세상을 저 멀리 뒤로하고 홀로이 외로이 떠돌고 있는 과거의 소중한 인연을 소홀히 해왔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숙어처럼 저 친구들에 비해 인생을 더 향유해왔고 앞으로도 더 그러할 우리들이 저 친구들을 잠시라도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지나치지는 않겠지! 『죽은 정승보다 산 정승 집 개가 낫다.』라고는 하지만 잠시만 시간들을 할애해주기를........
강 승권! 김 석기! 이 내필! 삼가 친구들의 명복과 등상을 빕니다!
강 승권! 김 석기! 이 내필! 친구들아 보고 싶다! ......... 얼마나 힘들었니?
하지만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현실! 친구들이 그간 겪었을 어려운 경험들을 조금이라도 경감시켜줄 수 없는 무능력을 질타하며 열심히 힘을 기를 것을 다짐한다!
김 석기! 이 내필! 친구들은 초등학교 졸업 후 한번도 못 본 것 같아 더 안타깝구나! 젊은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그리되었으니 어찌하니?
친구들의 부모 형제자매들의 가슴은 한동안 얼마나 에이고 멍들고 찢어졌을까? 그리고 지금도 이따금씩 그대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시는 늙고 쇠약하며 잔주름투성이의 그대들 부모들의 몸과 마음은 지금도 얼마나 쓰라리고 피로할까? 또한 일찍이 그대들과 사별의 충격을 겪었고 점전 노쇠해가면서도 가끔 그대들을 회상하는 친구들 형제자매들의 가슴 또한 얼마나 아플까?
김 석기! 이 내필! 비록 아쉽고 안타깝지만 자신들의 요절을 너무 서글퍼 하지만 말고 실력을 더 갖추어 빨리 등상하여 새로운 세계로 나가길 바라네!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작은 힘이지만 도와주고 싶네!
강 승권! 친구는 안으로는 사랑하는 부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아니할 것 같은 어린 딸과 아들을 / 위로는 늙고 병만 쳐진 연로하신 부모님을 외로이 남겨두고 혼자 별 준비도 없이 그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금의 세계로 갔지! 내가 그대를 살리려고 광주를 두 번씩이나 찾아갔고 그대의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기를 1시간 이상하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흘러갔군!
내가 승권이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승권이도 내게 기대를 하였었지만 내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해! 하지만 나로선 여러 상황이 친구를 도와 줄 수 없는 상태라 어쩔 수 없었어(이 부분은 차후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그래도 내가 ‘이러이러하다’는 전화는 해주었어야 하는데.......호랑이 같은 부인 때문에! 전화도 부인이 받으니깐!...... 내 전화를 많이 기다렸었지? 지금도 가슴이 아파!..........생사의 갈림길이고 너무 중대한 문제이기에 부인의 저항을 꺽었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하고 미안해!
부인이 너무 완강했었어! “남편이 죽어도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한다.”며 일체 다른 도움을 원하지 아니 했었어 ! 마치 친구의 사별이 당연한 어찌할 수 없는/거역할 수 없는 신의 뜻처럼........ 난 과학과 의학의 한계와 종교의 무서움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었지!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진리는 어떤 것일까?』라고 쓴웃음을 지으며.........나중에 부인이 내게 사과를 했지만 .......이미 늦은 후이고 되 돌이킬 수 없었지! 너무 답답하였지.......
당시 승권이의 중1의 어린 딸과 초등 5년의 어린 아들은 아빠의 육신이 뜨거운 화장장으로 들어갈 때 통곡을 하며 울부짖었지! 승권이 자녀들의 아빠와의 이별의 통곡은 주변 산들에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면서 장례하객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수목들은 흔들거리고 산짐승들은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이더만! 나 또한 그런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염없이 눈물 흘렸지! .......나중에 과학과 의학이 더 발달하면 하느님 뜻의 영역이 더 줄어들겠지만..... ㅎㅎㅎ 그때는 승권이의 사별도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이 아니겠지.....
승권이! 부모님은 병약하고 어렵지만 너무 염려 마! 정부에서 보조금이 어느 정도 나오니까! 그리고 염려되면 도와줘! 집착만 하지 아니하면 돼! 지난번 나를 찾아와 마지막 타자로 몇 마디 말하고 새 옷 갈아입고 갔지? 그리고 그때 여자친구도 생겨서 이제 별로 외롭지 아니하지? 부인도 (자네가 나를 찾아온 이후로는) 한번 찾아오고 더 이상 찾아오지 아니한다고 부모님께 말했다고 하네!
