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소개” 전체 목차 I.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유일한 위로의 복음 (43호) 1. 하이델베르크의 종교개혁
2. 하이델베르크에 온 세 사람
3. 팔쯔 교회의 신앙고백으로서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서문
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출판과 상반된 반응
6.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들
II. 독립개신교회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4호) 1. 교회의 진행과 신앙고백서의 출판
2. 사도신경의 번역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번역 원칙
4. 독립개신교회의 신앙고백
5. 새로운 출발점
III. 요리문답 교육과 요리문답 설교 (이번 호) 1. 종교개혁과 요리문답 교육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교육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설교 4. 살아 있는 고백서: 오래된 새것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들은 극의 주제나 구성보다는 영상(映像)과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전보다 많이 줄었기 때문에 한국의 인기 드라마가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쉽게 “한류(韓流) 열풍”을 일으키는 듯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이 시대에 있는 교회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성’(靈性) 혹은 ‘열린 예배’라는 이름으로 이미 교회들 안에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하고서, 전파되는 말씀의 내용보다는 조명과 음향 그리고 감성적인 음악으로 사람에게 호소하고 있다. 말씀만 전하는 교회는 시대에 뒤떨어졌을 뿐 아니라 ‘닫힌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간주되는 실정이다. ‘요리(要理)’보다는 ‘요리(料理)’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 시대에 요리문답 교육과 요리문답 설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인기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중요한 추동력은 요리문답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주제를 심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미각(味覺)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종교개혁과 요리문답 교육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말씀은 항상 진리이다(전 1:9). 조명과 음향으로 청중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일은 이미 중세에도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고딕 성당은 은은한 빛으로 가득 차 있고, 이층에서 부르는 성가대의 노래는 천장에서 반향(反響)되어 아래로 울려 퍼졌다. 로마 교회는 조명과 음향으로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종교심을 부추겨서 어떤 사업들을 했지만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딕 성당의 은은한 빛은 진리를 가리는 어둠이 되어 버렸다.
종교심은 잘 발달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이러한 교회에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었고, 이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개혁자들은 중세 동안 가려졌던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확신 가운데 그들의 신앙을 고백했다. 밖으로는 제국의 황제와 군주들 그리고 로마 교회를 향해 고백했고, 안으로는 요리문답의 형식으로 자녀들을 가르쳤다.
중세에는 미사를 중심으로 예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녀 교육이 경시되었으나 종교개혁과 함께 언약의 자녀를 가르치는 일이 바르게 강조되었다. 개혁자들은 새롭게 발견한 옛 신앙을 요리문답으로 표현하여 언약의 자녀를 가르쳤다. 루터는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교인들이 성경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것을 보고 십계명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에 대한 자신의 설교를 개정하여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을 작성했다(1529).
칼빈도 『제네바 요리문답』을 만들어 교인들과 그들의 자녀를 가르쳤다(1537, 1541/42).1) 칼빈은 제네바 교회가 신앙고백적인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기독교 강요』 초판(1534)을 중심으로 제1요리문답을 작성했다(1537). 그는 제네바 시의회의 반대에 봉착하여 제네바를 떠나 스트라스부르에서 사역했는데(1539-41) 제네바 시의회가 다시 그를 청빙했을 때 그는 권징권이 교회에 있음을 인정해 줄 것과 요리문답을 가르치도록 허용하는 것을 청빙의 조건으로 삼았다. 그는 제네바에 돌아온 후에 곧 바로 제2요리문답을 작성했다(1541-42). 따라서 우리는 요리문답 교육이 복음의 강설과 함께 개혁의 추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마 교회는 요리문답의 힘을 빨리 간파했다. 개혁에 반대하기 위해서 열린 로마 교회의 트렌트 종교 회의(1545-63)는 그 내용을 요리문답으로 정리했다. 1564년에 간행된 『트렌트 요리문답』(the Catechism of Trent)의 서문에서는 “권위 있는 가톨릭 요리문답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단자들이 [개혁자들이, 필자] 이단적인 사상과 불경건함을 쉽고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다른 전략을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보기에는 개혁자들이 “수많은 작은 책자들을 만들어 경건함을 흉내 내면서 자신들의 오류를 감추고 단순한 사람들의 의심하지 않는 마음을 놀라울 정도로 쉽게 속인다.” 2) 따라서 그들도 권위 있는 가톨릭 요리문답인 『트렌트 요리문답』을 작성했다. 또한 신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했는데, 예수회(Jesuit)가 그 일에 앞장섰다.3)
