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역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내가 정말 바보다!!!
게다가! 아리스. 주인을 이렇게 개 패듯이 패는 것이 어디에 있냐?
아무리 내가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고는 하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맞으면 아
픈 것은 아픈 것이다.
게다가 잔인하게…. 팔꿈치로 치다니!!!
"아리스!!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가 팔꿈치하고 무릎이다!! 근데 그걸로
날 치냐?"
"어머 전 인체라고 부르기가 뭐한데요."
…. 그러고 보니 그러네….
젠장. 그래도 아픈 것은 아픈 거다!!
"쿡쿡…."
"웃지 말아요. 루나린. 남은 아파 죽겠는데…."
"호호. 미안해요.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 보이네요."
어느새 대화를 끝내고 나를 바라 보고있는 루나린이었다. 하기야 자그마치
1300대까지 한번. 800대까지 한번. 900대까지 한번을 했는데….
시간이 상당히 지나갔겠지….
크윽. 그래도 아리스 진짜 너무 한다. 그런 치사한 방법까지 쓰고….
박자를 틀리게 해서 헷갈리게 하지를 않나. 박수를 칠 때 내 코앞에서 쳐서
깜짝 놀라게 하지를 않나.
치잇. 어디서 이런 치사한 방법만 배워 가지고….
"다 기술이라고요. 그리고 가르쳐 주신 것은 주인님이에요."
"그래 잘났다. 너 잘났어."
난 앞으로 두 번 다시 아리스와 3, 6, 9 게임을 하면 성을 갈아버리겠다고 다
짐을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크윽. 더럽게 아프네…."
"그렇게 아프세요?"
"아리스의 주먹이 보통 돌 주먹이 아니잖아요."
나의 말에 루나린은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고 아리스는 뚱한 얼굴로 나의 옆구
리를 꼬집었다.
크악!!
사람이 꼬집힘 당했을 때 어떨 때가 가장 아픈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가장 작은 면적을 손톱으로 꼬집었을 때다.
크윽!! 이건 진짜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어머. 정말 다치신 것 아니에요?"
"아. 아니에요…. 이건 아리…. 끄악!!!"
또 꼬집혔다!!! 이. 이번 것은 정말 장난 아니다!!!!
"어머. 정말 다치셨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치유마법을 하실 줄 아시는 분
좀 불러올게요.
"아. 아니…. 루나린!! 전 아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난 황당한 얼굴로 아리스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싱긋
웃는 그녀의 머리에 알밤을 한 대 갈겨 주었다.
"히잉…."
"얼마나 아팠는지 알기나 하냐? 게다가 진짜 치유술사가 오면 어쩔 꺼야?"
"그럼 뭐 몸에 좋은 치유마법 한번 받는 거죠."
하아…. 할말없다.
하여간 이 세상에서 아리스와 대화해서 그녀의 말발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던 나는 곧 나에게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
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휘리아나가 날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
쩝 대답을 할 리가 없지…. 그래 백날 그렇게 꼴아 보려면 봐라. 누가 메르틴
누나 아니랄까봐 꼴아 보는 것도 진짜 싹수머리가 없네.
쳇. 듣기로는 19세 정도라고 하던데.
이봐. 내가 너보다 두 살이나 더 많이 산 오빠다. 알 것냐?
쳇. 남자녀석이라면 메르틴처럼 시원하게 하루종일 뺨을 갈겨 줄 건데….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라서 봐준다.
"언니에게 접근하지마…."
"아아…. 그래그래. …. 엥? 뭐?"
"너 같은 녀석이 어떻게 아버지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에게
접근하면 죽인다."
…. 파하!!!! 방금 내가 환청을 들은 건가?
그러나 아리스의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니군….
"너희 언니 따위 돈주고 데려 가래도 우리 주인님이 마다해!!"
이봐이봐! 아리스!!! 돈주고 데려 가라면 내가 당연히 데려가지!! 마다할 리
가 없잖아!!!!
"흥!!!"
"권위 있는 집안이라고 까부는가 본데."
무. 무섭다…. 아리스의 등뒤로는 용 한 마리가…. 휘리아나의 등뒤로는 호랑
이 한 마리가 보이는 구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는 강력한 스파크….
"흥. 꼴에 자기 주인이라고 나서기는…. 저런 날 건달을…."
"뭐. 뭐라…. 읍!!!"
난 급히 아리스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그것은 싸움을 여기서 끝내기 위해서
가 아니다.
큭큭. 이 버르장머리없는 계집…. 감히! 감히 이 몸을 날 건달이라고 했겠다.
"…."
무표정 하지만 그 안쪽에는 경멸에 빛을 담고 날 바라보는 휘리아나를 보며
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 미소에는 상당한 살기가 실려 있었기에 휘리아나의 얼굴에 약간이
나마 흠칫하는 기운이 어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카인님. 치유술사를 모셔왔…. 어머 멀쩡 하시네요."
그때 루나린이 돌아옴에 의해서 나와 휘리아나의 눈싸움은 종결을 맺어야 했
다.
"무. 무슨 일 있으셨어요? 왜 분위기가…."
"언니.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 잘 돌아가요."
"으응…. 그. 그래…."
"그만 가죠. 가서 준비할 일이 있으니까."
"네…. 네."
먼저 휘리아나가 돌아섰고 뒤이어 내가 몸을 돌렸다.
큭큭. 오늘은 이만 봐주지만….
일주일 뒤에 보자고…. 싹수머리 없는 계집.
"메르틴과 함께 대회에 나가겠다고?"
"네. 지금까지의 성과를 시험해보는 것도 되고…. 또 자신감을 기를 수도 있
으니까요."
내 말에 하스미르공작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메르틴이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 알 수가 없는 그는 좀 못 마땅한
얼굴이었다.
하기야. 명색이 공작가의 아들이 그런 대회에 나가서 졸지에 예선 탈락을 해
버린다면…. 그게 무슨 개 쪽이냐?
쩝. 어쩔 수 없군….
"정 뭐하신다면 내일 한스와 대결을 시켜보고 결정을 내리셔도 무방합니다
만."
"음."
내 말에 하스미르공작은 침중한 신음을 한번 흘리고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크큭. 되었어!!!
내일이면 비록 한스는 이기지 못할 테지만 하스미르공작은 놀랄 만큼 성장한
메르틴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히 허락은 떨어지겠지. 크큭. 그럼 메르틴은 대회출전.
그리고 그곳에서 재수가 더럽게 없지만 않으면 충분히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고….
크큭. 운만 좋으면 남매간의 대결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군.
만약 그곳에서 메르틴이 이긴다면…. 크크큭. 그 실력 좋다던 아가씨의 기분
은 과연 어떨까?
동생은 실력이 없어서 이그네스 기사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그런 그가 나에게 겨우 한달 배워서 이겨 버린다면….
뭐. 둘이 맞붙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메르틴은 그녀와 거의 비슷한 실력만을 보여주면 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
을 만큼만…. 그 정도로 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날 건달이라고 했던 그 싹수머리 없는 아가씨의 아
구지를 시원하게 닿히게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 지는 것이다.
혹 메르틴은 준결승까지 진출하고 휘리아나는 그보다 못하고 떨어지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크하하하하!!!! 좋아!!! 메르틴 난 너를 믿는다!!!
절대로 난 너의 실력을 믿는다!!!
보아라! 저 사람들의 놀라고 뻥진 얼굴을….
보아라! 저 꼬맹이 메르틴녀석의 어설프게(?) 늠름한 모습을….
이곳은 하스미르공작의 저택의 실내 수련장.
과연 메르틴을 대회에 출전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하는 중요한 승부가 시
작 된지 불과 5분….
나와 아리스를 빼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방금 전 한스와 거의 대등한 대결을 벌였던 메르틴 녀석 또한 마찬가
지였다.
후훗. 설마 자신의 실력이 이 정도까지 성장했는지는 몰랐겠지. 하지만 이 정
도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겠지…. 이봐 메르틴 좀더 빨리 움직이라고….
"메르틴. 뭘 그렇게 멍해 있냐? 평소 하던 대로만 해."
내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메르틴은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흠. 괜찮군. 몸에 힘도 그다지 들어가 있지 않고 검을 잡은 힘도 아주 적당
해. 역시 저 녀석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검술보다는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상대
의 빈틈으로 검을 찔러 넣는 검술이 더 잘 어울려….
"하핫!!"
다시금 메르틴이 한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방금 전 방심을 하다 호되게
당한 한스는 이번에는 제대로 검을 쥐며 메르틴의 검에 맞추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큭. 아직도 한스는 알아채지 못했군.
그렇게 은근슬쩍 봐주려고 했다가는 진다니까 그러네. 아직 내가 가르쳐준 새
로운 검술로 다른 검술을 처음 상대해 보는 지금 이 순간 밀어 붙여야지 조금
만 시간이 지난다면 그쪽이 위험해 진다니까.
뭐라 해도 내가 메르틴에게 알려준 검술은 천기류상의 검술이니까.
파앗!!
역시나 메르틴은 나에게 배운 대로 잘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원의 움직임.
그렇다고 단 하나의 원의 움직임이 아닌 수십 개의 원을 따라 움직이는 검술.
예측하기도 어렵고 한번 발동이 걸린다면 그 파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게 된다.
째앵!!
가볍게 부딪치는 검. 그러나 부딪치는 순간 움직임이 아주 약간이나마 멈추는
한스와는 다르게 메르틴의 검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어 한스에게 파고들었다.
게다가 간혹 터져 나오는 한스의 공격은 예도의 특성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막
아내고 있는 메르틴이었다.
"노. 놀랍군. 거의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한스를 단지 검술만으로 저
정도로 밀어붙이다니…. 정말 놀라운 검술이군. 전혀 그 흐름을 예측할 수가
없어."
"당연하죠. 형식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건데…. 흐름 따위가 있겠습
니까?"
내 말에 하스미르공작은 놀란 얼굴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기야 나도 놀라겠다. 마구잡이로 휘두른 검이 이제 겨우 검술을 익힌 사람
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저렇게까지 밀어붙인다면….
하지만…. 사실인데 어쩌라구…."
"노. 놀랍군…."
"형식 따위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기본 틀은 있죠. 처음의 시작
은 원의 하나 그 다음은 바로 그곳에서 뻗어나가는 두 개의 원 중 하나를 골라
서…. 여기에선 검의 움직임이 두 방식뿐이죠. 그러나 그 다음에는 네 개의 원
중 하나를 골라서 갑니다. 그 후에는 여덟 곳…. 그 후에는 열 여섯 곳…. 이
해가 되셨나요?"
나의 말에 하스미르공작은 놀란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하기야 이런 검술이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었겠지.
하긴 천기류 검술의 오의인데….
"후훗. 하지만…. 저것도 약점은 있습니다. 우선 초반에 검의 진로를 봉쇄를
당한다면 바로 끝이죠. 두 번째로 뛰어난 반사신경이 없고 상대의 움직임을 읽
을 수 없는 눈이 없다면…. 바로 자신이 상대의 검으로 뛰어드는 것이 됩니다.
세 번째로 어느 정도 빠른 몸놀림을 가지고 있어 야죠. 아시다시피 직선 움직
임보다 원의 움직임은 그 이동범위가 넓기 때문에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더 많은 움직임을 보여야 하죠. 잘못하면 상대의 무작위 찌르기에 그대로 당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내 말에 하스미르 공작은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향한 시선은 메르틴에게로 가 있었고 곧 그는 흐뭇한 웃음을 흘렸
다.
쩝. 역시 무사가문 인지라 아들이 강해지니 좋아하는군….
어느새 결투는 종말을 치닫고 있었다.
메르틴이 이기고 있냐고?
말도 안 된다. 분명히 어제 내가 말했다 시피 한스는 내가 지금 상태로 5성
이상의 힘을 써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상대다.
여기서 한가지 밝혀두지만…. 소드마스터라는 하스미르공작도 내가 마음만 먹
으면 지금 상태로 무릎을 꿇릴 수 있는 것이다.
몸 속에 가지고 있는 기나 그것을 얼마나 잘 다루는 것만이 싸움의 승률이 되
지는 않으니까.
물론 이 둘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싸움에서는 이것과 함께 동
반이 되는 사항. 게다가 가장 중요시되는 사항. 바로 검을 다루는 기교다.
물론 하스미르공작이 검을 잘 못 다룬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나에 비해서
는 드래곤 앞에서 마법자랑이라는 것이다.
비록 지금 나와 하스미르공작의 내공의 차이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나지만….
이 정도라도 충분히 난 대결을 한다면 하스미르 공작을 누를 수가 있다.
쩝.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벌써 상황이 종료되어 버렸군.
위풍 당당히 검으로 메르틴의 목을 겨누고 있는 한스와 검을 저 멀리 날려버
리고 항복을 선언하고 있는 메르틴….
쩝. 이 바보야!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상대와 힘으로 붙으려 하지 말라
고!! 검의 부드러운 움직임만으로도 능히 적을 제압할 수 있는데….
쩝. 어째서 이 세계는 무식하게 검을 휘두르는 것을 최고로 치는 거지?
하아…. 메르틴 녀석도 잘 나가다가 조금 힘들어 지면 예전에 배운 버릇이 나
오는 것이 문제였다.
예전에 배운 대로 강하게 검을 내려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
쩝. 그 꼴 진짜 못 봐주겠다.
뭐…. 어쨌든 중요한 것은….
끄덕….
하스미르 공작이 대회에 나가라고 허락을 해준 것이지만….
왕국 종합 무술대회. 루난 왕국의 수도 페알딘에서 여름에 벌이는 건국축제와
함께 열리는 유명한 경기이다.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콜로세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 경기를 출전하
기 위해서, 혹 보기 위해서 나라 곳곳에서 용병들이나 기사들. 마법사들이 몰
려들고 그 덕분에 이 시기에는 길을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넘쳐나는
게 바로 페알딘이다.
라고 루나린이 말해 주었다. --;;
쩝. 어쨌든 루나린의 말대로 정말 돌아버릴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기 걸어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바로 무술대회가 열리는 콜로세움으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얼마나 이 무술대회가 유명한지 알수 있을
정도였다.
어제와 그제 이틀에 걸쳐 벌어진 예선전에서 메르틴은 운 좋게 본선으로 진출
을 했고 그 싹수머리 없는 계집도!!! 본전에 올랐다.
큭큭!!! 게다가!!! 어제 몰래 훔쳐본 대전표를 보니!!