승권이! 내가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하고 그대와의 만남도 더 이상 하지 못하였던 것에 대해 미안해! 앞으로 친구 부모님은 가끔 찾아뵐게! 그리고 친구는 내가 여유가 되면 불러볼게!
강 승권! 김 석기! 이 내필! 삼가 그대들의 명복과 등상을 다시 한번 두 손 모아 빕니다.◆
친구들 미안! 내가 갑자기 엉뚱한 데로 갔지? 하지만 우리는 저세상의 친구들에 비하면 너무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는가?! 잠시 몇 분 그 친구들에게 시간을 할애했다고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아니하겠지? 개구리 올챙이 시절과 출세 후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두루두루 마음을 쓰면 인생이 크게 모나지 아니할 거야! 또한 상대를 배려하면 모든 일들이 아마 잘 될 거야!
자 그럼! 현실로 돌아와 서두에 이어서 계속할게!
우리는 그렇게 마음만 있었지 적극적으로 동창회를 추진하지 못하고 어언 50이 다되어 작년 2004년 봄에 서울에서 몇몇 친구들(엄 범섭, 김 성재, 정 만순, 김 영순, 성 경옥, 채 성옥 등)이 모임을 갖고 당시 전북 부안의 석불사 절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내게 삼학동 이웃집 살던 친구를 보고 싶다며 정 만순, 김 영순 등이 여러 차례 전화를 하여 결국 동년 11월에 서울에 올라와 첫 참석을 하게 되었고/ 이후 서울서 몇 차례 만난 후 2005년 5월 중순경부터 서울 군산을 밥 먹듯이 오가며 지난 2005년 6월 중순 군산 동창회 모임을 갖게 되었다.
당시 첫 모임치고는 연락한 친구들 중 약 80퍼센트(33명) 정도 모여 성공적이라고 자축하였지만 이번 군산서 치루어 지는 총 동창회 모임은 어찌될지 조바심이 앞섰는데 호사다마라고 수도에서 발생된 여대남소전은 내 별명의 시험장이 되었다.
나는 장소가 군산이고 상대가 중요 인사라 경우에 따라서는 후폭풍이 클 것으로 예상이 될 뿐 아니라 풍요로운 양질의 곡식들 수확에 차질이 생길까봐 틈나는 대로 조심스럽게 온도와 기압 조절을 시도하였고 군산에 먼저 내려와서도 원격 조정을 시도하였다. 다행히도 내 노력을 알았는지 하늘이 돕고 여러 여건들도 성숙이 되어 오월의 동주 속 비둘기무드 에 본 동창회가 시작되었다. 서울 팀들이 먼저 16시 45분경에 도착을 했다. 미리 준비해놓은 디지털 카메라와 비디오로 촬영을 하며 내심 60여명 이상의 참석을 기대하였는데 군산 팀들은 너무 가까워서 그랬는지 여유 부리며 좀처럼 나타나지를 아니하였다.
김 영호가 몇 시부터 동창회를 시작할 것인지 묻기에 6시 지나서 할 것이라고 대답을 하고는 초조 속에 부지런히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였다. 이미 문자도 두 번씩이나 보냈고 직접 통화도 상당히 해 놓았지만 시간이 가니 초조해지고 한 사람 한 사람 입장이 천금처럼 귀해 보였다.
그러나 비록 늦게 늑장들을 부렸지만 군산 친구들은 실망을 시키지 아니하고 계속 참석을 해주어 7시 지나서는 어느덧 45명을 넘어섰고 이후 계속 입장을 하여 50명을 넘어서게 되어 체면도 서고 많은 친구들로 인해 분위기가 고무되기 시작했다. 이미 상당수 친구들은 식사와 술을 적당히 마시면서 옛 친구들과 정담을 두루두루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부터 식사와 술을 들며 오래 만에 보는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면서 동창회를 먼저 시작한 서울 팀의 동창회장 김 성재가 회의를 주도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김 성재의 진행으로 시작된 동창회가 무르익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질서 정연 속에 노래와 가무로 36년간의 긴 벽들을 완전히 허물기 시작하였다. 나는 늦게 온 친구들 특히 약 2개월간이나 전화 통화가 되지 아니하였던 김 성진이도 참석을 해주었기에 너무도 즐거웠다. 또한 과거 초등학교 6년 때 회장을 맡았던 이 준호는 물론 저 멀리 거제에서 온 김 영호, 아니 그보다 더 멀리서온 부산의 곽 성곤, 울산의 이 열순, 포항의 정 한영 등을 보며 우리 동창회의 앞날이 훤하고 크게 번창하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운 소주와 맥주를 한입에 머금으면서 이제는 어엿한 중년이 된 어린 동심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어 다음에 더 올릴게.........)
