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 초등학생들과 읽는 책으로 알맞지 않다.
군포토론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고 함께 토론 공부를 하기로 했다. 우리 모임 한 회원이 있는 학교에서 5학년 학생들과 이 책으로 ‘슬로리딩*’을 하고 있다고 해서였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이 책을 읽고 모임 회원 학교 사례도 듣고, 실습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읽게 되었으며, 읽으면서 든 생각을 글로 썼다.
이 책이 많은 초등학교 교실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2014년 ebs 다큐프라임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이 3부작으로 방송되면서부터이다. 이 방송에서는 용인 oo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슬로리딩으로 이 책을 읽고 다양한 수업을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성과로 이어지는 인터뷰 영향인지 많은 초등학교에서 이 책으로 학생들과 책 읽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책은 글쓴이가 겪은 일을 담은 성장 소설이다. 비슷한 나이 때 일이라 어린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우리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책 쉽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금세 들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은 초등학생들과 읽는 책으로는 알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까닭은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책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책은 박완서 글쓴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40년대에서 50년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사회상, 풍속, 인심’(이 책 머리글 인용)을 담았다. 그 시대에 있었던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살았는 나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책을 읽고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분들은 설명 없이 혼자서 읽고 이해하기는 힘들다. 시대상과 시골 모습과 그 속에서의 삶, 어머니가 하는 일은 지금 시대를 사는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물론 이 시대의 살았던 책은 모두 어린이에게 맞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만년샤쓰>(방정환, 길벗어린이), <꿩>(이오덕, 효리원), <엄마 마중>(이태준, 보림) 같은 작품은 비슷한 환경이지만, 어린이들이 알아듣기에 쉽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 세 책은 어린이가 읽기 바라며 쓴 책이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말이 어린이들에게는 너무 어렵다. ebs 영상에서는 학생들이 사전을 찾으며 본다고 하는데, 그 말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이 책에는 요즘 쓰지 않는 말이거나, 사전에 드러나지 않는 말도 많다. 사전으로 찾아도 그 뜻을 쉽게 알기 어려운 말이 많다. 이 책 11쪽과 12쪽에 드러난 말을 찾으면, 여북, 소맷부리, 고약, 더깨, 둥덩산, 동정(11쪽), 어깨허리, 무명, 풀, 귀물, 이십 리, 이십 호, 벽촌, 참빗, 금박댕기, 승복(12쪽) 따위가 나온다. 아울러 우리 말도 잘 살려 썼음에도 초등학생들이 알아듣기 힘든 한자(근지, 장중보옥, 선영, 훈도, 무지몽매, 팔자소관 따위)도 많다.
왜 이 책에는 어려운 말이 많을까? 글쓴이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자전거 도둑, 1999)를 썼는데, 그 책에는 어린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려운 말이나, 알아듣기 어려운 한자가 거의 없다. 누가 읽을 것인가에 따라 같은 작가가 쓴 책이라도 이렇게 다르다. 글쓴이 또한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책 106쪽에서 엄마가 이야기 들려주는 장면 (‘내 나이엔 어려운 이야기까지 엄마는 내 수준에 맞게 꾸며서 이야기하는’-이 책 106쪽)에서 이런 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책은 어린이가 읽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맞지 않는 책이다.
[보기 작품]
① 늘 코를 흘리고 다녔다. 콧물이 나니라 누렇고 차진 코여서 훌쩍거려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만 아니라 그때 아이들은 다들 그랬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싸잡아서 코흘리개라고 부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여북해야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아이들에 대해 제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감기가 들지 않고는 절대로 코를 안 흘린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딴 아이도 안 흘렸다. 그래서 학교나 유치원 갈 때 가슴에 손수건 매다는 습관까지 없어져 버렸다. 나도 이제는 요즘 아이들이 코를 안흘리는 걸 이상해하는 대신 그땐 왜 그렇게 코를 흘렸는지를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더 먹었을까>
② 수남이는 청계천 세운상가 뒷길의 전기용품 도매상의 꼬마 점원이다.
수남이란 어엿한 이름이 있는데도 꼬마로 통한다. 열여섯 살이라지만 볼은 아직 어린아이처럼 토실하니 붉고, 눈 속이 깨끗하다. 숙성한 건 목소리뿐이다. 제법 굵고 부드러운 저음이다. 그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면 점잖고 떨떠름한 늙은이 목소리로 들린다.
“이 가게에서 변두리 전기 상회나 전공들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가 잦다. 수남이가 받으면,
“주인 영감님이십니까?”
하고 깍듯이 존대를 해 온다.
“아, 아닙니다. 꼼바니다.”
<자전거 도둑>
③ “찾았다! 찾았다!”
한밤중이었습니다. 어디서인지 누구인지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났습니다.
곤히 자고 있던 새달이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깼습니다.
“누구야?”
새달이는 캄캄한 방 안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무도 안 보이고, 곁에 누워 있는 동생 마들이는 그냥 색색 자고 있습니다.
“꿈을 꿨나?”
새달이는 다시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았습니다.
잠을 자려고 하는데 또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가 그랬다!”
마치 바깥 지붕 위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방 안까지 저렁저렁 울렸습니다.
<랑랑별 때때롱>(권정생, 보리)
④ “야, 좀 나가 줄래? 우리 뭐 중요한 거 해야 돼서.”
반장 패거리가 우르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우리보고 나가라고 했다. 중요한 일이라니 어쩔 수 있나. 조조와 내가 눈치껏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데, 기무라가 갑자기 여태 손가락 쑤셔 넣어 파낸 코딱지 쿵치를 반장 쪽으로 탁 튕겼다.
