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화수회 연혁 및 소개
예수해(대구화수회 고문)
해방이전 대구에 거주한 예씨는 예종렬씨로 현 한국일보 논설위원 예용해씨의 선고로 한가구 뿐이었고 해방후 대구에 이주한 분은 1945년 고 예정해씨, 1946년 예종도 목사님(예훈해 정형외과 원장 부친)과 예수해씨, 고 예증도씨 등이었으며, 당시 대구시 인구는 35만명(현재 2백20만명)이었고, 그후 예씨가 대구에 거주이전자가 많아진 것은 6.25사변, 치안 혼란기에 피난차였다고 생각되며, 1961년에는 약40가구로 늘어나 동촌 유원지에서 대구 화수회 창립총획 개최되고 초대 회장에 예원기씨가 추대되어 발전을 거듭하는 중 1988년 5월 현재 화수회 참가가구수가 약2백 가구를 상회하게 되었습니다.
역대 화수회장을 소개하면 초대 고 예원기, 2대 고 예증도, 3대 예승기, 4대 예균해, 5대 예수해, 6대 예학해 등이며 화수회 산하에 청년회가 있는데 한달에 한번씩 월례회를 개최하고 약30명 회원중에는 취객도 수명있어 활기찬 분위기가 넘칩니다.
화수회 총회는 1년에 1회이며 봄철 일요일을 택하여 개최하며 남여노소는 물론 취객도 같이 참석하고 화수회 사업으로는 창립총회 이래 남여회원 전원이 의 흥예씨 시조공 산소에 2회 참배, 충남 면천 휘 사문조 산소에 성묘2회, 청도군 이서면 대전동 고향방문1회, 부산 화수회 총회에 대표15명, 서울 화수회 총회에 15명 참가하여 각각 축의금을 전달했으며 부산 영도출신 예춘호씨 국회의원 선거때 격려차 대표 5명 파송과 성금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금번 면천 묘각 건립기금 분배금인 5백만원을 모금했으며, 예학해 현 회장이 단독으로 면천산수 보수, 석물설치 등 5백여만원을 희사하였고, 다시 묘각 건립기금 부족분 2백만원을 희사하기로 약속 했습니다. 우진유리사장 예종해씨는 대구지구 묘각 건립기금 모금시 1백만원과 운영비 1백만원을 추가로 희사하는 등 애족심을 발휘하여 대구지구에서 면천산소에 바쳐진 금액을 계산하면 1천3백만원에 달하며, 현재 4백 가구중 2백여 가구가 한 가정처럼 뭉쳐서 예씨를 위한 애족심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대구지구 저명인사를 몇분 소개하고 끝맺고자 합니다.
-예민해 : 경북의대 교수
-예종숙 : 영남대 교수
-예승기 : 백억대 재벌
-예학해 : 동일직물, 경상방적 사장(대 사업가)
-예종해 : 우진유리 사장
-예길촌 : 영남대 교수
<출처: 芮泉, 부산화수회,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