엄청나게 기분 좋게도 2회전에서 이들 남매가 붙게 되었단 말이다!!! 크하하
하!!!! 게다가 마지막으로 결승전에서는 나와의 대결!!
이것으로 그들 남매 중 누구라도 이겨서 올라온다면 난 위풍 당당하게 그들을
눕히고는 내가 최강이다라고 외칠수 있다는 말이었다. 캬캬캬!!!
그리고 또 한사람. 본선 진출자 중에는 로이드도 끼어 있었다.
쩝. 알고 보니 로이드 일행도 여기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페알딘에 왔다
니….
"떨리냐?"
"…. 네…."
나의 질문에 메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싸
워야 한다니…. 안 떨리려야 안 떨릴 수가 없겠지….
이거 어떻게 한다….
음.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출전이었지?
난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메르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1회전에서 단 5초만에 적을 날려버리면…. 어쩌겠냐?"
"네?"
"후훗. 내가 5초만에 날려 버릴 테니. 너도 꼭 1회전은 통과하는 거다. 약속
할 수 있냐?"
나의 말에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메르틴. 나는 빙긋 미소
를 지으며 녀석의 머리를 툭툭 쳐주었다.
"너 자신을 믿어. 넌 충분히 강하다."
일명 뛰어주기!! 큭큭큭!!
그래!! 넌 꼭 1회전을 통과해야해!! 그리고 그 싹수머리 없는 계집과 기적적
인 상봉(?)을 해서 그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단 말이다!!!
알겠냐?
크하하하!!!
신무(神武)
39.
"그럼 둘 다 잘해요!"
"주인님.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하세요."
"수고하세요."
아리스와 루나린, 베르리나의 응원! 좋았어! 이걸로 기력 충전 100%다!!
난 그녀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내 주고는 메르틴과 함께 안쪽 대기실로 향했
다.
하지만!! 초반에는 내가 이끌어 가던 길을 조금 시간이 지나자 메르틴이 날
끌고 가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흐흑! 방향치의 슬픔이여!!
내가 눈물을 흘리며 내 유일한 약점을 저주하고 있을 무렵 도착한 곳. 그곳에
는 서른 명 정도의 인물들이 각기 자기의 일에 몰두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앉아서 명상을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검을 닦으며 웃고 있는 놈.
장난스럽게 옆에 여자를 꼬시는 놈…. 응?
그러고 보니 저 여자는 휘리아나잖아!
쩝. 예선전때는 다른 곳에서 서로 대회를 하다보니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보니까…. 역시 예쁘기는 예쁘…. 이게 아니잖아!!!
"누나!!"
메르틴이 조금 반가운 미소를 머금고 그곳으로 다가가 입을 열자 그녀도 고개
를 들어 메르틴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열심히 휘리아나를 꼬시던 놈은…. 쩝. 불쌍하게도 완전 개 무시를 당
해버렸다.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으며 메르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휘리아나. 그러
나 곧 나의 모습을 보고는 싸늘히 눈을 부라 켰다.
하지만! 봐주지…. 큭큭큭. 있다가 그 모습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구.
"아! 누나! 이쪽은 내 선생님. 나한테 한달 동안 검술을 가르쳐 주신 카인 선
생님이셔."
자그마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휘리아나. 난 그녀의 약간 놀란 얼굴을 보며 싸
늘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큭큭. 하기야 그 얼빵한 녀석을 겨우 한달 동안 가리켜 이 수준 높은 무술대
회에서 본선에 진출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안 놀라겠냐?
"헤헤. 나 실력 많이 늘었어! 일주일 전에는 한스와도 싸워서 아버지께 칭찬
까지 받았다고. 내일 누나와 싸울 때 안 봐줄 테니까 조심해."
"성장했다니…. 기쁘구나…."
하아! 하여간 목소리 하나는 정말 일품이라니까.
쩝. 좀 성깔만 좋으면 진짜 완벽한데….
큭큭. 이 기회에 내가 대리고 다니면서 버릇을 완전히 고쳐버려?
그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툭 쳤다.
"어이. 카인! 너 어떻게 이곳에…."
로이드였다.
쩝. 로이드와도 어제 다른 곳에서 시합을 했던 터라 내가 이 시합에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을 거다.
나야 하도 궁금해서 하스미르공작을 졸라 대전표를 구해 봤기 때문에 알 수가
있었지만….
역시 공작쯤 되니까 단 1시간도 안돼서 즉각 구해 주더라고.
"아아…. 그렇게 됐어요. 그보다 로이드는 또 어떻게 된 거죠?"
나는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척 하며 로이드에게 물었다.
"나야. 원래 이곳에 온 이유가 이 대회 때문이었지."
"그래요? 그보다. 다른 일행은?"
"아! 지금쯤 관중석에 있을 거야. 나와 프레야 둘만 출전했는데 프레야는 탈
락해 버렸거든. 재수 없게 예선전에서 엄청 강한 놈을 만났다는 거야. 쯧."
그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로이드.
난 프레야를 이긴 엄청 강한 놈이라는 녀석에 대해서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
다. 프레야도 로이드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한 실력자였기 때문이었다.
로이드가 거의 한스정도의 검술을 가진 녀석이니…. 프레야는 대략적으로 지
금의 메르틴과 비슷할 정도?
그런데 그 정도의 실력자가 떨어지다니…. 이거 생각보다 수준이 높은데 이
대회.
"그런데…. 이쪽은?"
"아아. 인사해. 이쪽은 내가 지금 검술을 가르치고 있는 메르틴. 그리고 이쪽
무!! 지! 하! 게! 추운 아가씨는 메르틴의 누나인 휘리아나. 둘 다 이번 본선
진출자야."
"아! 반갑네. 로이드 프로이슨이라고 하네."
로이드의 말에 휘리아나는 약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고 메르틴도 못마땅한
얼굴로 턱을 약간 움직일 뿐이었다.
난 그 즉시 메르틴의 뒤통수에 주먹을 갈겨 버렸다.
"똑바로 인사해! 내 친구다!!"
"아야야…."
그러자 휘리아나의 얼굴에 살기가 어리면서 검을 약간 뽑으려 했지만…. 난
간단히 그녀를 무시해 버렸다.
짜식이. 메르틴녀석. 조금 거만함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더니…. 아직까지 내
앞에서 뿐이었잖아!!
"아. 안녕하세요. 메르틴 덴 유리샤크 이렌드 피레시온이라고 합니다."
메르틴의 풀 네임.
그러나 그 한번으로 로이드의 얼굴에 경악이 어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하기야. 로이드 정도면 저런 성을 가진 사람을 모를 리가 없지.
"서. 설마 소드마스터 하스미르 덴 유리샤크 이렌드 피레시온 공작가의?"
허허. 이름한번 절나 부르기 힘들겠군.
어쨌든 나는 로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로이드는 날 황당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자. 자네…."
"아아. 좀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요."
쩝. 처음에는 반 죽여놓기 위해서 화풀이로 시작한 일이었다고 어떻게 말하
냐? 아무튼 난 이렇게 대충 얼버무렸고 나의 이런 행동을 도와준다는 듯이 대
기실에 한 중년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대 루난왕국 건국 왕국 종합 무술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제 1시합
으로…."
쩝. 드디어 시작이군….
두 명의 사내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고 곧 엄청난 함성이 들려오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히유. 거의 수만 명은 모인 것 같네.
메르틴 녀석 괜찮으려니? 역시 떨고 있다….
"기억해둬. 난 5초고 너는 1회전 통과다."
"네…. 네!!"
"제 5시합. 카인 세리아트, 훨터 루시만…. 출전해 주십시오!"
오옷! 드디어 나군. 나는 아직도 좀 떨고 있는 메르틴의 등을 두드려 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 그리고 궁금할까봐 밝히지만 저 세리아트 라는 성은 어제 등록할때 그냥
지은 것이다. 어차피 카인도 가명인데 세리아트라고 무슨 상관 있겠어?
"잘해!"
"당연하지. 5초! 5초!"
난 이렇게 중얼거리며 로이드 옆을 지나갔고 로이드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만
들었다.
저쪽에서도 몸을 일으키는 덩치가 큰아저씨. 등에는 거대한 도끼가 달려있었
다. 휘익! 저거 한방이면 뼛조각도 안 남겠다.
"선생님! 잘하세요."
"오케이! 5초만 참아라!"
밖으로 나오자 콜로세움의 중앙에 50평 정도로 결투장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사방에 뺑 둘러서 앉아있는 수만명의 사람들.
이거 나도 약간 떨리네….
그때 나의 귀를 강타하는 목소리….
"꺄악!! 주인님!! 파이팅!!!!"
비틀….
수만명의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죽여버리고 나의 귀를 강타하는 소리는 아리스
의 목소리였다.
난 그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가장 앞자리에서 루나린과 베
르리나, 이레릴, 시드, 프레야와 함께 앉아있는 아리스를 볼 수가 있었다.
운 좋게 프레야등과 만난 것 같군…. 그것보다….
아리스!! 쪽팔려 죽겠다!!!!
그러나 나의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스는 계속 악을 지르며 환호를
하였고 결국 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손을 흔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아리스 근처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
다.
신무(神武)
40.
자. 그럼 시작을 해볼까? 그 큰 도끼를 꺼내 휘두르는 아저씨의 맞은편에 선
나는 오른발은 앞쪽으로 내밀고 상체를 약간 숙이고는 검을 왼쪽 허리에 붙인
후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검을 약 2cm정도 검집에서 빼 내었다.
그리고 오른손은 가볍게 검집을 쥐며 자세를 잡았다.
5초만에 끝을 내야만 했다. 큭. 그럼 시작을 해볼까?
"제 5시합! 시작합니다!!!"
어떤 아저씨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맞은편의 도끼 아저씨가 달려들었고 나는
즉시 무영신법을 펼쳐 몸을 앞으로 돌진해 들어가며 오른손으로 검을 검집으로
1cm정도 집어넣으면서 즉시 반동을 이용해 검을 빠르게 뽑았다.
천기류(天氣流) 검술(劍術) 발도(拔刀)!
그리고 그런 나의 검은 나를 짓이겨 오는 도끼를 그대로 손잡이만을 남겨놓고
잘라버렸으며. 상대가 놀랄 틈도 없이 어느새 나의 검은 그 아저씨의 목에 대
어져 있었다.
쥐죽은듯한 고요함.
난 조용히 상대에게 입을 열었다.
"항복하시죠."
"큭…."
"싫다고요. 베어버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난 상대의 목에 약간 검이 들어가게 만들었고 그것은 상대를 기
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 항복하겠다!!!"
라는 말과 함께 제 5시합 끝….
내가 가볍게 검을 거두어들이자…. 그제야 관중석에서는 고요를 깨트리며 커
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역시나 그 중에서 가장 잘 들린 목소리는 아리스의 환호였다.
"꺄악!!! 주인님!!! 멋져요!!!"
"4. 4초?"
돌아온 나에게 경악하며 묻는 로이드를 보며 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메르틴과 휘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메르틴은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휘리아나의 두 눈은 크게 뜨여져 있었을
뿐이었다.
큭큭. 뭐 저 정도로도 휘리아나는 많이 놀란 것을 표현한 것이겠지.
난 휘리아나에게 짓궂으면서 약간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준 후 메르틴에게 입
을 열었다.
"난 약속 지켰다. 이번에는 네 차례야. 제대로만 해. 내가 가르쳐준 검술은
최강이다."
"네!!"
밝게 대답하는 메르틴.
쩝. 내가 녀석에게 가르쳐준 검술은 최강은 최강이지. 큭큭. 단! 제대로 사용
할 수만 있다면….
뒤이어 벌어진 시합에 이어서 다음 시합은 로이드의 시합이었다. 쩝. 이거….
로이드와 내가 다다음 시합에서 붙겠네.
뭐…. 봐줄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역시나 가뿐하게 이기며 돌아오는 로이드.
하긴. 거의 소드마스터에 다다라 있는 녀석인데…. 이 정도도 못하면 말이 안
되지….
그리고 몇몇 떨거지들의 시합이 계속 되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하품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오늘은 두 시합이 더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쩝. 이거 이
러다 점심시간까지 1회전에 끝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을 거부하듯 시합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고 곧 후반부에
위치한 휘리아나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다음은…. 메르틴. 큭큭. 그보다…. 휘리아나의 시합이라면 내가 안볼 리가
없지….
대체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싶을 정도니까.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출전자들은 대기실에서 시합때가
아니면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는 것.
이 시합의 규칙으로 단검 등의 던지는 무기는 사용이 가능하지만…. 한가지
사용 불가한 물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스펠문서.
거의 자신의 힘은 들이지 않고 종이 쪼가리 하나 찢는 것으로 적은 날려버릴
수 있는 스펠문서는 내가 생각해도 이런 대결에는 치사하다고 느껴지는 물건이
다.
당연히 이런 것을 가지고 들어오는지 이곳 대기실에 들어오면서 철저한 검사
를 했고 이곳에 한번 들어서면 다시는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밖에 나가서 그 물건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러! 나!! 내가 누구인가?
바로 천기류(天氣流)의 제 658대 전승자. 겨 이 정도 못 뚫을 것이 없다!!
캬캬캬!!!
"어디 갈려고요?"
내가 일어서자 메르틴이 물었고 난 찡긋 미소를 지어주며 그의 귀에 입을 대
고는 조용히 말했다.
"네 누나 시합 보러."
"엑? 선생님. 그러다 걸리면…."
"걱정마! 절대로 안 걸려."
라고 호언 장담하며 나가려던 나에게 메르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런데…. 선생님…. 길은 알아요?"
"!!!"
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우어어!!!!
나가서 경기장을 찾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없다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에는
나에게 큰 문제였던 것이다.
10분도 안 돼서 그 냉막한 얼굴로 다시 대기실로 돌아오는 휘리아나.
난 그녀의 시합을 볼 수 없었던 것에 이를 북북 갈며 그녀를 바라보아야 했
다.
나의 안색이 약간 싸늘해져 있는 것에 그녀는 잠시 나를 힐끔 보더니 곧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버렸다.
헤유. 하여간…. 용성이 녀석보다 더 얼굴이 한 얼음 한다니까.
"그럼. 제 15시합. 메르틴 덴 유리샤크 이렌드 피레시온, 지레인 유스카. 출
전해 주십시오."
