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나라 프랑스(France)
프랑스 전도(全圖) / 프랑스 국기(國旗:삼색기)
◆ 프랑스 국기(國旗:삼색기)
♤ 파랑: 자유(自由) ♤흰색: 평등(平等) ♤빨강: 박애(博愛)
*시민혁명의 상징이라고 한다. -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제의 탄생시킨 일
◆ 프랑스 개관(槪觀)
프랑스는 면적이 약 64만 ㎢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이 약 7배이고 인구는 6천 5백만 정도이다.
수도는 파리(Paris)이고 인종은 켈트(Celt/Gaul)족, 게르만, 노르만, 라틴 및 소수의 아랍계 민족들로 구성.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80%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고 그 밖에 무슬림(7%), 개신교(1.6%), 유대교(1.3%) 등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5천 달러(세계 18위:한국 24위)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잘산다.
◆ 프랑스 약사(略史)
프랑스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BC 7~8세기 남프랑스지역인 현재의 프로방스(Provence) 지역으로 그리스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프랑스 역사는 곧이어 골(Gaule)족이 들어와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된다. 1세기 전후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줄리어스 시저)가 이 지역을 정복하게 되며, 당시 무성한 삼림 지역이었던 이곳을 갈리아(Gallia) 지방이라고 불렀다.
곧이어 AD 5세기 들어서면서 영국의 켈트(Celt)족, 게르만(German) 일파인 프랑크(Frank)족이 이 지역으로 들어와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프랑크왕국의 왕이었던 클로비스(Clovis/481~511)는 영세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면서 정치, 종교, 문화의 일치를 이룬 제국으로 틀을 잡는다.
AD 9세기에는 북쪽의 바이킹(Viking)족이 노르망디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14세기 들어 영국과 지루한 전쟁(100년 전쟁)이 시작되는데 프랑스 오를레앙의 애국 소녀 잔 다르크(Jeanne d'Arc)가 화형당하면서 시작되었는지 어쩐지 프랑스와 영국의 껄끄러운 관계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 후 16세기, 로마교황청과의 알력으로 20년에 걸친 종교전쟁이 벌어졌고, 18세기 말에는 가장 큰 사건인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여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실시되어 나폴레옹이 실권을 잡는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자 1804년 프랑스 원로원은 그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므로 왕정으로 결국 되돌아가게 된다.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프랑스의 위상을 드높이긴 했지만 1812년 무모한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치명타를 입고 이듬해 다시 연합군에 패배하여 황제 자리에서 폐위되며, 결국 엘바섬으로 유배를 당한다. 그러나 곧 감옥을 탈출하여 다시 군대를 모아 재기를 꾀하지만 1815년, 워털루(Waterloo) 전쟁에서 패하면서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한다.
<워털루전쟁(The Battle of Waterloo): 프랑스 나폴레옹과 유럽연합군과의 전쟁>
그 이후 왕정과 공화제를 오가다 2월 혁명 등 혼란의 시기를 거쳐 1870년 보불전쟁(프랑스-프로이센<독일>)의 패배로 프랑스로서는 치욕의 시기가 시작된다.
그 후 드레퓌스 사건, 20세기 들어 세계 제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두각을 나타낸 군사전략가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 나치독일에 대항하여 레지스탕스(Resistance)의 선두에 서는 등 지하운동을 벌이며 입지를 굳혀 1958년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현재의 프랑스 대통령은 미테랑을 거쳐 새파랗게 젊은 마크롱(Macron:1977년 생)... 연일 데모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 Prologue ~~
=== 50일 간의 남유럽 배낭여행 ===
2018년, 혼자 중남미를 배낭여행을 하면서 더 늦기 전에 스페인과 모로코를 꼭 가고 싶어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대학교 5년 후배인 임교장이 자신도 혼자 해외 배낭여행을 해 보는 것이 꿈이라며 함께 가기를 간청하기에 결국 늙은이 둘(73세, 68세)이 배낭하나 달랑 메고 2019년 9월 17일 인천공항을 출발하게 되었다.
