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 노필 유허비명 병서(墨齋 盧㻶 遺墟碑銘 幷序)

사미헌집 제9권 / 비(碑) [인물요약] ■노필(盧㻶)   1464년(세조 10) ~ 1532년(중종 27) / 향년 68세  조선 전기에, 공조좌랑, 경상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光州). 초명은 노조동(盧祖同), 자는 공서(公瑞), 호는 묵재(墨齋). 고성(固城) 출신. 아버지는 사간(司諫) 노선경(盧善卿)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성봉조(成奉祖)의 손녀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당초부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김종직의 문하에서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학문에만 전념하며 안우(安遇) · 유호인(兪好仁) · 강흔(姜訢) 등과 교유하였다. 중종이 거듭되는 천재(天災)로 일사(逸士)를 천거하도록 각 도관찰사에게 명하자 학행이 뛰어나 1508년(중종 3), 1510년 두 차례에 걸쳐 천거되기도 하였다. 1518년(중종 13) 경상도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은 우의가 돈독하고 불순함이 없으며 고인(古人)의 법에 따라 행동, 유림들의 추앙을 받음 등을 들어 천거하여 6품직에 특채되었다. 그리하여 내섬시주부 · 장흥고령(長興庫令) · 지평을 거쳐, 1519년 공조좌랑을 역임한 뒤, 경상도도사로 재직 중 기묘사화 때 김안국의 일파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 고향인 고성에 내려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538년(중종 33)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가 풀림)되어 직첩을 환급받았다. 초계(草溪)의 송원서원(松原書院), 고성의 갈천서원(葛川書院)에 제향되었다.-------------------------------------------------------------------------------------------------------------------------------------------------------  통훈대부 사헌부 지평 묵재 선생 노공 유허비명 병서(通訓大夫司憲府持平墨齋先生盧公遺墟碑銘幷序) 팔계현(八溪縣) 중방리(中方里)는 곧 조선 중종(中宗) 때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일지평(逸持平)을 지낸 광주 노씨(光州盧氏) 묵재(墨齋) 선생의 유허지이다. 아, 옛날에 공의 유허지에 서원을 두어 향사를 드렸으나 불행하게도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공의 우거지인 철원(鐵原)에 또한 재차 서원을 세워 향사를 드렸으나 또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지금 우러러 사모하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되자, 서로 함께 유허지에 비석 하나를 세우기로 계획하여 불후하게 남기기를 도모하였다. 공의 방손인 수오(秀五)가 여러 사람들의 뜻을 모아 공의 실기(實記)를 받들고 나에게 와서 비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기에, 내가 절하고 그 실기를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공의 처음 이름은 조동(祖仝)이고 바꾼 이름은 필(㻶)이며 자는 공서(公瑞)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초상과 여묘살이 그리고 제사 지내는 것을 주문공(朱文公)의 《가례(家禮)》를 따랐다. 조금 성장하여서는 김한훤(金寒暄), 안노계(安蘆溪)와 함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호) 문하에서 배웠는데, 선생께 크게 장려를 받았다. 세 명의 동생을 우애롭게 대함에 자연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하였고, 재산을 나누어 줌에 하나도 스스로를 사사롭게 하지 않았다. 정덕(正德) 무인년(1518, 중종13)에 김모재(金慕齋)가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공이 있는 숲속의 여막을 방문하여 시를 지었으니, 인간의 고관 대작은 절로 길이 다른 법이니 / 人間軒冕自殊途 안자처럼 곤궁히 살며 도의 진미 맛보네 / 顔巷窮居味道腴 눈 밑에는 크나큰 우주를 한데 넣었고 / 眼底牢籠閒宇宙 가슴 속엔 하나의 요순을 온축하였네 / 胸中蘊蓄一唐虞 학문은 염락관민(濂洛關閩)의 바른 연원을 따랐고 / 學追濂洛淵源正 행실은 증자(曾子)와 노래자(老萊子)를 실천함에 독실하였네 / 行篤曾萊踐履俱 내가 산림의 여막에 찾아온 건 응당 뜻이 있노니 / 爲訪林廬應有意 높은 의범을 남쪽 지역에 표창하려 함이네 / 欲將高範表南隅라 하였다.  드디어 현량(賢良)으로 추천하였는데, 곧바로 주부(主簿)에 임명되었다. 기묘년(1519, 중종 14)에 경상도 도사(都事)와 공조 좌랑(工曹佐郞)에 임명되었다. 