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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시 판 : 좋은글
번 호 : 50
제 목 : 정신없는 도울 김용옥
글 쓴 이 : 은혜
조 회 수 : 0
날 짜 : 2004/07/21 12: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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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좋다오(http://cafe.daum.net/ilmak
게 시 판 : 보물자료/칼럼/설교자료
번 호 : 707
제 목 : 정신 없는 도올 김용옥
글 쓴 이 : (일맥)
조 회 수 : 35
날 짜 : 2004/07/04 17:49:27
내 용 :
도올 김용옥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과장법을 무리하게 사용한다"
텔레비전 강의를 통해 기독교를 비판했던 도올 김용옥에 대한 기독교적 연구가 발표됐다. 문화선교연구원(원장 임성빈)이 최근 '도올 노쟁과 기독교의 대응'이란 문화 포럼을 개최한 자리에서 이상훈 교수, 박영근 박사, 배요한 목사 등은 도올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정신문화연구원 이상훈 교수에 대한 글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요약 발췌했다.
△이상훈 교수=도올은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노자와 공자 사상을 빌어 부인한다. 그의 하나님은 '목적'과 '섭리'와 상관없는 '무목적'과 '우연' 혹은 '비인격적' 어떠함이다.
또한 공자를 소개하면서 "공자는 말한다. 신의 존재는 오로지 내가 제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만 확보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는 일방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의 실존의 유무와 상관없이 고존하는 불감의 존재가 아니라 나와 더불어 감응함으로써만 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도올의 예수 이해는 대부분 '인간 예수'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도울은 다음과 같은 언사로 기독교인들을 자극한다. "…기독교인들은 동시에 분명하게 나의 질문엘 대답해야 한다.
'예수는 방귀를 뀌었습니까?'. 그는 공자, 소크라테스의 역사적 실존성을 이야기하면서 '역사적 예수' 문제에 접근한다. 그런데 그같은 역사적 예수의 질문을 위해 그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선택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는 '…죽어도 죽지 않고 부활하는 로고스였던지 간에…'라는 어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에 대한 성서의 기록을 '로고스의 부활'이라는 철학적,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대신하고 있다.
또한 예수의 탄생을 '예수처녀탄생설화' 등의 표현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동정녀 탄생을 하나의 '가설'로서 이해한다. '인간 예수'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해 그에 대한 언어적 표현은 무척 거칠다.
"한마디로 예수의 말은 너무 과격하다. 실천 가능이 없는 무지막지한 얘기를 지껄인 것이다"고 말하면서 "예수의 언급은 물질적 부의 부정과 정신적 선업의 긍정이라고 하는 어떤 심신 이원론적인 시각에서만 부를 바라보게 만드는 오류를 조장시켰다는데 있다"고 예수의 오류에 대해 논박한다.
도올의 예수는 따라서 '비신화화' 되야 할 그 무엇이다. "기독교인들은 너무도 십자가의 문자적 의미에 집착하고 그 상징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예수를 신격화하고 절대화하고 실체화하고 역사화하고 믿으믜 대상화 해 버렸다. 우리의 믿음은 십자가라는 상징에 있는 것이지, 예수라는 역사적 실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는 하늘나라로 승천해야 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땅도 하늘도 사라진 무극의 자리로 되돌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는 진정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도올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주로 '구약의 하나님'이라는 창문을 통해 정의한다. 도올은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만 사랑한다. 그래서 애굽인들의 장자로 모조리 죽이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킨다. 옳
다. 그렇다. 너희들이 그 약속을 어길 때 나는 너희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리라! 나의 이름은 질투하는 야훼, 곧 질토하는 신이다."라는 출애굽의 기록을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원용한다.
그리하여 도올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조선의 백성들이여! 21세기의 개화된 민주의 백성들, 과학의 백성들이여! 질투하는 편협한 하나님을 믿겠는가? 소리없이 스스로 그러하신 너그러운 하나님(노자의 '도')을 믿겠는가?" 도올은 '기독교'를 '서양문화' 혹은 '서양종교'와 동일시한다.
도올은 동양 고전은 상대적으로 서양의 학문 전통과 서양의 문화 전통에 대한 변증법적 대안으로서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서양의 문화 전통을 언급하면서 그 문화의 사상적, 철학적 기반으로 '기독교'를 언급한다.
