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가 세워지게 된 결정적 계기, 위화도 회군. 당시 중국대륙의 정세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세계를 지배했던 원나라가 급속도로 쇠퇴하며 한족漢族의 수장으로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세력에게 북쪽의 몽골고원쪽으로 서서히 밀려납니다. 이때가 바로 원-명 교체기이죠.
어느 정도 원나라를 몰아내고 대륙에서 승기를 쥔 명의 주원장은 고려에게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통보합니다. 철령이북의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죠. 그 지역은 과거 쌍성총관부가 위치했던 곳으로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과거 쌍성총관부의 땅은 물론 공민왕때 새로 얻은 영토인 초산, 강계, 갑주, 길주 이남 지역도 빼앗기게됩니다. 여기서 한마디 하면 그 지역은 고려가 한번도 얻은 적이 없으나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기에 수복이라고 말합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고려 조정은 당연히 격분합니다. 비록 세계를 지배한 원나라에게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원에 대항한 모든 국가가 멸망 당하고 그 땅이 4한국 혹은 원나라의 땅이 되버린 것에 반하여 고려는 나라를 유지했으며, 그 이전에도 강력한 군사력과 부강한 경제력을 소유한 황제국이었기에 신흥 국가인 명나라의 고려를 전혀 존중하지 않은 요구에 고려 조정의 반응은 뻔한 것이죠.
이때, 당시 국가 최고 권력자인 최영의 주도하에 요동을 수복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고려의 왕도 이를 받아들이고, 5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아직 명나라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여 거의 빈땅으로 남은 요동으로 진격합니다. 여기서 최영은 총사령관으로
개경에 남아 지휘하고 조민수와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내죠. 고려는 1370년에 지용수와 이성계로 하여금 요양의 동녕부를 공격하게 한 일도 있었으므로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4대 불가론을 들어서 조민수와 병사들을 설득하여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리는데 이것이 위화도 회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4대 불가론은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으며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것은 부적당하고,
셋째,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서 왜구가 침범할 우려가 있으며,
넷째,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걸리 염려가 있다.
입니다. 저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닌 이성계 자신의 사대주의와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사람으로서 일일이 반박을 해보이겠습니다.
첫째 - 완전히 '나 사대주의자요.' 라고 광고를 해대고 있군요. 당당한 황제국으로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하던 고려의 군인이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군인이 되는데 아주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권력을 쥐기위해 이런 생각를 숨기고 있다가 힘이 생기자 당당히 주장한거죠. '나 사대주의자다! 불만있냐? 병력은 나한테 있다고!!!'라는 식으로 말이죠.
둘째~넷째 - 이건 상황이 않좋으니 출병하지 말자라는 거군요. 그런데 최영이 이런 생각을 못하는 멍청한 위인이었을리는 없습니다. 당시 최영은 고려최고의 명장이자 최고신하인 문하시중으로 신하들 중 가장 큰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위를 최영은 부정부패없이 자신의 능력과 애국심으로 이루어냅니다. 아주 훌륭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죠. 거기다 군인출신인 만큼 군사적 지식면에서 젋은 장수 이성계보다 많으면 많았지 부족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이성계가 충실한 고려의 장군이었다면 상황이 불리한 점을 들어 최영에게 회군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그냥 속전속결을 목적으로 조금 무리하게라도 진격을 햇겠죠. 하지만 이성계는 그러지않고 회군 후 최영과 5만대 5백으로 전투아닌 전투를 벌여 승리합니다. 그리고 최영을 죽이고 우왕이 고려 왕족이 아니라 신돈의 피가 섞인 사람이라며 폐하고 창왕을 등극시킨 후 폐하여 공양왕을 등극시켰다가 폐한 후에 스스로 조선의 왕이됩니다.
결국 이성계의 진심은 첫번째 이고 둘째~넷째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명분을 얻기위한 발버둥에 불과합니다. 거기다가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고려왕족들을 섬에 보내준다며 배에 실은 후에 침몰시켜 몰살시킨 점은 우리민족의 국가들이 다른 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유민와 지배층을 받아들여 국가의 일원으로 삼은 것을 보면 이성계의 권력찬탈이 스스로도 그리 당당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결론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자신의 권력욕과 사대주의 사상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지적해 주신것 모두 옳으신 말씀입니다. 만약 이성계가 뒤에 처형될 것을 감수하고 해도 나라를 위한 생각으로 군사를 돌렸다면 층신으로 치켜세울 수도 있겠지만 군사를 돌린 후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위화도 회군을 나라를 위한 생각보다 이성계의 권력욕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했고 제가 이성계의 사대주의라고 한 것은 조금 무리한 추측이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기에 써봤습니다. 이의제기 감사합니다.
출처 : [직접 서술] 참고 : 김용만,김준수의 <지도로 보는 한국사>(막새) 김양순, 홍건국, 허문선, 함윤미, 김영애의 <조선왕조 500년>(한은미디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