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노래 "님 그리워"가 싫은 까닭
후박/전원일
내가 나훈아 노래"님 그리워"라는 노래가 싫은 까닭은 참으로 특별한 곳에서 시작 되었다.
내가 스무살 되던 해였다. 고향 우리집 이웃에 김씨라는 오십대 중반되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술고래에다 매일같이 노름방에 앉아 있어서 별명이 '노름쟁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예나 지금이나 술많이 마시고 노름 좋아하는 사람중에 성실한 사람이 드물듯이 김씨 또한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김씨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 초에 면소재지는 물론 도회지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귀한 지프차가 있었고 풍금까지 집에 있을 정도로 문화생활이 앞섰음은 물론이고 전답도 엄청 많은 땅부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우리 마을에 살게 된것은 우리 마을 처녀와 결혼을 해서 처가 동네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김씨가 우리 마을에 살면서 허구 한 날 술을 마시고 노름방을 전전하다보니 가산을 탕진하는것은 시간 문제였고 아이를 줄사탕 처럼 여덟명을 낳았으니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던 부인은 남편에게 술과 노름을 하지말라고 닥달을 내기 일쑤여서 부부 싸움하는 날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부부 싸움이 잦아질 무렵에 나훈아 노래"님 그리워"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나는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 누구나가 그 노래를 즐겨 불렀다 .군대가는 청년을 환송할때도,봄에 회취할때도,잔칫집에서도 장고 소리에 맞춰 즐겨 부르던 노래가 나훈아의 "님 그리워"라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고음 옥타브로 노래를 시작해야 제 맛이 나는지라 하소연 하듯이 고함을 꽥 질러야 했다 그래서 목소리 음색이 미성(美聲)이나 저음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노래 맛이 제데로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목소리가 큰 사람이 선창을 해야 흥겨워져서 따라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아뭏튼, 우리 나이가 피가 펄펄 끓던 이십대였고 노래 가사가 님을 그리워하고 떠난 님을 애따게 찾는 영탄(詠嘆)조로 하소연하는 노래여서 특히 애인한테 버림 받은 처녀 총각들은 이 노래를 부를땐 눈물과 콧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농촌에서 서로 연인으로 지내던 처녀 혹은 총각이 도회지 공장에 취직을 한후 그곳에서 새로 생긴 애인으로 인해 고향의 처녀 혹은 총각에게 마음이 멀어지고 이별의 편지가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보니 그런 처녀 총각들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들녘에서 떠난 님을 그리워 하면서 돌아오라고 간곡한 심정으로 부르는 노래가 "님 그리워"였다 .가사를 대충 적어 보면 이렇다
"물어 물어 찾아 왔소 그님이 계시는 곳. 차가운 밤바람만 몰아치는데 그님은 간곳이 없네. 저 달 보고 물어 본다 님 계신곳을 .울며불며 찾아봐도 그님은 간곳이 없네"
그렇다 .울며불며 찾아봐도 그 님 한테는 소식도 없고 어디 사는지 소식 조차 주지 않으니 참으로 슬퍼지 않은가!
우리 마을에선 이 노래가 들불처럼 번져 논과 밭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처녀 총각들이 많았고 그런 사연이 없는 나도 덩달아서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자정을 넘는 시각에 밤마다 골목길에서 술 취한 목소리로 "물어 물어 찾아 왔소 그님...."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어서 동네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잠자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깨어날 정도였고 그 노래 소리를 들은 마을 개들이 처음에는 한두마리가 컹컹 소리를 내면서 짖어대다가 나중에는 수십마리가 짖어대니 마을은 아예 "개판"이 되었다 그런 개 짓는 소리는 밤마다 계속 되었다
"도대체 누가 저렇게 밤만 되면 '물어 물어 찾아왔소"카노?누구를 찾을 일이 있는가베?"
노래와는 담을 쌓을 정도로 음악엔 관심이 없었던 할아버지 조차 자주들은듯 노래 가사를 말하시면서 초저녁에 잠이 든후 자정녁에 일어나서 혼잣 말씀처럼 중얼 거리고 계셨다
"저가 소문 듣기로는 옆집 김씨아저씨라 카던데예.."
"저렇게 슬프게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니 무슨 곡절이 있나 보다. 야야 !!골목길에 한번 나가 봐라"
할아버지가 곰방대에 불을 당기면서 내게 말씀 하셨다
"할배예 저가 한번 갔다올끼예?"
"오냐.진짜로 김씨 목소리가 맞는지 한번 가봐라 아 목소리는 아닌것 같은데...참말로 희한하다 만다꼬 저렇게 깊은 밤에 저렇게 슬프게 노래를 부르노?"
"맞소 김씨 목소리네요. 뭐..."
옆에서 주무시던 할머니가 잠꼬대 처럼 거들었다
"그런기 아닐끼다 요즘 이웃 동네에 농약 먹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대부분 노름해서 재산 날리고 비관해서 그란다카더라 김씨도 많은 전답을 노름으로 팔아 묵었다카더마는 죽을라꼬 그라나?"
"죽는기 뭐 그리 쉬운긴줄아능교 그만 잠이나 자소. 너머 일에 너무 신경 써지말고요..."
"할망구야 그기 아이다. 밤마다 해필 슬픈 저 노래만 부르노 말이다.."
"김씨는 저 노래 말고는 아는 노래가 없다카데요..마 잡시더.."
할머니는 벼개를 돌리면서 말씀하신후 다시 잠에 들었고 할아버지는 나에게 한번 갔다 오라는 말씀을 다시해서 벌떡 일어난 나는 집을 빠져나와 노래 소리가 나는 골목으로 달려 갔다 .저 만치서 검은 그림자가 비틀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십여미터 앞에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노래 부르는 사람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노래는 "님그리워"노래를 리바이벌로 계속이어지면서 내 앞 가까이에 와선 노래 소리를 뚝 멈췄다
"누고?....(딸꾹)"
"녜...용담댁이집 원일입니더"
"니가 이 밤중에 여기서 뭐하노?"