후배의 표현을 빌리면 『선배님은 Trainer, 저는 Trainee...』 ㅎ..
당초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50일 간 배낭여행의 첫 도착지가 프랑스 파리(Paris)의 샤를드골 공항이고 여행 중 아프리카 모로코 여행 일정이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안도라와 스위스 여행은 취소가 불가피했다.
스페인 18박, 모로코 13박, 프랑스 10박, 그리고 영국 5박, 포르투갈 3박이 우리의 여정(旅程)이었다.
미라보(Mirabeau) 다리에서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리네./ 내 마음에 아로새겨야 하나
사랑은 짐짓/ 아픔 뒤에 온다는 것을... -이하 생략- - 아뽈리네르(Apollinaire)의 시(詩) -
꿈에 그리던 세느(Seine) 강변에 앉아 잠시 상념(想念)에 잠기다.
보들레르와 아뽈리네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들
감수성 예민하던 나의 고교시절,
이 시를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맘껏 장밋빛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곳....
파리 그리고 세느강....
강변 나무그늘 벤치에 앉아 잠시 넋을 잃고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다.
젊은 시절 주체할 수 없는 막연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던
그 시절의 장면들이 안개처럼,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 찬란했던 나의 젊은 시절 꿈이여,
지금까지도 가슴 속에 응어리 되어 남아있는 이루지 못한 그 아픔의 조각들이여....
1. 파리(Paris)의 이모저모
<1> 파리의 지형
몽마르트 언덕에서 본 파리 / 사크레쾨르 성당
파리는 한강보다 조금 작은 센(Seine)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다 남쪽 방향으로 꺾어진다.
양쪽 강안을 따라 수많은 명소들이 모여 있는데 대부분 강북 쪽에 있고 강의 남쪽에는 오르쉐미술관, 에펠탑, 판테옹, 소르본(Sorbonne) 대학 등이 있다.
파리에서의 교통수단은 대체로 지하철(Metro), 시내 지상 전철인 트램(Tram), 시내버스, 택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샤를드골 공항에서 시내를 들어올 때는 교외선 전철(PER)을 이용하게 된다. 샤를드골 공항에서 파리 시내까지는 전철(PER)이나 버스가 모두 1시간쯤 걸리고 차비는 전철 12유로, 버스는 18유로이다.
파리에서 시내버스는 비교적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파리는 물론, 남프랑스의 아를(Arles)과 아비뇽(Avignon)에서도 버스를 이용하려다가 몇 번 혼난 적이 있는데 이용 승객이 적어서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다.
파리는 화려한 역사를 자랑할 뿐더러 또한 세계 제일의 패션과 예술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수도인 만큼 세계적 명소들이 가는 곳마다 즐비하다. 파리의 중심인 에투알 광장은 개선문을 중심으로 상제리제(Champs Elysees) 거리 등 대로들이 팔방으로 뻗어 나간다. 그 모양이 흡사 별 모양 같다고 하여 에투알(Étoile/별)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선문과 이어진 상제리제(Champs Elysees) 거리는 신시가지인 라 데팡스(La Défense)로 부터 개선문을 통과하여 콩코드(Concorde) 광장을 지나 루브르(Louvre)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거의 직선으로 뻗어있으니 중심대로라 할 수 있다. 라 데팡스는 ‘보행자의 천국’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파리 관광은 주로 지하철(Metro)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며, 대체로 상제리제 역으로 와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아타면 쉽게 파리의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제기럴.... 파리 첫날,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돈과 카드까지... 파리는 소매치기 천국이라더니...