오옷! 드디어 나의 제자가 시합을 갖는구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등을 툭툭 쳐주며 이 녀석과 붙을 지레인 이란 녀
석이 누군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곧 몸을 일으키는 아름다운 금발머리카락의 여인을….
에? 아닌가? 그러고 보니…. 신체 구조상 저 녀석은 남자네….
여자라면 나올 데가 -가슴- 안나왔고 들어갈 데가 -허리- 안 들어갔으니까….
마법사인가? 난 고개를 갸웃하며 그자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도 나에게로
시선을 향했고 난 곧 알 수 없는 냉기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비록 그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 미소가 처절하리 만치 싸늘
한 살기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니…. 광기?
대…. 대체…. 저 녀석은 뭐지?
난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메르틴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메르틴. 잘 들어라…. 방금 전에 한 약속 취소다."
"네?"
"이왕이면 지금 항복해라."
나의 말은 어찌 보면 미친 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감각. 그것 하
나 하나가 이 시합에서 절대로 메르틴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유약해 보이는 녀석이지만….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강한 기운을 숨기고 있는
녀석이었다.
제길…. 저런 녀석을 왜 이제야 알아볼 수 있었던 거지?
그리고 나의 이런 떨림에 맞추어 로이드가 입을 열었다.
"저 녀석. 프레야를 단 한순간에 장외로 날려버렸던 바로 그놈이잖아."
신무(神武)
41.
Part 16. 강적(强敵)
"싸우겠어요."
에그그…. 진짜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지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와 싸우려 하는지를 모르는가 본데….
저 지레인 이라는 녀석…. 절대로 내 모든 힘을 -봉인된 힘까지- 다 써도 이
길까 말까 의 존재이다.
역시 이곳도 세상이다.
저런 터무니없는 강한 녀석도 나올법한 세상이란 말이다.
젠장. 그나저나 저런 녀석이 무슨 할 일 없다고…. 이런 대회에나 나온 거지?
…. 그러고 보니 나도 할 일 없다고 나왔네.
크아악!! 말이 왜 이렇게 옆으로 새는 거냐? 잘못하면 메르틴 이 녀석이 죽느
냐 마느냐 하는 순간인데….
…. 근데 나는 왜 메르틴이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지?
…. 뭐. 뭐야? 내가 왜 이런 녀석을 이렇게 걱정을 해주는 것이다냐?
내가 이 녀석을 걱정한다고?
말도 안돼!!!!!
썅. 그래 임마. 너 나가서 죽건 말건 마음대로 해라!
꼴을 보니 저 지레인도 널 죽이지는 않겠다.
"나가 임마!!"
상황 정리 끝에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으앙!!!"
예상대로 메르틴은 엉엉 울면서 루나린의 품에 안겨있다.
쯧쯧 열 일곱이나 먹은 떡대같이 큰 녀석이 지 누나한테 안겨서 질질 짜기나
하다니….
"울지마…. 넌 잘했어. 다음에는 꼭 결승까지 진출해서 우승할 수 있을 꺼
야."
그거야 희망사항이지.
난 고기를 하나 입 속으로 넣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여간 그래도 다행이다. 지레인 이란 녀석도 메르틴이 죽이기에도 불쌍해 보
였는지 장외로 날려버리기만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지레인이 몇번 날린 불의 공에 -이레릴은 그것이 파이어 볼
이라고 했다- 메르틴 녀석의 그 길던 뒷 머리카락이 홀랑 타버렸지만….
큭큭. 안 그래도 남자녀석이 그렇게 머리를 기르고 다니는 것이 꼴 보기 싫었
던 나는 환호를 했어야 했다.
"누나!! 제발 복수해줘!!"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무표정하게 점심을 먹고있는 휘리아나에게 다가가 그녀
의 손을 잡고는 부탁하는 메르틴.
하아…. 짜증난다 이제는 그만 좀 해라. 게다가….
절대로 휘리아나도 그를 이기지 못한단 말이다.
…. 크큭. 그러고 보니 휘리아나도 2회전에서 간단히 떨어지겠군.
어야디야~~♬!!! 아! 궁금합니다. 과연 떨어지고 나서 휘리아나의 표정이 어
떨지.
크하하하!! 지레인!! 아주 처절할 정도로 이 얼음 아가씨를 열나게 밟아주기
를 바란다!!!
그럼 결승전에서 만나 내가 일부로 바닥에 누워 줄 용의도 있지. 큭큭.
"주인님. 이 새우도 먹어보세요. 맛있어요."
"아~~!!"
내가 입을 벌리자 아리스는 새우 껍질을 까서는 나의 입에 쏙 집어넣었다.
난 그것을 꼭꼭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고 아리스를 바라보며 히죽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맛있죠?"
"응."
나의 대답에 헤 웃는 아리스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난 우리를 돌아보는 다
른 일행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봐?"
그리고 내 질문에 시드와 프레야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닭살…."
점심시간이 끝이 나고 1시 반부터 16강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는….
"카인 안봐준다."
"누가 할소리…."
바로 나와 로이드의 시합이 세 번째 시합이었다.
앞쪽에 시합을 해서 이겼던 두 명이 떨거지는 신경도 쓰지 않은 나였다.
가볍게 검을 뽑아든 나는 로이드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도 입가
를 약간 말아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주인님!!! 확실하게 보내버려요!!!"
"로이드!!! 지면 알지!!!"
그러나 이런 우리와는 반대로 관중석에서는 두 파벌로 나누어서 각각 한쪽을
응원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 강도는 더욱더 세져서….
"주인님 어떤 방법을 써서도!! 이겨요!!"
"로이드 밟아버려!!!"
이후 1분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주인님!!! 팔 한두 군데는 부러뜨려 버려요!!!"
"로이드!!! 목을 따버리란 말야!!!"
이거 서로 죽이라는 말이잖아!!!!
결국 서로 검을 거두어들인 나와 로이드는 관중석을 바라보며 악을 바락 질렀
다.
"좀 조용히 안해!!!!"
"집중이 안되잖아!!!!"
…. 음. 조용해 졌군.
히히. 그럼 이제는 제대로 한번 해볼까?
나는 다시 로이드를 바라보며 싱긋 웃음을 지었고 로이드도 검을 고쳐 잡았
다.
이제는 제대로 된 로이드의 실력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삼 년 동안 얼마나 성장을 했을까? 이거 기대되는데.
"차핫!!!"
먼저 달려든 것은 로이드였다. 그러나 난 예도의 장점을 활용해 그 공격을 간
단히 막아내며 뒤로 물러섰다. 다시 나의 오른쪽 허리를 향해 파고드는 로이드
의 공격.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닌데. 엄청 빠르고 강하잖아!!
난 재빨리 그 공격을 쳐내며 즉시 로이드의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공방일체의 초식.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내는 나의 공격에 로이드는 재빨리 검으로 나의 검을
쳐냈고 나는 그 순간 재빨리 몸을 회전시키며 녀석의 반대편으로 검을 베어 들
어갔다.
"헛!!!"
헛 바람을 날리며 겨우 나의 검을 방어해 낸 로이드는 급히 뒤로 물러섰고 난
그것을 바라만 보았다.
따라 잡아서 날려버릴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기분이 안 나잖아. 게다가 친구
녀석을 이렇게 간단히 눕힐 수도 없고 말야.
가볍게 가자고. 가볍게….
"꺄악!! 주인님!! 멋져요!!"
"로이드!! 뭐 하는 거야!! 제대로 하란 말이다!!!"
"선생님!! 봐주면서 하시지 말란 말이에요!!!"
"로이드형!! 지면 프레야가 가만히 안있을 것 같은데…."
이. 이 녀석들 또 시작이잖아!!!
신무(神武)
42.
"뭐. 뭐야?"
후훗. 놀랐겠지. 이게 바로 환영신보(幻影身步).
이형환위(移形換位)의 극치지. 큭큭.
지금은 봉인된 내공 덕분에 두 개의 환영밖에 만들어 내지 못하지만….
이 정도라도 로이드를 가지고 놀기에는 충분하다.
"바. 방금. 그건…. 분신(分身)?"
"뭐.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말을 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놀람을 감출 수가 없어서 멍한 얼굴로 나만을 바라보는
로이드.
이봐이봐. 그러다가 오늘 해 지겠다.
쩝. 하기야…. 아리스의 말로는 이 세계에서 분신을 쓸 수 있는 방법은 마법
사로 환영을 만드는 것뿐이라고 하던데….
이거…. 이 녀석 날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것 아냐?
"너. 너 마법도 할줄 알았냐?"
…. 나 아무래도 점쟁이로 나가야 할까봐.
오오옷!!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발견되는 나의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구
나!!
앞으로 또 어떤 재능이 눈을 뜰까? 과연 나의 1년 뒤에 나는 어떤 재능으로
세상을 평정하고 있을까나!! 오오!! 놀랍도다!!!
흐흑. 이러다가 내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 까나 심히 두
렵구나!! 신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힘을 주셨나이까!!
예수님! 부처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당신의 뒤를 따라 신인….
"주인님!! 왜 하늘보고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시합 집중 안 해요?"
그때 들리는 아리스의 날카로운 고함소리.
정신을 퍼뜩 차린 나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로이드의 검에 기겁을
해야만 했다.
"헉!!!"
휘잉!!!
급히 고개를 숙여서 가까스로 피하기는 했지만….
이거 잘못했다가는 죽을 뻔했잖아!!! 크아아!!! 로이드!! 네가 정말 이럴 수
있는 거냐?
"시합 중에 어디다가 멍하니 정신을 팔고 있는 거예요?"
급히 로이드의 공격권 밖으로 도망친 나는 소리를 빽 지르는 아리스에게 손을
펴 얼굴 앞에 세로로 세운 후 고개를 꾸벅 숙였다.
"Sorry!!"
그리고…. 이녀석들은 저주나 먹어라!!!
"으아~~! 아깝다 날려버릴 수 있는 건데…."
"로이드!!! 어째서 수평 베기를 한 거야? 수직 베기를 했어야지!!!"
크아악!!! 시드!! 프레야!!! 너희들 시합 끝나고 보자!!!
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가운데 손가락을 펴고는 녀석들에게 찔러 보냈다.
그때 로이드가 싸늘한 목소리로 나에게 일갈했다.
"카인! 제대로 시합에 전념할 수 없나?"
"아. 알았어. 쩝. 천천히 즐기면서 하려고 했는데…. 이거 안되겠군."
"훗. 그럼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건가? 기분 나쁘군…."
이거…. 로이드 표정 무섭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보네…. 하지만….
클클. 그래도 재미있는 것을 어떻게 해?
좋아. 그럼 분노 게이지가 약간 상승한 로이드의 실력을 보도록 할까?
"좋아. 이제부터 제대로 하지. 이걸 막아봐…."
공격선언 후에 가볍게 몸을 튕긴 나는 빠른 속도로 로이드에게 쇄도해 나갔
다. 무영신법(無影身法)으로 로이드에게 접근한 나는 약간 상기된 얼굴의 로이
드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어 주고는 즉시 환영신보를 시전 했다.
"헉!!"
순간 로이드의 앞에서 나의 신형이 세 개로 늘어버렸고 로이드의 다급한 외침
이 울렸다.
하지만 로이드는 순간적으로 한 곳에 검을 휘두르고는 즉시 몸을 돌리며 검을
뿌렸다. 그 순간 나를 향해 뻗어오는 두 개의 검광(劍光).
이거 정말 장난 아닌데….
"차핫!!!"
역시 장난으로는 안되겠다!
난 즉시 천강기(天剛氣)로 왼쪽 팔을 보호하며 로이드의 검으로 휘둘렀다.
파앗!!!
검과 강기에 둘린 손의 충돌. 그것은 어이없게도 -로이드에게는- 무승부로 끝
이 나버렸고 놀라는 로이드에게 난 즉시 오른쪽 발을 한발 내딛으며 주먹을 내
뻗었다.
퍼엉!!!
확실한 타격 음과 함께 뒤로 주르륵 밀려간 로이드.
그러나 전에 뻗어버린 미트릴과는 반대로 로이드는 약간 충격을 받은 듯 비틀
거릴 뿐 곧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이미 이 정도로 로이드가 뻗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나는 즉시 로
이드에게 달려들며 천강기를 시전하며 오른다리를 날렸다.
천기류(天氣流) 각술(脚術) 유성각(流星脚)
파파팟!!!!
빠르게 검을 휘둘러 내 다리를 쳐내는 로이드였지만…. 점점 더 그 빠르기와
정확도는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로이드가 힘이 빠진 것을 느끼자 즉시 몸을 회전시키며 그의
옆구리를 차 들어갔다.
천기류(天氣流) 각술(脚術) 풍살(風殺)
퍼억!!
순간적인 공격방식의 변화로 적응을 하지 못했던 로이드는 그대로 바닥을 굴
러버렸고 나는 뒤로 물러서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 관중석에서는 나와 로이드가 펼친 기막힌 대결에, 특히 나의 맨몸으로
검과 맞붙기에 놀란 관중들의 환호가 내 고막을 터트릴 정도였다.
"크윽…."
"이게 내 실력이야. 됐어?"
"어. 어떻게 맨몸으로 검을…."
"아아. 끝나고 나서 이야기 해 줄게. 그보다 카운트 벌써 8이다."
내 말에 놀라서 급히 몸을 일으키는 로이드. 난 킥킥 웃으면서 검을 빼들었
다.
"고맙군…."
"뭐. 상대의 실수로 이겼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거든.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
로 하겠어. 아직 한 시합 더 남았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지체 한 것 같아서
말야. 다음 시합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말야."
내 말에 얼굴에 긴장하는 것이 똑똑히 느껴지는 로이드다.
하기야…. 방금 전 맨몸으로 검을 든 로이드를 날려버린 나다. 그것도 주먹으
로 검을 쳐내고, 발로 검을 받아치면서 말야….
그런데 내가 검을 들었으니 놀랄 만도 하지….
하지만 저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는데. 죽이지는 않는다니까.
큭큭. 팔 하나쯤 잘릴 수도 있지만….
"그럼 시작해 볼까. 로이드 잘 봐. 이게 바로 일섬(一閃)이라는 거다."
순간 나는 강하게 왼발로 진각(進脚)을 밟으며 빠르게 검을 찔렀다.
내 현재 공력의 8성을 담은 일섬.
그것은 겨우 방어에 성공해 낸 로이드를 장외까지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것이
었다….
약 10초간 고요가 이곳을 뒤덥더니 곧 한 사람의 목소리가 그것을 깨뜨렸다.