“고렇게는 못 하겠는데? 우리도 지금 무지 중요한 말씀 중이라서.”
무지 중요한 말씀, 물론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우리는 청소 당번들이 기껏 줄 맞춰 놓은 책상을 멋대로 흩뜨리고 앉아 조조가 늘어놓는 황당한 얘기를 듣고 있었으니까. 시장 근처에 몇 달째 가림막 쳐 놓고 공사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FBI 한국 지부가 들어올 거라나 뭐라나.
<기호 3번 안석뽕>(진형민, 창비)
둘째, 글자 크기가 너무 작고 많아 부담이 크다.
네 개의 작품을 보기로 들었다. ① 작품은 위의 작품이고, ② 작품은 위의 작품을 쓴 박완서의 동화이며, ③ 작품은 어린이를 위한 글로 많이 알려진 권정생이 쓴 장편동화이며, ④ 작품은 요즘 많은 어린이들이 보는 진형민 작가의 동화이다. 정리하면, ①은 소설이고, 나머지 네 작품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이다. 보기에서 가져와 옮긴 부분은 네 작품에서도 들어가는 첫 부분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왔다.
네 작품을 글자로만 단순 비교해도 그 차이가 크다. 먼저 글자 크기에서부터 다르다. ①은 글자 크기가 작고, 나머지 세 작품은 비슷하게 ①보다는 훨씬 크다. 두 번째는 글자 수를 따져본다. 한 줄 가득 글자가 있는 설명 부분에서 한 줄에 들어가는 글자 수는 ①은 26자, ②는 20자, ③은 24자, ④는 23자 정도로 ①이 가장 많다. 세 번째는 한 쪽에 들어가는 글자 줄 수를 따진다. 모두 그림이 없는 쪽을 기준으로 할 때, ①은 24줄, ②는 17줄, ③은 18줄, ④는 20줄이다. 네 번째는 작품의 전체 쪽수를 따져보면, ①은 294쪽, ②는 200쪽, ③은 184쪽, ④는 152쪽이다. 아울러 ①을 제외한 나머지 셋(동화)은 그림(삽화)까지 있으니 그 차이는 크다 하겠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세 작품과 달리, 위의 같이 그 글자 수가 너무 길고 많다. 책을 읽는 학생들의 수준이 다 다름을 인정할 때, 이 정도 글밥을 읽어낼 수 있는 초등학생은 적다.
셋째, 문장과 문단이 너무 길다.
문장의 길이는 어린이 집중(호흡)에 영향을 준다. 우리가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으로 책을 나눌 때 쪽수나 글과 그림의 비율도 따지겠지만, 그것과 함께 따져보는 것이 문장과 문단의 길이다. 어린이들 호흡에 맞아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어릴수록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길이는 짧은 편이다. 흔히 호흡이 짧다고 한다. 그래서 유아나 저학년을 대상으로 쓴 책은 한 문장이 길이가 굉장히 짧은 편이다.
위의 작품에서 문장의 길이만 따져도 ①이 다른 작품의 문장보다 길다. 문장이 긴 까닭은, 복문이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다른 세 작품은 문장이 단문으로 짧다. 책을 읽는 이의 호흡의 길이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문장이 들어있는 문단의 길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한 문단에 들어있는 문장이 많을수록 읽는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해야한다. 문단에 들어있는 문장의 수를 따져본다. ①에서는 한 문단에 문장이 여덟이다. ②에서는 다섯, ③에서는 고작 둘, ④에서는 셋이다. ①과 같이 여러 문장이 들어 있는 긴 문단을 초등학생들이 읽거나 듣고서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위의 ①~④ 글에서 한 문단에 차지하는 문장의 수가 차이나는 까닭은, ②와 ③ 그리고 ④는 주고받는 말이 많은 반면, ①은 설명하는 문장이 많다. 어린이들이 읽을 때 주고받는 문장은 호흡도 빠르거니와 이해가 쉽다. 반면 ①과 같이 길게 설명하는 문장은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리며 생각해야 하기에 초등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지금까지 첫째, 책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고 둘째, 글자 크기가 너무 작고 많아 부담이 크며 셋째, 문장과 문단이 너무 길어 초등학생들이 보고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책이라는 근거를 들어, 이 책이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과 읽는 책으로 알맞지 않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에게 이 책으로 수업을 한다는 말에, 우리나라 원로 지도자 한 선생님은 “빨리 키우려고 식물 싹을 뽑아 올리는 격인데, 그러면 죽어요.” 하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렇다. 어린이들이 읽고서 이해할 수 있는 책,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남들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지도할 교사가 하나하나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슬로리딩-일본의 국어교사 하시모토 다케시(橋本武)가 교육에 슬로 리딩을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시모토 다케시는 1950년부터 나카 간스케의 《은수저》 한 권으로 중학교 3년 동안 국어 수업을 하는 독특한 교육 방식을 진행했다. 2010년 하시모토 다케시의 교육 방식이 소개된 《기적의 국어교실(奇跡の国語教室)》 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책 한 권을 오랫동안 생각하며 읽는 독서 방식인 슬로리딩(スロー・リーディング)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2012년 하시모토 다케시가 쓴 《슬로리딩》이 출간되기도 했다.(다음 백과)
* 참고) 이 글은 슬로리딩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우리 교실도 책 읽기가 빛깔이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 작품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나 또한 내 어릴적을 떠올리며 재미나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