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저의 행동이 경제에서 조금은 바보스런 행동을 하지 안았나 싶어서 이런글을 올림니다 그동안 제가 인생을 살아 오면서 느낀것 그리고 행동한 것에 대하여 한편으로느 후회하고 한편으로는 제가 반드시 인생에서 완결을 해야 하겠기에 이글을 씁니다 요즘 다 돈을 벌려고 다들 아우성 치고 합니다 다 돈을 벌려고 직장에 다니고 그런데 전 개인적으로 과거에 좀 돈을 크게 벌수도 있었으나 제가 넘 자존심이 강하여서 실천을 못하여서 아쉽고 그래서 달성 하지 못 하여서 넘 아쉽고 합니다 이제와 몸이 좀 불편한 상태서 건강도 좋지 못한 상태서 경제 활동을 잘 못하는 상태서 그것을 반드시 완성을 해야 하겠기에 한편으로는 느끼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다들 lmf 를 격었겠지만 저도 마찬 가지 었습니다 불과 10년전에 저는 그때 서울시 보건환경 연구원에 다녔는데 직장은 무척 편했어요 원래 연구원 이라는 것이 그렇게 할일이 많지는 안습니다 서울시 보견환경 연구원은 수질 대기 환경 식품을 검사하는 곳인데 정부로 보면 식약청과 업무가 매우 유사 합니다 원래 직장에 출근 하여서 시간이 많이 남아서 업무 시간에 주식을 하고 그랬습니다 머 월급이 적어서 제가 크게 벌어논 돈이 없어서 은행 대출이죠 한 1억8천이상을 제가 은행 대출을 했을것 입니다 머 여러군데서 했죠 한 10군데서 했을것 입니다 그것도 신용으로 머 애기하자면 망한 은행 대동은행 동화은행 삼성생명 국민은행 평화은행 외환은행 등등을 했을것 입니다 그래서 총 10군데서 1억 8천 이상을 했어요 그래서 직장에 다니면서 imf가 오면서 이자가 한달에 120정도 나갔을 것 입니다 원래 신용으로 주식을 많이 거래 했는데 이게 장이 활황일때는 상관 없지만 장이 폭락으로 접어들면 원금은 커녕 증권사에 돈을 물어 줘야 합니다 맨처음 제가 주식을 접하게 된것은 세종문화회관 다닐때 했는데 그댄 순전히 월급은 그야말로 적었지만 저돈 100%었어요 거기서 맨처음 하여서 불과 2개월에 원금에 100%이상도 벌고 하였으나 돈을쉽게 버니 그 이후로 투자금을 늘린게 화근 어었습니다 거기서 서울시 보건환경 연구원 와서 이곳 저곳 대출을 많이 하여서 왕창 말았 먹었습니다 다 은행 대출은 대부분 보건환경 연구원서 생긴것 입니다 직장에 있는데 은행서 대출세일 오잖아요 그것을 아마 대부분 하였을 것 입니다 그래서 은행빚이 늘어나고 그로인한 이자 비용을 무시 할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1998년 무렵이었지요 물론 번것은 일부 은행에 이자주고 은행애 적금으로 150을 들었는데 imf가 실제 닥쳐서 그동안 일부 들어 두었던 적금과 보험사와 모든것 해약을 안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라도 은행에 빌린돈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죠 그때 어미니의 피같이 눈물이 서린 돈도 1000만원을 은행에 갚아줘고요 그것도 여의치안아서 직장을 그만 두고 말았는데요 참 지금 생각하면 좀 후회가 되고 그럽니다 있는돈과 집에 피같은돈도 1000만원 이상을 갔다가 갚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빚이 1억정도 있었어 1999년경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물론 보견환경 연구원서 직장 동료들과 카드로도 2000만원정도 잃었을 것 입니다 일 끝나고 근처 식장서 포커로 날린돈 얏든 1999년 말경 아시아 몇몇 국가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신청 했잖아요 우리는 정확히 1998년 11월 26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장을 1999년 12월경 직장을 그만 두기로 제 마음적으로 결심을 했습니다 도저히 5-6군데 은행이 월급을 차압을 들어 올것 같아서 다니질 못할것 같고 직장을 그만 두기로 내부적 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그때 선택 할수 있었던 것은 딱 두가지 었어요 하나는 시골서 맨처음 올라와서 창호일 