"자. 장외!! 16강 제 3시합. 승자는 카인 세리아트!!"
하지만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로이드.
흑. 불쌍해~~!!
미안하군 로이드. 어떤 싹수머리 없는 아가씨만 없었어도 너에게 승리를 내줄
수 있었는데 말야.
원망을 하려면 그 싹수머리 없는 아가씨를 원망하라구. 큭큭.
그 후 대기실에서 기다리기만 하던 터라 자세히는 알 수는 없었지만 휘리아나
또한 그 지레인이란 녀석에게 당했다고 한 것 같았다.
큭큭큭. 그래 이제 돼았어!!
이제 내가 그 지레인이란 녀석을 날려버리기만 하면….
크하하하!! 그 계집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가 있단 말야!!! 푸하하하!!!!
"8강 두 번째 시합. 카인 세리아트. 아스트랄 피에린 요르리엔. 출전해 주십
시오."
큭큭큭. 이 정도 시합이야! 장난 껌값이지!!
앞으로!! 세 시합 남았다!!!!
신무(神武)
43.
크으으….
참자…. 내일을 위해서 자 둬야 하지 않겠냐?
그래 눈을 감고…. 아리스 한 마리…. 아리스 두 마리…. 아리스 세 마리….
아리스 네….
크아아!!!!
더 이상 못 참아!!!!
푹신한 베갯속에 파묻혀 최대한으로 귀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
고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어제쳤다.
"야!! 달밤에 체조 그만하고! 그만 자라!!!! 잠을 잘 수가 없잖아!!!"
내 고함소리에 -애들 잠 다 깼겠다 --;- 동작을 멈추며 나에게 스르르 몸을
돌리는 그림자. 짙은 청색 머리카락에 날카로운 눈매의 미녀.
휘리아나였다.
평소 입던 갑옷을 벗어서 드러난 그녀의 몸매는 정말로 내가 헛바람을 들이킬
정도로 육감적이었다.
"…."
무표정한 그러나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지는 눈으로 날 노려보는 그녀.
젠장. 말 좀 해라. 보고있는 내가 오히려 짜증이 난다.
그때 그녀의 닫혀진 입술이 살짝 열리는 것이 나의 탁월한 시야에 포착이 되
었고 난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청각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
그러나 말없이 그대로 닫혀버렸다. --;
크아!!! 짜증나!! 저 계집 대체 뭐 하러 여기 와서 이 지랄이냔 말이다!!!
좋게 지 기숙사나 들어가서 칼을 휘두르던지, 눈물을 흘리던지 할 것이지!!
왜 이곳에 와서!! 사람 잠도 못 자게 검 바람을 날리는 것이냔 말이다!!!
…. 그러고 보니 여기 저 계집 집이었네….
"젠장…."
나의 입에서 푸념조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젠장할. 진짜로 젠장할이다.
내일 당장 내가 잠을 잘 집이라도 사버릴까 보다.
그래서 아리스하고 단둘이서….
….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라냐?
쩝. 미치겠군. 별 미친 생각이 당연하다는 듯이 머릿속을 뒤집고 있다니….
이게 다 잠을 못 자서이고…. 그 근본적인 이유는 저 계집 때문이야!!
난 이제는 완전히 나의 출입문으로 변해버린 창문을 딛고는 훌쩍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착지. 흠. 언제 봐도 난 체조 국가 대표 선수가 되어
도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그러고 보니 저 계집은 아까부터 나만 쳐다보고 있네. 흠흠. 아무리 내가 미
남이라고 하지만…. 하하!! 이거 내가 말하니 조금 부끄럽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얼굴 하면 한 얼굴 하는데.
…. 헉!! 설마 저 계집이 나한테 반한 것은 아니겠지?
음…. 역시 미남은 힘들다니까.
"…."
자꾸 그렇게 보지 마세요…. 아이 부끄∼♥.
난 휘리아나의 눈길을 피하며 얼굴에 홍조를 피우고는 몸을 비비 꼬았다.
비틀….
갑자기 두통이 이는지 비틀거리며 머리를 싸잡는 휘리아나.
그런 그녀의 입에서 싸늘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왔다.
"내가…. 저런 얼간이 보다 못하단 말야?"
…. 내용은 조금 문제가 있군….
…. 크아아악!!! 조금 문제가 아니잖아!!! 뭐? 얼간이? 이 계집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전에는 날…. 뭐라 그랬더라?
아무튼 날 뭐라고 해서 나를 분노에 떨게 만들더니 -날 건달. 맞다 --;- 이제
는 얼간이? 못 참아!!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그럼 그 얼간이보다 먼저 떨어진 그 얼간이 보다 못한 아가씨는 누굴까?"
우선 가볍게 스타트.
나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징글빙그레 -징그러운 빙그레 --;- 미소를 지으며 휘
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첫 스타트가 상당히 좋았는지 벌써 얼굴에 살기가 도는 그녀.
가볍게 검을 들어올리는 것이 더 이상 입을 놀렸다가는 오늘 살인하나 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하! 지! 만!! 그것은 보통 평민들의 말이고.
내가 누구인가? 대 천기류의 제 658대 전승자이며 약 한달 반정도 전에는 드
래곤 녀석까지 잡아버렸던 드래곤 슬레이어가 아니었던가?
크하하하!!! 난 무적이다!!!!
…. 근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아도취에 잘 빠지게 되었지?
…. 맞다 아리스…. 그것과 다니면서 그랬구나. 크악!! 날마다 초 슈퍼 울트
라 인공지능 컴퓨터 신함 샤이닝 브링거의 주 제어 프로그램 코드넘버 001 아
리스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으니….
내가 안 이상해질 리가 없지….
허탈한 마음에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나는 눈을 뜨자마자 코
앞으로 쇄도해 오는 검 한 자루를 보며 몸을 뒤로 눕혔다.
"치사하게 기습이냐?"
"…. 이익!!!!"
전혀 무리 없이 검을 흘러내며 내가 빈정거리자 휘리아나는 이를 악물며 더욱
더 힘차게 나에게 검을 뿌려댔다.
그러나….
좌로 한발. 뒤로 한발. 고개 숙이고. 점프. 옆구리 운동. 다리운동. 뒤로 뛰
어 물구나무서기. 가볍게 풍차돌기….
그리곤 앞으로 한 발 전진. 왼쪽으로 한발. 다시 전진. 점프….
마지막으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휘리아나의 이마에 충격을 준 나는 히히 웃
으며 뒤로 물러섰다.
이쯤 되면 나도 못 참겠다.
그런데 휘리아나가 가만있겠는가?
"죽여버리겠어…."
"어이구야 무서라…. 그럼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검 휘두른 것은 뭐 때문이
었소? 설마 내 몸에 묻은 털이라도 털어 내주려고 그랬나?"
"이익!!"
드디어 표정 변화가 생겼다!! 오옷!! 이건 대 발견이로구나!!
난 신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곧이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지는 검강
을 피해 급히 몸을 날려야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연신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을 날린 나였다.
"꺄아악!! 죽어!! 이 날건달!! 얼간이!!! 말미잘!!! 멍청이!!!"
"백만 스물 한대! 백만 스물 두대!! 백만 스물 세대…. 하하하!! 힘세고 오래
가는 건전지 에너자이X!!""
내가 하는 말이 대체 어떤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자신을 놀리고 있는지는
알아냈는지 그녀는 고함까지 지르며 발광을 해버리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저택
방 곳곳에서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공작과 루나린 등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
났다.
"이게 무슨 짓이냐!!! 휘리아나!!"
역시 아빠파워는 막강파워를 자랑하듯 휘리아나의 발광은 멈춰졌지만 아직까
지 날 노려보며 씩씩거리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난 열심히 좌로 우로 뛰며 그녀를 놀리기에 바빴다.
"한번 때려봐요~♪ 울랄랄라~~♬!! 한번 찔러 봐요~ 울랄랄라~♬♩"
"쿡쿡쿡…."
휘리아나를 어찌저찌 해서 방으로 돌려보낸 후 나를 방으로 안내하며 -매일
창문으로 뛰어 내린 통에 아직도 저택의 지리를 익히지 못했다- 연신 웃음을
흘리는 루나린이었다.
"그렇게 웃겨요?"
"예예. 카인님 그때 모습하고 휘리아나의 빨개진 얼굴. 쿡쿡."
하긴…. 그때 나의 모습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심했다.
양 주먹을 허리에 붙인 후 엉덩이를 뒤로 쭉 뺀 후 팔을 앞뒤로 흔들며 앞으
로 갔다 뒤로 갔다를 했으니….
쩝. 지금 생각하니 정말 꼴불견이었군….
방금 전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내가 나를 저주하고 있을 무렵 어느새 웃음을
그친 루나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휘리아나가 그렇게 표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요."
"네?"
"저희 집안은 기사가문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저희들 중 하나는 기사가 되어야
했어요. 저희들에게 한없이 자상하신 아버지도 이 일만은 완고 하셨으니 까요.
처음에는 메르틴에게 기대를 하셨지만…. 곧 그다지 성장을 보이지 않는 메르
틴에게 아버지는 실망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메르틴보다 더욱더 재능을 보
였던 휘리아나에게 아버지는 검을 쥐어 주셨고…."
이게 갑자기 무슨 신세 한탄…. 그러나 그렇다고 그만해요. 듣기 싫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었기에 난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어렸을 때는 밝고 명랑한 아이였어요. 휘리아나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점점 그 웃음을 잃고 말았어요. 힘들었을 거예요. 누구보다 마음이 착했던 그
애는 아버지의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더욱더 열심히 검을 휘둘렀고….
그에 따라 생각은 온통 검 생각뿐. 결국 이그네스 기사학교에 들어간 후 1년이
지나자 그 애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무슨 일에도 웃음을 보이지 않고 생
각하는 것은 온통 상대와의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뿐이죠. 그래서 이번….
어머 카인님!"
휘청. 쓰윽…. 으응?
뭐. 뭐야?
"후훗. 졸리시나 보네요."
이. 이런 졸았나 보다.
크아악! 이 멍청이 루나린이 그렇게 슬픈 -진짜 슬픈 이야기 였나? --;- 이야
기를 하고 있는데 침을 흘리며 서서 졸다니….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죽어라!! 죽어!! 이 멍청아!!!!
"아! 도착했네요. 이제는 좀 자기 방 찾아가는 법쯤은 외워 두세요."
"아 네…. 네."
"후훗. 그럼 쉬세요. 내일 시합하시려면 푹 쉬세요."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 걷는 그녀를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그래도 졸린 것을 어떻게 해?"
신무(神武)
44.
이리 밀리고…. 이번에는 저리 밀리고….
정말 미어터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다.
으아! 젠장! 짜증나!!! 처음부터 하스미르공작이 같이 마차로 가자고 할 때
갔어야 하는 거다.
무엇 때문인지 이 루나린이란 아가씨는 마차대신 자신의 다리로 걸어가고 싶
다고 말을 해 가지고…. 이 생고생을 사서하느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공작가의 영애라고는 생각지 못할 엉뚱한 아가씨다.
전에 한번 같이 외출을 할 때도 그렇고….
도대체 왜 이런 지체 높은 아가씨께서 그런 2류 식당에나 들어가지를 않나.
마차를 마다하고 걸어서 경기장까지 가지를 않나.
게다가…. 특등석인 귀빈석을 놔두고 보통 평민들이나 앉는 그런 자리를 잡아
앉지를 않나. 물론 그 자리들 중에서는 특등석인 가장 앞자리이기는 하지만….
근처의 사람들과 몸이 부딪치며 경기를 구경하는 것은 아무리 이 세계에 대해
서 그다지 잘 모르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것을 말리지도 않고 그대로 해주는 그 하스미르공작도 만만치 않
다. 하아…. 짜증나!! 짜증나!!!
이렇게 짜증나 죽겠는데…. 저 여자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재잘재잘….
정말 난리 법석이다. 아리스야 원래 말이 많은 아이고. 프레야도 만만치 않
다. 이레릴도 발랄한 성격이기 때문에 할말은 다 하고 산다. 루나린? 차분한
성격에 포근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입만 다물고 사는 것은 아니
다. 그녀도 할말은 다 하고 사는 채질이다.
자고로 여자는 셋만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는데…. 쩝. 이거 여성들에게
맞아 죽을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여자들 넷을 보니 그런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구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말없이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는 베르리나와 휘리아
나가 왠지 무진장 예뻐 보이는 것은 외일까?
…. 근데 휘리아나 저것은 왜 따라오는 거야?
성격상 경기에서 지고 나서 다시 경기를 구경하러 갈 만한 성격은 아닌 것 같
은데….
경기를 보느니 차라리 검을 휘두르겠다. 그게 바로 휘리아나 성격인 것으로
지금까지 추정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쩝….
"…."
내가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그녀도 역시 나에게로 시선을 향했
다. 그리고는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과 살기….
아하하…. 이거 어제 쌓인 화가 아직 안 풀렸나 보구나….
하기야…. 저 얼굴에 하루 이틀에 풀릴 것 같지도 않다. 적어도 두세 달은 잡
아먹겠고…. 어쩌면 평생 나를 저주하고 살지도 모르지….
…. 쩝. 설마 밤에 자고 있을 때 칼로 찌르지는 않겠지?
…. 이거 생각하니 그럴 확률이 다분한 것 같다. 으윽…. 갑자기 오한이….
으악!!! 젠장!! 오늘밤에 잠은 다 잤다!!!
"어? 주인님 왜 그래요? 감기 걸렸어요?"
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떨자 아리스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휘리
아나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고 지금까지 날 노려보던 휘리아나
는 고개를 돌리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우웅. 열은 없는데요."
"감기 아냐. 갑자기 썰렁한 생각해서 오한이 든 것 뿐이야."
"썰렁한 생각하면 오한이 들어요?"
….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
쩝. 내가 한 말이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 자주 나온다.
…. 그런데…. 아리스…. 넌 꼭 주인의 잘못을 그렇게 지적을 해서 사람에게
무안을 줘야겠냐?
이 주인 체면도 좀 생각해 줘랴. 응?
"헤헤."
내가 그녀를 띠껍게 내려보자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팔짱을 끼면서 볼을 내
어깨에 비벼댔다.
하여간…. 뭔 말을 못해요.
"그보다 카인 오늘 자신은 있냐?"
갑자기 물어오는 프레야. 난 뭐가? 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곧
그녀는 입을 열었다.
"오늘 시합 말야."
