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에게 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려서 잃어버린 그 어머님이 보고 싶사외다. 그리고 그 품에 안기어 저의
기운이 다 할 때까지 한껏 울어보고 싶사외다....... -미완성 장편소설 '생의 반려' 중에서
김유정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읜 슬픔은 그의 자전적 소설 '생의 반려' 속에 잘 나타난다. 매일매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던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던 해에 어머니를 닮은 한 여자를 만난다. 그가 바로 김유정의 첫사랑
박녹주이다. 그때부터 김유정은 박녹주에게 2년여 동안 광적인 구애를 했으나, 그의 애절한 마음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대의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이었던 박녹주가 네 살 연하의 김유정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었다.
......어디 사람이 동이 낫다구 거리에서 한번 흘낏 스쳐본, 그나마 잘 낫으면 이어니와, 쭈그렁 밤송이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렷다. 그럿두 서루 눈이 맞아서 달떳다면야 누가 뭐래랴 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너겨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달동안 썼다....... -소설 '두꺼비' 중에서
그래도 김유정은 끊임없이 "벌거숭이 알몸으로 가시밭에 둥그러저 그님 한 번 보고지고"를 외쳤다. 우리는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속에 실렸던 소설 '두꺼비'를 통해 김유정
과 박녹주의 그런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박녹주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김유정은 실의에 빠지게 되고, 고향인 춘천 실레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이산 저산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히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고향마을에서
김유정은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 고향에서도 김유정은 나이 많은 들병이들과 같이 어울리며, 마을 사람들과 정을 나눈다.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 '봄봄', '솥',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등 12편의 작품이 고향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1906.2.15~1979.5.26 판소리 명창.
본명 명이(命伊). 경북 선산(善山)출생.
12세 때 박기홍(朴基洪)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고 뒤에 송만갑(宋萬甲), 정정렬(丁貞烈), 유성준(劉成俊), 김정문(金正文) 등에게 배웠다.
1937년 창극좌(唱劇座)에 입단하였으며, 1945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여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4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흥부가>의 예능보유자로 변경, 지정되었다.
시인. 박용철의 동생이다.
잡지「여성」(1936년 5월)에 ‘그 분들의 결혼플랜,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라는 공동제목으로 김유정과 나란히 글이 실린 것이
인연이 되어 김유정으로부터 30여 통의 편지를 받았으나 답장은 일절 없었다.
차후 김유정과도 알고 지내던 평론가 김환태와 결혼하여 김유정을 또 한 번 좌절케 했다.
[권창순]김유정 소설 읽고 속편쓰기
김유정 소설 [동백꽃] 속편
금병산에 봄마다 동백꽃 피니
글 : 긴고랑 권창순
실레마을, 금병산에 봄마다 동백꽃 피니, 알싸하고 향긋하다!
나는 나뭇지게를 지게막대기로 받쳐놓고 그놈 노란 동백꽃가지를 하나 뚝 꺾어들고 바윗돌에 앉아 코에 갖다 대보았다. 코를 찌르는 알싸한 향기, 생강냄새다.
이때다. 등 뒤서 누가 “얘” 하고 부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또 점순이다. 나물바구니를 들고 내 앞으로 오더니 무언가를 꺼내어 “자, 이거.” 하면서 내 턱밑으로 쑥 내민다. 더운 김이 홱 끼치는 봄감자다.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점순이를 한참이나 바라다보았다. 지난해 이맘때쯤 그 감자쪼간이 생각나서다.
“얘, 어서 받지 않구서.” 하다가
그래도 내가 벙벙히 쳐다만 보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니?” 하고는 점순이가 언성을 높인다. 차차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지더니,
“이 바보 녀석! 그래, 이쁜이가 줬으면 얼른 받았겠지! 이 배냇병신!” 하고는 말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봄감자와 나물바구니까지 내 앞에다 내팽개치고는 힝하게 달아나 버리는 게 아닌가. 지난해 봄 이후로 저와 난 잘 지내왔는데, 다시 봄이 되니깐 이 계집애가 또 심청이 나나보다.
나는 점순이가 달아난 뒤 땅바닥에 떨어진 봄감자를 주웠다. 그리고 이 봄감자 중 하나를 까먹으면서 곰곰히 생각하다 아차! 싶었다. 그걸 점순이가 안 모양이다.
들병이 나간다던 똘똘이 엄마가 절뚝절뚝 우리 집에 몇 번 드나들며 우리 어머니와 속닥거리곤 하더니 하루는 어머니가 날 불러놓고
“이제 너도 열여덟이니, 장가를 들어야지.” 하셨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시고는
“점순이와 그렇게 몰래 붙어 다니다간 큰일 난다.”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점순이와 몰래 만나고 다니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매번 날 불러낸 건 점순이다.
