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귀머거리가 된 베드리히 스메타나
프라하에 가면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드볼작 홀이나 스메타나 홀에서
연주를 듣고 그들의 박물관을 둘러보고 싶을 것입니다.
지난 번에 올린 "프라하, 프라하의 봄" (글번호 25번)에서 말씀드린
체코의 국민 음악가 베드리히 스메타나, 그의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도 너무나 유명하지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지만 스메타나 박물관을 찾아 나섰습니다.
프라하의 유명한 다리 카를교(Charles Bridge) 입구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어디 쯤이라고 알고 갔지만
쉽게 찾을 수 없어서 비를 맞으며 일을 하고 있는 인부에게 스메타나 박물관이 어디냐고 물으니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분명 그 근처인데... 난감한 마음으로 우산을 든 채 눈을 들어 앞을 보니
길 건너에 스메타나의 동상이 보이고 그 뒤에 블타바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눈 앞에 있는데 그들은 왜 그곳을 모른다고 했는지...
박물관에 들어서니 뜻밖에 들리는 음악이 그의 현악 4중주곡,
String Quartet in E minor, "나의 생애에서, From my Life"였습니다.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서 맨 끝쪽으로 있는 방에 이렇게 악보대들이
여러개 드문 드문 놓여 있고 악보대 위에는 스메타나가 작곡한 곡의 악보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쪽으로 이런 지휘대가 있었는데 지휘대 위에 악보들과 지휘봉이 있어서
이 지휘봉으로 악보대를 가리키면 그 악보대 위에 있는 악보의 음악이 흘러 나왔습니다.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의 제 2악장 "몰다우",
오페라 <팔려간 신부>의 서곡, 현악 4중주 <나의 생애에서>, 그리고
피아노 트리오 등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의자에 앉아서 한가지씩 지휘봉으로 가르키면서
그 음악들을 다 들었습니다.
베드리흐 스메타(Bedrich Smetana, 1824-1884)
귀머거리가 된 음악가라면 누구나 제일 먼저 베토벤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가 심포니 No. 9 in D minor를 작곡하여 직접 지휘를 마쳤을 때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자 누군가가 그를 객석을 바라보게 했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그러나 체코의 민족 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하여 체코의 민족주의 음악의 선구자이며
체코 음악의 아버지로 체코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베드리흐 스메타나가
말년에 귀가 안들리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교향시 <나의 조국>도 청각을 상실하기 전 후(1874-1879)에 작곡된 곡입니다.
어려서부터 음악 재능이 뛰어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가의 길을 택한 스메타나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주권을 빼앗긴 체코의 프라하에서 활동을 하다가 여러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조국을 떠나 스웨덴에서 음악가로서 성공하지만 조국의 문화 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조국에 돌아와
체코의 국민 음악 운동의 선구자로 피아노곡, 오페라, 오케스트라곡, 실내악곡, 성악과 합창곡 등을 작곡한
체코 최고의 음악가입니다.
그러나 50세에는 귀병이 나서 현기증과 환청 현상이 심해져서 의사로부터 활동중지 지시를
받았다고 하니 그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베토벤의 심정을 비로서 이해하지는 않았을까...짐작이 됩니다.
우리의 신체 중에 어느 하나 귀중하지 않은 기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이 눈(eyes)이라면
음악가에게는 귀(ears)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술가들이 당하는 질병이나 고통은 예기치 못한 작품을 탄생키는 것인지
스메타나는 청각 상실이라는 고통을 가지고 1876년 프라하를 떠나 딸이 살고 있는
야브케니치(Jabkenice), 프라하에서 약 60 km 떨어진 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는 절망과 체념,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작곡에의 열정을 떨칠 수가 없어서
10월부터 이 현악 4중주곡의 작곡을 시작하여 12월 29일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노년이 되면 많은 후회와 회한으로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귀를 치료하느라 애를 썼지만 끝내 청각을 잃게 된 스메타나도
그제서야 네개의 악기(두대의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를 통하여 자전적인 음악,
현악 4중주로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싶었나 봅니다.