"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레인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쩝…."
"뭔 소리야? 지레인이라니? 너 벌써 결승전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너…. 준결승 상대가 누군지나 알고 그러는 거냐?"
뒤쪽에서 듣고있던 시드의 질문. 나는 아주 당당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
뒤이어 들려오는 한숨소리…. 시드와 로이드, 프레야가 동시에 내뱉은 소리였
다.
베르리나는 여전히 무표정. 루나린은 빙그레 미소만을 짓고 있었고 아리스
야…. 야…. 옷 빵구 나겠다. 그만좀 비벼라….
그리고…. 휘리아나는…. 얼라? 저 표정이 왜 그래? 갑자기 더 싸늘해 졌네.
내가 또 뭘 잘못했나?
"살다 살다…. 그 유명한 로니아르 프로스 이지니스를 모르고…. 그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지레인이란 사람과의 싸움을 더 걱정하는 녀석은 네놈이 처음
이다."
"로니아르 프로스 이지니스? 여자이름 같은데…. 아닌가? 어쨌든 그게 누군
데?"
"이 바보야!! 네 이번 준결승 상대잖아!!!"
우씨!! 내 준결승 상대면 상대지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그냥 콱 유성각이
나 한방 먹여 버릴까 하다가 여자라서 봐준다. 으그….
난 하여간 여자에게 너무 약해서 탈이란 말야….
…. 그런데 준결승 상대…. 상당히 유명한 놈인가? 아니지…. 여자일지도 모
르는데….
쩝. 이럴 때는 역시 물어 봐야해.
"근데 그게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냐?"
"하아….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는 녀석은 정말 그 어디에도 없을 거야…."
"국보급이다…."
중얼거리는 프레야와 시드. 이것들이 합세해서 날 몰아세우는데. 야! 시드 넌
이레릴에게 더 관심이 많지 않았냐? 근데 어째서 프레야한테 붙어서 이 지랄이
야? 으이? 그리고 프레야!! 넌 로이드가 있는데. 시드하고 같이 붙냐?
"시끄러…. 모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보다 그녀석이 대체 누군데?"
내 말이 끝나자 마자 휘리아나에게서 느껴지던 살기가 갑자기 증폭이 되었다.
하여간 저 계집은 내가 말만 하면 화를 내요.
젠장할….
"카인…. 우선 하나 정정하고 설명해 줄게. 그녀석이 아니고…. 그녀야. 로니
아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쩝. 여자가 그렇게 유명하냐? 뭐 하는 여잔데?"
내 퉁명스러운 반문. 그러나 시드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로니아르 프로스 이지니스. 26세.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루난왕국의 제 3 피
닉스 기사단의 단장이자 현재 대륙에서 하나뿐인 여자 소드마스터야."
에? 소드마스터? 겨우 26세로? 그것도 여자가?
난 약간 놀란 얼굴로 시드를 바라보았고 그제야 약간 얼굴에 미소를 짓는 시
드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그 여자 예쁘냐?"
비틀….
쓰앙!! 여자 예쁘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왜 때리고 지랄이야? 그것도 떼거지로
덤벼서 다구리로….
그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던 시드. 로이드. 프레야!!! 있다가 보자….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봐주지만…. 언제까지 내가 당하고 있을 것이라고
는 생각하지 말도록.
"주인님 잘하세요!!"
"카인님 무리하시지는 마세요."
지금 내 앞에서 빙그레 웃으며 나를 격려해 주는 두 명의 여인. 아리스와 루
나린만 없었다면…. 너희들은 이미 죽! 었! 어!!!
"주인님 다치기라도 한다면 여기다가 샤이닝 버스터를 쏘아버릴 거예요."
아하하…. 절대로 다치면 안되겠군….
…. 글고보니 이건 협박이잖아…!! --;
신무(神武)
45.
로니아르 프로스 이지니스.
대기실로 들어온 나는 곧 그녀를 발견하수 있었다.
하기야…. 준결승이니 남은 사람은 네 명뿐이고…. 나를 빼고 세 명 중 여자
는 단 한 명이니…. 못 알아보면 나가 죽어야지….
갑옷에 가려져 몸매는 알 수가 없었지만…. 여자로서는 상당히 큰 키를 가진
갈색 머리카락의 미녀였다.
뭐 그렇게 눈에 팍 튀는 미녀는 아니었지만…. 저 정도면 예쁘다고 봐줄 만은
했다. 근데…. 분위기가 어째….
휘리아나를 보는 것 같단 말야…. 찬바람이 생생 날리는 것이….
근데…. 기사단장쯤 되면서 뭐 하러 이런 대회를 나왔을까? 대충 지금까지 싸
워보니 소드마스터라면 충분히 우승을 하고도 남겠던데…. 쩝.
하여간 알 수가 없어…. 이미 명예라면 있을 만큼 있을 것이고…. 돈이라면
집에 쌨을 것이고….
…. 설마 자신을 이긴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고 생각을 했거나….
으악!! 안돼!!! 나에게는 아리스가 있단…. 돌아버리겠군….--;
어떻게 된 것이 요즘에는 툭하면 아리스 이름이 튀어나오는 거지? 휴우…. 설
마 내가 그 애를 좋아하게 되어 버린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으아!! 몰라!!!!
"안녕하십니까?"
그때 때 누군가가 나에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나는 그 목소리가 남자
임에 약간 짜증이 일었지만…. 그래도 예의 상 고개를 돌려 상판을 바라보았
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에 여자라고 생각
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는 남자새끼!!! 지레인 유스카라는 놈이
었다.
크아아악~!! 짜증나!!! 남자에게 저런 얼굴은 수십만의 남자들에 대한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니라!!
저런 얼굴로 후려먹은 여자수가 몇 명이냐?
크윽!!! 정말 신은 불공평한 녀석이야!!!!
얌마!! 지레인 넌 복 받은 놈이야!!
"무슨 일입니까?"
속으로야 어쨌건 나는 겉으로는 정중한 어투로 물었다. 그러자 지레인은 약간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크악!! 저것을 본 여자들은 대체 몇 명이나 이 녀
석에게 달려들었을까? 짜증난다!!!- 손을 내밀었다.
"지레인 유스카라 합니다. 오늘 결승전에서 뵙지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한번 흔들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버리는 녀석.
그런데…. 오늘 결승전에서 뵙지요?
저 녀석 꼭 내가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들리네. 쩝….
기분 나빠…. 저런 기생오라비와 한판 붙어야 한다니…. 이거 잘못하면 이 도
시의 모든 여자들의 적이 될 수도 있겠는데…. --;;;
그냥 콱 이 시합에서 져버리고 집에 가서 낮잠이나 자버려?
은근히 져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그런 생각은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렸다.
로니아르 프로스 이지니스….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기도가 나를 상당히 긴장
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질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하스미르공작보다 더 강할지도 모
르겠는데…. 정말 예상 못한 강적이잖아!!
스릉….
이번만은 장난으로 넘길 수가 없음을 느낀 나는 검을 뽑으며 천기류 유검술
(流劍術)의 기수식인 천단세(天斷勢)를 취하며 상대를 응시했다.
검은 가볍게 쥐고 팔에 힘을 빼고 머리위쪽으로 들어올린다. 왼발은 뒤쪽으로
오른발은 앞쪽으로 내밀고 몸은 곧게 세운다. 그러며 천천히 나의 몸 속에 있
는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금 나의 내공으로는 장기전은 불리하다. 대충 어림잡아도 상대의 내공은 거
의 1갑자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
순간적으로 기를 집중시켜 단 일격에 끝을 내야만 했다.
스륵….
상대도 가볍게 자세를 취하며 날 응시했다. 그녀의 내 쪽으로 향한 검 끝에서
아지랑이가 이 듯이 피어오르는 기운. 나는 그것이 검기임을 느끼고는 더욱더
정신을 집중했다.
잘못해서 검을 정면으로 맞부딪친다면 단 일격에 갈 수가 있다.
내 지금의 내공으로는 그녀의 저 검에 실린 강력한 기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
이었다.
검이 산산조각이 날수가 있고 재수가 없다면 몸이 두 동강이 날수도 있는 것
이다.
난 생각을 정리하며 지금까지 끌어올린 기를 폭발시키며 무형신법을 전개했
다. 순간적으로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 졌고 곧 나를 향해 쇄도해 오는 그녀
의 검 끝을 보며 난 재빨리 몸을 옆으로 약간 움직이며 검을 마주 찔러 들어갔
다.
천기류(天氣流) 검술(劍術) 일섬(一閃)
수 천년을 내려온 천기류의 기술. 비록 단 한번의 찌르기지만 그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많은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검술이었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빠른
검술이었다.
내 반격에 그녀는 아주 잠깐이지만 눈이 커지더니 곧 평정을 되찾으며 급히
나를 찔러오던 검의 진로를 바꾸어 내 검을 쳐내었다.
그러나 난 그녀의 검과 내 검이 붙기 전 재빨리 손목을 틀어 검 끝을 아래로
향한 다음 즉시 위쪽으로 검을 쳐 올렸다.
천기류(天氣流) 검술(劍術) 천살(天殺)
드디어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급히 뒤로 물러서는 로니아르 그러나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메르틴에게 가르쳐준 검술. 천기류의 유검술은 초반에 그 검의 행로를
잡지 못한다면 절대로 막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기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다가 막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순전히 운. 거의 몇백 분의 일에 해
당하는 확률일 뿐이었다.
그녀의 허리를 향해 베어 들어가던 나의 검은 그녀가 방어에 들어가자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아래로 쳐들어가서 다리를 향해 갔다. 그리곤 그녀가 빠르게 그
검을 쳐내려 하자 난 오른손에 잡고있던 검을 공중에서 놓아버리고는 재빨리
왼손으로 잡으며 반대편으로 휘둘렀다.
"!!!"
황당하겠지? 하기야 이런 검술은 절대로 본적이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아직 끝
이 아니라구….
다시 원을 그리는 검. 순간적으로 수십 개의 원이 형성되었고 그것은 강하게
그녀를 압박해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소드마스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비록 내가 공세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상처도 입지 않고 있
었다. 게다가…. 비록 느린 속도이기는 하지만 나의 검술의 진행방향을 차근차
근 봉쇄해 나가고도 있었다.
더군다나 몇 번의 원의 파괴.
난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비록 천기류 검술의 입문편인 유검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깨버리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나의 유검술은 천기류 전승자 사상 최고라는 사부님의 칭찬도 있지 않
았던가? 그런데….
대체 이 여자 뭐야?
난 더 이상 이 같은 기술로는 그녀를 누를 수가 없음을 느끼고는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물러서자 그녀는 약간 의아한 얼굴을 하며 날 바라보았
다.
하기야 비록 그녀가 내 검술을 깨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금은 내가
선공에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기회를 날리며 물러섰다는
것. 분명 이상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이기지도 못할 검술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난 바보
가 아니다. 게다가 그녀가 실수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이길 수도 없는 것이고.
혹 내가 실수를 해 그녀와 검이라도 부딪친다면 내 검은 순식간에 박살이다.
젠장. 어떻게 하지? 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
이거 여기까지 와서 난황이라니…. 크아아!!! 갑자기 왜 이런 무식하게 강한
계집이 튀어나와서 사람 미치게 만드느냔 말이다!!!
내공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고…. 그냥 콱 화나는데 봉인을 풀어버려?
그러면 검과 검이 맞붙어도 검이 깨질 리도 없으니 마음껏 싸울 수가 있을….
에? 검이 깨져?
아하!! 그러고 보니 그 방법이 있었구나!!
난 내 손에 들린 검을 들어올리며 잠시 명복을 빌어주고는 재빨리 자세를 잡
았다.
"아가씨…. 이번에는 조심하라고…."
내 말에 약간 긴장을 하는 그녀. 뭐 방금 전 그렇게 밀어 붙여 버렸으니 긴장
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일격 필살 이라고….
난 가볍게 몸을 날려 그녀에게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리고는 검을 날려 그녀
를 긴장케 만들고는 재빨리 검을 거두어들이며 옆으로 이동을 했다.
내 행동에 약간 의아한 빛을 띄우기는 했지만 결국 나를 따라오며 검을 휘두
르는 그녀. 그러나 난 환영신보를 시전하며 그녀의 검을 피해내면서 빠르게 뒤
쪽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장외선에 가까워 오자….
난 그녀의 검을 재빨리 내 검으로 쳐냈다. 전혀 내공이 실리지 않았던 내 검
은 순간적으로 빠직 소리를 내며 파괴가 되었고 검의 파편이 날리며 아주 잠깐
이지만 그녀의 시야를 가릴 순간….
나는 빠르게 그녀에게 붙으며 오른팔과 목의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는….
"잘 가세요…. 후훗. 죄송합니다."
"!!!"
그대로 장외로 업어치기를 먹여 버렸다.
순식간에 경기장을 지배하는 고요함. 장외로 떨어져서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
보는 로니아르에게 난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큭큭. 이게 바로 지구에서 유도라고 불리는 격투기의 기술 중에 하나이외다.
"이봐요. 심판 시합 안 끝났나요?"
그제야 심판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나의 승리를 선언했고 난 빙긋 웃으며 주
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로니아르와 관중들.
쩝. 소드마스터가 나 같은 떨거지에게 진 것이 그렇게 충격이었나?
하지만…. 옛말에 말하기를 쌈 중에 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진 것은 순전히 여기 싸움 경험이 부족한 아가씨 덕분이야. 안 그래?
…. 그러고 보니 이 아가씨…. 설마 경험을 쌓으려고 여기 나온 것은 아냐?
지금 보니 기술은 뛰어 나는데 그다지 실전 경험이 없는 것 같으니 말야….
신무(神武)
46.
Part 17. 결승전
"선생님! 정말 대단해요!!"
메르틴의 감격 어린 말….
"어떻게 소드마스터 중에 한 명을 그렇게 쉽게 이길 수가…."
시드와 프레야의 뻥진 얼굴에서 흘러나온 말….
"꺄악! 역시 우리 주인님이야!!"
아리스의 환호.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루나린의 미소 어린 말….
큭큭. 그리고…. 사색이 된 휘리아나의 얼굴.
난 방금 전 루나린에게서 휘리아나가 저런 얼굴을 한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이 무슨 이유인가 하면…. 바로 로니아르가 휘리아나의 우상이란다!!
푸하하하!! 어떠냐? 네가 날 건달이라고 부르고 얼간이라고 부른 사람이 너의
우상을 단 한방에 날려버렸다.
