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과 자기 수련
‘에니어그램은 우주적 상징이다.
모든 지식을 에니어그램 속에 집어넣을 수 있고, 에니어그램의 도움으로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 라고 굴지예프는 말합니다.
이 말은 에니어그램을 이해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요즘 에니어그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흔히 성격 심리 테스트 정도로 이해하며, 인성 유형을 찾는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잘 나타납니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은 포괄적으로 우주 전체로서 대우주(macro cosmos)를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소우주(micro cosmos)로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체계입니다.
우주 속에는 수많은 항성들과 태양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 수많은 종(種)과 존재가 있고 생물과 무생물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오직 인간에게만 우주에 있는 모든 원소가 다 함유되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을 이해하는 것과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이나 행동과 삶 그리고 존재에 대하여 이해할 때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이해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인간의 의식을 네 가지 상태로 이해합니다.
첫째 잠자는 상태,
둘째 선잠 깬 상태,
셋째 자기를 의식하는 상태,
넷째 객관적 세계와 우주를 이해하는 상태로 나눕니다.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를 모르는 사람의 상태를 잠자는 상태라 합니다.
‘나’는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나’(many I’s)로 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본성과 인성의 관계도 모릅니다.
만 여섯(6)살 전후하여 형성된 인성 곧 성격이 습성과 습득에 의하여 결정된 격정과 강박충동에 의하여 ‘꼭두각시’처럼 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계처럼 살게 됩니다.
그래서 굴지예프는 이런 상태의 인간은 ‘인간 기계’(human machine)라 하든가 ‘자동화 기계’ 또는 ‘자동 인형’(auto maton)이라 부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기능으로서 지성, 감성, 본능 즉,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과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과 같은 여러 기능 중심이 있어도, 이들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타성적으로 습관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에니어그램을 이해함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이
첫째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요,
그 다음으로는 주어진 기능들 사이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셋째는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개발이나 발달에 대하여 높은 관심을 여러 방면에서 나타냅니다.
그 어떤 면을 보더라도 균형과 조화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의 발달에 대하여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특히 조화와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욱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성공 시대를 사는 사람들로서 돈이나 권력을 잡고 , 지위나 명예를 얻는 일에는 관심이 높은 반면에 사람됨이나 인격 또는 신앙과 영성에 대하여는 관심이 훨씬 떨어지는 경향을 흔히 봅니다.
지식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공부와 연구를 많이 하는 대신에 감성 발달이나 신체 발달에 소홀하기가 쉽습니다.
다른 면에 열성인 사람들 또한 지성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아예 안 하는 경향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불균형이나 부조화의 문제는 도처에서 나타납니다. 내면의 영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실천이나 행동을 소홀히 합니다.
관계의 영성이나 환경의 영성을 강조하는 이들 가운데는 내면의 영성이 부족하기가 쉽습니다. 이를테면, 성서 연구와 기도는 행동과 선교로 이어지며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Thinking), 느낌(Feel-ing), 행동(Doing)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인간의 존재(Being )와 지식(Knowing)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굴지예프가 지적하듯이, 존재와 지식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건망증이요 다음은 히스테리요, 그 다음은 폭력입니다.
사고와 언어의 폭력성에서부터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존재와 사람됨과 영혼의 돌봄 등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며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가운데 지식과 지성을 발전시키며, 정서 발달과 함께 신체 발달을 위하여 운동을 균형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간략하게 살펴보아도 인간 발달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통합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굴지예프는 이를 두고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수련하라’(Work on yourself)고 권합니다. 바꾸어 표현하자면 ‘자기 수련’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에니어그램 체계입니다. 그러므로 에니어그램을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에니어그램 체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에니어그램 수련’을 "굴지예프 수련" (The Gurdjieff Work)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쓴 캐슬린 리오르단 스피드(Kath-leen Riordan Speeth)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굴지예프 수련은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펴도록 전과정 즉, 해방에 이르는 전과정을 가도록 개발된 것이다.
이는 인간 기능의 수많은 측면을 연결시키며, 폭넓은 활동을 개입시키도록 고안되었다.
여기에는 지성적인 연구, 자기 관찰, 나날의 명상, 거룩한 춤 또는 ‘동작’, 협동적 노력 그리고 보통, 예술이나 공예품 또는 특별한 상황에서 하는 손으로 하는 노동 같은 일들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다양한 활동 속에서 항상 생각(T), 느낌(F), 행동 (D)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 한 쪽이 강조되거나 다른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가를 관찰하면서 중심을 잡아서 균형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다양한 기능과 함께 정신이나 심리 상태 그리고 행동이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에니어그램은 영속적 운동성’임을 늘 의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에니어그램은 평면적으로나 정태적으로 아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아니어야 합니다.
따라서 에니어그램 수련을 계속해야만 하고, 에니어그램의 체계와 진리를 삶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기계적인 삶 곧 타성과 습관에 젖어서 나오는 말이나 행동에 저항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계적 고난을 수련에 필요한 고난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자발적 고난으로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수련을 위하여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뜻입니다.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노력을 위해서도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사실상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우주의 법칙입니다.’
에니어그램 수련은 ‘야곱의 사다리’와 같습니다. 상승하기 위하여 의식적인 노력과 의도적인 고난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희생하고, 자신의 거짓스러운 상태를 의식해야 합니다. 분투노력하며 의식을 깨우는 데서 오는 불편과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기계적인 삶이나 타성적인 언행에 저항하며 제동을 걸 때, 내면의 갈등이나 외부의 갈등, 관계나 환경 속에서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길 때, 여기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늘 깨어 있음’과 ‘조화와 균형’을 상기하며 끈기 있게 수련을 함으로써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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