<2> 몽마르트 언덕(Montmartre)과 사크레쾨르(Sacre-Coeur) 성당
몽마르트(Montmartre)는 파리 시내의 북쪽에 우뚝 솟은 언덕으로, 정상에는 파리에서 제일 큰 사크레쾨르(Basilique du Sacre-Coeur/Sacred Heart Cathedral) 대성당이 있는데 성당 앞에서 보면 파리 시내가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이는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이번 여행은 처음 파리 4박을 시작으로 여행 막바지 남프랑스 7박까지 총 11박 12일 간의 프랑스 여행인데 첫날 도착하자마자 간 곳이 몽마르트 언덕이었고, 귀국 전날 여유를 가지고 또 올라간 곳이 다시 몽마르트였다. 정상에 있는 1914년에 완공되었다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크레쾨르 성당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성당을 본떠 로마 비잔틴양식으로 지었다는 이 성당은 우선 그 웅대한 규모부터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외부의 각종 장식 조각품들은 물론 내부도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정문 앞쪽에는 그리스도 동상 뿐 아니라 각종 성인들의 조각은 물론 말을 탄 잔다르크(Jeanne d'Arc)의 모습도 보이고, 성당 뒤쪽 우뚝 솟은 종탑도 너무나 멋있는데 높이가 80m나 된다고 한다. 프랑스어 사크레쾨르(Sacre-Coeur)는 영어로 ‘Sacred Heart’, 우리말로 하면 ‘성심(聖心)’이다.
성당 내부는 웅대한 둥근 돔 형태의 천정이 너무나 아름다운데 둥근 아치형 창문의 형형색색 모자이크를 통과한 빛으로 내부는 더욱 신비로운 공간이 된다. 외관에 비하여 소박한 제단,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웅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한 편에는 성당 전체모습의 미니어처도 설치되어 있다.
성당 앞쪽은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거리는 계단과 작은 마당이 있고 뒤쪽으로 돌아가면 이른바 문화의 거리로 온통 카페와 노점들로 어지럽다. 각종 기념품 가게들, 즉석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 가지가지 음식을 파는 가게들, 곳곳에 그림을 늘어놓고 파는 가난한 그림쟁이들...
이곳은 특히 갓 결혼한 신랑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와서 사진 찍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한국 신혼부부를 두 쌍이나 보았다. 이곳은 올라오는 케이블카도 있지만 우리는 걸어서 올라왔는데 제법 한참을 헉헉거려야 오를 수 있다. 앞쪽으로 오르면 지그재그 멋진 공원길, 뒤쪽으로 오르면 수없이 많은 계단의 연속....
<3> 파리의 개선문(Triomphe)
라데팡스 신 개선문 / 에뚜알 개선문 / 카루젤 개선문
샤를드골 에투알 광장에 있는 에뚜알 개선문(Étoile/별)은 나폴레옹이 오스텔리츠 전쟁(1806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문으로 높이가 50m에 달하며 여러 전투에서 승리한 장면들이 정교하게 벽면에 새겨져 있다. 이 개선문은 1806년, 나폴레옹의 직접 지시로 건축을 시작했지만 1812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로 미루어졌다가 1836년, 나폴레옹이 사망한 후에야 완공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살아생전에는 통과하지 못하고 죽은 후 관이 이 개선문을 통하여 파리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갔던 날(9월 18일) 하필이면 데모대가 깃발과 프랑카드를 앞세우고 개선문 쪽으로 행진해오고, 경찰들이 최루탄을 쏘아대는 통에 관광객들은 매운 최루가스에 재채기를 해대고 눈물, 콧물을 찍어내며 서둘러 광장을 벗어나야했다.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가면 파리 시내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는데....
어느 나라나 말 못할 사회적 고민은 있는 모양이다.
파리에는 개선문이 몇 개 더 있는데 튈르리(Tuileries) 공원에 있는 ‘카루젤(Carrousel)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제일 먼저 세운 개선문이라고 하는데 만들어진 후 너무 작다고 상제리제에 다시 세우라고해서 세워진 개선문이 에투알 개선문이다. 신도시인 라 데팡스에는 ‘신개선문’ 도 있는데 미테랑 대통령이 신시가지(新市街地)를 조성하며 1983년에 세웠다고 하며 세 개선문은 모두 일직선상에 있다.
