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산(富士山)등산記
송 병 완
(산악인)
일본 후지산(3,776M)은 백두산(2,774M)보다 1,032M가 높은 화산 폭발로 생긴 원추형의 산이다. 제주도 한라산(1,950M)처럼 화산 분출과 지반 융기에 의해 생성된 현무암, 조면암으로 되어있고 5합목(合目)지점부터는 붉은 나산으로 되어 있으며, 일부 구간에 만년설(雪)이 빙벽으로 되어 천혜의 관광지로서 각광 받고 있다.
담양산악회에서는 ‘96년 설악산 등산을 하고 돌아오면서 일본 후지산 등산을 추진하기로 입을 모아 그동안 3박4일간의 등산 여행 경비를 마련하였다.
드디어 ‘97년 7월 24일 담양 회원 38명은 일본 비자를 발급 받아 코오롱 세계 일주 여행사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출발하였다.
일본 후지산 답사를 사전에 하지 못했고 또 등산기간중에 태풍이 온다는 뉴스에 성공적으로 등산을 추진할 수있을까 걱정을 하였으나 3개월전부터 일정이 계약되어 있어서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대한항공 1300편으로 오전 8시 13분 광주공항을 이륙하여 33분후 김포공항에 도착해 공항 국제부에서 환전하고 공항내 약국에서 각종 구급약을 구입했을뿐 일본 등산여행에 필요한 것과 담배등은 전량 담양에서 구입하였고 일본으로 선물 구입을 자제하도록 모두 다집했다.
오전 11시 30분 김포공항을 이륙하여 고도2,750M에서 기내 식사를 들고 동해와 일본 동격시를 거쳐 오후 1시 40분 신동경 나리따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 입국수속을 마치고 한국 유학생 김대규(박사학위 준비) 가이드 안내로 후지산 관광버스를 타고 성전 장명천(成田 長命泉)으로 향했다. 장명천 식당 주인의 정중하고 친절한 영접을 받으며, 일본국민의 친절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다미방 테이블에 둘러 앉아 튀김새우와 밥, 단무지, 시금치, 된장국으로 처음 대하는 일본 식사에서도 얻을 점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이와같이 일본의 인상은 누구에게난 밝은 모습의 인사와 검소한 몸차림, 깔끔하고 필요량의 음식차림, 그리고 도로에 교통순경과 순찰차가 보이지 않고 교통체증이 없어 과연 질서가 있는 나라, 선진국의 모습이었다.
오후 3시45분 일행은 후지산 5합목을 향해서 자동차 전용(고속)도로를 따라 동경시가지를 달렸다. 그런데 토끼장같은 작은 집들이 빌딩 사이로 서있고, 각종 차량들은 경적소리 없이 제한속도로 고속도로를 조용히 달리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 김은 일본의 역사, 문화, 종교, 정신등에 관한 박식한 설명으로 일행들을 일본인속에 빠져들게 하였다.
강과 하천들은 자연스럽게 관리되고, 콘크리트 논두렁, 촌락의 안길과 주차장은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소형차들이 질서 정연하게 주차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천만대를 돌파했다고 자랑을 하고 있으나 일본은 6천 7백만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는 일본의 고물가 경제인지, 교통체증 해솜방안인지 요금이 너무 비쌌다.
일본 운전기사들은 지정된 속도 이외는 절대 과속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속도 80이면 100은 허용하나 경우에 따라 허용기준내외만 과속한다고 한다. 현지의 상황이 불가피한 과속은 법을 위반하여도 상식적으로 판단하여 벌금을 부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후 6시 애비나(海老名:새우)에서 잠시 휴식하고 후지산 신오합목(富士官口新五合目)으로 향했다. 후지산으로 가는 도로는 2차선으로 매우 가파르고 S자형으로 좌우에 스기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가끔 사람들이 후지산 자락의 산속으로 들어서면 헤메다가 죽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밀림이었다.
가이드 김은 “이 지역은 수해(樹海)로 자살자들이 찾아들기 때문에 군인, 경찰들이 수색하여 시체를 거두어 오는일이 많다”고 설명하면서 살기좋은 나라에 자살자가 생기고, 거지는 없지만 부랑자는 있는 나라로서 정부에서는 부랑자에게 실업자 수당을 지급하다고 한다.