하는것과 다른 하나는 미국에 취업으로 가는것 입니다 기초 영어는 할수 있으니 가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경 1월에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퇴직금 이라고 해야 4500정도 받았는데 4000천 정도 은행에 빚갚고 실제 제가 만질수 있는 돈은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그때 퇴직금 나오는 기간이 7개월이 걸렸고요 그때 판단은 했습니다 2001년정도 되면 주식이 폭등이 오겠구나 하고 판단은 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빚을 갚지안고 은행이 사기로 고소를 하든 말든 지방에 변두리에서 월세방을 내어서 승부를 보려고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게 정말 후회 스럽더라 고요 물론 퇴직금은 대부분 빚을 갚는데 썼습니다 실제 2001년부터 코스닥에 100배 이상 나온 종목이 많이 있습니다 날마다 상한가 였져 그래서 정말 그때 은행에 돈을 갚지 안고 승부를 봐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게 정말 아쉬웠어요 판단은 했어요 2002년부터 주식이 본격 상승 하겠구나 하고요 실제 우리나라 주가가 237을 지수 imf때 찍고 1150까지 갔습니다 코스닥은 100배 이상 나온종목이 무척 많았고요 제 판단되로 주식에 승부를 그때 시골 변두리 방에서 승부를 벌었으면 최소 5억 이상은 버는데 이넘의넘 착하고 정직하여서 은행에 빚을 갚아 다는게 좀 후회 되네여 직장을 그먼 둔 뒤로 제가 다음서 카페 운영 하면서 제 자신은 그렇게 돈이 없어도 어떤 전문가 못지안게 해 주었었고 다음서 공식 애널을 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제가 거절 했다는 것이 넘 후회 스러워요 그때 다음 애널이 권송주 전시가된장아이 등 5명 선발 했는데 말입니다 전문가로 활동하면 자기 자본이 별로 없어도 재기 할수 있는데 말입니다 다음 카페 운영 하면서 대구분 하고 저하고 운이 잘 맞았습니다 대구에 사는 서 정철이라는 분이 3000만원 으로 13억을 벌었는데 종목은 씨오택으로 10배를 벌고 카스코로 3배벌고 그래가지고 총 5개월에 13억을 벌었습니다 이친구가 돈을 벌게 제가 어느정도 일조를 했습니다 이친구가 (나이는 38)스 다녔는데 큰돈을 벌어도 항상 마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항상 저에게 형님 오십시요 제가 돈과 모든것 마련 했습니다 그래도 전 제 자존심 때문에 거절 했어요 이친구한테 800만원(3000이상은 주겠다고 했는데 ) 받았습니다 2006년경 그런데 이 친구도 번돈을 상당히 날렸습니다 사이버상에 날렸고 마음이 착하여 많은분에게 주었고 그랬습니다 그때 같이 그친구하고 했었더라면 그친구가 날리지도 안았을 것이고 당하지도 안았을 것인데 그 넘의 자존심 때문에 같이 못했다는것 이친구는 지금은 안산에 있는 중소기업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도 자주 연락 합니다 아마 인연으로 따지자면 고향 친구나 형제간 보다 낫을수도 있지요 사실 고향 친구나 형제간도 자기가 실제 어려울때 도움을 주는분 그렇게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 도움을 줄수 있는분도 별로 없고 실젠 대부분 거절 하지요 그래서 참 이친구 하고 같이 그때 대구서 같이 못했다는게 좀 후회가 됨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제가 건강이 약간 안좋은 관계로 활동도 경제 활동도 자주 못하고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날고 긴다는 사람도 무너지고 간다는 선물과 옵션 시장서 꼭 우니라라 최고가(실력은 좀 가지고 있어요) 되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넘 이기적 이지 못하고 정직하다는 것이 후회 스러울때가 좀 있네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