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제거(살빼기)
간혹 이런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누가 그러던데 벌침으로 살도 빠진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96년 모 일간스포츠 사회면에 크게 보도된 기사로 살빼기가 진짜로 가능하냐는
문의전화만 1,000여통을 넘은 적이 있다.
당시 여자 영화배우인 H씨는 나를 찾아왔지만 실상은 고질적으로 괴롭히던 허리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왔을 뿐이었다. 살빼기 벌침을 병행한 결과 뱃살이 빠지며 바지가 헐렁해지는 것을 보고 놀라워 하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현대는 무릇 살빼기와의 전투 상태이다. 도처에서 살과의 전쟁이 치열하고 그래서 그 전투에 동원되는 방법도 다양하다. 무슨 다이어트니 무슨 다이어트니 심지어 약물까지 동원된 치열한 전투임에는 틀림없다.
주로 젊은여성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열풍이 불더니 이제는 중년을 넘은 주부들까지 살빼기 열풍에 휘말리며 갖가지 상혼에 울고 다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때가 많다.
여자들은 자신의 외모중에서 이를테면 어깨,팔뚝,허리,아랫배 그리고 엉덩이,허벅지,장딴지 부분에서 백프로 만족하는 여자는 사실상 없다. 어느 한부분이고 자신없어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이 부분에 살이 찌게 되면 그렇게 괴로워 할 수가 없다.
오래전 C씨가 당시에 국립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을때 학처럼 가늘고 긴 다리가 맘에 안들어 하는 걸 보고 필자가 도리어 의아해 했다. 본인말로는 허벅지와 장딴지가 굵다는 것이다. 본인의 희망대로 2개월여 벌침 시술을 받고 만족해 하는기억이 난다. 여성이라면 이렇듯 학처럼 가는 다리도 본인이 맘에 안들면 살쪄 보이는 것이다.
허리디스크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유 0 0 선수가 금메달을 땄었고 다가오는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또 한번 금메달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뜨거웠었다.
그런데 유 선수는 훈련도중 허리 척추를 다치게 되었고 소위 좌섬통이라는 통증으로 다리 전체가 댕기고 아파 거의 훈련을 하지 못한 채 자포자기 상태로 빠져 들고 있었다. 1991년 연일 메스컴에선 유 선수를 대체 할 만한 차세대 금메달 리스트가 누구냐가 대두 되기 시작했고 은퇴는 기정사실화 되면서 불안한 온 국민은 그의 쾌유를 빌었다.
그때 지금은 국장이 되신 당시 D일보의 체육부 기자였던 최모 기자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의 지병을 치료한 적이 있었기에 하루는 조용히 유선수의 가능여부를 타진을 해왔다. 필자는 수락을 하고 당시 태능 선수촌에서 암담한 날을 보내던 유선수는 벌침 시술을 받게 되었는데 아무도 예기치 못한 기적이 일어 난 것이다.
벌침 시술 한달만에 다시 훈련이 가능했고 6개월 후 그 해말 국내 탁구제왕전에서 당당히 우승을 하게 되었는데 유선수의 허리부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신문이며 TV에서 일제히 보도 하게 되면서 당시 필자의 집에 사흘이 멀다하고 취재진의 요청이 쇄도할 정도였다.
이 작은 사건은 필자가 벌침에 몰입한 지 10년이 다 될 때였다. 이 치료사건은 당시 최초로 메스컴의 힘을 빌어 일반 대중에게 위대한 벌침의 효능을 알리게 된 첫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의료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차차 벌독요법을
도입하게 된 중요한 뒷 배경이 되었다.
10년이 다 된 요즘에도 유선수는 현역선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재발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가요법으로 벌침을 직접 놓기도 하는 자랑스런 벌침 전도사의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유선수뿐만 아니라 그 이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벌침덕에 그 지긋지긋한 통증인 허리디스크에서 해방을 하였다.