큭큭큭!!! 앞으로 함부로 개기지 말도록.
"너. 너도 혹시 소드마스터냐?"
로이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주었다. 현재의 나는 소드마스터가
아니고 봉인을 푼다고 해도 소드마스터는 아니다.
언젠가 아리스에게 듣기로 내 실력이라면 거의 그랜드 소드마스터라는 경지에
있거나 아니면 그것을 넘어섰다고 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니 소드마스터는 아니지. 큭큭.
"그런데 어떻게 소드마스터를 이길 수가 있는 거냐?"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 로이드. 쩝. 이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지? 음…. 내가
이긴 이유라….
"딱 집어 말해서 상대가 실전경험이 그다지 없었다는 것. 그것 뿐이야."
"뭐? 로니아르 프로스 이지니스가 실전경험이 그다지 없다고?"
"그래. 내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그녀는 탁월한 재능과 어렸을 때부터의 훈련
으로 소드마스터라는 경지에 올라서기는 했지만…. 아직 그다지 실전 경험은
없는 것 같아. 그러니 부서진 검의 파편이 눈앞에서 흩날린다고 그렇게 눈을
감아버리는 거지…."
"그럼…. 그녀가 이 대회에 나온 이유는…."
"물론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서겠지. 쩝. 이번에 나와 싸우면서 많은 도움이
되기는 됐을 거야. 졌다는 것을 계속 마음속에 두고 있다면 더 이상 성장이 없
겠지만….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를 느꼈다면 더욱더 강해지겠지."
내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그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 중에 휘리
아나도 끼어있네 그래. 비록 아주 희미하게였지만 고개가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난 분명히 보았다.
큭큭큭. 난 입가를 약간 말아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곧 내 시선을 느낀
그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난 그런 그녀를 보며 킬킬거렸고 그때 아리스가 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입
을 열었다.
"주인님. 휘리아나에게 관심 있어요? 왜 자꾸 그녀를 바라봐요?"
휘청…. 뜨악!! 눈 뚱그래. 경악
처음 휘청은 나의 행동이었고 뜨악은 로이드일행과 메르틴의 행동. 그리고 눈
뚱그래는 루나린의 행동. 마지막으로 경악은 휘리아나의 행동이었다.
아. 아리스 무서운 것. 단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이렇게 패닉 상태로 빠져들
게 하다니….
"카. 카인 정말이야?"
로이드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해주었다. 그것도 아주 거센 목소리로!
"말도 안돼!!!"
그러자 다시 묻는 루나린.
"카인님. 정말이세요?"
크아악!!! 미치겠네!!!!! 난 루나린에게 절대로 아니라고 말을 하며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킥킥 웃고있는 그녀.
또 당했다!!!!
난 그녀의 머리에 강한 충격을 주기 위해 주먹을 내려쳤지만 그 순간 다시 고
개를 들고 애교모드로 돌입하는 아리스. 젠장. 또 끝은 꿀밤이다.
흐엉!!!!!
난 한숨을 내 쉬며 아리스의 말장난에 가장 충격을 먹었을…. 휘리아나를 바
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에서 김이 푹푹 나오는 것이….
이거 잘못 걸리면 진짜 죽겠네….
나의 심정과 같았는지 다른 일행도 조용히 음식만을 들기 시작했고 다행히 그
녀는 어제처럼 발광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다만 그 분노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화풀이 상대를 찾아서 가듯 얼굴이
벌개진 채로 급히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뿐이었다.
하아. 정말 이곳에 루나린이 있는 것이 다행이다. 내가 그 동안 느낀 것 하나
는 절대로 휘리아나는 루나린 앞에서는 입을 열거나 검을 뽑지 않는다는 것이
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여기는 그녀의 칼부림이 다시 한번 일어나는 장소가
되었을 거야….
쩝. 어떤 놈이 걸릴지…. 삼가 명복을 빌어주마….
라고 고개를 숙일 때 루나린의 말이 내 귀를 강타했다.
"저 애가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지?"
….
아하하…. 이건 분명 루나린의 착각일거야….
점심을 먹은 후 대충 메르틴의 검을 뺏어 다시 대기실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준결승 2경기는 지레인의 승리였다.
하기야…. 처음부터 예상되어 있었던 경기였으니까….
다른 사람이야 느끼지 못할 테지만…. 난 그 녀석에게서 풍기는 강력한 기의
파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비록 몸 속으로 갈무리가 되어 있어 보통의 다른 사
람들이나 소드마스터인 사람들도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후훗. 그럼 서로 재미있는 경기를 해 봅시다. 감추지 말고 서로 낼 수 있는
힘은 모두 내보도록 하죠."
경기 시작과 함께 경기장으로 향하는 나에게 옆에서 따라 걷던 지레인이 한
말이었다. 그리고 난 그 말을 들으며 이 자가 역시 나의 봉인된 힘을 알고 있
다는 확신을 가졌다.
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빙그레 웃고 있지만 어디선가 한번 받았던 느낌을 풍기는 사내.
불과 한달 반전쯤에도 이 녀석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존재를 만날 수가 있었
다.
블랙드래곤 이레드아이안….
지레인이란 이 녀석에게서 풍기는 기질은 그 녀석과도 비슷했다. 아주 똑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레드아이안이 파괴와 광기가 느껴졌다면…. 이 녀석에게는 미풍 속에 잠들
어있는 거대한 폭풍이 느껴졌다.
간사한 종족이라는 블랙드래곤이었던 이레드아이안은 자신의힘을 철저하게 숨
긴턱에 내가 알아 볼수가 없었지만. 이 녀석은 자신의 힘을 은은하게나마 뿜어
내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드래곤인가?"
나의 조용한 한마디. 그러나 지레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미소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난 그것을 긍정으로 해석을 하고는 쓴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동족을 죽인 것에 대한 보복인가?"
"후훗. 아닙니다. 저희 종족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 해즐링에게 상
처를 입히거나 죽음을 선사한 자에게는 철저하게 복수를 하지만…. 성룡이 된
자들이 타 종족에게 죽음을 당했을 때는 죽은 자를 비웃을 뿐입니다. 최강의
종족이면서도 이기지를 못한다는 것. 그것은 그 자의 실수일 뿐이지요. 지금까
지 인간들 중 몇 명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나오기는 했지만 절대로 보복을 한
적은 없답니다."
쩝. 그런가? 그럼 대체 뭐 하러 드래곤이 이런 대회에 나와서 나와의 싸움을
기대하는 거야?
하여간 알다가도 모르는 존재들이라니까.
신무(神武)
47.
"저는 지금 당신이라는 존재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비록 이레드아이안이
인간으로 폴리모프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그와 대등한 대결을 벌이고 오히려 그
를 죽인 당신을 말입니다."
쩝. 역시 이 녀석도 드래곤이 맞기는 맞는가 보군. 너무 강해서 자신의 상대
를 찾지 못해서 허무함을 느끼고 오랜 세월을 살아서 즐길 일이 없어서 권태감
을 느끼는 존재.
녀석에게 자신의 종족과 대등하게 겨루었던 나는 딱 재미있는 장난감이겠지.
"당신은 저를 즐겁게 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죽어도 난 몰라…."
"후훗. 걱정 마십시오. 저희는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의 살기 어린 말을 그렇게 넘겨버린 지레인에게 난 쓴웃음을 지어 보여야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아리스에게 드래곤은
공포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참으로 편한 종족이군…. 공포를 느끼지 못하니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을 것이
고…. 아무래도 너무도 강한 종족이기에…. 자신들보다 강한 존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겠지….
"신(神)의 무예(武藝).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응? 신의 무예?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빛이 들어오는 경기장의 출구로
걸음을 내딛는 지레인이었다.
난 그의 끝말에 약간 궁금함이 일었지만…. 곧 생각을 털어 버리고는 그 뒤를
따랐다.
수만 명의 입에서 폭발해 나오는 터질 듯한 함성.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난 지레인과 함께 경기장 위로 올라섰다.
여기까지 오기 전까지는 그냥 일부러 져버릴까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
따위는 없었다.
즐겁겠군…. 저런 존재와 싸우는 것은….
죽을 수도 있겠지만…. 내 몸을 감싸는 흥분은 그것까지도 눌러버렸다.
"지금부터 루난 왕국 건국일 왕국 종합 무술대회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과 함께 나의 검은 빠르게 그를 베어 들어갔다. 그러나 지레인은 간단하
게 나의 검을 잡아버렸다.
쩝. 역시 지금 상태로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설마 맨손으로 검을
잡아버릴 줄이야….
"제대로 해 주십시오. 전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답니다."
다시 검을 놓아주며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지레인. 난 결국 한숨을 내
쉬고는 검을 거두어 들었다.
"역시 장난은 안되겠네…."
방법은 하나 분이다. 봉인된 내공을 다시 찾는 것.
쩝. 뭐 나야 상관이 없다. 내가 내공을 감추는 것은 순전히 아리스의 성화에
의해서니까. 나야 아리스의 말만 따라 달려들 떨거지들을 피하기 위해서 봉인
을 한 것밖에는 없으니까.
하지만…. 큭큭. 지금은 절실히 내 본래 힘이 필요할 때이지.
내가 손을 들어 귀걸이에 손을 대자 지레인은 뒤로 물러서며 미소를 지어 보
였다. 그렇게 원한다면. 해주지…. 기대하고 있으라고….
….
……. 에 그런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상하다는 얼굴로 묻는 지레인…. 난 땀을 삐질 흘렸다.
그리고….
"우우!! 뭐하는 거냐?"
"서로 노려보기만 하냐? 돈이 아깝다!!!"
"빨리 싸워!!!!"
발광하는 관중들. …. 처음에 검을 한번 휘두르고 그것을 지레인이 잡아버리
고…. 그후에 뭐라고 대화를 나눈 후 거의 1분 동안을 서로 바라보고만 있으
니…. 당신들 심정 이해가 간다.
내가 그들에게 한숨을 내쉴 때 아리스가 고함을 질러댔다.
"조용히 안 해요? 잠시 후에 멋진 구경을 하게 될 테니까!"
순식간에 소음이 가라앉았다. 그만큼 아리스의 목소리가 컸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리스 고맙구나!!!
그런 김에 한가지만 더 부탁을 하자.
"저기 아리스!!!"
"네?"
내가 그쪽을 바라보며 묻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는 아리스. 난 그녀
를 보며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을 말했다.
"저기…. 봉인 푸는 암호가 뭐였지?"
"…."
아하하…. 내가 어설프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유. 내 말을 듣고 한동안 멍
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곧 난간에 머리를 기대는 아리스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한창 기대를 하고 있던 아리스에게 너무 미안하네….
게다가 내 상대인 지레인의 비틀거리는 모습…. 그도 기대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귀걸이를 잡자 분명 그것이 봉인구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런데…. 그 봉인을 풀지를 못하다니….
…. 민망하네….
그순간 아리스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나에게 악을 질러댔다.
내. 내가 외 이렇게 아리스에게 쩔쩔 매는 것이지?
그. 그러고 보니…. 저 모습 언젠가 한번 본적이 있었다. 바로 폭주모드….
뜨헉!!! 이거 잘못하면….
"아리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화 풀고!!!!"
갑작스레 시합 중에 내가 두 손을 싹 모으고 한 여자한테 -그것도 나를 주인
님이라고 부르는- 싹싹 빌자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와 아리스를 바라보
았다.
그리고 그것은 루나린일행은 강도가 더 컸다.
하지만 너희들이 뭘 알리요. 잘못했다가는 여기로 샤이닝 버스터가 발사될 수
도 있다는 말이다!!
결국 있다가 시합 끝나고 뽀뽀 해줄게라는 민망한 말을 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 퍼트리고 난 후에야 난 아리스의 화를 풀어줄 수가 있었다. --;;;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약속이고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 않을 말이었지만…. 지금은 절대로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드래곤 브레스에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인 파괴력을 지닌 샤이닝 버스터가
이곳으로 발사된다면….
이 도시는 오늘로서 망한다….
이런 생각에 화를 푼 아리스를 보며 안도의 생각을 하고 있던 나….
곧 한가지 생각에 기겁을 해야만 했다.
'크아악!!! 그러고 보니 그런 약속은 마음으로 교신을 하면 되는 것이었잖
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싱글 웃는 아리스를 보며 -화내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
난다던데…- 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우리의 약속 내용을 듣고 박장 대소를 터트리는 경기장 안의 사람들과
로이드, 프레야, 시드….
놀란 얼굴로 나와 아리스를 바라보는 루나린, 메르틴, 휘리아나….
-휘리아나는 약간 놀란 강도가 적다. 그러나 내 눈에는 확실하게 놀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둘이 그런 관계였어요?' 라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전혀 표정 변화가 없는…. 베르리나…. 이 여자가 가장 무섭다. --;
신무(神武)
48.
"하하…. 지레인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놀랍군요. 저를 당황하게 만드는 인간이 존재할 줄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누가 그 암호를 까먹을 줄 알았나? 젠장.
덕분에 이곳에서 아리스에게 뽀뽀를 해준다고 대대적으로 퍼트리지를 않았나?
이로서 아주 공개적인 커플이 되어버렸단 말이다…. 나와 아리스는….
당사자들은 전혀 아닌데….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난 이를 뿌드득 갈며 방금 아리스에게 들은 봉인 해제 주문을 외었다.
"--Cancellation--"
주문발동과 함께 나의 귀걸이에서 약간의 빛이 이는 것 같더니 곧 빠르게 그
곳에서 나의 단전을 향하는 거대한 기의 흐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나의 몸에서 이는 기의 바람에 나의 머리카락이 휘날렸
고 그것을 보며 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각효과도 죽였던 것이다. 큭큭. 이거 자주 봉인했다 해제를 해야지. 이거
진짜 멋있네.
그리고…. 내 맞은편에 서있는 지레인의 반응.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멋있지? 멋있지? 멋있지?
쿠하하하하!!!! --;;;
약 2초 정도가 걸려서 나는 나의 모든 내공을 되찾았고 시험삼아 검에 기를
주입시켜 보았다. 그러자 강렬한 기를 뿜어내며 검에서 피어오르는 강한 기운.
그것을 보며 경기장 관중석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검기란 소드마스터가 되어야지 만 쓸 수 있다는 기술.
난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봉인하기 전의 내공을
그대로 되찾았던 것이다. 전혀 부작용이 없었다.