<4> 알렉상드르(Alexandre) 3세 다리
- 알렉상드르 3세 다리 -
콩코드 광장에 들어서기 전 엄청난 규모의 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로,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하며 189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맞추어 설치되었다고 한다. 높이 20m의 황금빛 천마와 청동상, 아치형 다리의 옆면에는 가지가지 꽃, 동물, 사람의 형상들이 돋을새김 되어있고, 난간을 따라 줄지어선 가로등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특히 다리의 양쪽 끝에는 높이 20m의 돌기둥이 서 있고 그 위에는 황금빛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의 청동상이 올려져 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대저택 그랑 팔레와 넓은 콩코드 광장이 펼쳐진다. 이 다리는 1892년 프랑스와 러시아의 우호관계를 성사시킨 러시아 알렉상드르 3세의 이름을 붙였다.
<5> 콩코드(Concorde) 광장
콩코드 광장 / 광장의 분수대 앞에서
콩코드 광장은 1793년,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곳으로 원래의 이름은 ‘루이 15세 광장’이었는데 프랑스 혁명 후 ‘혁명광장’, 그 이후 다시 ‘콩코드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니 프랑스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곳이라 하겠다. 콩코드(Concorde)은 프랑스어로 ‘화합, 일치’ 라는 뜻이라니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프랑스인들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의 비극
루이 16세(Louis XVI)는 프랑스 부르봉(Bourbon) 왕가의 마지막 황제이다. 1770년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하였고 1774년 즉위하였으나 프랑스 혁명(시민혁명)으로 1791년 1월,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단두대(Guillotine)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같은 장소에서 처형되었다.
◐ 오벨리스크(Obelisk)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광장의 중심에는 이집트 룩소르(Luxor)의 람세스 신전에 있던 오벨리스크(클레오파트라의 바늘)를 가져다 세워놓았다는데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한다. 1829년 오스만튀르크(Ottoman Türk)의 이집트 총독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하였고, 이것을 운송하는데 4년이 걸렸다고 한다. 맨 꼭대기에 있던 금박 피라미드는 전쟁과정에서 분실되었는데 프랑스 정부에서 1998년 복원하여 다시 얹었다고 하고, 오벨리스크 네 면에 새겨진 이집트 상형문자는 파라오를 찬양하는 노래라고 한다.
이집트의 보물이 유럽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아름다운 분수와 정교하게 조각된 여신상들이 놓여있다.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클레오파트라의 바늘)
<6> 앵발리드(Invalides) 군사 박물관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광장 한쪽으로 아름다운 황금 돔이 인상적인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이 있는데 건물 뒤쪽 아름다운 황금 돔의 성당 안에는 나폴레옹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있다.
<7> 튈르리(Tuileries) 공원과 루브르(Louvre) 박물관
콩코드 광장과 잇닿아 카루젤 개선문이 있는 아름다운 직사각형의 대 정원 튈르리 공원이 있고 연이어 곧바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연결되는데 콩코드 광장에서 센강 건너편에는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부르봉 궁전이 있다. 부르봉 궁을 보러 강을 건너다보니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고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며 입장이 안 된다고 한다. 노랑조끼 대모대 때문일까? 바깥에서 구경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으로 놀라움을 준다.
파리 3대 미술관 중의 하나라는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 관람은 포기하고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을 보기로 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은 그 양과 질적인 면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 루브르(Louvre)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은 1793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거처를 옮기며 수집하였던 각종 미술품들을 전시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는 엄청난 규모의 박물관으로, 총 225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그리스, 이집트, 유럽의 각 나라의 유물은 물론 프랑스 왕실의 보물, 조각, 회화 등 총 40만 점의 예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루브르에서 관람한 예술품들은 대부분 우리가 사진으로 보던, 너무나 유명하고 눈에 익은 작품들이다보니 오히려 감동이 크지 않다. 이곳은 루브르이니까....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의 유리로 지어진 피라미드는 그 아래가 텅 빈 지하 1층 공간으로 가운데 부분은 피라미드의 신비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들>
1. 모나리자(레오나르도 다빈치) 2. 비너스(밀로) 3. 승리의 여신 니케(사모트라케) 4. 가나의 결혼식(베로네즈)
5.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들라크루아)
6.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루이 다비드) 7. 터키 술탄의 애첩(앵그르) 8.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 9. 성 세바스찬의 죽음
10. 앗시리아의 날개 달린 황소(BC 8세기).....