개신교의 요리문답이 금서 목록에 들기도 했으며 유럽판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친(親) 로마적인 권력자가 팔쯔에 등장하면 그들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찾아 불사르기도 했으며 자진 신고 기간이 지나서도 그 책을 소지하고 있는 자에게는 한 권당 10플로린(florin)의 벌금을 징수했다.4) 개혁의 반대자들이 요리문답을 이렇게 강하게 탄압한 것은 요리문답이 개혁의 추동력이었음을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당시에 약 60여 개의 요리문답이 작성되었다. 그중에 『취리히 요리문답』(1534)과 『엠덴 요리문답』(1554)도 중요한 문서로 언급할 수 있는데, 역사를 통해 검증된 대표적인 것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다.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처음 작성되었을 때부터 주일 오후 예배에서 청소년들에게 ‘요리문답 교육’의 교재로 사용되었다. 부모들도 함께 참석했는데, 처음에는 암송을 점검했고, 이어서 문답의 뜻을 가르치다 보면 ‘요리문답 교육’은 ‘요리문답 설교’로 끝났다. 1618년의 도르트 대회에서는 요리문답 설교로 청소년을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결론짓고 청소년의 ‘요리문답 교육’과 주일 오후의 ‘요리문답 설교’로 나누었다.6)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교육
1) 요리문답 교육
요리문답(catechism)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카테케오’(κατηχεω)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는 ‘완전히 울리다’, ‘메아리치다’는 뜻인데 여기에서부터 기본적인 것을 복창(復唱)하는 것, 묻고 답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는 ‘문답식 교육 방법’ 혹은 ‘가르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나 그리스 철학자들도 ‘문답식 교육 방법’을 사용했다. ‘카테케오’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도 나오는데,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를 특별히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행 18:25; 21:21, 24; 고전 14:19; 갈 6:6).7)
교회에서 문답식 교육 방법을 택한 것은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배우는 사람의 형편을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공적(公的)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이해력이 높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형편에 맞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것을 가르쳤다. 간단한 질문과 대답의 방식으로 신앙의 체계를 체득하게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으로 하여금 성경을 찾아보고 그 문제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답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요리문답의 답은 단순히 암기해서 대답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대답하는 사람의 신앙고백이 된다.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면서 학생으로 하여금 신앙을 고백하도록 이끄는 데에 요리문답 교육의 묘미가 있다.
그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좋은 예가 예수님의 문답식 교육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신 후에 그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묻고 이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셨다. 이것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고백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마 16:16).
따라서 요리문답은 그것을 다 외우면 마칠 수 있는 어떤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다. 요리문답은 문답식 교육 방법의 재료이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데에 이르러야 한다. 신앙고백이 없이 외우는 것은 앵무새가 흉내 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을 작성한 목사들은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방식으로 배우고 앵무새처럼 대답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을 염려했다.8) 요리문답은 신앙고백을 위한 디딤돌(stepping stone)인데 잘못하면 걸림돌(stumbling stone)이 될 수 있다. 요리문답을 작성한 분들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참다운 고백에 이르게 하려 했고, 기계적인 암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교육 - 세례반(盤)에서 성찬의 상(床)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청소년의 교육을 위한 것으로 작성되었다. 이것은 책의 표지에서부터 분명히 표시되었다. 표지는 “팔쯔(Pfalz)와 그 선제후령(選帝侯領)의 교회와 학교에서 가르친 요리문답 혹은 기독교적 교훈”이라고 되어 있다. 프리드리히 3세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서문”에서도 청소년 교육이 요리문답 작성의 중요한 동기였음을 표명했는데9) 1563년 11월에 간행된 팔쯔의 『교회법』에서는 “요리문답”에 대해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요리문답은 기독교 교훈의 중요한 부분을 간단하고 단순하게 말로 가르치는 것이다. 청소년들과 초신자들은 그들이 배운 바를 이 문답으로 묻고 대답할 것이다. 기독교 교회가 세워진 직후부터 경건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집과 학교와 교회에서 주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기를 힘썼다. 우리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요리문답 교육을 속히 도입해야 할 것이다.……이스라엘 사람의 자녀들이 할례를 받은 후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 거룩한 표의 신비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그들이 받은 세례에 대해서와 참된 기독교적 믿음과 회심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주의 성찬에 참여함을 허락 받기 전에 모든 기독교 회중 앞에서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도록 하기 위함이다.10)
『교회법』에서 밝힌 것처럼 요리문답 교육의 목적은 성찬에 참여할 정도의 신앙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팔쯔의 『교회법』에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세례 예식문과 성찬 예식문 사이에 인쇄되었는데, 이것은 요리문답 교육이 ‘세례반(盤)에서 성찬의 상(床)’으로 향한 과정에 있음을 나타낸다.