만성간염
필자가 4대째나 전수받은 일반 침구술을 백지화 한 것은 이십여년 전의 모친의 만성 B형 활동성간염을 벌침으로 시술하고 부터이다. 당시 간염이 국내에 막 알려질 무렵 발생한 만성 활동성 간염의 합병증으로 간염과 간경변증세를 벌침이 기적처럼 복구하여 여든다섯세인 지금까지 정정 하시다. 이십여년전 그때 받은 발침의 위대한 충격이 필자를 오늘까지 벌침에 몰입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92년 무렵 사라예보의 탁구 영웅인 L씨가 여자탁구 서울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던
환상의 콤비조 였던 Y를 데리고 왔다. Y씨는 만성 활동성 간염으로 고통 중이었으며 심지어 심한 우울증 증세까지 가지고 있었다. 벌침시술 4개월만에 그처럼 오랜 세월을 고통받게 하고 결국 세계적인 선수를 도중 은퇴시킨 간염은 나았고 이후 결혼하여 예쁜 두딸을 데리고 놀러 왔는데 지금은 먼 이국만리에서 선교사로 남을 위해 봉사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또한 국내에선 꽤 알려진 성형외과 최모 박사는 만성 활동성 간염으로 일년간 환자치료를 중단한 채 휴식하고 있었다. 치료법이 없는 걸 잘 아는 최박사님은 나를 찾아 오셨고 벌침시술로 깜쪽같이 재기 하였는데 10년 다 되가는 지금도 하루에 여러건이 넘는 힘든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벌침의 위력에 머리숙여 감사할 따름이다.
이십여년간 벌침으로 활동성 간염이 비활동성으로 바뀌고 또한 항체가 생겨난 경우는 수없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벅차다. 모쪼록 만약 당신이 간염이 걸렸다면 벌침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쳐보자.
지방간
오랜 음주문화 영향으로 수많은 중년기의 남자들이 알코올성 지방간으로 고통을 받는다. 뚜렷한 자각증세도 없이 단지 쉬 피로하다,술이 잘 안 깬다,등이 가렵다,
눈이 침침하다 등 뚜렷하게 자각증세가 없는 이 지방간은 그래서 무시되고 있다.언젠가는 술 끊으면 좋아지겠지 하구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안타까게도 술은 끊기가 힘들다.
오래전에 유명한 카피라이터 L씨가 날 찾아왔다. 가수 H씨가 소개 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과거 오랫동안 술을 즐겼고 두주를 마다하지 않고 드시는 습관으로 오래전부터 병원에서 지방간으로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소위 주독이 올라 코 끝도 딸기코처럼 되어 있었다.
몇개월의 벌침 시술로 그 분은 완벽하게 지방이 분해되어 이후 병원 검사에서
정상간을 판정 받앗다고 좋아하셨다. 물론 코 끝도 깨끗하게 치료되어 더욱 미남이 된 것은 물론이고, 그 후 그 분은 벌침 신봉자가 되셨고 그의 저서인 수필집에도 필자와 벌침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술을 안 먹는다고 지방간에서 해방된 건 아니다. 과다한 열량 섭취와 고 지방식을 많이 하는 현대인들은 지방간을 조심해야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L씨를 소개한 가수 Y씨다. 이 분은 과다한 스케줄로 피로한 상태에서 지방간이 있었는데 물론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H씨는 벌침으로 시술을 받았고 몇개월후 초음파 탐지기에서 지방간이 사라졌다고 좋아하시면서 찾아온 기억이 난다. 이후 아름다운 부인과 예쁜딸 둘도 벌침을 맞았다. 가끔 전화가 온다. '선생님 벌침 맞으러 가다가요, 차가 너무 밀려서 방송땜에 도로 아쉽게 돌아갑니다'
류머티스질환
1986년 서울의 H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인 Y 교수의 부인이 바로 우리집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동네로 이사온지 2년이 지나도 그녀의 얼굴을 도통 볼 수가 없었는데 하루는 그녀가 나를 방문하였다. 부인은 당시 5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무척 수척했고 거동을 잘 하지 못하였으며 걸음걸이 조차 절룩이며 무척 아픈 표정이었다. 손목 발목 무릎 할 것없이 부어 있었고 앓은지 십년이 넘는 전신 류머티스 환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반신반의를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왔으며 필자는 벌침시술을 하게 되었다. 시술 몇일 후 부터 진통제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며 그녀는 좋아했고 두달 여에 걸친 시술끝에 그녀는 완전히 회복을 하였다. 더 이상 밤이고 낮이고 찾아오던 고통이 줄었으며 모든 관절의 붓기는 물론 고여있던 물도 빠졌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제 진통제 없이 자유롭게 걷고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15년이 다 되가는 지금 얼굴을 몰라볼 정도로 맑아졌으며 더 이상 류머티스의 고통 없이 즐겁게 생활을 하고 있다.
