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이면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에는 여행객들이 분실하고 찾아가지 않은 여행가방을 공개적으로 경매에 부친다고 한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는 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굉장한 귀중품이 들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단 낙찰이 되면 가방은 즉시 관중들 앞에서 개봉되어 그 내용물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낙찰자나 구경꾼이나 같이 낄낄대며 즐거워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나도 여행가방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그때 잃어버린 여행가방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만일 누가 그 가방을 연다면 더러운 속옷과 양말이 꾸역꾸역, 마치 죽은 짐승의 내장처럼 냄새를 풍기며 쏟아져나올 것이다. 루프트한자 항공이 아니었으니 경매에 부쳐 개봉하지는 않았겠지만 만일 겉모양만 보고 꽤 괜찮은게 들은 줄 알고 슬쩍 빼돌린 속 검은 사람이 개봉을 했다고 해도 창피하긴 마찬가지였다. 속 검은 사람 앞에서일수록 반듯한 내용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였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첫댓글 혜림아,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