"우리 할배가 골목길에 노래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오라캐서예...."
"ㅎㅎㅎㅎ...와 내 노래가 좋다카더나?"(딸꾹 딸꾹)...원일아 내가 노래 잘부르제?"
"예....노래는 참 잘하시는데예...그런 노래는 낮에 하시면 참 좋을낀데 꼭 자정 넘어서 노래하니까 마을사람들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잔다 아닙니꺼 개도 막 짖어샀고예..."
"뭐 내 때문에 잠을 못 잔다꼬?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노?...딸꾹 ..원일아! 그라지말고 니도'물어물어' 그 노래 한번 불러 보거라...(딸꾹)
김씨는 내 팔목을 꽉 붙잡고 노래를 불러라고 혀가 꼬부라진 말투로 말했다
"에이 저는 못 불러예..."
"임마..그 놀래 못 부른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 어데 있노?씰데없는 소리하지말고 불러보거래이..(딸꾹)"
김씨는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내 팔뚝을 잡고 놓아 주지를 않았다
"아저씨 그라지 말고예 날씨도 추운데 얼른 집에 가입시더 노래는 내일 낮에 불러 줄끼예.어서예 이러다가 감기들겟심더..."
"아이다.니 노래 안부르면 내 집으로 못간다 얼른 노래 불러라...(딸꾹)"
"저는 막 잠들다가 나왔는데 노래는 무슨 노랩니꺼....그냥 가입시더"
김씨는 한 동안 내 팔을 낚아채더니 제풀에 지쳐서 팔을 놓고 팔을 휘저으며 뒤뚱거리다가 넘어졌고 땅 바닥에 박혀 있는 돌에 얼굴을 찍혀 피가 줄줄 흘렀다 나는 김씨를 빨리 집으로 모셔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한후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풀린 몸을 추스리는데는 내 힘이 역부족이어서 한숨을 쉬면서 김씨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원일아 !그래도 노래 안부를끼가? 내 말을 안 듣겠다는 말이제 ?내 말을 무시하는기가 임마...(딸꾹)
"노래가 문제가 아니고예 얼굴에 피까지 나는데 빨리 집에가서 약이라도 발라야지예..."
"괜찮다 피나온다꼬 안죽는다..."
김씨와 실랑이를 하는 동안 밤은 자꾸 깊어갔고 기온도 한정없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퍼질러 앉아 있는 김씨를 두고 집으로 갈수도 없어서 안절부절하고 있다가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옆에 있던 볏짚단을 들고 와서 김씨 주위에 모아준후 김씨 집을 향해 급히 달려 갔다
"아지매 계십니꺼?"
싸릿문을 열고 몇번이고 고함을 질러대자 김씨 부인이 누운 자리에서 문고리를 잡고 잠이 들깬 목소리로 말했다
"누고? 이 시간에 남의 집에 와서 만다꼬 찾노?"
"다름이아니고예 이 집 아저씨가 술이 취해서 골목길에 누워서 잘라 캅니더 혼자서는 도저히 못 모셔 오겠꼬예 누구라도 함께가서 부축을 해줘야 합니더 애들 다 잡니꺼?"
"내싸 모르겠다 그 인간 얼어서 디지구로 그냥 놔 두삐라...."
김씨 부인은 신경질 섞힌 목소리로 말을 한후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날 따라 왠 바람이 그렇게 세차던지 맨발로 나간 발끝이 얼어 붙은 느낌이 들어 팔을 끼고 뜀박질을 하며 추위를 이기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쩐담.그렇다고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거나 아버지를 깨울수도 없고 그냥두면 얼어 죽겠다는 생각도 들어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어떠한 일이 있어도 혼자서 김씨를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김씨가 누워 있었던 곳으로 달려 갔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김씨가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하면서 짚단더미 주위를 샅샅히 살피기도하고 근처에 있는 헛간을 살펴보기도하면서 김씨를 찾느라고 동분서주했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참 희한한 일이 다있네......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 문득 점방집 생각이 떠 올랐다 .
점방에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에서 온 노름꾼들이 득실된다는 말이 떠올라서 혹시나 싶어서 점방을 향해 달려 갔다 점방은 소문데로 밤2시가 훨씬 넘은 시각인데도 불빛이 노랗게 창호지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발뒷꿈치 들고 까치걸음으로 조심조심 방문 가까이도 다가가서 창호지에 난 작은 문 구멍으로 방안을 드러다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김씨가 화투판에 앉아서 술잔을 기우리며 화투패를 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기가차기도하고 화까지 나서 어떻게하면 김씨를 골탕 먹일까하는 생각을 했다 성질 같으면 신발에 오줌을 갈겨 놓고 싶었지만 노름하는 사람이 열명이 넘는지라 어느 신발이 김씨 신발인지 모르니 애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수 없다고 생각이 들어 궁리를 하다가 결국 노름꾼들 신발 모두를 이십미터 논바닥으로 이리저리 던져 놓고 집으로 돌아 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감기 몸살을 앓았고 심한 오환과 함께 일주일 넘게 드러눕고 말았다 그러나 내가 심한 감기 몸살로 드러 누워 있는 밤에도 만취해서 부르는 김씨의"님 그리워"노래는 거의 매일 같이 이어졌다
그후,병석에서 일어난 나는 내가 즐겨 불렀던 노래 중의 하나였던 "님 그리워"라는 노래는 나의 레퍼터리에서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말았다.지금까지도 그 노래와는 별로 친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