요리문답 공부를 하고 회중 앞에서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한 후에 성찬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자녀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눈에 보이게 나타내는 일이다. 유아세례 서약을 한 부모는 언약의 자녀에게 세례의 내용을 가르쳐서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됨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었다. 부모는 요리문답을 통해 신앙의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서 자녀가 삼위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의 회원이 되도록 해야 했고, 그 일을 위해서 교회의 지도를 받고 학교와 협력해야 했다.11)
1618년에 열린 도르트 종교 회의는 요리문답을 청소년에게 가르치는 일을 교회와 학교와 가정에서 각각 담당하도록 결정했다. 언약의 자녀를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세 기관이 함께 협력하는 일종의 ‘삼각형 모델’인 셈이다. 부모가 책임을 지지만 학교와 교회도 이 일에 함께 참여하여 언약의 자녀를 삼중적으로 가르치게 했다.
이러한 전통에 서 있는 대륙의 개혁교회에서는 지금도 12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들이 평일에 목사에게서 요리문답을 반복해서 배운다. 요리문답과 더불어 교회가 택하는 다른 신앙고백서를 배우고 교회의 역사도 배운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있는 언약의 자녀들이 공적 예배와 요리문답 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교회의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인생과 세상을 보는 눈을 형성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교회 안에서 찾는다. 수 년 동안 요리문답을 목사에게서 배우면서 목사와 요리문답 학생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것도 교회의 진행에서 큰 재산이다.12)
요리문답을 공부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성인으로서 세례를 받고 교회에 가입하려는 사람이나 다른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에 가입하려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요리문답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것을 배운 사람이 교회의 강설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13) 마틴 루터 선생은 『소요리문답』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요리문답을 모르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수 없고, 성찬의 상에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이것은 마치 장인(匠人)이 그의 직업의 법과 규칙을 모르면 쫓겨나고 무능한 자로 여김을 받는 것과 같다.”14)
성찬의 상에 참여하는 것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예표하는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랑 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고백한 자만이 참여해야 한다. 교회에 가입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언약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혼인의 언약 전에 상대를 알아 가는 것처럼 교회에 가입하기 전에 교회의 신앙고백을 통해 교회를 알고 고백하는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 물론 요리문답반을 마쳤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교인이 된다고 생각하면 교조주의에 빠지는 것이고, 요리문답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는 정신에서도 멀리 떠난 것이다. 요리문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배운 것을 고백하면서 교회에 들어와야 한다. 요리문답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15)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설교
1) 요리문답 설교의 전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또한 요리문답 설교로도 정착되었다. 요리문답 교육이 교회가 믿는 도리의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서 공적 신앙고백을 하고 성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면, 요리문답 설교는 문답과 증거 성구를 안내로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차서(次序) 있게 배우고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며 예배하는 데에 강조점이 있다.
개혁 교회에서는 주일에 두 번 예배를 드리는데 오전에는 성경 본문을 강해하는 설교를 하고 오후에는 요리문답을 도움 삼아 주제별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신앙을 고백한다. 말씀을 배울 뿐 아니라 요리문답으로 신앙을 고백한다는 점에 요리문답 설교의 장점이 있다.16) 따라서 요리문답 설교는 단순한 교리 교육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언약의 교제로 이끌면서 신앙의 풍요함을 깨우치는 것이다. 요리문답은 그 주제에 대한 교회적인 해명과 고백이 되기 때문에 그 본문을 읽지만, 요리문답 본문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해명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 프리드리히 3세가 신성 로마 황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요리문답에 요약된 성경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사람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전통에서 요리문답의 증거 성구들이 늘어났고 설교의 방향을 교회적으로 제시한다. 요리문답은 교회의 신앙고백이고, 이 고백을 통해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다.
요리문답 설교는 고대 교회의 십계명과 주기도문에 대한 설교에서부터 그 전통을 찾을 수 있다. 350년 경에 예루살렘의 키릴(Cyril of Jerusalem)이 사도신경을 설교했다는 기록이 있고, 어거스틴도 사도신경과 주기도문과 십계명에 대한 책을 썼다.17) 개혁의 시기에는 루터나 칼빈도 자신들이 작성한 요리문답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런데 요리문답을 52주로 나누어 주일 오후 예배에서 설교하도록 한 것은 팔쯔에서 시작된 새로운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요리문답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설교의 본문으로 사용하다가 몇 달 후에 간행된 팔쯔의 『교회법』에서는 요리문답을 52주로 나누어 인쇄하고 그 순서를 따라서 설교하도록 확정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설교는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 화란에서는 1566년 암스테르담의 목사 피터르 하브리엘(Pieter Gabriel)이 주일 오후 예배에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1568년, 1571년, 1574년, 1586년 총회들에서 요리문답 설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몇 차례 결정을 내렸다. 이 연장선상에서 1618년의 도르트 대회는 목사가 주일 아침에는 본문에 대한 강해 설교를 하고 오후 예배에서 요리문답 설교를 하는 것을 『교회법』의 한 조문으로 확정했다.