이쁜이는 김도삿댁 씨종의 딸로 나보다 한 살 아래지만, 이름처럼 얼굴도 예쁜 계집애다. 도련님과 눈이 맞은 후 서울로 공부 간 도련님을 잊지 못해, 도련님 소식을 가지고 올 우체부를 기다리느라 산비알에서 서성이곤 한다. 그런 이쁜이를 솥 사러 읍내 장에 갔다 오던 덕이 아버지와 같이 본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쁜이 주위엔 늘 석숭이가 꺼불꺼불 돌고 있는데, 어머니는 무슨 말을 듣고 내게 이쁜이 얘기를 하는지 모른다.
“이쁜이 어머닌 석숭이 보다 일 잘하고 착실한 네가 낫다고 하더란다.” 하시고
“계집치고 누구나 그런 맘 먹을 수도 있으니 뭐그리 흉되겠니.” 하셨다.
“너만 좋다면 우린 그만이다.”
어머니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점순이가 몰래 불러도 나가지 않은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이쁜이와 혼인 이야기가 오간다는 소문이 동리에 퍼질까봐 전전긍긍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점순이의 그 못된 심청 때문에 안절부절 못했는데,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나는 나뭇지게를 지고 부리나케 내려오다 점순네를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울안은 텅 비어 조용했고, 뒷밭엔 점순네 수탉이 한가로이 놀고 있을 뿐이다.
다음날에도 나는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가는데, 그런 나를 보고 점순이가 저희 집 울안에서 코를 쥐고는 깔깔댄다.
‘저 계집애가 똥이라도 밟았나.’ 나는 참나무지게막대기를 점순이에게 던지는 시늉을 몇 번이나 하다가는 시들해져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산기슭에 널려있는 굵은 바윗돌 틈엔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왠지 맘이 뒤숭숭하다. 나는 찌르르 쿵, 꽁지깃으로 방아질하며 날아가는 새를 한참이나 바라다보았다. 그러다가는 지게막대기로 봄 흙을 쿡쿡 찔러보았다.
내가 지게막대기로 장단을 맞추며 굵은 바윗돌 옆을 조금 지났을 때다. 난 참말로 지난 봄처럼 알싸한 동백꽃 향기에 땅이 꺼지는 줄로만 알았다.
오른쪽 발이 허방에 빠지면서 나는 지게를 진채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돌멩이에 찧은 코에선 피가 흘러 내렸다. 그러나 그 보다는 오른쪽 종아리까지 범벅이 된 똥 냄새가 정말 역겨웠다. 발목은 삐었는지 금방 부어올라 쓰리고 아팠다.
“점순이, 이 망할 년!”
나는 앉은 채로 지게막대기를 들어 땅을 한 번 모질게 후려쳤다. 그리고는 엉금엉금 기어가 똥이 묻은 발과 바짓가랭이와 종아리를 풀과 마른 나뭇잎에 쓰윽 문댔다. 발목이 아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더러운 계집!”
달려가서 고년의 등줄기를 지게막대기로 호되게 패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옴짝달싹 못하겠다. 한참이나 발목을 주무르다 나무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지게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지게막대기를 짚고 겨우 산을 내려왔다.
나의 이 모양을 기다렸다는 듯이 점순이가 저희 집 사립짝 앞까지 나와서 또 깔깔댄다.
“얘 너 나무하다 넘어졌니? 많이 아프니?” 하다가
“예까지 구린내가 나는 걸 보니 똥 밟은 모양이구나.” 그래도 내가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니까
“에이 더럽다! 더러워!” 하며 땅에 침을 탁 뱉는다. 그리고는
“똥냄새 나게 왜 남의 집 앞으로 지나가니. 이 배냇병신아!” 하며 어린애 주먹만한 돌멩이를 던진다.
내가 핑 도는 눈물을 깨물며 정녕 저 여우같은 점순이년을 이 지게막대기로 한 대 후려치고 말리라 하고 돌아서서 몇 걸음 내딛다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자, 점순이가 여우처럼 폴짝이며 깔깔댄다.
“망할 년 어디 두고 보자!”
이럴 땐 이를 악물고라도 못 들은 척하며 그냥 집으로 가는 게 상책이다 싶어 땅만 보고 가는데
“배냇병신이 똥 밟았대요.” 하면서 이런 저런 욕을 등 뒤에다 대고 또 퍼붓는다.