1991년 국내 굴지의 D그룹의 C회장이 이 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그 역시 진통제만으로 그 아픈 고통을 참아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도 필자에게 두달여의 시술끝에 거짓말처럼 좋아졌고 벌침 신봉자가 되었다. 이런 일은 국내에서만 일어 나는 일은 아니다. 일찌기 아주 오래전 벌침요법의 개척자인 오스트리아의 필립테레 박사는 '진정한 의미로 거의 모든 관절염 류머티즘은 벌침에 의해 치유될 수 있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그는 의사로써 25년간 39,000대의 벌침을 류머티즘 환자500명에게 시술하여 그 같은 결과를 얻어 낸 것이다. 지금 전세계의 의학계는 벌침의 독으로 만든 연고나 주사약으로 류머티스를 치료하고 있다.
또 하나 이웃 일본에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富山市의 淸水混完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 부친이 심한 류머티즘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 부친이 잘못하여 길가에 있던 벌통을 건드리게 되고 성난 벌떼의 공격을 받은 후부터 그 심한 류머티스 통증이 사라지고 건강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들 속담에'산에 가서 벌에게 잘만 쏘이면 10년지기 병이 낫는다'라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일본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기미
'눈밑에 기미가 보이네요..'
'네,근데 벌침으로 기미도 없어지나요?'
기미,여자에겐 기분 나쁜 단어이다. 95년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썬글라스를 착용한 채 나를 방문했다. 그녀가 썬글라스를 벗자 눈주변에 온통 기미였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선생님 저 이 기미 때문에 죽겠어요.이렇게 기미가 많으니 제 별명이 기미 아줌마래요'
2개월의 벌침 시술로 그녀는 기미 아줌마에서 해방되었다. 이 후 밝아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새삼 기미가 여성에겐 치명적인 멍에라는 것을 깨달았다.
베스트 셀러만 내는 소설가 Y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섬세한 글은 수많은 독자가 공감하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녀는 학처럼 긴 다리와 사슴처럼 긴 목을 소유한 이지적인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눈가에 예외없이 기미가 몇개 보였다.
당시 오랜 집필로 인해 허리통증이 심했고 몸이 많이 차가워져 있었으며 무척 피로한 상태였다. 허리 디스크와 기미를 치료하며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무 신기해요..기미가 없어지다니.'
다리 정맥류
87년 봄 국내에서 큰 제약회사에 계시는 이 박사님이 나를 방문한 적이있다. 이 분은 서울대 약대를 나오시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신 분으로 국내에서 잘 알려진 잇몸치료제를 개발하신 분이기도 하였다.
이 분의 어깨에서 팔뚝에 걸쳐 마치 지렁이가 뒤 엉킨 것처럼 정맥이 퉁그려져 있었고 이게 바로 정맥류였다. 이 분은 당시 이 증상으로 정맥류 치료에 관심이 많으셨고 국내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벌침으로 시술 받기로 하였다.
