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근생 ‘지분쪼개기’ 법원서도 ‘철퇴’
지난 2008년 용산구 서계동 일대. 수도와 가스시설,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 주거시설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용도를 임의로 변경하는 불법공사지만 인근 상가건물 대부분에서는 이같은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무실 등 상가 시설을 굳이 주거용으로 바꾸는 이유는 바로 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진행되면 아파트를 받기 위해서였다. 2008년 7월까지 준공된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에 한해 주거용으로 쓰였다는 점이 인정되면 분양대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서울행정법원이 이처럼 용산일대 한강로2가, 서계동, 청파동 일대에서 성행했던 근생 지분쪼개기에 대한 용산구의 원상복구명령에 대해 용산구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분양대상자가 되기 위해 쪼갠 지분을 사들인 소유자들은 ‘사업 진행의 불투명’, ‘분양 대상자격 불투명’, ‘이행강제금’이라는 삼중고를 겪게 됐다.
행정법원 “용산구 원상복구 명령은 정당”…소송 기각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지난 12일 용산 근생 지분소유자 19명이 용산구를 상대로 낸 ‘시정지시처분 등 취소소송’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행정법원은 근생 지분 소유주 권모씨 등이 주거용으로 용도변경신고 명령을 내리지 않고 원상복구 명령을 내린데 대해 재량권 남용이라며 용산구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이유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용산구는 2008년 4월 근생 지분쪼개기에 대해 법에 따라 조치하라는 당시 구청장의 지시에 따라 청파동?서계동 일대 823건에 대해 원상복구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지키지 않는 소유자들에 대해 이행강제금 고지서를 발부했었다. 구는 2008년 1차로 이런 불법행위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여 총 근생지분쪼개기 823명을 적발, 모두 10억7698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이후 1400여건을 추가로 적발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6개월 단위로 부과된 횟수는 총 4번으로 일부 소유주들은 1000만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 대해 소유자들은 현재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2008년 7월29일 이전 사실상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증빙할 수 있는 근생 등에 대해 주택소유자와 동일하게 받을 수 있다는 종전의 해석 때문이다. 즉, 현재 주거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근생 쪼갠 지분을 용산구의 명령대로 근생으로 원상복구를 하면 향후 정비사업이 진행됐을 때 분양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의 불투명한 분양권만 바라보고 이행강제금을 계속해서 물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계동의 한 중개업소는 “경기가 불확실해 지면서 해당 지역의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이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며 “쪼갠 지분 소유자들은 원상복구명령 불이행에 따른 이행강제금을 계속해서 내는 것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용산구는 이에 대해 당연한 결정이 내려졌다는 반응이다. 용산구 건축과 관계자는 “용산구는 분양자격과 무관하게 근생으로 사용하겠다는 허가와는 다르게 주거용으로 지어 분양한 불법행위에 대해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다”며 “이행강제금 고지서를 발부한 지역을 실사한 결과 대부분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세입자로 구성돼 있거나 빈집이어서 이 지역을 사들인 소유자들은 투기세력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용산구는 또 소유자들의 바램대로 용도변경신고를 해주고 싶어도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행강제금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부과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근생은 주차장을 134㎡ 당 1대만 확보하면 허가가 나는 반면 주거용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1세대당 1대, 적어도 0.8세대당 1대는 확보해야 한다. 이 지역의 경우 근생 기준에 맞춰져 있어 용도변경신고 명령은 도저히 내릴 수 없고 원상복구 명령만 가능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용산구는 이번 소송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만일 소유자들이 승소한다 해도 소의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이 받아들여져 용산구가 용도변경신고 명령을 내리고 소유주들이 용도변경신고를 했을 때 기준에 맞지 않아 용산구 입장에서는 용도변경신고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용산구가 용도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시 원상복구명령을 내리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밖에 없는데 소송 진행을 왜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전문가들 “원상복구 하지 않아도 분양대상 가능성 거의 없어”
전문가들도 이들이 원상복구를 하지 않는다 해도 분양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많지 않아 소송을 왜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즉 이들이 이행강제금도 납부하고 분양권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조례의 경과조치가 무허가 건물이 아닌 근생 지분쪼개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 도시정비조례 부칙 ‘사실상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축물에 관한 경과조치’에는 2008년 7월 30일 조례 개정 전 사실상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축물로서 조례 시행 전 도시정비법에 법 제4조제1항에 따른 정비계획을 주민에게 공람한 지역의 분양신청자와 이 외 지역에서 법 제4조제3항에 의한 정비구역지정 고시일부터 법 제46조제1항에 의한 분양신청기간이 만료되는 날까지 세대원 전원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 아니한 분양신청자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고 규정돼 있어 이를 근거로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용산 지역의 건축업자들은 이 부칙을 근거로 이들 소유주가 분양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지만 서울시 도시정비조례 제27조제1항에 따르면 분양대상자는 주택소유자와 ‘기존무허가건축물로서 사실상 주거용건축물 소유자’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근생을 사실상 주거용으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기존무허가’(1981년 12월 31일 현재 무허가건축물대장에 등재된 것)에 해당되지 않으면 분양대상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한, “무허가 건축물의 경우만 사실상 주거용으로 사용했을 때 분양대상자가 될 것으로 분석할 경우 무허가 건축물이 아닌 불법 근생 지분쪼개기 소유자가 분양대상자가 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 이번 소송의 실익에 대해 의문점이 들 수 밖에 없다”며“근생지분 소유자들이 수임료만 날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