오후 7시 40분 후지노미시 후지산 5합목(2,300M)지점에 도착하여 렌턴과 지팡이를 사서 들고 후지산 7합목으로 향했다. 등산로에는 등산객이 줄지어 이어지고 연탄재를 밟는 느낌으로 렌턴빛을 따라 별을 보며 전진했다. 발아래 펼쳐진 도시의 불야성은 은하수를 이루고 지팡이 방울 소리는 북두칠성의 별자리와 어울려 아랍의 박물장수가 사막을 횡단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서로 “곤방와!”“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교환하면서 오후 9시 15분 신 7합목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는 산장에서 제공한 아끼바레쌀밥과 된장국을 들면서 고국에서 가져온 소주한잔을 마시니 꿀맛처럼 좋았다. 백두산보다 높은 2,800M지점에서 퀘퀘한 냄새가 나는 메트리스를 이불삼아 덮고 일본에서 첫밤을 추억거리로 새겼다. 이 산장은 설악산 중청 산장보다 낡은 건물이지만 민간인이 직접관리하고 있는 시설로 이용료가 꽤 비쌌다.
전설에는 후지산은 5개 등산로에 10합목이 있는데 쌀 한홉을 뿌리면서 가는 거리가 1합목이며 또는 기름 한홉으로 등불을 켜고 가는 거리가 1합목이라는 것이다. 여장을 풀고 있는 곳은 7합목으로서, 내일 새벽 1시에 8, 9, 10합목에서 일출을 보기위하여 휴시겸 공격을 위해 잠시 눈을 붙였다. 우리는 자정 12시 30분에 기상하여 고국에서 가져온 컴라면을 끓여 나누어 들었다.
‘97년 7월 25일 새벽 1시 정각, 후지산 정상을 향해갔다. 태풍 9호 로지는 동해바다로 비껴가고 하늘에는 달과 별빛이 동격시가지와 연결되어 은하의 세계를 이루었다. 가이드 김은 “담양양반은 복이 많은 분들이라 태풍이 피해간 모양입니다. 저는 후지산 다섯 번 안내에 이처럼 좋은 날씨는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안개나 비바람이 몰아치고 산소가 부족한 힘겨운 등산이었습니다.”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후지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렌턴빛과 방울소리는 달빛, 그리고 히꼬네 야경과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해발 3,600M 지점에 이르자 일본구간에 만년설은 빙벽으로 되어있었다. 지금 지구의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려 겨우 명맥을 유지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 지구촌에 환경위기가 다가서고 있어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빙하의 이같은 급속한 해빙은 석유․가스․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서 초래된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고있다. 또 북극의 서부지방은 지구상에서 기온상승이 가장 심한곳의 하나로 지난 30년간 1년에 1도씩 기온이 높아졌다고 한다. 일행들은 오전 4시 30분경, 후지산 정상 한계 3,700m에서 아름다운 일출의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출의 아름다운 모습을 배경 삼아서 뿌듯한 마음으로 대한인의 자부심을 펴 보았다. 후지산 10합목(合目)정상의 산장에 관리인이 없어서 지팡이에 등산기념 날인을 받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회원의 모습도 추억거리가 되었다.
후지산은 사화산이지만 일본 곳곳의 분화구에서 유황을 뿜어내는 지역이 있어 언젠가 지진과 더불어 화산이 터질까 하는 두렴움이 상존하고 있기도 하다.
오전 5시경 일행은 신7합목에 빽코스로 내려오면서 만난, 주 5일 근무한 일본인 근로자, 학생들은 “오자이오 고자이마스”하며 빠짐없이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우이 코리언!”하고 일행은 후지산 정상 정복을 은연중 자랑했다. 오끼나와에 주재한 미군병사들도 극기훈련차 후지산에 올라오면서 “굳모닝!오자이오 고자이마스!”인사를 연발하여 “안녕하십니까! 우이 코리언”하는 우리인사에 미군 병사들은 “코리언 넘버원!”환호를 한다. 자전거를 끌고오는 강인한 학생들도 있었다. 일행은 신7합목에 도착하여 후지산을 바라볼때 산은 붉은 나산으로 멋이 없는 상세였다. 산악회 프랑카드를 가져왔으나 설치할 나무가 없어서 어는 미군병사가 들고가는 후지산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고 늦게 내려온 우리회원들은 반가워서 미군 병사와 악수를 나누었다고 했다.
