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은 사회통합프로그램에 참여하였던 15명의 이주민과 결혼이민자 분들의
종합평가 필기와 면접시험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수업 후에, 수업에 잘 참여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말과
저녁 식사 맛있게 잘 먹었단 말을 전하면서 전달해 주지 못한 사진을 시험장에 갔다 주겠다 약속하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합창단 모꼬지를 1박 2일을 거의 무박의 형태로 다녀와서 무척 졸리고 피곤하였지만,
늦을세라 집에 들릴 예정을 취소하고 목동 서울출입국사무소로 12시까지 직행하였습니다.
5호선 오목교역 버스정류장에서 중국교포 학습자인 홍화 씨를 만났습니다.
30분 전에 몇 시까지 가느냐고 전화로 묻던 분이 어느새 성남에서 오목교역까지 와 계셨습니다.
아마 시험시간을 알고 계셨지만, 새로운 국적취득이란 인생의 중대한 사건에 조바심이 나셨던 모양입니다.
홍화 씨는 지역사회이해 수업으로 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진기를 빌려주신 분입니다.
현재는 이중언어교사로 초등학교에서 근무중이십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선생님 열 한분을 모셔놓고 또 강의하고,
근무시간 외는 교감 선생님 옆 자리에서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알려드리기도 하는 인텔리십니다.
그럼에도 국적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여느 중국교포처럼 떠십니다.
국적관련 정보제공자인 제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묻고 또 묻습니다.
그녀와 오목교역에서 만나 함께 걸어서 시험장에 걸어갔습니다.
지난 주엔 길을 몰라서 역에서 사무소까지 택시비가 약 4천원 나왔다고 하니 자상하게 알려줍니다.
저의 길치 기질은 외국인을 만날 땐 동등한 관계 형성의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어리버리 길에 대해 물어보고 또 못 알아듣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주 기쁘게 대답해 주십니다.
걸으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문자가 왔다며 보여주시는데,
<12시 30분까지 오십시오. 02-2...-....>되어 있습니다.
제가 지역 전화번호를 보니 출입국사무소에서 보낸 것 같다하니 그런 번호도 있냐며 놀라고,
한국 오신지 몇 년인데 여태 모르셨냐며 저도 놀란체 하고 오손도손 정겹게 시험장에 들어섰습니다.
일찍 왔으니 다행이라 토닥이며 빌려준 카메라로 사진 잘 찍었다는 감사인사와
오늘 전해 줄 사진을 보여드리며 그 분 것은 드렸습니다.
시험장에는 시험시간 보다 30분 일찍 도착했으나,
12시에 1층 로비에 있겠거니 했던 학생들은 벌써 시험장으로 흩어져 고시장에 입소한 뒤였고,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명시되어 저는 밖에서 눈인사하며 사진을 보였습니다.
한 학생이(중국교포 약 55세 남성) 해맑은 표정으로 고사장을 나와서는,
"선생님~ 사진 나왔시요?" 하며 웃으며 다가오셨습니다.
얼결에 사진을 보여드리는데 시험장 담당직원이 "고사장에서 뭐하는 겁니까?"라며
제게 기관이름을 대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국적취득은 필기와 면접, 심사기간이 있기에 시험에 통과하여도 심사에서 사유가 발생하면
취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분께 혹여 피해가 갈까하여 "시험 다 치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걱정마세요."하고 나왔습니다.
나눠드린 사진을 제외하니, 약 열 명 분량이 남았습니다.
12시 18분에 고사장을 나와서 오후 3시까진 시험장 앞에 있는 제자교회 비젼센터에서
컵라면도 먹고, 책도 보고, 혼자놀기의 진수를 누렸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니까 괜찮아" 남의 교회지만 눈치보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수 많은 의자와 탁자 사이에서 달랑 혼자서 편안하게 누렸습니다.
3시 20분부터 학생들이 건널목으로 한 분씩 나오는 걸 보고 길목을 지켰습니다.
