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단체들이 겪는 종단편향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단체들이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잘 아는 만큼 좋은 정책을 제시하는 등 한국사회가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커진 영향력에 기대 정관계에 진출해 일신의 영달을 도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교계 시민사회단체의 위상은 어떤가? 불교사회단체들은 승단의 산하단체로서의 기능만 가능할 뿐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신도단체들의 포교원 재등록 사업도 그 배경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층 포교를 맡은 어린이ㆍ청소년ㆍ청년 단체는 모두 조계종에 등록되어 있다. 진각종과 천태종은 신앙의 형태가 달라서 예전에는 함께하다가 요즘은 별도의 단체를 통해 교육하고 있다. 태고종은 한국불교청년회 등 두어 개의 신행단체 외에는 이렇다 할 단체가 없다.
내가 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현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레크리에션협회) 회장을 맡았던 예를 살펴보자. 나는 1990년대 10여 년 동안 이 단체의 회장을 맡아 어린이캠프, 지도자연수교육, 교사대학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상근자를 임명하고 사무실을 만드는 등 노력했다. 하지만 사찰도 가지고 있지 않고 능력이 모자라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나 이외에는 태고종 승려가 지도자로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계종 스님들이 내 휘하로 들어와서 활동하기에는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던 같다. 그래서 함께 활동하는 지도자가 방편으로 ‘조계종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와 ‘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를 따로 만들면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왔다. 나는 그 제안을 받고 “그럴 것 없이 내가 물러나고 조계종 스님을 모시자”고 주장했다. 이후 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는 조계종포교원에 단체등록을 했고 정호스님, 운광스님, 송묵스님을 거쳐서 노비구니 도경스님이 맡아서 현재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직까지 내가 이 단체의 명예회장이라 가끔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태고종이나 이웃종단의 스님과 신도들이 프로그램에 동참할 때 겪는 종단차별에 마음이 쓰인다. 이웃종단 소속원들을 조계종 소속 지도자가 상담을 하면서 “왜 하필 그 종단 사찰에 나가느냐?”고 핀잔을 하여 불교자체에 회의감을 들게 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그간 대학생불교연합회, 공무원불자연합회, 교수불자연합회 등 범불교를 지향하는 단체들이 조계종에서 소속감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고민을 한다 들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재등록시 조계종 소속을 명기하라고 하는 모양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신도회관인 전법회관에 입주한 단체들은 이번 재등록 요구를 쉽사리 거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현재 불교계 신행단체나 교양대학 가운데 조계종에 등록하지 않은 단체는 조계종 사찰 시설을 빌려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어렵다. 겨우 사찰과 교섭해서 사용허가를 얻었다가도 중앙에서 알고 나면 해당사찰에 사용허가를 취소하도록 한 것이 여러 건이다. 도움은 못줄망정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단체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다.
지난번 대한불교청년회에서 불교성전인 <우리말 팔만대장경>을 다시 출간해 출판기념법회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연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조계사에서 대표적인 불교청년회가 저렇게 뜻있는 책을 출판해 부처님께 봉정하는 법회를 봉행하는데 참석한 사람은 100여명 남짓이었고 스님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조계종 스님은 법문을 하러 온 전 포교원장 혜총스님 외에는 없었다.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스님 등 이웃종단의 스님들만 볼 수 있었다. 나는 느닷없이 현장에서 법회 중에 부탁을 받고 고불문을 읽었다.
이 무슨 일인가? 내가 겪은 이와 같은 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웃종단과 연대하면 밀어버리고 내 종단 안에서 활동하면 그냥 놓아만 둘 뿐 제대로 지원하고 지도하는 것도 없는 현실이 신행단체들의 속앓이임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종단별 제각기 진행하는 대북사업
다음으로 대북교류사업을 추진하는 단체들을 살펴보자. 북한의 민중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는 일과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과 서로 달라진 남북불교 문화교류를 추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조선불교도연맹과의 교류는 91년 LA법회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여타 교류 및 지원의 연결고리 역할과 함께 남한 불교도들의 통일염원 세우기의 동기부여의 역할을 수행했다.
남북한 불교계 교류의 특기할 점은 조계종 소속의 민족공동체추진본부, 태고종의 남북불교교류협력추진위원회, 진각종의 국제불교연구소 그리고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산하 범불교단체인 북녘동포돕기불교추진위원회와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등이 종단협의회를 단일창구로 지정한 점이다.
그러나 조계종은 민추본 단독으로 대북사업을 진행을 고수했고 이웃종단도 어쩔 수없이 개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압박으로 사업은 더욱 어려워진 상태이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 추진도 처음에는 현대아산의 관계자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의논했으나 이후 조계종 단독 추진의 불사가 되어버렸다. 천태종도 개성 영통사 복원을 단독으로 추진하였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해외불교계와의 교류도 마찬가지다. 조계종은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의 아시아모임(ACRP)의 한국지부 성격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회원종단이며, 조계종 총무원장은 각 종교 수장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공동대표이다. 어느 모임도 조계종 이외의 종단과는 협의의 틀이 없다. KCRP에는 본인이 개인 자격으로 종교간대화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따름이다.
사회와의 연대의 틀인 시민단체와의 모임에도 종단적으로 또는 종단협의회를 통해서 연결하는 일이 거의 없다. 부득이한 경우만 종단협의회 또는 개별적으로 연락하고 있을 뿐이다.
‘조계종vs여타 종단’ 불교세 약화 초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불교계의 통일된 의사를 확인 할 길이 없어서 조계종을 통해서 하자니 범불교의 모양새가 아니라는 점을 의식하게 되고, 종단협의회를 통하자니 나중에 조계종에서 틀어버리면 일 자체를 진행할 수가 없다고 많은 단체에서 불만을 쏟아놓는다.
이웃 종단에서도 불만이 많아서 조계종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종단협의회를 바꿔보고자 조계종을 제외한 종단들이 모여서 종단연합회를 구성하였다. 초기에 태고종 총무원장, 천태종 총무원장, 진각종 통리원장 등 유수한 종단의 수장들이 모두 참여하였으나 내가 태고종의 참여는 번복하도록 노력한 적이 있다. 모임의 세력은 약화되었지만 지금도 100여개의 군소종단이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 방법은 결코 불교계 전체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 전 사회적인 분야에서 ‘종단 편향’은 불교세의 약화를 초래하고 이는 조계종에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법현스님(저자거리 열린선원 원장, 태고종 전 부원장,KCRP종교간 대화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