일행은 신7합목에서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9시 15분 오합목에서 모여 기념뺏지를 달고 관광에 들어갔다. 오전 10시 25분 100M여 길이의 시라이도(白絲)폭포가 있는 전관호(田貫湖)의 정진천(精進川)에 도착하여 땅에서 솟아 나온 폭포의 장관에 땀을 식혔다. 후지산에 스며든 빗물이 얼었다가 2천년을 거쳐 녹아 지하수가 되어 폭포로 변해서 주변 5대 호수를 새파랗게 채운다고 한다.
이어서 오전 10시 55분 우리는 후지산 하꼬내 국립공원(富士箱根伊豆國立公園)관광을 시작했다.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따라가면서 선명한교통표지판과 위험한 낙석지역에 시멘트를 바르고 주변과 어울린 페인트로 도색되어있는 매끈한 도로변을 보면서, 정오 12시 35분 하꼬내 대용곡(大涌谷)으로 갔다.
하꼬내는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창, 칼, 조총을 만들고 군사훈련을 실시한 군사의 요세지로 일본 사무라이만 모여 살게 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녀자를 잡아다 가두어 놓고 위안부로 이용한 곳이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장어구이 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비디오 카메라 밧대리를 충전하여 대용곡 유황냄새가 진동한 활화산을 촬영하였다.
유황 온천수에 찐 검정달걀 6개를 500엔(4,000원)에 사서 나누어 먹었다. 후지산의 모습이 흰구름속에서 나타나자 일행은 셔터를 눌러댔다.
오후 1시 55분 도꾸가와이에야스가 해군훈련을 시켰다는 호수 아시노꼬로 갔다. 이 호수는 홍송어, 빙어, 장어, 메기등 가두리 양식장이 있고 여기에 해적호의 유람선 3척이 계속 운행하여 일행은 배를 타고 유람을 하였다. 후지산 9합목에 서있는 신사(神社)가 아시노꼬에도 있었다.
청정한 아시노꼬 호수는 약40만년전 하꼬내 화산 카루데까속에서 생긴 가늘고 긴 호수로 면적 7.09㎢, 주위 20㎞, 수심45m, 호수 수면은 해발 724m에 위치하여 얼지 않는 호수라고 한다. 일행은 유람선에 내려서 360년의 삼나무 420여그루가 있는 산책길을 걸으면서 우람한 삼나무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였다. 곳곳에 노인들의 주차장 및 쓰레기 분리수거 용기관리에 정성스런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하꼬네고세키쇼(箱根御關所)는 1619년 에도박구후(江戶幕府)각 정권의 방위와 치안유지를 위해서 설치했다고 한다.
오후 3시 30분에 고마가다게 하꼬네엔 역으로 갔다. 고마가타게(1,327m)는 바로 옆의 신산(神山)다음으로 하꼬네에서 제2의 높은 봉우리이다. 산정상은 훌륭한 조망, 북쪽으로는 웅대한 후지산, 밑에는 아시노꼬를 중심으로 하꼬내의 전경이 펼쳐지고 그 앞쪽에는 오른쪽으로부터 수루가만(駿河灣), 이즈한도, 오오시마, 이즈시찌도, 미우라한도, 보소한도의 대파노라마가 전개된다. 일행은 고마가다케 하꼬내넨역에서 로프웨어(케이블카)를 타고 1,800m 시속 18km 7분만에 정상에 올라 짙은 비바람 안개속으로 갔다, 케이블카는 곤도라로 101인승으로 느긋한 기분의 승차감에 아시노꼬의 아름다운 호수를 만끽했다.
안개비를 뒤로 보내고 50도 경사에서 전철로 하산하였는데 이 전철은 세계에서 유일한 시설이라고 한다.
오후 6시경 소진시(沼津市)의 본돌(凡道留)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하꼬네 간나미 호텔(0559-74-1000)에서 여장을 풀고 온천욕을 하였다. 고국에서 가져온 통나무소주를 마시면서 피로를 풀었다.