사진을 전해드릴 분은 아니지만, 그 동안 수업하였던 분들도 만났습니다.
작년 3월 부터 한국어 3단계와 4단계를 수업하며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알만큼 친해진
중국교포 30대 아가씨와 건널목에서 얼싸안고 생생한 시험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년 전에 다문화센터에서 집합수업으로 만난 결혼이민자 여성인 필리핀 20대 후반 여성도 만났습니다.
이 분은 작년에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병문안을 갔기에 서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시댁과 남편, 고향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침묵하며 병원에 누워있던 여성이 제겐,
"괜찮아요~ 선생님"을 반복하며 눈물보였던 분입니다.
어찌 되었을까...걱정되고 궁금하던 차에 뜻하지 않게 만났으니 서로 꼬옥 부둥켜 안았습니다.
그 분의 고향친구 분들도 가만히 웃으며 기다려 주셨습니다.
4시 10분이 되었습니다.
생생달리는 차들 사이로 뚫어지게 시험장 문을 응시하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기다리겠단 말을 하였던 중국교포 분이 전화하셔서 시험장 별관인데 왜 안계시냐고 묻습니다.
점심도 걸르고 시험치신 분이 기세좋게 엉뚱한 데를 걸어서 다녀오셨으면서 연신 싱글벙글 다가오십니다.
함께 계신 네 분께 사진을 돌려드리고,
일행 중 한 분이 시험장을 나서는 학생 한 명을 발견하여 또 나눠주니
다섯 분께 사진을 돌려 드렸습니다.
"야~이, 선샘. 우리 땜에 너무 애쓰시는데 우짬니까. 나중에 국적나오면 한턱 쏘갔슴다."
"어쩌면 선생님 또 만날거야요. 우리 시험 떨어지면 또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저런 우스갯소리가 오가는 중에,
다시 볼일 없으니 한턱 쏠 생각도 마시고, 수업시간에 볼 일도 없다고 제가 응수하니
모두 큰 소리로 웃으며, "정말 그렇갔습니까?"하십니다.
"그럼요. 모두 합격할 테니 염려마시고 맛있는 것 드시고 푹 쉬십시오~"인사하며 헤어졌습니다.
4시 30분. 홍화 씨가 나오며 깜짝 놀랍니다.
"아니, 선생님~ 아직 안 가시고 뭐하십니까? 사진 때문에 여태 기다리셨어요?"
살짝 민망한 듯 웃으며, "괜찮아요. 세월이 지나면 사진 밖에 없는데, 애써서 공부하셨던 사진 보시면
한국 사시는 동안 힘나실 거니까 전해주고 갈게요."하니 차마 먼저 못 가시고 옆에 서 계십니다.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며 다문화자녀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한국 선생님들이 아셨으면 하는 이야기 등을 나누는데,
어디서 본 듯한 베트남 여성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직접 한국어지도와 방문교육한 적이 없는데도 센터에서 오며가며 만난 분들이 인사하십니다.
처음 한국으로 시집왔을 때 만나서 인지, 감회도 새롭고 여성들의 한국어 말솜씨와 의상도 새롭습니다.
넓은 대로변도에서 시험 친 이야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등을 신나게 하시고 떠납니다.
4시 40분, 잠잠해 진 틈에 홍화 씨가 묻습니다.
"사진 때문에 선생님이 고생이세요. 아유...저희야 고맙지만..."
제가 묻습니다.
"거의 5시간이 되어가네요. 저의 오지랖이죠. 오지랖 아시나요?"
오지랖을 안다는 그녀에게 또 묻습니다.
"사진 1장에 5시간,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을까요?"하니,
"가치 있지요. 충분히 가치 있어요. 선생님~"대답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칩니다.
짜릿한 느낌.
제 마음을 그녀가 알고, 그녀의 마음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성남까지 2시간이 걸리는 그녀를 떠밀어 보내고 또 기다리니 한 학생이 나옵니다.