"질병이 예기치 않았던 창작적 요소를 성숙시켰다"라는 음악 평론가들의 평이 있지만
"나의 인생의 추억과 완전한 청각 상실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그렸다"라고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또한 스메타나는 자신의 악보 뒤에도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나의 청년 시절의 강력한 예술 애호, 로맨틱한 분위기,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형언키 어려운 동경,
거기에다가 다가 올 불행에 대한 예견가지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4악장으로된 현악 4중주 "나의 생애에서, From My Life"에서
각 악장마다 즐거웠던 청춘의 나날, 또 아내와의 행복한 추억,
불안과 좌절이 연상되는 말년의 심경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를 돌아보면 가정적으로도 어린 딸을 둘이나 어려서 질병으로 잃고
첫번째 아내도 병으로 사별하고 재혼을 하는 등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은 것같습니다.
그러한 모든 고통과 실의와 좌절을 뛰어 너머 작곡한 자전적인 음악 "나의 생애에서, From My Life"로
그는 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는 말년에는 우울증과 불면, 환각, 실어증과 함께 고통을 받으며
때로는 폭력적이 되기도 하여 더 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1884년 4월 23일에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다음 달 5월 12일에 사망하였습니다.
병원의 기록에는 사망 원인이 노인성 치매(senile dementia)라고 되어 있지만
그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은 원인은 매독(spyhills)이었다고 합니다.
프라하에서는 매년 그의 서거일인 5월 12일에 봄 음악축제가 시작됩니다.
프라하의 스메타나 박물관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
현관인가? 어느 바닥에 새겨진 스메타나의 사인
박물관 안 벽에 걸려있는 아버지 Frantisek Smetana와 어머니 Barbora Lynkova의 초상화
스메타나와 첫번째 부인 카트리나의 초상화
Bedrich Smetana & Katerina Smetanova, Johan Per Soedermark, 1858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에 박물관 안에서 바라 본 카를교와 체코의 젖줄 블타바강
비세흐라트 고성에 있는 스메타나의 묘지
이 묘지에서도 스메타나의 "몰다우"의 멜로디가 들려왔습니다.
프라하 시내에 있는 스메타나 홀 외부 정경
스메타나 홀에서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체코 필하모니의 연주를 감상했던 일이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
체코의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베드리히 스메타나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형언키 어려운 동경을 가지고 작곡했다는
그의 자전적인 음악, 현악 4중주 in E minor, "나의 생애에서, From My Life"를
이러한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한번 감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끊임없이 동경하는 존재인 것같습니다.
The Jasper String Quartet이 연주합니다.
첫댓글 음악단상, 미술단상 방이 '불꺼진 방'으로 있을 때가 많았지요.
그러나 요즘 감꽃향기님과 이순님께서 글을 올려주시니
불이 내내 켜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블로그 포스팅들을 정리하다가 올려지지 않은 글들이 있어서
비록 오래 전 글이라도 이렇게 올리고 있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꺼번에 다 올려버리고 싶은데 이곳 규정에 하루에 한편씩이라고 하네요.
오래 전 글인데 읽어주시는 이웃님들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느 나라나 특별히 조국을 사랑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 나라의 경제도 문화도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민자로서의 저는 항상 모국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답니다.
더위에 블랙별님도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중순 단체여행으로 프라하에 갔을 때
강변에 있는 스메타나의 동상앞에서 한참 머물렀는데 밤이라 기념관엔 못들어 갔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음악도 잘 들었습니다.
프라하는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다시 가고 싶은 도시이지요.
'동유럽의 빠리', 혹은 '북부의 로마'...라고 한다지요?