약간이나마 걱정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설마 못 찾는 내공이 있지나 않을까 하고…. 그러나 그런 것은 부질없는 생각
이었고 멋진 특수효과와 함께 꽤 쓸모가 있는 이 귀걸이가 이 순간 상당히 마
음에 들었다.
"놀랍습니다.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벌써부터 놀라는 곤란하지. 안 그래?"
"후훗. 그렇군요."
빙그레 미소를 짓는 지레인.
난 자세를 잡으며 기를 끌어 올렸다.
"탐색전 따위는 없어. 재대로 하자고."
"그러죠."
말과 함께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지레인. 그러자 그의 몸 주위로 열 다섯
개의 불의 공이 튀어나왔다. 하나하나당 엄청난 기가 느껴지는 그것을 보며 난
어쩌면 이 지레인은 전에 싸웠던 이레드아이안보다 더 강한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 지금은 싸움 중. 쓸데없는 잡념은 필요도 없
는 것이다. 그저 어떻게 하면 적을 베어 버릴 수 있을까 하는 것만 생각해도
부족한 것이다.
"이것부터 시작하죠. [프레임 익스플로션]!"
지레인의 말과 함께 나를 향해 날아오는 다섯 개의 불의 공. 그러나 난 환영
신보를 펼치며 그것을 피해내었다. 순식간에 경기장 곳곳에 불길이 일면서 파
편이 튀었고 난 그 파편들과 연기를 뚫으며 지레인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멋집니다. 그럼 이것도 받아 보시죠. [플레어]!!"
언젠가 한번 본 마법. 이레드아이안이 쓴 그 마법이었다. 단 한번에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던 그 붉은 빛줄기를 보며 난 급히 검으로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자 흐물흐물하게 무형의 기운을 이루고 있던 검기가 뭉치며 검 형태로 변
하기 시작했고 난 그것을 이용하여 즉시 나를 향해 날아오는 붉은 마법의 빛줄
기를 갈랐다.
두 갈래로 나누어진 빛줄기. 하나는 내 아래 바닥을 강타하며 강한 폭발을 일
으켰고 남은 하나는 공중으로 치솟았다.
"놀랍습니다. 검기를 뛰어넘는 검의 기술이 있다니…. 그것도 8사이클 마법인
플레어를 간단히 갈라버릴 정도라니…."
"검강(劍剛)이라는 것이지. 기의 소비가 조금 비효율적이라서 평소에는 잘 쓰
지 않는 것이지만…. 어쨌든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말을 마친 나는 즉시 환영신보를 극성으로 펼쳐 내었다. 아직 녀석의 몸 둘레
의 열 개의 불의 공. 그것을 최대한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빠르게 늘어나는 나의 신형들. 순식간에 나는 일곱 개의 분신을 만들어 내었
고 즉시 지레인에게 달려들었다.
역시 지레인은 손을 흔들어 각각 분신 하나 당 불의 공을 날렸고 난 나에게
날아오는 불의 공을 가볍게 손에 천강기를 시전 하여 잡아 쳐내며 녀석에게 돌
격해 들어갔다.
"그쪽이 진짜였군요."
그렇게 말하며 남은 두 개의 불의 공을 동시에 나에게 날리는 지레인. 하지만
난 이번에도 역시 가볍게 검을 휘둘러 두 개의 불의 공을 잘라내 버렸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지레인은 어느새 주문을 외어놓고 있었다.
"[멜튼]!"
갑자기 아래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불의 기운. 난 급히 공중으로 몸을 솟구치
며 그 기운을 피해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 내가 방금 내딛었던 자리에서 하늘
로 뻗어 오르는 화염기둥.
겨우 그것을 피해냈다고는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비록 그 범위를 축소 시켰다고는 하지만…. 9서클의 마법인 멜튼을 피하 다
니…. 놀랍습니다. 그럼 또 갑니다. [플레어]"
공중에서 몸을 튼 나에게 직격으로 날아오는 불의기둥. 그것을 보며 난 숨을
들이켰다. 그것을 잘라낼 수는 있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는 그것의 파편이
저쪽 관중석으로 향할 것이다. 게다가….
그쪽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아리스와 그 외 일행이었다.
난 순간적으로 결단을 내리며 재빨리 온몸에 천강기를 극성으로 펼치었다. 과
연 막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붉은 색의 빛의 줄기. 그것은 내가 천강기를 완성해 내자마자 강렬
하게 나의 몸을 강타했고 곧 내 기의 막을 뚫으며 돌진해 들어오는 그것을 보
며 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깃이 나의 천강기를 뚫으며 내 가슴에 직격 했을 때…. 난 그 뜨거움과 함
께 피어오르는 과거의 기억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크아아아악!!!!"
"주인님!!!"
"카인!!!"
"카인님!!!"
뒤쪽에서 들리는 아리스와 루나린…. 시드…. 프레야…. 이레릴의 목소리….
그러나 나의 몸은 그것에 대답을 해주지 못한 채 바닥과 강렬한 충돌을 했고
곧 2미터 이상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흐음. 당신이라면…. 그 상태에서도 충분히 그것을 막아내거나 잘라낼 수 있
었을 텐데…. 무엇 때문에 무리하게 그것을 몸으로 받았습니까? 설마 뒤쪽의
일행들 때문이었습니까?"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키는 나에게 묻는 지레인….
그러나 그 말은 방금전 당한 일격보다 더 큰 충격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그들을 걱정해서 직접 몸으로 지레인의 공격을 막았다고?
설마…. 내가?
말도 안 된다. 적에게 인질이 잡혀 있다면 그 인질을 먼저 베어버리던 나였
다. 그 인질이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더라도…. 그런데…. 그런데….
내가 겨우 만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사람들과 삼 년 전에 잠깐 스쳐 지나갔
던 사람들을 위해서 내 몸을 상처 내 가며 저들을 보호했다고?
"카인!!!"
"카인님!! 상처가 심해요. 그만 하세요!!!"
뒤쪽에서 로이드와 루나린이 나에게 소리쳤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큭큭큭…. 내가 겨우 그런 존재들을 위해서 내 몸에 상처를 냈단 말인가?
큭큭…. 제길…. 역시 드래곤들은 짜증이 나는 존재들이야.
하나같이 거만하고…. 하나같이 사람의 더러운 기억을 들추고…. 하나같이 사
람을 열받게 한단 말야….
"아직 힘이 있는 겁니까?"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나에게 묻는 지레인…. 그러나 난 그의 물음에 대답대신
가볍게 들고있던 검을 뒤쪽으로 던져버렸다.
"항복이십니까? 실망이군요. 겨우 이 정도로 저희 종족 중 블랙드래곤을 잡았
다고 할 수가 있는 건지…."
큭큭큭…. 실망? 그 말이 곧 쏙 들어가게 해주지….
난 쓰윽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고는 검지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을 펴며
앞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죽여버리겠다…. 그래…. 나에게는 이것이 가장 잘 어울려…. 주위를 신경 쓰
고 살 필요? 없다…. 큭큭!!
신무(神武)
49.
Part 18. 격돌의 파급
나의 손에서 생성된 기의 검.
기살검(氣殺劍).
큭. 이제는 완전히 이 기술이 드래곤을 잡는 기술이 되어 버렸군….
"놀랍습니다. 엄청난 마나 집합체군요."
방금 전의 비웃음은 날려버리고 나에게 말하는 지레인.
"검을 버린 이유도 알 수 있겠군요. 그 정도의 마나를 견딜만한 검은 거의 없
을 테니…. 하지만 그에 따라 마나 소모도 막대할 건데요."
큭. 알고있군. 그러니 그렇게 대화를 하며 시간 날릴 시간이 나에게는 없어.
이 기살검은 유지하는 것만 해도 막대한 내공이 소모가 되니 말야.
최대한 빨리 끝을 내주지….
난 그대로 녀석을 향해 기살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기살검에서 뿜어지는 막대한 기가 소용돌이를 치며 지레인에게 날아갔
다. 가볍게 손을 휘둘러 내 검풍(劍風)을 차단하는 지레인. 그러나 난 재차 검
을 휘둘렀다.
흡사 폭풍이 치듯이 강하게 지레인을 향해 날아가는 기의 바람들.
결국 지레인도 가볍게 몸을 피해내며 내 공격을 흘러냈다.
큭. 결국은 그 자리에서 움직였군.
지금까지 제 자리에서 똑바로 서서 주문을 외우고 손만을 휘두르는 네 녀석이
상당히 꼴 보기 싫었거든….
"타핫!!"
녀석이 움직임을 보이자 나는 무영신법을 펼치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그러
면서 기살검을 빠르게 내려쳤다.
내려 베기 기술인 뇌섬(雷閃)
극성으로 펼친 무영신법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뇌섬은 녀석의 진로를 완전히
봉쇄를 하며 녀석의 머리를 갈라버릴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상대는 이레드아이안보다 강한 드래곤. 손으로 나의 기살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완전히 방어를 못하고 흥건히 피에 젖은 지레인의 손을 보며 난 재
차 녀석에게 검을 날렸다.
천기류 검술 일섬(一閃), 천풍(天風), 천살(天殺)
순식간에 세 개의 기술을 연계해 들어가자 녀석의 얼굴에도 당혹이 어렸다.
일섬은 녀석의 얼굴에 길다란 상처를, 천풍은 녀석의 뱃가죽을 창자가 보일
정도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살은 녀석의 오른팔을 어깻죽지부터
완전하게 잘라내 버렸다.
"크윽!!"
"공포는 느끼지 못하지만 고통은 느끼는가 보지?"
나의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에 지레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이레드아이안과는 다르군.
그 녀석은 즉시 반응을 보이며 개 난리를 치던데….
이 녀석은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이니 말야…. 젠장 상대하기 더 까다로운 놈
이야….
"[리커버리]"
전혀 당황하지 않고 처음에는 자신의 찢어진 왼손을. 다음은 너덜너덜한 뱃가
죽을. 마지막으로 잘려진 팔을 재생시킨 지레인….
이런 와중에도 환호를 지르며 구경을 해대는 어리석은 인간녀석들을 보며 난
비웃음을 흘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녀석들은 지금 내가 싸우는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아는 사람들은 있군. 방금 전까지 저 위에서 구경하던 국왕
이란 녀석이 사라졌으니 말야.
그리고 그 근처를 지키던 몇몇의 기사도….
자신의 나라 국민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만 먼저 살기
위해서 도망을 가다니….
더러운 녀석이군….
"완전히 달라졌군요. 이게 바로 이레드아이안을 죽였던 당신의 본래 실력인
겁니까?"
"처음에는 그냥 즐기기만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달라져서 말야…. 역
시 드래곤들은 재수가 없는 종족이라 그냥 넘어가고 싶지가 않았어."
"후훗. 그 말은 저희 종족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은 것처럼 들리는군요."
"강하다고 뻐기는 녀석들은 다들 꼴 보기 싫어하는 타입이라서…."
내 말에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입을 열었다.
"상당히 특이한 성격이시군요. 뭐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그보다 이제는 저
도 제대로 해야겠군요. 당신처럼 접근전에 강하신 분을. 그것도 이렇게 경기라
는 이름으로 범위를 좁혀 놓고 싸우는 것은 마법으로는 이기기가 힘들 것 같거
든요. 마법으로 공중으로 날아 메테오라도 한방 날리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
만…. 그 방법은 그다지 쓰고 싶지 않네요. 당신과는 정정당당히 힘을 이용해
싸우고 싶으니 말입니다."
"그런가?"
"뭐 저도 상당히 특이한 성격이거든요. 그럼 잠깐만 준비를 할동안 기다려 주
시길…."
그렇게 말한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곧 그의 손에 스쳐간 하늘이 갈라졌
다. 그리고 그곳에 손을 집어넣은 그는 곧 미소를 지으며 한 장검 정도 크기의
아름다운 붉은 색의 검을 꺼내었다.
"유라실 아그나스라는 검입니다. 그렇게 좋은 검은 아니지만 제 마나를 어느
정도 집어넣은 다면 당신의 그 검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전 당
신처럼 그런 검을 만들어 내지 못하니 이런 것이라도 사용을 해야겠죠."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그를 보며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알기로는 드래
곤은 대체적으로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마법도 주문도 필요 없이 시동어만 외우면 되고 그 파괴력도 화려함
도 검술을 훨씬 초월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에게 검술은 그다지 필요
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드래곤은 별종인가?
"후훗. 조금 심심해서 배워 두었을 뿐입니다. 당신에게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도록 하죠."
보면 볼수록 이상한 드래곤이다.
뭐 나야 드래곤이라고는 이 녀석이 두 번째 녀석이었으니 뭐라고 할말은 없지
만…. 전혀 얼굴에 화라고는 내지 않으면서 그 깊은 곳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살기가 느껴지는 자.
분노와 살기를 마음껏 표출하던 이레드아이안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쩝. 뭐 드래곤도 사람처럼 이런 녀석 저런 녀석 가지 각가지겠지.
난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기살검을 만들어 내며 녀석을 응시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녀석은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
게 손가락을 하나 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자리를 옮기도록 할까요?"
"뭐?"
"이곳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차피 당신도 경기의 승패는 이미 관심이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장애물이 없는 곳이 좋겠죠?"
장애물이라…. 큭. 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가?
"난 이곳이라도 별 상관없는데…."
"그렇습니까? 하지만 여기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서 당신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큭. 아직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 난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
다 대답대신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관중석 쪽으로 기살검을 날렸다.
그리고 가볍게 염(念)을 발휘하여 그것을 폭파시켜 버렸다.
쿠앙!!!!
거대한 폭발. 그것은 관중석 한곳을 순식간에 날아가게 만들어 버렸고 어림잡
아도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시체조차 남지 않았다.
"으악!!!"
"사. 살려줘!!!!"
그제야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느낀 인간들. 녀석들은 놀라서 급히 도망을 치
기 시작했고 난 약간 놀란 지레인에게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 카인님!! 대체!! 왜?"
그때 뒤쪽에서 루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난 힐끔 고개를 돌려 그녀
를 잠깐 바라보다 곧 다시 지레인에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큭…. 그 놀란 얼굴 안쪽에는 날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쪽으로 날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하라고….
신무(神武)
50.
"카인!! 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선생님!!"
"카인!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지 알아?"
"카인님!! 제발…."
젠장. 더럽게 시끄럽네. 빽빽 소리를 지르는 녀석들을 머리 속에서는 무시하
려고 했지만 몸만은 그렇게 반응을 하지 못했다.