옆집 산다는 언니 몫까지 사진을 챙겨 보내니 또 차들의 생생거리는 소리만 들립니다.
뒤에서 베트남 여성의 전화목소리가 들려서 보니 어디선가 본듯하여 유심히 보는데,
환하게 웃으며 달려옵니다. 이름도 잘 모르는 그녀는 나를 너무도 잘 아는듯 반갑게 인사하며
남편차를 기다리고 있다며 그 동안 지낸 이야기를 합니다. 또 한국에 시집온 여동생의 고민도...
심각하게 이야기하던 그녀는 까만색 남편의 차가 오니 쌩 떠납니다.
또 자동차 소리만 들립니다. 토요일 오후 대로변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이 한산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받아간 분이 안에 누구누구가 있다고 한 말을 믿고 더 기다리는데,
15분이 지나도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꼬박 5시간을 채우고 시험장 문 곁을 떠났습니다.
사진 1장을 전해주기 위해 기다린 시간은 5시간,
사진값은 200원.
수업종결 선물로 챙겨주고자 사진값은 받지 않기로 하였으니,
그 분들께 드린 사진값은 5시간 200원 짜리입니다.
제 스스로 생각합니다.
이건 병이다,
이건 오지랖이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한 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
바보.
그러나 저는 압니다.
이주노동자.
중국교포.
그들에게 사진 한 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그네처럼 보따리 들고 이동하듯 사는 그들은 정말 소중한 것만 챙겨다니는 분이 많습니다.
가구와 살림도구를 새로 장만하는데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몸으로 번 돈은 자녀교육과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또 저축합니다.
세월이 흘러 청춘의 흔적은 돈과 병으로 남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은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는 큰 얼굴과 책에 포커스를 맞춘 것,
많은 동료들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던 것,
배우던 '한국사회의 이해'교과서를 들고 찍은 단체사진 세 장입니다.
단체사진에는 제가 없고 그들만 있습니다.
마지막 종결 수업 때 교실을 빌려주었던 운영기관인 복지관에 사진을 찍어줄 직원이 없어서,
저와 학생 한 명이 교대로 찍었는데, 수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그들이 모두 나온 사진을 인화했습니다.
아마도 국적을 취득하시면 이젠 일만 하실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책상앞에서 연필 쥐고 공부하실 일은 어쩌면 없을 겁니다.
많은 동료들 앞에서 애국가를 배우고 부를 일도 없을 겁니다.
토요일이면 종일 시간을 함께 학습하던 학교 동창같은 친구를 만날 일도 어쩌면 없을 겁니다.
사진을 보며 추억하고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한데, 네 분께는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젊은 분들 것만 남아서 다행입니다.
450시간과 50시간, 합하여 500시간 수업하고 시험이 면제되신,
곧 62세 되시는 아주머니 사진은 친한 중국인 이웃동생 분께 들려보냈으니 다행입니다.
이 분은 내년이면 자동으로 국적이 나오는 연령이 된다시며,
1년 빨리 받기 위해 3년 동안 500시간을 꼬박 공부했다 하셔서 박수세례를 받으셨던 분입니다.
주름살 투성이 까만 얼굴과 한국어 책을 응시한 진지한 눈빛을 보면 무슨 생각이 나실까요.
사진 한 장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홍화 씨의 말을 믿습니다.
................................................(끝)
어제는 피곤해서 퉁퉁부은 몸으로 저녁도 못 먹고 잠들어 아침까지 잤습니다.
삼빡하고 쿨하게 빨리 돌아서지 못한 제 자신이 밉더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고맙고 감사한 마음만 남으니, 글쓰기 참 재밌습니다.
주제를 정하여 짧은 글로 잘 풀어내는 일이 남았습니다.
첫댓글 아이구~ 후루룩 작성하고 읽어보지 않았더니 오타 지뢰밭이네요.
몇 군데 수정하고, "어찌 주제를 나눌까" 원하는 바 무엇인지 제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