<8>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가다가 겪은 웃지 못 할 에피소드
루브르 관람을 마치고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가는데... 지나가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오르세 뮤지엄(갤러리)’ 이라고 하니 아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영어를 곧잘 하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물었는데도 모르겠다는 표정이기에 ‘오르세, 오르세이, 오르사이’ 하다가 지도를 펼쳐 손가락으로 짚었더니 ‘아~, 독세(도흐쎄?)’ 하며 웃는다. 불어 발음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불어 발음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겠다.
‘r' 발음을 ‘ㅎ’으로 내기도 하고.... 사뭇 헷깔린다.
‘샤를드골’을 ‘샤흐드골’, ‘소르본(대학)’을 ‘소흐본’, 전철역 ‘Porte de la Chapell’을 ‘뽀흐뜨라 샤펠’... ㅎ
○ 입장권을 사다가 벌인 에피소드..
미술관 앞에는 티켓을 사는 줄이 꼬불꼬불 한도 끝도 없이 늘어서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단체 관광객들이 바글 바글... 그런데 한쪽에서는 인터넷으로 미리 표를 예매한 사람들이 여유 있게 입장을 한다.
아침 일찍 서둘러 왔는데도 이 모양이다. 맨 뒤에 서둘러 줄을 서며... 휴~, 이러다가 점심 전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 점심을 굶게 생겼네... 빵이라도 사 들고 올걸... 하는데 갑자기 시커멓고 키가 큰 젊은 녀석이 옆에 바짝 다가서더니 옆구리를 쿡 찌르며 표를 보여준다. 정가 14유로짜리 표를 보여주며 20유로를 달라고 한다. 양심이 찔리기는 하는데 강한 유혹을 느낀다. 옆의 임교장에게 눈을 꿈적이며 의사 타진... 작은 소리로 ‘이거 혹시 가짜 표가 아닐까?’ ‘이 표를 내고 들어가다가 잡혀서 봉변??’
망설이다가 결국 40유로를 주고 2장을 샀다. 젊은 검둥이 녀석은 눈을 꿈적거리며 슬며시 따라오라고 한다. 딴청을 피우고 줄에서 슬쩍 빠져나와 슬슬 따라갔더니 인터넷 예매를 하고 들어가는 사람 뒤에 슬쩍 붙이고는 사라진다. ‘어~ 어~ 저 녀석....’ 하면서 우리 차례가 되었는데 검표하는 사람이 얼굴을 슬쩍 쳐다보더니 들어가라고...... 모두 한통속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뒤통수가 좀 시리기는 했지만 두어 시간은 족히 벌은 모양이라 둘이 눈짓을 하며 통쾌하다는.... 어쨌거나... 오르세 미술관의 전시 작품들도 루브르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유명해서 입에 올리기조차 버거운 대가들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카메라로 신나게 사진을 찍어댔는데 나중 리옹(Lyon)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통에 사진은 하나도 건지지 못했으니....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ㅎㅎ (교장 출신이라는 작자들이~)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
1. 별이 빛나는 밤에(고흐) 2. 만종(밀레) 3. 낮잠(고흐) 4. 이삭줍기(밀레) 5. 풀밭위의 점심식사(마네)
6. 타이티의 여인들(고갱) 7. 고흐의 방(고흐) 8. 무도회(르누아르) 6. 피아노 치는 소녀(르노아르) 7. 피리부는 소년(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