다시금 고개를 돌린 나는 가볍게 한마디를 했다.
"꺼져…."
내 말에 한동안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들. 그러나 곧 로이드가 가장먼저 분
기충전해서 관중석에서 뛰어내렸다.
"야!! 너 카인!!! 컥!!"
그러나 다 잇지 못하고 쓰러지는 로이드. 내가 녀석의 다리에 탄지공을 날려
버린 것이다.
다리에 손가락 만한 구멍이 뚫려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을 구르는 로이드.
그 모습에 프레야와 시드가 놀라서 뛰어내려와 로이드를 부축했다.
"로이드!! 괜찮아?"
"카인!!! 이게 무슨 짓이야?"
젠장할 더럽게 시끄럽네. 난 솟구쳐 오르는 짜증에 다시 기살검을 만들어 내
었고 그 모습에 나에게 소리를 치던 그들의 입이 순식간에 닫혀졌다.
그러나 단 한사람. 루나린은 조심스럽게 손을 모으며 나에게 입을 열었다.
"카인님…."
"…."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죠?"
그녀의 눈가에 반짝이는 투명한 그 무엇인가가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난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쓰러오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 물었다.
젠장. 상대와의 대결 중에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 나였다. 언제나 평정
심을 유지하면서 나의 몸만을 생각하며 상대의 목을 베어버릴 때까지는 그것을
깨트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루나린의 모습을 보며 그 평정심이 약간 금이 가는 것을 난 부정할 수가 없었
다. 난 다급히 부서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 싸움에 끼어 들지 말고 빨리 사라져. 죽고싶지 않으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갑자기 이러시는 거죠? 카인님?"
"젠장!! 아리스!!!"
나는 무너져 가는 평정심을 느끼며 급히 아리스를 불렀다. 곧 아리스가 무표
정한 얼굴로 내 옆에 스르륵 나타났고 사람들의 시선에 놀람이 어렸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 있던 아리스가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나니 모두 놀란
만도 했다. 게다가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다.
언제나 표정이 풍부하던 아리스가 갑자기 이렇게 무표정을 유지하니….
난 내 뒤에 나타난 아리스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들을 모두 이곳에서 20km밖으로 전송시켜라."
내 말에 루나린과 메르틴이 놀라소 급히 나를 불렀지만….
"자. 잠깐만요!! 카인님!!"
"선생님!!! 갑자기!!"
"알겠습니다."
아리스의 대답은 여지없니 흘러나왔고 곧 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흩어지듯이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로서 이 넓은 경기장에 남은 존재라고는 나와 아리스. 그리고 지레인뿐이었
다.
난 아리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피해 있어. 나와 이 녀석과 둘만 있고 싶다."
"알겠습니다."
전혀 표정이 없이 스르륵 모습이 사라지는 아리스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그녀
가 완전히 사라지자 지레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재대로 싸울 수 있겠군…."
"후훗. 당신 참으로 마음이 여린 사람이군요."
"뭐?"
갑작스런 지레인의 말. 나는 눈을 약간 치켜 뜨며 반문을 했고 지레인은 조용
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도 여린 마음을 가진 덕분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필요이상으로 잔인해
지는군요. 틀렸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무엇인가가 커다란 송곳으로 나의 마음을 찌르는 것 같은 충
격을 느껴야만 했다.
"시. 시끄러!!"
"후훗. 제가 말한 여기서의 장애물이란 좀 전에 당신이 죽인 인간들이 아니었
습니다. 바로 당신이 살려준 몇몇의 인간들. 바로 그들이죠. 당신은 자신의 여
린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아무 죄 없는 저들에게 저런 짓을 했죠."
그러면서 그가 가리킨 부분. 그곳은 이제는 시체조차 남지 않은. 그러나 곳곳
이 피로 흥건히 젖어있는 방금 전 내가 죽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만약 그들의 모습이 조금만 더 당신의 앞에 있었다면…. 당신은 그들마저도
죽이고 진정한 악한이 되어 버렸겠죠. 그리고 그 후에 죄책감으로 눈물을 흘리
겠죠. 그것을 알고 있는 당신은 급하게 그들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했고…. 웃
차 이런!"
나의 일격을 급히 피해낸 그는 짜증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레인 유스카. 진정한 드래곤으로서의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네 녀석만은
오늘 죽여버리겠다!!
"이런 제가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을 건드렸나 보군요. 눈빛이 아주 무섭습니
다. 우리 드래곤들 중 가장 광폭 하다는 레드드래곤도 그런 눈빛은 내지 못할
겁니다."
"시끄러!! 개자식!! 죽여버리겠다!!!"
난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왼손으로도 기살검을 만들어 내며 녀
석에게 달려들었다.
죽여버리겠다.
다른 그 어떤 생각도 없었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이 녀석만은 정말로 죽
여버리겠다는 것 뿐.
그러나 녀석은 미소를 지은 채로 나의 공격을 하나하나 막아내었고 그것은 나
를 더욱더 분노에 떨게 만들었다.
"크아아악!!!!"
"웃차!! 공격의 날카로움이 사라졌군요. 그냥 분노에 몸을 맞기고 검을 휘두
르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검을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 일 뿐입니다."
녀석의 말 하나하나가 화가 나는 말뿐이다.
겨우 도마뱀 녀석이….
겨우 도마뱀 녀석이!!
"네 녀석이!! 네 녀석이 뭘 안다고 지껄여!!!"
"이런…. 화를 가라앉히세요. 그것으로는 저와 겨룰 수 없습니다."
"시끄러!!!"
그 웃는 얼굴을 짓이겨 주겠다. 그 짜증나는 상판을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
도마뱀 자식. 네까짓 녀석이 뭘 알 길래.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안다고 말
하는 것이냐?
네놈 따위가 인간에 대해서 알기나 하는 것이냐?
크아악!! 젠장!!!
그러나 녀석은 가볍게 한 손만으로 나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어 버렸다. 그 모
습에 나는 더 이상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리스!!!! 날려버렷!!!!!!!"
그와 함께 구름을 뚫고 수직으로 떨어져 오는 강력한 빛의 광선.
그 모습에 드디어 지레인은 내가 원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이런…. 같이 죽을 속셈입니까?"
"흥. 너나 죽으시지…. 아리스!!"
당황한 녀석을 내버려 둔 채로 나의 몸은 그대로 샤이닝 브링거로 전송이 되
어 버렸고 곧 거대한 폭발이 도시 페알딘을 감쌌다.
신무(神武)
51.
Part 19. 왕성침입!
"주인님. 녹차예요."
멍하니 폐허가 된 페알딘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아리스가 내민 찻잔을 받아
들였다.
사기로 된 그릇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풀리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리스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었고 아리
스는 밝게 웃으며 두 손을 가슴으로 모았다.
"좋군…."
찻잔에 입을 대보고는 다시 내리며 나는 중얼거렸고 다시 시선은 페알딘의 전
경이 나오는 모니터를 향했다.
…. 두 번째인가? 첫 번째는 마을. 이번에는 왕국의 수도…. 다음 번에는 거
대제국의 수도정도는 되겠군….
뭐…. 마음이 아프거나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니다.
약간이나마 씁쓸한 기분이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을 직접 칼로 찔러 죽인 것도 아니고 샤이닝 브링거로 날려버린 것을 마음 아
파할 정도로 난 착한 녀석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아리스도 샤이닝 버스터의 파괴력을 상당히 약화를 시켜서 대략 지름
3km정도의 지역만 날아간 것이지…. 제대로 했다면 이 도시 사람들은 몽땅 몰
살을 당했을 것이다.
죽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그 콜로세움 근처에 살았다는 이유로 죽은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더럽게 재수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지….
그보다…. 루나린과 다른 일행은 어떻게 된 거지? 또 지레인은?
"지레인은 센서에 포착되지 않아요. 폭발의 영향으로 소멸이 되었거나 이곳에
서 완전히 빠져나간 것 둘 중에 하나일거예요."
뭐…. 녀석은 드래곤이니…. 게다가 이레드아이안이라는 멍청이처럼 눈깔 뒤
집고 발발 날뛰다가 자기한테 날아오는 광선도 못보고 죽은 멍청이가 아니다.
충분히 빠져나가고도 남았겠지….
젠장. 다음에 잡히면 완전히 보내버리겠어….
"그리고 루나린 일행은 도시의 외곽 쪽으로 전송을 시켜 놓았어요. 지금 화면
에 비추겠습니다."
아리스의 말과 함께 모니터 오른쪽에 약간 작은 화면이 나타나며 루나린의 모
습이 비쳐졌다.
난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가슴속에 무엇인가가 꽉 들어차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 루나린은 울고있었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에서는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불길이 솟는 그곳을 보면서….
내가 저곳에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녀의 그런 모습에 난 나 자신도 모르게 아려오는 가슴을 달래며 한숨을 내
쉬어야 했다.
그런 나에게 아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떻게 하실 거죠?"
"뭘?"
"이제부터요…."
…. 이제부터라…. 하긴…. 지금쯤 저곳에서 나는 완전한 살인귀로 되어 있을
테니. 순식간에 1000여명이나 되는 사람을 날려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좀 전의 폭발로 나는 저들에게 죽었다고 생각할 테다….
역시…. 저렇게 울고있는 루나린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냥 이대로 떠나
는 것이 좋겠지….
…. 그런데…. 왜 저렇게 우는 거지?
휴…. 무슨 상관이 있겠어.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들인데…. 그보다….
이대로 떠나기는 좀 뭐한데.
처음 이곳에 온 목적…. 이 나라의 재상이라는 녀석의 상판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동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신나게 논 것 같지만 나도 알아볼 것
은 다 알아봤다- 그 재상이라는 자. 상당히 특이했다.
우선 자신의 저택은 있지도 않고 1년 365일 종일 왕궁에서 발도 빼지 않는다
는 것…. 게다가…. 재상이라는 작자가 무슨 놈의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하스
미르공작도 그 얼굴을 두세 번 밖에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아…. 젠장 이번 대회에서 상위 4명안에 드는 사람은 이번 경기가 끝나고
궁에서 벌어지는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에 약간의 기대
를 하고 있었는데….
졸지에 그것은 물 건너갔군…. 하여간 나는 이 울컥해서 일 벌이는 성격 좀
고쳐야해…. 하연누나와 만날 때 조금 고쳐지는 것 같더니…. 요즘은 더욱더
심해졌단 말야….
"아리스 무슨 방법 좀 없어?"
"전송으로는 불가능해요. 대부분 왕궁은 건축당시 여러 가지 영구적인 마법을
걸어놓거든요. 그 중에는 전송마법으로 바로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어하는
것도 있어요."
아리스의 질문에 나는 약간 생각을 하고는 곧 궁금한 점을 한가지 끄집어내어
서 물었다.
"…. 네가 사용하는 그 전송과 마법은 다른 것 아냐?"
"마법이란 사용자가 대자연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자신의 정신력으로
조종을 하여 그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며 발동이 되는 것이에요. 덕분에 마법을
하나 쓰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공식을 조합시켜야 하죠. 특히 그 마법의 난
이도가 높아갈수록 그 공식의 조합 수는 많아지고 8, 9, 10사이클 정도의 마법
은 거의 인간으로서는 그 공식의 조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죠."
에? 잠깐 이것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때 분명히
3년만에 지상으로 내려와 세든의 근처에서 아리스에게 들었던 설명….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공식의 조합이라는 말을….
"헤헷. 맞아요. 저는 주인님의 정신력을 이용하여 이 세계에서 말하는 8사이
클의 [워프]라는 마법을 쓰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샤이닝 브링거를 둘러싼 보
호막은 [서피리어 실드]라는 9사이클의 궁극 방어마법이라는 것이죠."
그랬군. 하아…. 마법사라는 것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지금에서
야 느꼈다. 1사이클의 마법이라도 대충 1~2개의 공식을 조합해야 하고 2사이클
은 5개정도. 3사이클은 거의 10개 이상을…. 4사이클은 거의 20개 이상을…. 5
사이클은 50개 이상을, 6사이클은 100개 이상의 공식을 계산해서 법칙을 깨트
려야 하는 것이다….
위는 모두 아리스의 설명이다…. --;;;
이제야 알겠군…. 사이클 수가 높아질수록 주문을 외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힘
든 이유를 말야…. 하아…. 존경스럽다. 어떻게 수십개의 공식을 전부 머리에
서 계산을 해댈까?
대충 6사이클이 대마도사라는 칭호를 받으니까….
그런 사람은 IQ가 300이 훨씬 넘고도 남겠다….
…. 그럼…. 9사이클 정도의 마법을 주문 없이 그냥 팍팍 써대는…. 드래곤의
머리는 대체 얼마나 좋은 거야?
"하아…. 그나저나 그럼 대체 어떻게 왕성으로 들어가지? 강제적으로 뚫을 수
는 없는 거야?"
"으음…. 주인님 정도면 강제적으로 뚫고 들어가는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걸려서 상당히 시끄러워 질건대…."
"좋군…. 조금 시끄러워 지는 것은 상관없어…."
정 짜증이 난다면 그 재상이란 녀석을 잡은 후 왕성에다가도 샤이닝 브링거로
한방 날려주면 되니까….
난 조금 식은 녹차를 한입에 들이키고는 옆에다 내려놓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
으켰다.
"가자…."
"네…."
강제적으로 뚫고 들어온다 길래 무슨 충격이라도 느낄 줄 알았더니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아무 무리 없이 도착한곳은 분수대가 있는 거대한 정원이었다.
척 봐도 거의 넓이가 수백 평이 넘을 것 같은 그 넓은 정원은 수없이 만발한
꽃에 거대한 분수대와 작은 정자같이 생긴 장소까지 있는 한마디로 지상낙원이
이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꽃에 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고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여자 아니
면 별 관심이 없던 터라 -이러니까 내가 엄청 밝히는 녀석이 되는 것 같네- 그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고 아리스에게 물었다.
"그래…. 재상이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지?"
"몰라요."
"…."
…. 그러고 보니 당연한 건가?
난 나의 이런 실수에 입을 쩝 다시고는 발걸음을 떼었다. 뭐…. 찾다보면 나
오겠지. 정 안 된다면 누구 하나 잡아서 물어보면 되는 것이고….
"그보다…. 주인님…."
"응? 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 같은데요."
그것은 나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아리스의 말대로 걸리기는 걸렸나 보
군…. 뭐 그들 중에 하나 잡으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