2) 요리문답 설교의 유익
요리문답 설교를 교회에서 확정한 것은, 첫째, 요리문답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강해 설교가 좋은 것이지만 본문을 택할 때 목사의 관심사나 한계, 그리고 회중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한된 주제의 성경 본문만을 가르칠 위험이 있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이나 거짓 증거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고 지나기 쉽다. 요즈음처럼 성(性)이 상품화된 시대에 간음에 대한 설교를 몇 년이 지나도 듣지 않고 지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을 요약한 요리문답을 설교하면 목사 개인의 한계와 성향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부분을 고루 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요리문답 설교는 바울 사도가 이야기한 ‘하나님의 모든 도(道)’를 전하는 좋은 방법이다(행 20:27). 말씀의 사역자는 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 책무가 있는데(마 28:19) 요리문답은 이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18)
둘째, 요리문답 설교는 신자의 생활에 큰 유익을 끼친다. 요리문답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치우치지 않게 배운 사람은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특히 죄를 무서워하고 피하며 신령한 싸움을 잘 수행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배운 것은 장성한 후에도 그의 길을 지도한다(잠 22:6).19)
셋째, 교회는 진리 안에서 통일되기 때문에 요리문답에 요약된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통일성에 기여한다. 종교개혁 당시에 개혁자들은 교인들을 무지한 상태에 버려둔 로마 교회뿐 아니라 그에 대한 반발로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개인적인 해석과 체험을 강조하는 신령주의자나 방종주의자와도 논쟁을 벌였다. 이때 교회적인 해석과 체험의 산물인 요리문답은 성경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나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참된 통일을 이루는 데에 사용되었다.20)
요리문답을 매년 반복하여 설교하지만, 해가 지나면서 요리문답에 함축되어 있는 신앙의 도리를 가능한 한 더 깊고 풍부하게 가르쳤고, 묻고 답하는 것을 통해서 기본적인 신앙을 한 목소리로 고백하고 나왔다. 이러한 신앙고백의 기초 위에서 교회는 통일되며 시대의 사조에 흔들리지 않고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빛을 비추며 전진해 왔다.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 종교 회의 (1618-19)
요리문답 교육과 설교에 대한 반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반대의 골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사람이 작성한 고백서를, 즉 인간의 말을 설교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요리문답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다. 요리문답을 성경에 대한 교리를 ‘사람이 조직’한 것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면 성경에서 제시한 방식대로 ‘교훈을 요약’한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진다. 요리문답은 특정한 신학적 입장을 따라서 어떤 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에 대해서 해명한 것이므로, 우리는 요리문답을 사람의 말이라고 격하시키기보다는 성경적 교훈의 핵심을 ‘요약한 것’이라고 공정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작성된 지 40-50년이 지나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오직 성경’을 주장하며 요리문답 설교를 비판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신조를 가르친다는 것이 반대의 요지였다. 그러나 반대의 실제 이유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하나님의 은혜를 피할 수 없게 가르치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르미니우스의 지도를 받아 가면서 45개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하우다(Gouda) 요리문답을 작성했다(1607). 성경의 교훈을 요약하기보다는 좀 더 직접적으로 성경을 인용하면서 작성한 요리문답이었다. 그러나 성경을 직접 인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적인 타락과 전적인 은혜에 대한 교훈은 살며시 제외시켰다. 하우다 요리문답은 1610년의 항명서(Remonstrance)의 기초가 됐다.21) 요리문답 설교에 대한 그들의 반대는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주장을 감추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도르트 대회(1618-19)에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오류를 성경적으로 반박했을 뿐 아니라 요리문답 설교의 타당성도 확정했다. 도르트 회의에는 대륙의 다른 나라들과 영국의 대표들도 조언자(adviser)로서 참석했는데, 그들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성경과 완전히 일치하고 다른 신앙고백서와 조화를 이룬다고 말하면서 이 요리문답을 다음 세대의 젊은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가르칠 것을 조언했다.22)
(그림 설명) 도르트 종교 회의 (1618-19)
이 조언을 받아들여 작성된 도르트 교회법 68조에서는 이렇게 규정했다. “목사는 어느 곳에서든지 통상적으로는 오후 예배에서 매 주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요약되어 있는 기독교적 교리의 핵심을 설교할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나눈 요리문답의 구분을 따라서 일 년에 한 번씩 마치도록 설교할 것이다.” 23) 1618년의 결의는 1568년 이후의 네덜란드 개혁교회 총회들의 결의 사항을 유럽의 다른 개혁교회들과 함께 재확정한 것이다. 개혁의 반대자들은 개혁 신앙이 보존되고 전파되는 핵심에 요리문답이 있음을 간파하고 그것을 비판했으나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요리문답 설교의 중요성이 국제적으로 확인되었다.