여행 3일째 7월 26일 일행은 기상하여 호텔에서 부폐식 식사르 f했다. 메뉴는 일본식, 서양식, 중국식으로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이름도 모른 썩인콩 음식에 비위가 상했으나 먹는 식품이려니 하고 먹었는데 가이드 김은 나더러 “알본인이 다 된것 같습니다”했다. 그 음식은 낫도라는 음식으로 우리 청국장과 비슷하나 하도 비위가 상해 여러 가지 조미료을 섞어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별 탈은 없었다.
가이드 김은 “아사꾸사 사원을 관광계획이었으나 오늘은 7월 마지막 토요일로 일본의 전통적인 불꽃놀이 행사의날이라고 말하고 전국적인 행사중에서 그중 아사꾸사사원의 불꽃놀이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 해외 관광객은 1년전부터 관망이 좋은 자리를 예약하므로 버스진입이 어려워 내일 관광을 하기로 하고 명치 신궁으로 가자고 했다.” 미안한 자세로 인사를 하면서 일본은 예약문화가 발달된 나라임을 강조했다.
일본인은 큰소리 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며, 재판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이다는 말도 덧붙였다. 즉 일본인은 가면을 쓴 민족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변호사 직업이 인기가 없다. 자기보다 뛰는 놈은 다치며, 간섭하는 것도, 간섭 받는것도 싫어하며 기계 톱니바퀴처럼 조직적으로 평준하게 사는 일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은 97%가 중류층으로 어디를 가나 똑같은 토끼장같은 집을 보면 알수 있다. 평준하다는 의미는 세무서에서 발급하는 소득증명서에 의거 입주자의 전세값을 결정한다고 한다. 소득세가 많으면 전세금액이 많고 소득이 적으면 전세금이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서너집 건너 보육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평등한 사회가 실현되었다고 한다.
일본인 6t5세 이상은 연금이 지급되며 병원비, 교통비가 무료라고 한다. 인구의 고령화로 아기를 낳으면 30만엔(240만원정도)을 지급하고 2명을 낳으면 3배를 준다고 한다.
그래서 17명 낳은 주부도 있어 일하지 않고 정부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으로 산다는 말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각종 식료품은 유통가한을 철저히 지킨다고 한다. 유통기한이 거의 다가오면 값은 반값으로 떨어지고 주부들은 그걸 사려고 줄을 서며 부랑자들도 정보망을 통해 유통기한이 만료된 식품을 얻어 식사를 해결한다고 한다.
반값이라도 돈을 벌고, 쓰레기도 처리해서 비용도 절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고 했다. 오전 10시 40분경 고속도로 해노명(海老名)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일본지도를 구했고, 휴게소 밖에 진열된 가지, 배추, 호박등 깨끗한 농산물의 가격표시가 500에서 1,000엔으로 상당히 비싼 농산물을 볼 수 있었다.
잠시 쉬고 가면서 가이드는 “일본에는 불법체류자 때무넹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인은 전화카드 위조, 필립핀인은 마약, 중국인은 불법환전으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요즈음 일본은 위조 전화카드가 범람하여 전화카드 사용을 일제히 중지하였다고 한다. 11시 11분 명치 신궁(明治 神宮)에 도착하였다. 이곳을 도오쇼오구우(東照宮)라고도 한다. 여기는 70만 평방미터에 수만그루의 나무가 조성된 수목원이다. 이 신궁에는 신사가 있고 소원을 써서 나무나 집에 메달아 돟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부적들을 구경할 수 있었으며 알본인 결혼식 광경도 구경하게 되었다.
신랑은 사무라이 복장, 신부는 하얀 일본 여성의 복장에 짙은 주황의 입술, 그리고 10여명의 검정색의 양복과 양장을 한 친족만 결혼식 참여가 전부였다. 친족들만 지켜보는 가운데서 간소하게 결혼식을 거행하고 신사를 배경삼아 사진촬영과 행진을 했다. 초청인사는 초청장을 보내서 참석여부를 알려주어 별도의 장소에서 피로연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때는 부고장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12시 5분 동경 신도청으로 가면서, 가이드는 “현재 일본은 125대 천황으로 최초의 천황은 아미태라오이다 신(神)”이라고 했다.
일본의 신도는 신사이며, 신사마다 신이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은 유일신을 믿은 신자는 거의 없고 범신론자들만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성황당 신과 비슷하며 불교와 일본신도가 융합된 종교이고 신사마다 신(神)이 동, 새등 각각 다르다고 한다.