총동창회 제1회 참석인원
총54명(남27명, 여 27명)
서울: 20명[(수도권17명+부산권3명)남12명, 여8명]
군산: 34명[남15명, 여19명]
명단:
서울 : 김동구, 김성재, 김성철, 김영순, 김영호, 박미자, 성경옥, 엄범섭, 윤정호, 이미석, 이승옥, 이준호, 임미숙, 전형민, 정만순, 채성옥, 황의원, 곽성곤, 이열순, 정한영.(20명)
군산 : 김경숙, 김경화, 김선도, 김성진, 김송자, 김영배, 김정숙(4반), 김정숙(5반), 김정순, 마상님, 박정희, 박철희, 상원규, 서옥순, 손명숙, 심재완, 안미숙, 안중길, 오영화, 유인숙, 이인석, 이희자, 임국태, 임상혁, 임진훈, 정삼용, 조순덕, 조정년, 한기영, 하영희, 한순례, 황귀옥, 송만섭, 이성문 (34명)
동창회비 내역
수입: 회 비 일금 일백이십삼만원(\1,230,000)
서울 : 일금 오십일만원(\ 510,000)[\30,000×17명]
군산 : 일금 칠십이만원(\ 720,000)[\20,000×36명]
찬조금 : 일금 오십삼만원(\ 530,000)
찬조자 : 6명(남 4명, 여 2명)
추가금 : 일금 삼십칠만원(\ 370,000)
합 계 : 일금 이백일십삼만원(\2,130,000)
지출: 식 비 일금 구십이만원(\920,000)[\20,000 팁](훼미리가든)
유흥비 일금 이십만원(\200,000)(강변집)
문화비 일금 일십이만원(\120,000)(찜질방)
수건값 일금 삼십 만원(\300,000)(100장)
식사비 일금 삼만원(\ 30,000)(북어국)
문구비 일금 일만이천육백원(\12,600)
과 일 일금 일만원(\10,000)
잡 비 일금 일만오천오백원(\15,500)
서울팀 일금 일십만원(\100,000)
현수막 일금 삼만원(\ 30,000)
일금 일백칠십삼만팔천일백원(\1,738,100)
수입-지출=잔액 일금 삼십구만 일천구백원(\ 391,900)
누 계 일금 육십구만 오천구백원(\ 695,900)
스폰서
※조 영철 : 최고급 리무진 버스 제공(익산→군산)
김 동구 : 7월24일 점심식사 등 제공(지곡동 조은회집)
김 영배 : 7월 24일 오후 노래방 제공(강변집)
안 미숙 ; 7월 23일 밤 맥주 안주 등 일부 제공(강변집사장님)
유 인숙 : 명찰 공급(70매) 및 팬티 양말 제공(10인분)
토요일이라 나름대로 바쁘고 가족 또는 친지등과의 일정들도 있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남우8회 총동창회에 참석해주신 동창회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찬조금을 내주어 동창회 진행에 도움을 주신 여섯 명의 남여 회원들과 이모저모 스폰서를 해준 다섯명의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비록 이 자리에는 나오지 못했어도 마음만은 나와 있었던 여러 친구들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우리 남우8회가 번성하리라 믿어 의심치 안습니다. 남우 8회 동창회 파이팅!