한달여 시술을 하자 정맥유가 눈에 띄게 줄어 들게 되었고 이 박사님은 너무도
신기해 하시며 자신이 바로 이 정맥류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며 좋아하시면서
정맥류에 대한 많은 자료를 가져다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는 대뜸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국은 이 정맥류로 여성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습니다. 미국은 직업여성이 많고 그래서 오래 서있는 기간이 많으므로 다리정맥류가 많은 나라거든요.그리고 물리요법외엔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게 흠이지요. 그래도 가능한 건 수술밖엔 없는데 수술도 흉터를 남기거든요. 이건 떨어져 나간 세포가 다시 모여 혈관을 받쳐주었기에 정맥류가 사라진 것이 틀림없다고 보입니다.정말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후 여성들이 오면 유심히 다리를 살펴보고 종아리 부분에 정맥류가 보이면
무조건 벌침을 시술해 주었다.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오래 서있는 직업여성의 다리에서 이 정맥류가 흔히 관찰된다. 이런 정맥류가 나타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치마 입기를 꺼려 한다. 그래서 맨날 바지만 고집하게 된다.
더구나 정맥유가 있으면 피가 마치 항아리에 고이듯 다리가 무척 무겁고 쉬 피곤하다. 우리나라도 이젠 서있는 여성이 많아지는 추세이며 이에 따라 다리정맥류
즉 하지 정맥류가 흔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여성은 벌침으로 정맥류를 치료하고 자신있게 치마를 입어야 한다.
대머리
대머리는 머리 정수리 부터 서서히 탈모가 시작되어 주변부위로 퍼져 나가게 된다. 의학계에선 유전적 요소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대머리가 된다고 한다.
단적으로 대머리에 벌침 효과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벌침은 호르몬의 발란스를 맞추고 무엇보다도 대머리에게서 볼 수 있는 왕성한 피지의 분비를 없앨 수가 있다. 머리에 개기름 흐르듯 진득하게 나오는 피부기름의 과다 분비는 마치 논에 모내기 할때 모를 흙속에 심지 않고 물위에 띄워놓은 것처럼 모근이 지방에 둥둥 떠 있게 되는 형태를 띄게 된다.
이때 벌독은 그 지방샘을 분해하고 더 이상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하며 모근에서 단백질을 빨아 올리기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결국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몇년간 있는 미세한 머리카락이 쑥쑥 자라게 되는 것이다.
제 6공화국이 끝나고 청와대 고위직으로 계시던 임모님이 날 찾아 오셨다. 본래는 과음으로 오랜 지방간이 있었기에 찾아 온 것이지만 필자가 우연히 머리 가운데가 휜하니 비어 있는 것을 보게 된 후 벌침을 놓게 되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보면 감쪽 같이 머리가 자라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밖에 대머리에 벌침이 특별히 잘 듣는다는 걸 입증한 예로 수없이 많다. 동부 이촌동의 유명한 H목사는 원래 일년 가까이 벌침으로 간과 당뇨를 치료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머리 가운데가 훤하니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머리부분에도 벌침을 놓아 드렸다. 이후 머리숱이 많아진 것을 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탈모증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보면 엄청나게 많이 빠진 머리칼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이러다가 다 빠지고 대머리라도 되는 건 아닌지 전전 긍긍 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상은 그리 빠진다고 전부다 대머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특히 여자분들은 머리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므로 머리 감을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머리 손질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96년 유명 탈렌트 B씨도 머리숱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머리숱은 예상보다 적었으며 그 머리숱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다. 당시에 유행하는 고가의 전자빗을 가지고 다니며 머리를 맛사지 하곤 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잘 들을 리는 만무하고 그래서 답답하던 차에 들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벌침시술로 그녀는 완벽하게 짙은 머리숱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전자빗도 또 가발도 착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 후 그녀의 표정이 많이 밝아진 것을 보게 되었다. 여자에겐 머리숱 하나까지도 걸림이 되는 줄 그때 알게 되었다.
남자인 경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유명 영화배우 김00은 실물로도 아주 미남이다.
머리는 반곱슬이고 터프한 그의 스타일과 잘 어울렸다. 그런데 김씨도 가운데가 훤하니 비는 머리숱 땜에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역시 벌침으로 머리숱이 많아졌다.
머리가 많이 빠지는 원인은 대체로 불분명하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예민 한 사람이 덜한 사람보다 많이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꾸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걱정하는 사람 일 수록 더 많이 빠진다. 그러므로 머리숱이 스트레스와 연관 된 것만은 어느정도 사실이다.