일본의 문화는 명치 유신때부터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어 그들의 얼과 몸에 동화시켰었다. 일본은 다른 어느나라와 달리 거의 서구 문화를 자율적으로 받아들여 일본화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고 일본 곳곳에 서구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조성하여 관광지화 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래서 교회가 호텔에 있고 목사가 죽어도 불교식 화장과 유골은 납골당에 보존한다고 한다. 일본 도시 한복판에도 묘지가 있다. 묘지 한기가 3대이상 가족의 납골당이라 한다. 그래서 일본 하늘에서 내려다본 산들은 묘지가 보이지 않고 푸름 숲만 보였다. 우리도 묘지를 납골당 정책으로 바꾸어 아름다운 산하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일행은 동경 도청에 도착하여 근무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전망대에 올랐다. 신도청 전망대에서 동경시내를 두루 살펴보면서 지진을 대비한 건축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전망대 기둥은 4개로서 지진을 대비 기동넓이가 가로 세로 각각 12미터로 그안에 기둥이 세겹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시장과 총장만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고 직원들과 교수․학생들은 전철이나 자전거로 출․퇴근하여 교통체증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전거 보관소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1시 7분 영전(永田)은좌에 있는 南大門교포 식당에서 비빔밥과 갈비탕으로 점심을 들고 면세점에 들렸으나 처음 생각대로 외제품 구입을 자제하였다.
오후 3시 50분 황거에 도착할 때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뚝 그쳐 일행은 가벼운 모습으로 소나무로 조성된 황거를 구경하였다. 황거에는 일본 천황이 거주하는 곳으로 인공호수로 둘러 있고, 주변 공원에는 아름다운 노송으로 조성되어 있다. 노송 사이에는 잔디가 말숙하게 깔려있고, 구부러진 소나무 가지위로 일본에서는 길조라는 까마귀가 우릴 반겼다. 한달에 두어번 천황은 공원을 거닐며 관광객에게 함께 포즈를 취해주어 관광객 유치에 한몫을 한다고 한다.
오후 5시 아타고 야마도 규인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밖을 나섰다. 호텔밖 도로에서 도로 공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크레인 기사 1명과 인부 1명에 감독관 3명은 과연 일본의 각종시설이 완벽하다는 것을 인식케하였다.
오후 5시 30분 신숙구(新宿區)대구보 아리랑 식당으로 가서 뷔페식 불고기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교포 식당이어서 진로소주를 사서 마시고, 일행중 회원은 부라보를 외치며, 합창을 하고, 쏟아진 비 때문에 예정된 환락가 신숙구관광을 뒤로한채 야마도 규인호텔로 돌아왔다. 택시비가 2,580엔(18,000원)으로 고물가를 실감케했다.
마지막 4일째 7월 27일 아침 6시에 기상하였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다. 날씨는 맑게 개었다. 아침 8시 호텔식사를 마치고 아사쿠사 사원으로 갔다. 일본 생활의 발전상의 그림도 촬영하면서 사원에서 합장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전자 상가의 구경도 포기한채 귀국하기 위해서 나리따 공항으로 향했다. 가이드는 “지금 일본에서는 식민제국을 건설하려다가 원폭에 쓰러져간 일본군의 위폐가 놓여있는 야수꾸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것은 원폭투하 52주년을 맞아 핵없는 세상기원을 한다는 목적 아래 일본인들의 양면성(두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일본은 원폭으로 폐마후 40년에 걸쳐 경제대국이 되었으나 우리나라도 20여년 걸쳐 세계에서 빠지지 않는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발전 과정에 부작용이 있었으나 일본인도 한국을 부럽게 보는 면도 있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발전을 가져온 한국인의 정신은 교육에 온 정열을 다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금년에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 도시 근로자의 가계부에 나타난 교육비 비중은 일본근로자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신동경 나리따 공항에 도착하면서 일본에서는 진로 간판은 수개이나 삼섬, 엘지는 한 개밖에 보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가수 조용필, 선동열 야구선수가 제일 알려졌다고 가이드는 자랑하면서 일본을 이기는 것은 끈임없는 노력으로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앞서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오후 2시 30분 나리따 공항에서 이륙하고 3박 4일간의 후지산 속에 얽힌 일본의 모든 모습들을 간직하면서 대한인의 새로운 자세를 일깨워 본다. (대덕면 문학리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