후기
7월 22일 금요일
오늘은 아침부터 몹시 바쁘게 움직였다. 법률서류 두건을 완성해야 하였고 틈틈이 동창회 회칙을 만들어 인쇄를 해야 하는데 군산에서 조영철에게서 어떤 사람에 대한 출국 여부를 알아봐달라며 급하다고 하기에 첫 부탁이고 내용을 들으니 중요한 것이었기에 그리고 이번 서울 팀들이 내려가는데 고급 리무진 버스를 제공까지 해주는 고마운 친구의 부탁을 마다할 수 없어서 /전화로 그 내용을 알아내기 어려운 현실이라 /직접 법무부에 들어가서 내용을 파악하고 오느라 더 분주했다.
틈틈이 친구들에게서 오는 문자 답변하고 군산에 내려가는데 어려운 상황이 있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친구를 독려하고 상담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삐 시간들이 흘러갔다. 업무가 오후 5시경 끝났지만 나올 수가 없었다. 동창회칙 60부를 만들어 가방에 넣었다. 이틀 전 미리 만들어 놓은 남우 8회 앨범 30부도 같이 넣으니 기존 서류까지 어우러져 가방이 상당히 무거웠다.
21시 좀 지나 사무실을 나와 7호선을 타고 고속 터미널로 갔다. 집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왔으나 심야 고속버스 타고 갈 수 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절뚝거리며 터미널에 갔으나 23시 30분 고속버스뿐이었다. 비빔밥을 사먹고 시간 나는 대로 문자를 친구들에게 보냈다. 군산에 새벽 2시 20분경 도착해 택시로 집에 와 쓰러졌다.
7월 23일 토요일
아침부터 몸이 아파 일어 날 수가 없었다. 회사일과 이러저러한 일들로 과로한 것 같았다. 유 인숙 가게에 가서 준비물 점검도 하고 얘기도 나누어야 하는데 마음뿐이었다. 억지로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 기운을 차리려고 하는데 유 인숙에게서 전화가 와서 가니 한 순례가 와 있었다. 준비물 점검을 하고 수건 60매와 방명록, 새 명찰, 앨범 복사 본 등등 필요 물건들을 실었다. 강 종오와 연락을 몇 번 시도하였으나 허사였다. 최상원이 어제 온다고 하여 놓고도 아니 왔기에 틈이 나는 대로 연락을 취했으나 전화를 받지를 아니하였다. 내 승용차에 실었다.(시간이 없어 다시 더 올릴게...)
임진훈(sunsalim) [2005-07-31 오전 12:31]
하는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야지! 보람된 일을 했으면 묵묵히 아니면 자랑정도에서 그쳐야지! 상대를 문책하고 책망하는 행위가 계속될 경우는 인격의 문제이지! 모든 것들을 다 만족시킬순 없지!
임진훈(sunsalim) [2005-07-31 오전 12:26]
같은 날 태어나 쌍둥이도 모두다 똑같지 아니하고 형제 자매는 더 그렇지!하물며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너무 많은게 당연하지! 서로 다른 것들을 존중해야지! 상대가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아니
성경옥(skyok98) [2005-07-28 오후 3:14]
모두들 고맙고 고생많이 했어. 친구들의 배려덕분에 호강하고 돌아왔다네. 진훈이, 순례도 몸살 안났는지...
이희자(hp7707) [2005-07-28 오전 11:11]
성재, 진훈 많이 욕봤지? 덕분에 행복한 밤이었다네. 순례, 인숙이도 너무 고마워~~~
손명숙(dhrdlrnsk) [2005-07-28 오전 10:57]
진훈이 수고했다 두루두루욕봤다
김영순(syk0778) [2005-07-27 오후 11:18]
진훈 고생많이 했어. 순례도 아프지 않나 .자주가면 안되겠지.
김송자(loveiksan) [2005-07-27 오후 6:22]
어머~ 알게 모르게 우리 곁을 떠나간 친구들이 많구나 또 있는걸로 알고있어, 그리고 너무 수고한다 우리 회장님! 힘내 아자아자 !!
임진훈(sunsalim) [2005-07-27 오후 5:06]
마상님 , 안중길은 찬조자 명단에 들어 있으며 익명으로 하였기에 드러나지 아니했음니!아울러 찬조자 6명과 스폰서 5명 모두 11명의 친구들이 총동창회에 큰 도움을 주었음니!
김성재(namsan60) [2005-07-27 오후 2:22]
진훈선사 고생많이했는데 스폰서란에 23일2차 강변에서 마상님/안중길이 쏜거는 누락이됬구려....항시 수고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