4) 요리문답 설교에 대한 복음주의적인 신학자들의 반대
요리문답 설교에 대한 비판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뿐 아니라 복음주의적 신학자에게서도 나왔다. 널리 읽히고 있는 로이드 존스 목사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요리문답서의 기능이란 궁극적으로 설교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리문답은 설교의 정확함을 보호하고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그들의 성경 해석의 올바른 진로를 표시하는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바로 그것이 신조와 요리문답서의 주요 기능이므로 여러분 앞에 늘 열려진 성경 자체로부터 말씀을 직접 증거하지 않고 거듭해서 매년 요리문답서에 의존하여 설교하는 것은 분명히 그릇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보다도 성경에 향해야 합니다.24)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의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도날드 맥클라우드(D. Macleod) 목사는 요리문답의 중요성과 유용성에 대해서는 잘 밝혔지만, 다음과 같은 단서를 붙인다.
비록 신조들 자체에도 오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신조의 구성과 균형과 주제 선정은 성경의 것과 같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들은 문맥 - 성경의 상황 - 에서 추출한 교리를 제시하며, 따라서 그 실질적 적실성을 모호하게 하거나 그것을 아예 적용하지 않도록 유혹한다.25)
요리문답 설교에 대해서 복음주의적인 신학자로부터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으므로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반론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좀 더 원칙적인 것으로서 요리문답이나 신앙고백은 성경과 다르고 성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이며 성경에서 추출한 교리이므로 성경 자체를 설교해야 하며 요리문답 설교를 하는 것은 그릇되었다. 둘째는 현실적인 것으로서, 신앙고백이나 요리문답이 오류를 방지하고 성경으로 안내하는 역할은 하지만, 하나의 틀을 제시하며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적용하는 것이 약하다. 특히 매년 반복해서 설교하기 때문에 생동감이 떨어진다.
두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논의한 것으로도 대답이 되겠지만, 요리문답 설교와 관련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설교는 성경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요리문답 본문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할 때부터 프리드리히 3세가 이 사실을 강조했다. 요리문답에 많은 성구들이 인용된 것도 설교를 위한 것이었다. 요리문답 본문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설교한다는 명제에는 동의하지만26)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성경 구절을 읽고 설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경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사가 성경을 읽고 나서 자신의 평소 생각을 이야기한다면 그가 성경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성경적인 설교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엄밀히 생각하면, 목사의 강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명’이고 교회의 신앙고백인 요리문답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적인 ‘해명’이다. 비록 목사의 강설과 요리문답의 내용에 더 채워질 것이 있지만, 성신께서 이것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진리를 가르치신다. 따라서 요리문답은 성경에 대한 인간적인 해명이고 목사의 강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은 다소 단순한 이분법일 것이다. 신앙고백은 성경의 교훈을 ‘요약’한 것이고 지도와 같이 ‘안내’하는 것이므로 대립되지 않는 것인데 두 가지를 대립시켜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27) 신앙고백과 성경을 ‘구분’할 필요는 있으나 두 가지를 ‘분리’하여 신앙고백을 인간의 이해로만 이야기하고 ‘오직 성경’을 주장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오직 성경’을 주장하며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마틴 루터는 요리문답을 “요약된 말씀”(verbum abbrevintum)이라고 불렀다.28)
성경을 강조하고 성경 본문을 설교해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찬동하지만, 성경과 신조를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할 뿐 아니라 교회의 문을 다른 방향으로 열어 둘 소지가 있다. 즉 ‘비신앙고백적’ 교회로 나아갈 수 있는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교회적인 신앙고백을 옆으로 치웠기 때문에 사사로운 해석이나 경험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많다. 교회적인 틀을 버리고 개인적인 틀을 제시하기 때문에 성경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더 큰 혼란에 떨어질 수 있다.29)
둘째, 신앙고백이 이단적인 주장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바르게 인정했으나 주지주의로 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에 부분적인 타당성이 있다. 매년 같은 주제로 설교하면 자칫 판에 박힌 ‘지루한 설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반복하는 것이 반드시 지루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찬을 매년 여러 차례 시행하지만, 우리는 ‘지루한 성찬’이라고 하지 않고 그때마다 구속의 은혜를 깊게 배운다. 사도 바울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반복하여 쓰면서(빌 2:18, 28; 4:4)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말했다(빌 3:1). 사도는 같은 진리를 여러 번 말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빌 3:18).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은혜를 바르게 깨달은 자에게는 매년 여러 번 시행하는 성찬이 지루하지 않지만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한 번의 성찬도 지루할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내용을 바르게 배우지 않은 사람은 요리문답 설교가 지루할 것이라고 ‘미리’ 판단한다. 그러나 요리문답을 차분히 배운 사람은 요리문답의 포괄적인 내용뿐 아니라 목회적인 면과 경험적인 면에 놀란다. 요리문답은 성경의 진리의 실제적인 면을 교회적인 경험의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고, 신자는 그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르게 확인할 수 있다.
