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분류 (2) [국악닷컴/김세중의 쌈지딴지 2002.2.14]

[국악닷컴/김세중의 쌈지딴지 2002.2.14] 악기 분류(2) 관악·현악·타악 삼분법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악기를 연주방법에 따라 관악기(winds)·현악기(strings)·타악기(percussions)로 나누는 이른바 삼분법을 썼다. 이 관습이 유럽 전통으로 이어졌고, 근대 이후 건반악기(keyboards)가 추가됐다. 대부분의 분류에서 주의할 점은, 분류는 궁극적으로 관습이고 실제이지 논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연해 보이는 생물 계통분류나 도서관에서 쓰는 듀이 십진법도 한 꺼풀만 벗겨보면 자의적인 면모가 영낙없이 드러난다. 실제와 맥락을 떠나 팔음이나 아·당·향, 삼분법, 다음 편에 다룰 사분법 중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더 낫고 못하다 판별할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삼분법의 강점은 연주실제를 잘 반영한다는 점이다. 줄을 때려 소리내는 피아노와 클라비코드, 줄을 튕겨 소리내는 쳄발로(하프시코드, 클라브생), 페달 장치로 공기를 불어넣어 리드를 울리는 리드오르간, 기계장치로 관(管)에 공기를 불어넣는 파이프오르간, 전자장치로 소리를 만드는 전자오르간 따위는 소리내는 방식이 다 달라도 건반이 달려 있다는 이유 하나로 건반악기로 분류할 수 있고, 또 그래야 전공·부전공으로 겸해 맡기 편하다(똑같이 줄이 달려 있으니 바이올린이나 하프 연주자가 피아노를 겸한다든가, 똑같이 관이 달려 있으니 오보에 연주자가 파이프오르간을 겸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관악·현악·타악 그룹 내 하위분류 역시 일의적인 원칙은 없어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하위분류가 가능하다. 흔히 쓰는 하위분류로 현악기는 뜯는 악기(plucked)와 비비는 악기(bowed), 관악기는 목관(woodwinds)과 금관(brass), 타악기는 가락악기(melodic)와 리듬악기(rhythmic)로 나누는 것을 들 수 있다. (1) 현악기 현악기에는 뜯고 비비는 악기 외에 때리는(struck) 악기도 있으나, 서양 예술음악 전통은 유일한 줄때림악기인 피아노를 건반악기로 분류하므로 남은 것은 줄뜯음악기와 줄비빔악기뿐이다. 동아시아 전통과 유럽 전통에서 줄뜯음악기와 줄비빔악기의 지위가 정반대인 것이 흥미롭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현악기라 하면 거문고 가야금 등 지더(zither)류의 줄뜯음악기가 으뜸이고,1) 줄때림악기인 양금이나 줄비빔악기인 해금·아쟁은 상대적으로 경시되며, 특히 해금과 아쟁은 맥락에 따라 아예 관악기로 분류되기도 한다(후술). 하지만 유럽 예술음악 전통에서 현악기라 하면 단연 줄비빔악기인 바이올린족(族)이 최우선이고, 하프나 기타처럼 줄을 뜯어 소리내는 악기는 그보다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친다. 줄을 뜯는 동작은 탄(彈: 탄금대2)), 고(鼓: 교주고슬膠柱鼓瑟3)), 구(구: 구금구琴) 따위로 표현하고, 특히 금의 경우 어루만진다는 무(撫), 술대로 치는 악기의 경우 밀어친다는 국(국)·추(추) 따위로 특화되기도 한다. 우리말로는 '타다', '뜯는다'가 두루 쓰인다. 줄뜯음악기 중 금(琴)은 좁게는 단일 악기종(種)의 이름이었으나 조금 넓어져 지더 일반을 가리키기도 하고(보기: 가야금, 양금), 나중에 현악기 일반으로 확대됐다가(보기: 호금胡琴, 제금提琴·양금4)), 더러 악기의 총칭으로까지 넓어지기도 한다(보기: 풍금風琴5)). (2) 관악기 귀금속으로 만드는 플루트를 목관악기로 분류하는 데 대해 "과거에는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그렇게 부른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실제 목관과 금관의 구분은 재료와 무관하게 음원(音源)에 의한다. 목관악기 ·취구(吹口): 단소, 대금(플루트) ·휘슬(whistle)형 취구: 리코더(갓난아기가 불어도 소리가 난다) ·홑리드(single reed): 클라리넷, 색소폰 ·겹리드(multiple reed)6): 오보에·바순·피리(이상 두겹), 새납류(2∼4겹) 금관악기 ·리핑(lipping) 또는 립리드(lip reed) 그러니까 목관·금관 이분법에서는 훈(壎)은 흙으로 만들었어도 취구 있는 목관악기, 나각(소라)이나 뿔나팔은 조개·뿔로 만들었어도 립리드 방식의 금관악기에 해당한다. 