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간화선 수행체계 개관
1. 간화선의 탄생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고 기존에 있던 유교儒敎나 도교道敎의 언어로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쳐 중국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이를 격의불교格義佛敎라고 하는데, 격의불교 또는 격의格義는 불교의 중국 전래 초기인 위진시대(魏晋時代: 220-420)에 나타났던 불교 교리 이해 방법 또는 불교 연구 방법이다.) 그리고 수 백 년의 습선기習禪期를 거치면서 중국의 실용주의와 버무려지며 중국 토양에 맞게 새롭게 태어난 종파가 “선종禪宗”이다.
선종은 보리달마菩提達磨를 초조初祖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육조혜능(六朝慧能, 638~713) 이후 구체화되었는데, 그는 모든 사람이 본래 지닌 자성을 직시하여 바로 깨치는 돈오頓悟를 천명闡明하였다. 이어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과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을 비롯한 수많은 선승들을 배출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선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며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다양하게 분화하며 꽃을 피운다.
선종 5가五家의 구분은 9세기 중반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당시 선종의 특색에 따라 나눈 것인데, 법안종法眼宗 천태덕소天台德韶의 제자 영안도원永安道原이『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에 채용하면서 선종계보의 정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5가는 나름의 색체를 띄며 발전하다가 송대를 지나면서 후계자를 내지 못해 하나 둘 사라지게 되는데, 임제, 운문, 조동종만이 남았다가 현재는 임제와 조동 두 종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장에서는 공안의 탄생과 의의 그리고 간화선과 묵조선의 차이 등을 살펴본다.
1) 공안선의 시대
임제종과 조동종이 그 법맥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전하는 데는 이들의 수행체계가 타 종파와는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 임제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문자선文字禪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공안수행”이라는 새로운 수행방법을 개발하였다는 데 있다. 공안수행은 처음 운문종에서 개발되어 임제종에서 수용 발전하였는데, 조사들의 선문답인 고칙古則의 “염고拈古”와 “송고頌古”라는 두 방식으로부터 연유한다.
조사들이 공안집에서 어떤 어구를 골라 제자들로 하여금 반조하도록 한 것을 염고라고 한다. 염고를 한 후에는 스승과 제자가 고칙古則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주석과 함께 총괄했는데, 그것을 송고라고 한다. 이런 염고와 송고의 과정은 스승이 과거 조사의 말씀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그 다음 그것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기리며, 동시에 이를 통해 다시 제자에게 깨달음을 일깨우도록 자극하는 방법이다. (명법,『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pp. 98~103.)
깨달음을 완성한 조사들이 중생들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성품을 바로 드러내 보여주는 선문답은 소위 조사들의 깨달음의 단계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연고와 송고를 통해 후학들을 깨달음의 장으로 유도하는 기틀이 되는데, 이 과정 중에 자연스레 탄생하게 된 것이 “공안선公案禪”이다. 그러므로 공안선은 선사의 어록에 있는 구절이나 이야기를 세심하게 살피게 하여 제자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면서, 그 깨달음의 경험을 확장하고 촉진시키는 도구로 개발된 것이다. 다시 말해 염고와 송고의 과정을 통해 공안을 참구하게 하고 선문답을 통해 이를 점검하게 되는데, 지사문의指事問義나 기봉방할機鋒棒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법의 안목을 체득케 하는 구조인 것이다.
공안(公案)이란, 이론을 이론으로서 하지 않고 사물 위에서 다루는 것을 말한다. 즉 육조의 정신이 전해져 내려와서 그것이 공안이 된 것이다. 일사일사(一事一事) 위에 이(理)를 밝혀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어떤 사물을 거치지 않고는 아무래도 사물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니 사물을 거친다는 그것이 바로 공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 242.)
이 선법은 오랜 기간 습선기를 지나면서 탄탄해진 이론을 바탕으로 실생활에서의 대화(선문답)와 실천이 공안으로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선종은 이론과 실재가 조화를 이루게 되었고, 분양선소(汾陽善昭, 947~1024)이후 임제종 양기파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의 문하인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이르기 까지 널리 유포되며 북송 말 남송대의 불교계를 석권하였다. 이 시대를 ‘공안선의 시대’라고 칭한다.
한편, 공안선이 인기를 얻으면서 깨달음을 완성한 역대 조사들의 선문답은 어록으로 기록되고 전승되었는데, 다양한 경우의 수에 맞추어 다양한 공안들이 활용되면서 이들은 공안집이라는 형태로 집대성되기 시작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이 뽑아 엮은『송고백칙頌古百則』과 굉지정각의 또 하나의『송고백칙頌古百則』이다. 설두 중현의『송고백칙』은 원오극근에 의해『벽암록碧巖錄』으로 편찬되었고, 굉지정각의『송고백칙』은 만송행수萬松行秀에 의해『종용록從容錄』으로 완성되었다. 선종의 ‘기연어구機緣語句’와 ‘문답상량問答商量’이 정형화된 틀로 묶인 두 권의 선종서는 이후 수행의 지침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공안집이 유행하고 공안들이 보편화되면서 선종의 특징인 ‘불립문자不立文字’ ‘언하변오言下便悟’의 전통이 점차 퇴색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공안집의 공안들을 그대로 외워서 말하는 앵무새 같은 부류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대혜는 이런 폐단을 막고 제자들을 적절하게 지도하기 위하여 우선 공안집인『벽암록碧巖錄』을 불태워 버리고, 현성 공안에서 의심되어진 부분만을 뽑아 참구토록 하는 수행법을 창안하게 된다. 이것이 간화의 선인 간화선인데, 간화선은 공안이나 공안에서 가려 뽑은 간략한 형태의 “화두話頭”들을 깊이 참구하게 하여 좌선의 깊이를 더하고 화두 본래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게 하는 수행법이다. 수행자로 하여금 화두라는 장치를 마련하여 의단疑團을 일으키게 하고, 그 의단을 좌선과 함께 화두참구를 하게 하므로 써 해결하게 한 수행법이다.