그의 '노자와 21세기'에 이같은 인식을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그것을 우리는 개명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의 학문을 배우고, 서양의 종교를 배우고, 서양의 예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을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신앙하고, 자본주의를 가속화시키고, 민주주의의 갈망했다"라고 말한다. 도올은 동양철학의 고전, 즉 노자와 공자 등이 갖는 '지엄한'(?) 가치를 변증하기위해 기독교 경전은 '성서'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사용한다.
"아주 평범한 진리를 설하고 있지만 너무도 그 뜻이 깊고 절실하여 평소 생활하는데 금언이 되는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지혜로운 말씀들을 다 합쳐도, 결국 이 한 장에 담긴 지혜만 우리가 실천할 수 있다면, 그 지혜려운 말씀들을 다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도올은 기독교의 세계관이 '배타적'이며, 따라서 '협소한' 의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도올은 기독교를 윤리적 2원성을 기본으로 하는 '얄팍한 사유'를 가진 종교라고 치부한다.
그래서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 그래서 죄는 너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저주하노라! 그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종교라고 취급한다.
그래서 축구장의 한 감독이 '자신의 승리를 위해 상대방의 패배를 기도하는 행위'를 공중 앞에서 보이는 모습을 예를 들어 '편당적 가치'에 익숙한 오늘의 기독교인의 한 전형으로 꼽고 있다.
도올은 기독교가 "인간을 일상적 삶에서 유리시키고 인간을 종교적 질곡 속으로 빠뜨리는 위험을 갖게 한다"고 주장한다. 도올은 기독교도 역시 '조상숭배'를 일삼는 종교의 한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이같은 자신의 뿌리를 망각한 채 한국전통의 조상제사를 금하는 것은 '일상의 삶에서의 유리'라는 행태를 조장하는 결과를 빚는다고 주장한다.
도올은 기독교를 비롯한 자신에 대한 사회적 비판 시각을 "예수에 대한 십자가 처형'과 동일시하고 있다. "나의 텔레비전 강의는 죽은 심령을 살려내고, 그동안 육신의 대지 속에 잠들어 있었던 많은 깨달음의 씨앗을 일깨웠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곧 이 시대의 상식과 위배되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나쁜 놈'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 땅의 식자라 자처하는 우매한 사람은 나를 죽이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라고 자평하면서 자신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마치 무고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과 같은 것이며 또한 동시에 '그린마일'의 주인공 존 카피를 사형에 처하는 행위과 같다고 동일시 한다.
=도올의 기독교 이해에 대한 논평
도올은 성서와 기독교 세계가 자신의 기본적 전제로서 가지고 있는 '초월적'이며 '인격적' 실재로서의 하나님에 대하여 자연신론 혹은 내재적 신론으로 대신한다.
노자의 가르침과 함께 도올은 하나님의 인격성을 부인한다. 하나님의 인격적 실재에 대해어 '도가도비상도'의 노자적 잣대를 적용할 때, 모든 존재의 근원에 대한 최종적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의 실재성은 또 그 너머의 실재를 전제함으로서만 성립하는 그 무엇이라는 논리로서 모든 피조물의 존재적 기반으로서, 무로부터 만물을 내신 창조의 하나님을 거부한다.
도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닌, 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격인 '성자 하나님'이 아닌 단지 한 '인간'으로 이해한다. 이같은 이해는 필연적으로 예수의 신성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왜곡한다.
'예수는 때로 실수를 범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인물'이라는 식의 인식은 기독교적 신앙의 체계 속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불경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서가 아닌 단지 '상징성'으로 해석하는 도올의 의도에 대하여 기독이들은 찬동할 수 없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어떠한 상징이나 또는 형이상학적 이론(무극으로의 복귀'이 아닌, 문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이뤄진 역사적 사건'이다.
도올은 '하나님'을 인용하되, 의도적으로 구약에서 언급되고 있는 '질투의 하나님'이란 표현을 확대 해석해 자의적으로 '저주를 퍼붓는 하나님'이라는 식으로 증푹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계약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충성과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성서의 권위를 비하하는 발언은 동기의 그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도올은 너무나 종종 심한 '과장법'을 무리하게 사용한다.
노자의 강의 때는 '무위'의 가치를 지상의 지고의 선으로 여기다가, 논어를 강의할 때는 다시금 '유위'의 가치를 목청껏 높인다. 이같은 일관성의 부족은 그의 강의의 외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쉽게 만회할 수 없는 치명적 결손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