히틀러도 그 아름다움에 은퇴하면 프라하에서 살고 싶어서 세계 제2차대전 중에도
프라하에 폭격하는 것을 금지시킨 덕분에 많은 건축물들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체로라도 프라하에 잘 다녀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뜨레비엥님!
좋은 음악 들으며 많은 사실을 친절한 설명으로 알게 해 주시네요.
기념관 구경도 하고 스메타나의 음악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올려주신 cello911님께 감사 드립니다.
잘 들으셨다는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김기흥님!
이른아침 설명과 함께 음악감상의 행운을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모란꽃님, 아침 일찍 일어나셨네요.
음악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셨으니 하루가 즐거우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격조높은 해설과, 그림, 음악은 저에게 새로운 희망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5월에 체코에가서 카를교위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그저 유래되고있는 성인상 아래에서 내 소원을 비는데
여념이 없었답니다. 항상 다시가고 싶은 곳입니다. 단체여행의 아쉬움이죠.
1948년 서방으로 망명했다가 40여년만에 조국을 방문해서 1990년5월12일 스메타나홀에서 개막공연으로
나의조국 을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라파엘 쿠벨릭""과 "체코 필"의 연주를 즐겨 듣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에고... 격조높다고 하시니 부끄러워서 숨고 싶습니다. ㅎ
그저 구글로 검색해서 올리는 것이므로 제가 격조가 높은 것이 아니라
스메타나의 음악이 격조가 높은 것이지요.
프라하에 가셨군요.
카를교에 30여명의 성인들의 동상이 있어서 관광객들이면 누구나 소원을 비는 것을 보고
동서양 어디에나 행운과 평안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는 다 같은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쿠벨릭에 대한 저의 포스팅도 글번호 31번(2011년 3월 4일자)에 있지요.
오랫동안 서방에서 망명생활하고 42년 만에 조국에 돌아가서
백발의 노구로 <나의 조국>을 체코 필하모니를 지휘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감격스럽지요? 감사합니다. 라루체님!
아 글번호 31번 꼭 보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감동에 감동을 더 하며 둘러보고 왔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데로 처음부터 돌아보고 많은 것을 배우리라 다짐해봅니다.
다시 느낍니다만 너무 부럽습니다. ~~ 가지 못하고 보지못한곳에 대한 좋은 정보들을 계속 부탁드립니다.
지난 포스팅들을 정리하다 보니 음악도, 사진도 없어진 것도 많아서
집을 손질하듯 수정하고 있답니다. 저한테도 일기장같은 귀한 기록이니까요.
감사합니다. 라루체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번에 포스팅들을 정리하다 보니 음악이 안나오는 것도 많고
사진이 배꼽인 것도 많아서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수정하고 있습니다.
이 방에 올린 글들도 조블이 문을 닫으면 사진이 날라갈 포스팅들도 많아서
이래 저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한동안 정리하는데 시간을 소비해야 할 것같습니다.
"프라하, 프라하의 봄"은 글번호 25번에 있지요.
프라하에 꼭 한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순님!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자세한 설명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휘봉과 보면대.. 그당시는 ..
늘 좋은 자료올려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 건강하세요..
여행을 한다는 것, 더구나 일반 여행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 보고 싶었던 곳을 개인적으로 찾아다닌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무척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힘든 만큼 기쁨과 설레임으로 마음이 벅차오르지요.
더구나 온아인으로 이렇에 기록해 놓았다가 세월이 지나서 다시 보니 저도 새로운데
동감해 주시는 이웃님들이 계셔서 저도 기쁘고 감사하답니다.
8월도 시작인가 했는데 벌써 여러 날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더위도 좀 사그라지겠지요? 감사합니다. 클리아님!
첼로님, 완전 감동입니다.
전 음악에는 문외한이라서 좋아하는 음악가 몇 분의 곡을 빼곤
거의 아는 음악이 없는데 오늘 이렇게 첼로님의 사진과 글을
통해서 또 한 분의 음악가를 알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올려주신 스메타나의 현악 4 중주 '나의 생애에서'도
제 취향에 맞고, 앞으론 체코의 이 국민 음악가 베드리히 스메타나에게
온전히 빠져들 것 같아 생각 만으로도 벌써부터 흥분을 감출 수
없네요.