내가 바깥출입을 못하고 방에 누워있을 때다.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러 가고 없는 틈을 타서 점순이가 우리 그 수탉을 또 꺼내 가는지 닭이 홰를 친다.
난 엉금엉금 기어 지게문을 홱 열었으나 이미 점순이는 보이지 않고 닭장문만 열려있다. 이 년이 봄이 되면 왜 날 못 잡아먹어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게문을 다시 닫고는 자리에 벌렁 누워버렸다.
우리 수탉을 꺼내가지고 저희 집으로 온 점순이는 장독께로 갔다. 그리고 지난봄에 내가 한 것처럼 수탉부리에 궐련 물부리를 물리고 미리 퍼 놓은 고추장물을 조금씩 들어부었다. 처음엔 잘 받아넘겼으나 한 종지를 넘기고는 킥킥 재채기를 하며 당최 먹질 않는다.
그러자 이년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한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억지로 고추장물을 퍼 넣었다.
“이 놈아 죽어라. 죽어.” 하더니
“이놈아 어서 먹어라. 어서 먹고 용 좀 써 봐라.” 그리고
“뭐, 이쁜이가 뭐가 예쁘다고. 이 놈 고추장물이나 실컷 먹고 누가 예쁜지 알아맞춰 보거라.” 하면서 고추장물이 그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자꾸 흘러나와도 계속 퍼 넣는 것이다.
“에이 더럽다!”
점순이가 우리 봉당에다 축 늘어진 수탉을 내던지고 갔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 지게문을 박차고 봉당으로 뛰쳐나왔으나
“아이쿠 다리야.” 그 발목이 또 겹질리며 푹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 후 기어가 수탉을 홰에 집어넣고 방으로 돌아왔으나 너무 분해 바람벽을 두어 번이나 주먹으로 치고 말았다.
발목에 붓기가 좀 빠졌으나 거름을 내거나 나무를 하러가진 못하므로 심심하여 새끼를 꼬았다. 그런데 지게문이 스스로 열렸다.
“웬 바람이담.” 난 귀찮아서 긴 꼬챙이로 지게문의 문고리를 걸어 잡아당겼다.
그런데 얼마 후 지게문이 다시 열렸다. 그때서야 나는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어보았다. 울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지게문을 닫고 새끼를 꼬려고 앉았다.
그때 지게문이 또다시 열렸다. 혹 점순이 짓이 아닐까 하고 봉당으로 나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점순이가 지게문 바깥쪽 고리에 긴 줄을 매어 가지고 울 밖에서 당기곤 했던 것이다.
내가 그 줄을 잡아당기자 울타리 위로 얼굴을 내민 점순이가
“이 바보야, 나무하러 언제 가니? 아직도 발에서 똥냄새가 나니? 네 집 수탉은 괜찮니?” 하면서 또 깔깔댄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문고리에 매었던 줄을 끌러 울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점순이를 향해 침을 한번 탁 뱉고는 지게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리고 새끼를 꼬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발목이 다 나으면 점순이년의 목쟁이라도 분질러 놓고 싶다마는 점순이의 말대로
“내 누집 딸인데.” 하면서 덤벼들면 나는 할 말이 없고 힘이 쏙 빠지고 만다.
괜히 내가 일을 냈다간 집도 땅도 떨어지고 우리 식구는 내쫓기고 말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점순이가 참으로 고맙다.
내가 지난봄 점순네 큰 수닭을 지게막대기로 때려죽였을 때 점순이가 그의 어머니에게 그 일을 일러 바쳤다면 우리식구는 아마도 쫓겨나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점순이와는 좋도록 지내는 것이 상책 중 상책이리라. 이쁜이와 혼인 이야기는 오갔으나 이쁜이의 생각을 내가 전해들은 바도 아니고 다만 똘똘이 엄마의 얘기니 나는 오직 널 생각한다 하고 뭐 이렇게 점순이를 위로하면 그 심청이 멈출지도 모른다.
발목도 다 나아 내가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우리 집을 나서며 보니 개울가 논둑길로 이주사 어른이 응뎅이를 깝죽거리며 쇠돌네를 향해 간다.
‘저 어른도 참.’ 하며 속으로 중얼대다 점순네를 바라다보니 점순이가 울타리에다 빨래를 널고 있다.
나는 웃으면서 다가가 지게막대기로 울타리를 툭툭 쳤다. 그러자 점순이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다보았다. 거무잡잡한 점순이가 오늘은 이쁜이 만큼 예뻐 보였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다리는 다 나았단다, 뭐.” 했다. 그리고
“우리 수탉도 홰에 올라앉았지.” 했더니 점순이는 퉁명스레
“그래서?” 하며 물이 덜 빠진 빨래를 나를 향해 툭툭 털었다.
