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산간 지방의 음식 문화
백두대간의 110km가 문경을 지나고,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4대 명산(주흘산, 희양산, 황장산, 대야산)이 있는 곳이라 문경은 어디에서나 산나물이 지천이다.
산간 지방이라 논을 배경으로 하는 음식보다 밭에서 나는 콩, 산채 등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돼 있다. 특히 주변 유명 사찰의 영향으로 맛이 대체적으로 담백한 것이 특징. 봄이면 농가마다 산에 올라 나물을 캐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며, 시장을 이용하지 고도 자급할 정도로 풍족하다. 이렇다 보니 겨우내 봄 농작물을 두고두고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장아찌나 묵나물(갈무리 한 나물) 등의 조리법이 발달했다.
2 솥뚜껑을 프라이팬 삼아 금방 부쳐 먹는 뜨끈한 배추전과 두부전은 세상에 더없이 훌륭한 요리. 길이 잘 든 무쇠 솥뚜껑이 한몫한다.
3 집 안 곳곳에 매달아 놓은 시래기와 우거지는 겨울 기본 식량.
문경 시집살이 32년, 신순옥 주부의 문경 음식 이야기
신순옥씨는 근처 예천에서 문경으로 시집온 경북 토박이. 지금이야 문경 사람 다 돼 문경 음식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 문경시 향토 음식 강사로도 활동할 만큼 실력가지만, 갓 시집왔을 때는 바로 인접한 동네인데도 문경과 예천의 산세가 달라서 먹을거리에도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 부엌일을 배우느라 아궁이에 불 지피며 서러움 반, 매운 연기 반에 울기도 했단다. 예천만 해도 논이 많이 있어 벼, 보리가 귀한 작물은 아니었는데, 문경에는 밭과 산이 많은 반면 논이 적어 콩, 밀 등의 작물과 산나물이 흔하고 쌀이 귀해 밥할 때마다 쌀 헤프다고 혼이 나기도 했다. 예천에서는 떡처럼 잘라 먹는 호박범벅이 문경에서는 죽처럼 묽어 새로운 레시피를 익혀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문경 음식은 대체로 담백한 맛이 특징이라 만드는 법이 어렵지 않아 금세 익숙해졌다. 뭐니 뭐니 해도 문경을 대표하는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그 흔한 산나물을 꼽는다. 어린 시절 봄이면 동무들과 소쿠리 하나씩 들고 산에 올라가 해가 다 지도록 누가누가 많이 캐나 내기라도 하듯 소쿠리에 이고지고, 치마폭에까지 담아 왔단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엄마한테 ‘못 먹는 나물’이라는 판정이라도 받는 날이면 록 빛깔로 물든 손톱에게 미안해져 엉엉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문경 음식이야말로 친환경이자 웰빙 음식이라고 자부한다.
집집마다 도자기, 그래서 더 맛있는 음식
문경은 도자기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한봉, 김정옥, 이정환 등 내로라하는 도예 장인들이 문경 출신이다. 문경의 도자기는 전통 방식으로 가마에서 직접 구워내며 지금도 곳곳에 가마가 남아 있다. 이렇다 보니 문경에서는 집집마다 귀한 도자기를 식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다도를 즐기는 주부도 많은 편이다. 도자기를 식기로 사용하다 보니 자연히 산채 음식이 더 빛을 발할 수밖에.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비벼 먹는 것과 달리 도자기에 비벼 먹는 산채비빔밥은 수분이 마르지 않아 윤기가 나고 산나물 향이 사라지지 않는다.
문경의 별미 산채비빔밥
1 겨울에 먹는 비빔밥 각종 나물에 콩가루를 묻혀 찌거나 삶아 밥 위에 얹은 후 약고추장(쇠고기를 갈아 넣고 만든 양념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 음식.
2 산채비빔밥 각종 산나물을 들기름에 볶아 국간장으로 약하게 간을 한 후 밥 위에 얹고, 양념 간장으로 비벼 먹는 음식.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문경 집밥으로 차린 겨울 밥상
봄에 갈무리해 놓았던 식재료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 똑같은 나물 하나로도 밥부터 국, 장아찌와 전까지 무한 변신이 가능하다. 특별한 부재료 없이 갈무리했던 재료들만으로도 훌륭하게 한 상 뚝딱 차려낼 수 있어 실용적이다. 더불어 건강에 좋은 식단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재료 불린 쌀 500g, 콩나물·무·배추·표고버섯 적당량씩, 양념장(집간장 ½컵, 마늘 3 , 파·통깨·고춧가루·참기름 약간씩)
만들기
1 무와 표고버섯은 5cm 길이로 썬다. 배추는 잎 부분을 섞어서 5cm 길이로 썬다.
2 콩나물은 찬물에 깨끗이 씻는다.
3 냄비에 일반 밥물보다 조금 적게 물 양을 잡아 불린 쌀을 넣고 준비한 채소를 얹은 후 소금을 약간 뿌려 밥을 한다.
2 콩가루냉이국
재료 냉이 200g, 무 ½토막, 생콩가루 1컵, 육수(다시마 사방 10cm, 국물 멸치 10개, 물 1.5ℓ)
만들기
1 분량의 재료를 냄비에 넣고 끓여 육수를 만든다.
2 냉이는 손질하여 생콩가루를 묻혀 놓고 무는 곱게 채 썬다.
3 육수에 콩가루 묻힌 냉이와 무를 넣고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3 배추전
재료 밀가루 100g, 배춧잎 3장, 물·산 기름 적당량씩
만들기
1 밀가루는 물에 개어 하루 정도 둔다.
2 반죽물의 웃물은 따라 버리고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한다.
3 배추에 반죽을 고루 묻힌 후 기름에 지진다.
4 콩부각
재료 대두 3컵, 찹쌀가루 1컵, 소금·설탕 약간씩
만들기
1 콩은 하루 정도 충분히 불렸다가 찹쌀가루를 묻혀 찜통에 10분 정도 찐 후 식힌다.
2 식힌 콩에 찹쌀가루를 다시 묻힌 후 햇볕에 말린다.
3 2의 콩이 마르면 160℃의 기름에 튀긴다.
4 소금과 설탕을 뿌려 먹는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 한밤 먹을거리
고된 농사일과 가을걷이를 끝내고 평화롭게 찾아든 겨울밤이면 아랫목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도토리가 많이 나는 문경 사람들은 도토리묵을 간식 삼아 먹고, 죽처럼 떠 마시는 호박범벅도 별미로 친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먹는 야참거리는 집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양념 간장에 찍어 먹으면 자는 내내 뱃속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