공안 수행의 기본적인 기법은 어떤 이야기나 구절 혹은 단어를 명상의 자료로 사용하여 그것을 체험 안에서 활성화시켜 본래의 깨달음의 상태로 대전환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기법은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시대에 가장 두드러졌다. 대혜는 언어나 문자를 믿지 않는 선사로『벽암록』을 보고 그 책을 바로 불살라 버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도 나중에는 활구活句를 기폭제로 사용하여 돈오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자신이 공안집을 편집하여 후학들에게 수행에 사용하도록 독려하였다. 대혜는 사람들이 돈오체험을 할 수 있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는 수행방법을 개발하려고 노력하였다. (제임스 랍슨 James Robson, Harvard University,「大死大悟의 선: 종교유형으로서의 간화선에 대한 고찰 Born-Again Zen Again: Reflections on Kanhua Chan as a Religious Style」(2010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Day 1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p. 360.)
대혜는 고칙 공안을 외우거나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폐단을 막기 위해『벽암록』을 불살라 버리기도 하였지만, 공안선이 돈오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새로이 공안집을 편집 후학들을 지도하는 한편 새로이 간화선법을 개발하였던 것이다.^ 이 수행법은 후에 장단점이 보완되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수행체계로 발전한다.
이 수행체계는 후에 후학지도를 위한 전문적인 교과서로도 집대성되는데, 그것이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가 <무>자 화두를 필두로 정리한 선종 최후의 공안집,『무문관無門關(1229)』이다.『무문관』에 이르러 <무>자 공안은 간화선 수행에 있어 부동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도가에서도 수행법의 하나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간화선법은 임제종의 황룡파와 양기파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임제종을 송대 가장 유력한 선종 종파로 우뚝 서게 하였다.
2) 불타의 사색과 선문답
석가는 스승을 찾아다니며 기존에 존재하던 다양한 수행들을 통달하였지만 그가 가졌던 의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자신이 가졌던 의문이 풀리지 않자 그는 네란자라(Neranjara, 니련선하尼連禪河) 강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색思索”에 들어간다. 즉 의문에 대해 홀로 명상에 들어 깊이 헤아려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랜 사색 끝에 연기緣起의 법칙을 발견한다. 불교는 석가의 이 발견을 모태로 하여 시작한 것으로 한 개인의 특별한 체험이 하나의 종교로 발전한 것이다.
선이란 구체성과 창조성을 갖는 것이며 개념적인 것은 아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다, 선종 사람들이 작용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은 이 때문이며, 그것은 이론도 아니고 개념적이고 막역한 것이 아니고 오직 그 작용에 구체성을 띄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p. 104~105.)
한 개인의 이런 체험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그때까지 없었던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한 새로운 해결, 소위 “깨달음의 체험”인 것이다. 석가는 그가 가졌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해답을 사색을 통해 얻었던 것이다. 석가가 자신이 가졌던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구했다면, 조사들의 선문답은 스승과 제자간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의문에 대해 묻고 답하며 답을 구해가는 문답을 통한 체험인 것이다. 석가는 사색을 통해 답을 얻었다면 선문답의 수행자들은 선수행과 조사들과의 문답에서 답을 얻는 것이다.
둘 다 소위 깨달음이라고 하는 체험의 과정, “체험기體驗記”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차이라면 석가는 스스로 그 답을 구했고, 선문답은 체험자인 조사들과 수행자 사이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추구해 간다는 것이다. 물론 선을 통해 혼자 깨달음의 경기에 다다를 수도 있다. 어쨌든 선, 선문답 또는 석가의 명상 혹은 사색을 통한 해결과정은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석가의 사색을 통한 깨달음이 새로운 형태로 구체화 된 것이 참구하는 과정을 거친 선수행과 묻고 답하는 형식의 선문답인 것이다. 석가를 깨달음에 이르게 한 과정이 선종에서 선禪이나 공안 참구로 되풀이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대혜는 <정법안장(正法眼藏)> 3권을 편집하여 661칙의 공안에 착어(着語)와 코멘트를 첨가하여 제자들에게 정법의 안목을 구족하게 하기 위하여 공안집을 편찬하고 있다. 사실 대혜의 <정법안장>은 다양한 종류의 공안집이며 사례와 판례집이다.(정성본,「간화선의 본질과 수행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