그해 12월에 신무(神武)의 화가 일어나자 탄핵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사태가 진정된 뒤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승진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서책으로 스스로 즐기면서 힘써 후진들을 이끌었다. 69세에 정침에서 죽으니 묘소는 팔계현 화지봉(花旨峯) 뒤에 있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공의 묘소를 도굴하려고 하였으나, 군자가 묻힌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그만두었다고 한다. 세계(世系)와 생몰연대 그리고 자손록에 대하여는 묘갈명에 갖추어 기록되어 있다. 학문을 좋아하고 행실을 돈독히 한 일과 같은 것은 사우들이 장려한 것을 보면 공의 인품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점필재 문하의 무오사화 참변은 처참하였다. 선생은 점필재 문하의 고제(高弟)로 어찌 그리도 일망타진한 가운데서 유독 빼어났던고. 그것은 그 때 변고에 처신함이 반드시 마땅한 도리에 합치됨이 있었을 것이나 백세 아래의 역사 기록에 빠졌으니, 매우 개탄할 만하다.명은 다음과 같다. 진실하도다 묵재여 / 允矣墨齋 나라와 고을의 모범이 되었네 / 鄕邦矜式 중방리에서 생장하였으니 / 生長中方 이름을 통하여 덕망을 상상할 수 있네 / 因名想德 완연히 끼친 발자취여 / 宛其遺躅 밝은 산 맑은 물과 같네 / 山明水湜<끝> [註解] [주01] 팔계현(八溪縣) : 경남 합천군 초계(草溪)의 옛 이름이다.[주-D002] 瑞 : 원문에는 ‘緖’로 되어 있으나, 《민족문화백과사전》에 근           거하여 ‘瑞’로 고쳤다. [주03] 김한훤(金寒暄) : 김굉필(金宏弼, 1454~1504)로,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한훤당(寒暄堂)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소학》을 읽고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일컬었다. 무오사화에 희천(熙川)과 순천에 유           배되었고 1504년(연산군10) 갑자사화에 사사(賜死)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주04] 안노계(安蘆溪) : 안우(安遇, 1449~1527)로,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시숙(時叔), 호는 노계(蘆溪)이다. 안음 현감을 지냈으며,           초계(草溪)의 송원서원(松原書院)에 제향 되었다. [주05] 김모재(金慕齋) : 김안국(金安國, 1478~1543)으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이다. 1517년(중종12) 경상           도 관찰사가 되어 각 향교에 《소학》을 권장하고, 농서(農書) 잠서(蠶書)의 언해(諺解)인 《벽온방(辟瘟方)》과 《창진방(瘡疹方)》           등을 간행 보급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주06] 염락관민(濂洛關閩) : 송대 성리학을 말한다. 주돈이(周敦頤)는 염계인(濂溪人),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는 낙양인(洛陽人), 장           재(張載)는 관중인(關中人), 주희(朱熹)는 민중인(閩中人)이므로 그 고을의 문자를 따서 ‘염락관민’의 학문이라 하였다. [주07] 증자(曾子)와 노래자(老萊子) : 모두 지극한 효자이다. 증자(曾子)는 공자 제자 증삼(曾參)을 말하고, 노래자(老萊子)는 춘추 시           대 초(楚)나라 사람이다. [주08] 신무(神武)의 화 : 중종 14년(1519)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말한다. 남곤과 심정 등이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밤중에 비           밀리에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을 열게 하고 들어가 화를 일으켰다는 데서 유래한다.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송희준 (역) | 2015-------------------------------------------------------------------------------------------------------------------------------------------------------[原文]  通訓大夫司憲府持平墨齋先生盧公遺墟碑銘 幷序  八溪縣中方里。卽我中廟朝己卯名賢逸持平光州盧氏墨齋先生之遺墟也。噫。昔公遺墟。有院享。不幸入倭燹。鐵原亦公寓鄕也 。再設而又以邦令見撤。今羹慕輿情。無處可寓。相與謀竪墟間一石。擬圖不朽。公之傍裔秀五。以僉意。奉公實記。責銘於福樞。拜而按其記。公初諱祖仝。改諱㻶。字公緖。自幼性至孝。喪而廬墓。祭而遵朱文公家禮。稍長。同金寒暄安蘆溪。學于畢翁門。大被推奬。友三弟。因心分予家藏。一不自私。正德戊寅。金慕齋按節。訪于林廬。有詩云。人間軒冕自殊途。顔巷窮居味道腴。眼底牢籠閒宇宙。胷中蘊蓄一唐虞。學追濂洛淵源正。行篤曾萊踐履俱。爲訪林廬應有意。欲將高範表南隅。遂薦賢良直拜主簿。己卯。拜本道都事工曹佐郞。十二月。神武之禍。被劾歸鄕。事靖後。陞司憲府持平。不就。書史自娛。眷眷引後進 。以六十九。考終于寢。墓在本縣花旨峯後。値島訌。賊欲發之。聞知爲君子藏。竟止之云。世系生卒年及子孫錄於碣具焉。至若好學篤行。則觀於師友推奬。有可影想焉。嗚呼。畢門戊午禍慘矣。先生以師門高弟。奚獨超然於網打之中也。其時處變。必有合宜者。而百世之下逸史。甚可慨也已。銘曰。允矣墨齋。鄕邦矜式。生長中方。因名想德。宛其遺躅。山明水湜。<끝>  四未軒文集卷之九 / 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