목관악기 중 가로부는 것은 '적(笛)', 세로부는 것은 '소(簫)'로 구분하지만, 가로세로 모두 적이라 부르기도 한다.7) 리드 없이 가로부는 목관악기가 우리말로 젓대이고, 겹리드악기는 피리로 통칭하는데, 일상생활에서는 젓대와 피리 할 것 없이 목관악기 일체를 피리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옛 문헌에 '피리를 분다'는 글이 나오면, 원문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취적(吹笛)'으로 돼있다. 금속제이고 벨(bell)이 달린 금관악기를 총칭하는 일상어는 나팔인데, 그 모양 때문에 태평소도 더러 나팔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 정간보는 악보 한 줄[행行]이 다시 다섯 개의 소행(小行)으로 나누이는데, 첫째 소행(큰 글씨)과 둘째 소행(작은 글씨)의 음이 대체로 같으나 자세히 보면 큰 글씨는 같은 음이 연달아 자주 나오는 편이고 작은 글씨는 듬성듬성 기보돼 있다. 그래서 첫째 소행은 줄뜯음악기인 거문고·가야금·비파, 둘째 소행은 지속음을 내는 악기 파트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있다. 지속음 악기라면 무엇보다 대금·피리 등 관악기이겠지만, 줄비빔 현악기인 해금과 아쟁도 음을 길게 끌 수 있으므로 뭉뚱그려 관악기로 분류하는 관행이 정착해 있고, '관악'이라 할 때 해금·아쟁을 포함하는지 아닌지 대부분의 경우 맥락에 의해 판별되므로 쓰임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3) 타악기 반드시 때리는 악기뿐 아니라 현악기와 관악기(그리고 건반악기)를 뺀 나머지, 밟고 긁고 부딪치고 흔드는 악기들까지 다 타악기이다(모든 분류의 마지막은 이렇게 늘 '기타'이다). 종경(鐘磬)과 북은 모두 손이나 채(beater)로 때리는 타악기이고, 어(어)는 긁거나 때려서, 자바라와 박은 맞부딪쳐서, 탬버린은 흔들거나 때려서 소리를 낸다. 가락을 낼 수 있는 이른바 유율(有律) 타악기 중 편종과 편경이 특히 궁중 전통에서 중요하게 쓰였는데, 우리나라는 12세기 초 중국에서 처음 편종과 편경을 들여온 이래 300년 넘게 중국산에 의존하다가 15세기 세종 때 박연에 의해 비로소 국내제작이 가능해졌다. 중국의 경우 당(唐) 이래 속악의 기준음[황종] 높이가 아악보다 높았는데, 우리나라에서 15세기 이래 아악과 당악(=속악)의 음높이가 같은 것은 편종·편경·방향 같은 유율 타악기가 한 가지 기준음으로 통일된 데 연유한 것으로 추측된다. 외래음악의 한국적 수용 측면에서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악·당악의 기준음 황종은 세종 이래 C음으로 유지됐지만, 종경을 쓰지 않는 향악에서는 기준음을 내는 악기가 없었으니 통일된 기준음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향악의 황종을 1930년대 함화진은 D로 실측(實測)했으나 해방 후 책들은 으레 E플랫으로 기보하며, 1990년대 후반에는 사실상 E까지 높아졌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단, 지금 이 문단은 필자의 독창(獨唱)이다. 향악의 황종은 15세기 이래 E플랫으로 일정했다는 소수설과, C에서 차츰 높아져 E플랫에 다다랐다는 다수설이 대립하고 있다. 두 설 모두 아무튼 '전국적으로 통일된 황종이라는 기준음'이 있었다고 보기는 마찬가지여서, 기준은커녕 황종이라는 이름 자체를 부인하는 깐수설(說)은 극소수 이단(異端)에 속한다. 1) 같은 줄뜯음악기라도 비파 같은 류트(lute) 계통 악기는 지더보다 격이 낮은 게 보통이다. 2) 중원(中原: 충주)에 안치(安置)된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곳. 3) 기러기발[안족(雁足)]을 아교로 고정해 놓고 악기를 탄다, 곧 융통성 없음을 이름. 4) 1946년 서울대 음대 개교 당시 학과·전공명을 한자로 써야 했기 때문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각각 제금·양금이라 했다. 5) 리드오르간. 6) 리드가 하나 아니면 둘인 유럽 전통에서는 'double reed'로 충분하지만, 지역범위를 조금만 넓히면 석 장 이상의 리드도 흔히 발견되므로 'multiple'에 더 정확하다. 7) 그래서 가로부는 적을 횡적(橫笛), 세로부는 적을 종적(縱笛)으로 다시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