나는 그래도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점순이의 그 모양을 보고 있다가
“뭐 그렇다는 게지.” 그러자 점순이가 빨래를 통에 내던지며 눈을 홉뜨고는
“그래, 누가 잘못 했는데. 이 자식아!” 하며 소릴 질렀다. 난 엉겹결에
“내가!” 하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점순이가 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는
“누가?” 하고 다정히 묻는다. 내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내에가.” 하자 점순이가 울타리로 바짝 다가오더니 웃는 얼굴로
“뭘?” 하고 재차 묻는다.
내 입에서 이쁜이 얘기가 나오기를 점순이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리라. 내가 머뭇거리자 애가 단 점순이가 재차 또 묻는다.
“뭘, 잘못했는데. 응?” 하며 애원하는 그런 점순이가 얄밉도록 귀여웠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이쁜이 얘긴 별 것도 아냐. 난 점순이 너 뿐이야.” 하고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 막 돌아서는데, 점순이가 등 뒤에다 대고 속삭였다.
“얘, 그럼 있다가 그곳에서 보자. 알았지?” 나는 나무지게막대로 땅을 두드리며 조그맣게 알았다, 하고는 나무를 하러 산으로 달아났다.
내가 나무를 한 짐 잔뜩 해가지고 그 노란 동백꽃 밑에 왔을 때 점순이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겁지 않니? 어서 여기 받쳐놓고 쉬어.” 하며 내게로 다가오더니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을 내 앞에 꺼내 놓는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구운 봄감자다.
“너, 그 때 나 때문에 우리 집 봄감자 맛 못 봤지?” 하고는 얼마 전 이곳에서의 그 얘기를 꺼내더니
“너, 이젠 이쁜이 생각 조금도 안 하지?” 하고 다짐을 두었다. 그리고 나물바구니에서 열 개도 넘을 듯 보이는 구운 봄감자를 내 앞에 꺼내 놓는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고추장물을 억지로 먹어야 했던 우리 집 수탉의 모양이 떠올랐다.
“자, 우리 집 봄감자 정말 맛있단다. 어서 먹어.”
점순이가 빙그레 웃으며 껍질을 벗기더니 봄감자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봄감자의 더운 김이 목을 콱 막히게 했지만 아무쪼록 점순이의 맘에 들도록 나는 맛있는 모양을 하며 군 봄감자 하나를 금방 먹었다.
그러자 점순이가 다정스레 다가앉으며 봄감자 하나를 또 내민다. 내가 가슴을 탁탁 쳐가며 봄감자 다섯 개를 먹어치우자, 점순이는 더 바짝 다가앉으며
“너 나 뿐이라는 약조로 이 봄감자 다 먹어야 한다.” 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 흐뭇하게 웃는다. 그 모양이 똑 여우같다.
내가 만약 싫다고 하면 당장 내 멱살이라도 잡고 또 욕을 퍼 부으며 심청을 부릴 것이다. 나는 콱 막힌 목구멍으로 고추장물덩이 같은 봄감자를 또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리 수탉처럼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서도 점순이는 내가 맛있게 먹는다며 내 등을 뚜들겨 주면서까지 또 봄감자를 내민다.
내가 일곱 개 째 봄감자를 먹다가 토할 것만 같아 바윗돌 쪽으로 달아나려 하자 점순이가 내 허리의 바지끈을 잡아 당겼다. 그 바람에 점순이와 함께 동백꽃 속으로 그때처럼 또 파묻혔다.
그러나 아무래도 토할 것 같았다. 그래서 꾸역꾸역 소리를 내도 점순이는 막무가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참 만에 일어나 바윗돌 뒤로 달려가는데 왠지 입술이 맵기도 하고 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돌아 왔을 때 점순이는 싱글거리며 다시 다가와 남은 세 개의 봄감자를 마저 먹으란다. 나는 얼마간 토했으므로 하나의 봄감자를 받아 부디 점순이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점순이가 마지막으로 내민 그 맛있는 봄감자를 먹다가 나는 그만 다시 바윗돌 뒤쪽으로 엉덩이를 감싸 쥐고 달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그 모양을 보고 점순이는 걱정은 커녕 배를 잡고 깔깔대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금병산 봄바람이 알싸한 노란 동백꽃 향기를 안고, 안마을로 힝하게 달아난다.
|
첫댓글
금병산 봄바람이 알싸한 노란 동백꽃 향기를 안고, 안마을로 힝하게 달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