요리문답이 지루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개혁자 루터의 모범에서 배울 것이 있다. 그는 자신이 작성한 소요리문답 서문에서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나에 대해서 말하면, 나도 박사이고 설교자이다. 나도 [요리문답을 다 안다고, 필자의 첨언] 자부심과 확신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배웠고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요리문답을 배우는 아이처럼 행하여 아침마다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는다.……나는 매일 요리문답을 읽고 공부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아직 시원하게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요리문답의 아이와 학생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30)
그는 계속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창조부터 종말까지 계속 가르치기를 원하시는데, 요리문답을 한 시간 만에 다 읽고 그것을 다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학생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엄격히 단속했다.
우리는 요리문답 설교가 실제적인 적용에서는 약하다고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는 ‘이론과 실천’에 대한 그리스적 이분법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의 진리는 이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실제적이다. 교회에 들어오는 입문인 세례도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이 선언된다. 따라서 교리를 다룬다고 해서 실제적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역으로 1문에서 고백하는 ‘나의 위로’는 경험적인 것이지만, 실제로 그 위로는 삼위 하나님 안에 놓여 있다. 이론과 실천의 손쉬운 구분은 성경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고(마 28:19), 바울 사도도 하나님의 도를 다 전하는 것을 자기의 목표로 삼았다(행 20:27).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성경 전체’(tota scriptura)이다. 성경의 모든 교훈을 빠짐이 없이 전파하는 데에는 요리문답 설교가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이 교회의 역사에서 입증되었다. 요리문답의 순서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을 반복해서 가르치면 교인들이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자랄 수 있다.
4. 살아 있는 고백서: 오래된 새것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563년에 작성되었다. 혹시는 400년, 혹은 사도신경처럼 1,500년도 더 되는 과거의 문서가 오늘날에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리문답의 원천이 되는 성경은 수천 년 된 문서이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복음의 빛을 드러내고 있다. 해 아래 새것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뿐 아니라 항상 새롭고 그의 백성을 진리로 인도한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을 공부해도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발견하며 또한 오래된 그 문서들이 매우 현대적임을 알려 준다. 말하자면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은 ‘오래된 새것’이다.31) 항상 공부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그 문서 자체에 어떤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문서가 고백하는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분이시고, 항상 자신을 계시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가리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고, 그 말씀의 대의를 요약한 요리문답도 공부한다. 이 신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16세기에 작성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오래된 옛 것’에 불과할 것이다.
교회에 대한 평가는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으로 내릴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신앙고백서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교인들이 그것을 모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고, 또한 그렇다고 하여서 좋은 신앙고백서를 갖지 않은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좋은 고백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을 ‘오래된 새것’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진리’를 복창하면서 나아가는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있는 좋은 교회이다.
교회의 역사는 요리문답이 교인들로 하여금 그 교회의 신앙고백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음을 웅변으로 증거하고 있다. 개혁의 선배들은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신앙을 고백했고 그러한 방식으로 그들이 발견한 복음 신앙을 물려주었다. 요리문답 교육 체계가 유지된 곳에서는 개혁의 좋은 열매가 보존되고 전파되었으나 그렇지 못한 교회는 매우 피상적이고 종교심만이 강조됨을 우리는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존 머레이 교수가 갈파한 대로, “현대 기독교를 그렇게 특징짓는 교리적 무지와 혼란과 불안정함은 대부분 이 관행을 [요리문답 교육과 설교를, 필자] 중단한 데에 기인한다.” 32)
요즈음은 많은 교회들이 신앙고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신앙고백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말하자면 책장에 모셔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신앙고백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신앙고백은 언약의 맥락에서 교회가 항상 고백해야 하는 내용이고, 바른 고백을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미지 시대에 살고 있고 교회도 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요리문답의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바르게 파악하고 고백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러할 때 이 시대의 사조(思潮)에 흔들리지 않고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빛을 비추며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엡 4:13-14; 딤전 3:15).
‘역사를 통해 흐르는 주류(主流)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받고 전파하며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요약한 요리문답의 학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루터처럼 “요리문답의 아이와 학생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고 고백할 때 우리 교회는 그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끝)
1) 칼빈의 두 요리문답의 한글 번역으로는, 『칼뱅의 요리문답』, 한인수 역 (도서출판 경건, 1995). 제1요리문답에 대한 주해서로는, J. Hesselink, Calvin"s First Catechism: A Commentar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Hesselink의 책에는 1537년의 제1요리문답을 1538년에 라틴어로 번역한 서문이 실려 있다. 그 서문에 요리문답의 중요한 특징 두 가지가 나타난다. 첫째는 로마 교회를 향한 신앙고백이다. 개혁자들이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낸다고 로마 교회에서 비난하는데, 그들이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 제네바 요리문답을 라틴어로 번역해서 출간한다고 밝혔다(p. 2). 둘째는 교회적 통일을 위한 신앙고백이다. 개혁자들에 대한 비방과 험담이 많이 유포되고 있었지만 칼빈은 거기에 대해서 맞대응하기보다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했다. “연합과 평화를 위한 열망이 있다면 문자에 매인 종교 의식을 까다롭게 주장하기보다는 교리와 마음의 통일을 추구하자”(p. 6). 제네바 요리문답은 자녀 교육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로마를 향한 신앙고백이었고 교회 사이의 참된 통일을 이루기 위한 고백이었다.