정력강화
예로부터 인디언 남성들은 벌침을 국부에 쏘이게 하고 부부 생활을 가졌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전수 되어 내려오는 이 비법을 자식에게 전수하여 그렇게 성기능 향상을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아니, 인간이 이땅에 살면서 부터 유래된 정력강화를 위한 노력은 치열하다 못해 엄숙함을 느낀다. 정력을 강화 하겠다는 욕망은 어디서 부터 유래하였는가. 남성의 정력이 약해짐은 곧 자신의 배우자에게 번식의 기회를 잃게 되고 서서히 도태되며 정력이 강한 다른자에게 배우자를 잃게 된다는 동물본능이며 원시사회에서 부터 출발 한 듯하다.
사자를 보더라도 늙고 힘없는 숫사자는 서서히 도태되어 결국 죽게 되고 젊고 힘센 숫사자가 암컷을 차지 하게 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또 식물이나 번식을 향한 열정은 엄숙하다. 자신의 DNA를 이 땅에 복제하고 죽어야 한다는 본능은 어쩌면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정력이 약해진 사람이 강한 정력을 소유코자 발버둥 치는 것이 그리 추한 모습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에서 생에 대한 열정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침은 남자의 정력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 남성의 귀두 부위 내측을 벌침을 뽑아 살짝 찌르게 되면 갑자기 발기하는 것을 경험 하게 된다. 이렇게 10일 정도 시술하면 발기부전이나 조루에도 탁월한 효과를 주게 된다.
92년 겨울 60대 중반 가까이 된 분이 날 찾아왔다. 그 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발기불능이라고 털어 놓으며 그때까지 온갖약이며 보약이며 다 해 먹었는데 소용없었다고 고민했다. 그런데 친구에게 들었더니 벌침이 효과가 있었다고 하길래 찾아 온 것이라며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투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벌침 단 몇회의 시술로 지금까지 부부금술은 물론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며 즐거워 하신다. 재벌인 C회장도 마찬가지로 발기부전에서 왕성한 정력을 가지게 되었다.
벌침은 또한 여성에게도 아주 좋은데 특히 불감증이나 질애액이 분비되지 않을때도 상당한 효과를 경험 할 것이다.
여드름
94년 대전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K원장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아이가 여드름으로 심하게 고민하다가 어떤 연유인지 몰라도 자살을 시도 한 적이 있었다.
부랴부랴 개인적으로 날 찾아 주셨고 그때부터 딸아이의 벌침 시술은 시작되었다. 약 두달간의 벌침 시술로 이 딸아이는 얼굴이 깨끗해졌으며 표정도 밝아졌다. 그리고 여드름이 많이 나는 사람 몸에서 나는 쾌쾌한 체취도 사라졌다.
이 딸 아이는 이듬해 재수 생활을 끝내고 서울의 명문대에 합격했고 너무 예뻐진 모습으로 나를 한번 방문한 적이 있어 매우 기뻤다.
눈가의 주름제거
94년 가을, 하루는 연극배우이자 영화인인 H씨가 찾아왔다. 그 분의 얼굴은 미인이지만 이마에 있는 주름이며 눈가에 있는 주름이며 더구나 입가에 있는 주름덕에 오로지 할머니역 밖에 할 수 없는게 아쉽다며 그렇게 찾아왔다.
몇개월의 시술로 그녀의 얼굴 주름은 눈에 보이게 없어 지게 되었고 그녀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으며 눈은 더욱 빛났다. 여자의 얼굴부위에 생기는 주름은 가히 치명적인 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사실 주름살은 그 사람의 연분이 쌓인 나이테와도 같기 때문에 어쩌면 상대에게 편안함과 쉼을 주지만 그래도 늙어 가는것을 좋아할 사람은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 인기 여류작가인 K씨도 입술위에 있는 주름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벌침을 맞는 걸 보면 여자에겐 주름살은 악령같은 존재이다. 그녀가 자신의 책에서도 밝힌 그 지긋 지긋한 입가 주름살이 벌침으로 간단히 해결된 뒤 그녀는 어린 소녀처럼 무척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