사진과 함께 설명을 들으니 제가 꼬옥 첼로님 손을 잡고 첼로님 곁에 서서
이 모든 풍경 속에 함께 어우러진 주인공이 된 것만 같습니다.
귀한 자료 보게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감꾳향기님, 저도 음악을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조금 좋아하다 보니
관련서적이나 기타 자료를 검색해서 다녔는데... 그나마 음악기행이 중단된 상태라서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꿈을 꾸고 있지만 사실은 점점 마음이 약해지고 있어서 안타깝답니다.
저도 언제 감꽃향기님의 손을 꼬~~옥 잡고 여행하고 싶어지네요.
감꽃향기님은 미술관을 안내해 주시고... 저는 연주홀을 안내하고...ㅎㅎ
저도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중 한분이 최영섭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음악시간에 가끔씩 음악 감상을 시켜주셨는데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 스메타나 의 나의 조국 중 몰다우등 과 같은 곡들이었습니다
그 철없던 여고생 시절에도 멘델스존의 멜로디가 얼마나 감미로웠는지, 지금도 그 감미롭던 기분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란 곡이 그 어수선하고 분쟁이 많던 체코지역의 통일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말씀하시면서 그 분께서도 일생의 꿈이 스메타나의 "몰다우" 와 같은 곡을 작곡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시더니
훗날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하셨더군요
최영섭님이 음악선생님이셨군요.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영향력은 대단하신거지요.
클래식 광팬인 저의 큰언니도 고등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이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셔서
일생 내내 클래식음악과 함께 사시다 시피... 한마디로 concert goer로 지금 8순이 다 되셔도 아직도 멋지게 차려입고
예술의 전당, 세종회관 등 컨서트에 가시는 것을 가장 좋아하시지요. 더블어 저는 언니한테서 들은 기억으로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구요. 요즘에도 학교에 그런 멋진 음악선생님이 계신지 궁금해요. ㅋ
맞아요,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영향력은 대단해요. 저는 고등학교시절 클래식 음악을 알려준 선생님께
두고 두고 감사하면서' 내가 참 좋은 학교를 다녔구나....' ㅎㅎ 하고 생각하는데 첼로님의 큰 언니께서도 정말 좋은 학교 다니셨네요 ㅎㅎ
언니분이 너무 멋지신 분이셔요. 제가 닮고 싶은 생활을 하시네요. 저도 가끔씩 예술의 전당을 애용하고 있어요.
그런 저런 이유로 해서 저도 스메타나의 곡을 좋아합니다만 , 스메타나의 생애를 트리오 님의 글로 읽고보니 한층더
곡이 감명깊게 다가옵니다
트리오님 때문에 제가 많이 유식해져가고 있습니다.. ㅎㅎ
ㅎㅎ 저도 라리님을 알게 되어 너무 좋은걸요. 감사합니다. 라리님!
아, 여기서는 트리오님이 아니고 첼로님 이신데...ㅎㅎ
제가 조불에서 워낙 트리오님의 글이 인상깊어 머릿속에 강력하게 새겨졌었나봐요
문득 첼로님은 첼로를 전공하셨나 ... 하는 생각이 드네요
라리님, 전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어요.
전공한 사람이면 전문적으로 써야 하니까 이렇게 시덥잖은 글은 못, 안 쓰시더라구요.
그저 첼로의 소리가 좋아서, 그래서 첼로음악을 좋아하다보니 닉을 첼로라고 한거예요. ㅎㅎ
그리고 딸이 첼로를 하고 있지요. 첼로를 가르치면서 나름 에피소드도 많지요.ㅋ
지금 생각하면 모두 다 그리운 날들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