2)트렌트 요리문답의 내용은 다음을 참조. http://www.cin.org/users/james/ebooks/master/trent/tintro.htm. 트렌트 요리문답은 평신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구 신부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문답식이 아니라 서술식이라는 점에서 개신교의 일반적인 요리문답과 차이가 있다. 물론 개신교에도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처럼 직분자를 위한 것도 있고, 제1제네바 요리문답처럼 서술식도 있다.
3) D. van Dyken, Rediscovering Catechism (P&R Publishing, 2000), pp. 31, 33. 4) O. Thelemann, An Aid to the Heidelberg Catechism, trans. by M. Peters (Douma Publicaions, 1959), pp. 475-80. 5) 화란 1571년 총회에서는 칼빈의 『제네바 요리문답』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택해서 가르치도록 했는데, 그 후 교회사를 보면 대부분의 교회가 후자를 사용했다.
6) G. van Rongen & K. Deddens, Decently and in Good Order, The Church Order of the Canadian and American Reformed Chruches (Premier Publishing, 1986), pp. 81-82. 7) Ursinus, Commentary on the Heidelberg Catechism (reprint. Eerdmans, 1954), pp. 10-11. 요리문답은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그 형식은 대체로 문답식이지만 서술형도 있다. 칼빈의 첫 번째 요리문답은 서술형이고, 둘째 것은 문답형이다. 후에는 서술형의 고백보다도 문답식이 많기 때문에 ‘기독교적 가르침’보다는 ‘요리문답’이라고 번역해서 사용한다.
8) J. Murray, “Catechizing - A Forgotten Practice,” Banner of Truth, vol. 27. http://www.lineofpromise.com/articles.html#1 9) 요리문답 서문은 첫 번째 글에서 길게 인용되었다.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소개 (1)”, 「성약출판 소식」 43호, 2004년 2월 16일.
10) J. N. Bakhuizen van den Brink, De Nederlandse Belijdenisgeschriften (2판. Amsterdam: Uitgeverij ton Rolland, 1976), p. 153.
11) A. Hoekema, “The Importance of Catechism Instruction,” New Horizons, 24:3 (2003). 이 글은 1952년에 했던 강의를 50여 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실은 것이다. 후크마는 이 글에서 전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언약의 자녀와 아닌 자를 구별하지 않는 ‘주일학교’와 언약의 자녀에게 성찬을 준비하게 하는 ‘요리문답반’을 구별하고, 1850년 이후 부흥 운동의 영향으로 주일학교가 요리문답반을 대신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다. 1812년부터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A. Alexander(1772-1851)도 주일학교의 영향으로 요리문답반이 사라지는 현실을 비판하고, 가정과 교회에서 요리문답 교육에 힘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Catechetical Instruction,” http://www.naphtali.com/catechetical_instruction.htm.
12) 참조. 허순길, 『개혁교회의 생활과 목회』 (총회출판국, 1994), 44-46쪽. 13) 1684년에 간행된 Lippe의 “예배 모범”에서는 요리문답 교육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있고 교회에서 견실하게 실행하여 확정된 요리문답은 오랜 교회의 경험이 증거하듯이 말씀 봉사자의 직분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이 없이는 강단의 설교로부터 매우 미미한 열매만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를 배우지 않거나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설교를 들어도 지극히 미미한 부분만 이해하며 여전히 큰 무지와 불신앙 가운데 거하기 때문이다.” O. Thelemann, An Aid to the Heidelberg Catechism (Douma Publications, 1959), p. 507. 14) Dr. Martin Luthers kleiner Katechismus (Hannover, 24판. n.d.), 7쪽. 15) 요리문답을 공부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교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좋은 전통임을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상황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요리문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요리문답을 잘 알지 못하면서 새로 가입하는 사람에게만 요리문답을 가르친다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매우 크다. 요리문답은 교회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먼저 교인들이 배워서 친숙히 알고 난 다음에 가입하는 사람들에게 요리문답 공부를 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6) Van Dooren, "Catechism Preaching," Clarion, 25:11-13 (1976). http://www.spindleworks.com/library/vandor/cateshism_p.htm. p. 5. 17) 키릴에 대한 언급은, N. H. Gootjes, “Catechism Preaching,” Proceedings - ICRC 1993 (Inheritance Publications, 1993), p. 144. 어거스틴의 책은 『신앙핸드북』으로 번역되었다.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0.
18) G. H. Visscher, “Why Catechism Preaching in a Second Worship Service?” Clarion, 49:24 (2000), pp. 540-42; R. Knodel, Jr., “Catechetical Preaching,” Ordained Servant, 7:1 (1998), pp. 16-19. 19) T. Watson, “Why Catechize?” New Horizons, 22:1 (2001). http://opc.org/new_horizons/NH01/0001d.html.
20) B. Thompson, et al., Essays on the Heidelberg Catechism (United Church Press, 1963), p. 51; D. Van Dyken, Rediscovering Catechism (P&R Publishing, 2000), pp. 19-20. 21) Peter Y. De Jong, “Preaching and the Synod of Dort,” in Crisis in the Reformed Churches, ed., P. Y. De Jong (Reformed Fellowship, 1968), pp. 118, 124.
22) N. H. Gootjes, “Catechism Preaching,” Proceedings - ICRC 1993 (Inheritance Publications, 1993), pp. 149-52.
23)원문에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라는 표현 대신에 “네덜란드 교회들이 현재 받고 있는 요리문답”으로 되어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후대의 교회법에 나오는 용어로 번역했다. 도르트 교회법의 원문은 C. Bouwman, Spiritual Order for the Church (Premier Publishing, 2000), p. 207에서 인용.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도르트 교회법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설교할 것을 엄격히 규정했지만 그 후의 교회의 역사를 보면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요리문답을 한 번 가르치는 데 대체로 일 년 반이 걸린다. 이러한 현실에 따라서 캐나다 개혁교회는 “매 주일 통상적으로 한 번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요약된 대로 가르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52조)라고 규정하여 “일 년에 한 번”이라는 말을 삭제했다. Book of Praise (Premier Publishing, 1998), p. 670.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서는 요리문답 설교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것은 예배 모범이 작성된 시점(1645)에서 아직 대소요리문답(1647)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이 요리문답이 사도신경을 기초로 작성되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서 더 연구할 주제이다. R. D. Anderson, “An Examination of the Liturgy of the Westminster Assembly,” Ordained Minister, 3:2 (1994), pp. 30, 32; C. Van Dixhoorn, “Is the Larger Catechism Worthwhile?” New Horizon, vol. 21 (2000, Nov). 24) 로이드 존스, 『목사와 설교』 (기독교문서선교회, 1982), 207쪽. 인용문은 원문과 비교해서 다소 수정했음. Preaching and Preacher (Zondervan, 1977), pp. 187-88. 25) 새뮤엘 로건 편, 『설교자 지침서』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9), 304쪽. 26) 개혁교회 안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설교의 방법에 대한 토론이 있다. ‘성경 본문 방법’과 ‘요리문답 본문 방법’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전자는 성경의 한 본문을 택해 해석하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본문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요리문답이 성경이 아니므로 성경 본문을 설교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후자는 요리문답 본문이 ‘성경의 교훈의 요약’이라고 전제하고 요리문답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면서 여러 성경 구절들을 들어서 해설한다. 두 방법을 놓고 논의하지만 어느 경우는 두 가지 방법을 절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해당 문답의 내용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성경을 인용한 문답의 경우에는 좀 더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가르칠 수 있지만, 교육적인 효과를 위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친 문답의 경우에는 요리문답 본문을 해설하는 데에 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참조. C. Stam, Living in the Joy of Faith (Inheritance Publications, 1991), pp. 10-11. 27) ‘요약’과 ‘지도’라는 말로 설명했지만, 성신의 감동으로 작성된 성경과 요리문답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악의는 없지만, 둘을 ‘동일시’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성경처럼 영감(靈感)된 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에 대한 예는 G. I. Williamson, “Some Thought on Preaching,” Ordained Servant, 3:2 (1994), pp. 42-43. 성경과 신앙고백/요리문답의 관계에 대해서는 2005년에 「성약출판 소식」에 기고할 “성경과 신앙고백”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28) B. Thompson, et al., Essays on the Heidelberg Catechism (United Church Press, 1963), p. 33. 29) J. Daane, “Catechism Preaching?,” Kerux, 32:11 (1998), pp. 1-3; M. Kamps, “Heidelberg Catechism Preaching: Our Reformed Heritage,” http://www.prca.org/pamphlets/pamphlet_34.html, p. 2. 30) Dr. Martin Luthers kleiner Katechismus (Hannover, 24판. n.d.), 8-9쪽. 31) 지난 세기의 중반에 네덜란드에서 간행된 어떤 주석서의 이름은 『하이델베르크의 영원한 젊음』이다. G. Oorthuys, De eeuwige jeugd van Heidelberg, Uitgevers-Maatschappij, 1939.
32)J. Murray, “Catechizing - A Forgotten Practice,” Banner of Truth, vol. 27 (1967). http://www.lineofpromise.com/articles.htm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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