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상처와 기억에 감금되지 않는 당당한 여성의 삶 공선옥의 소설은 두 개의 중심을 지닌 타원에 비유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공선옥은 두 개의 화두를 중심으로 소설을 조형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축이자 화두가 되는 것이, '여성'과 '광주'이다. 여성은 남편이 부재하는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녀들은 대부분 애 딸린 이혼녀이거나 과부이거나 남편과 별거 중인 상태에 있는 여자들이다. 종종 창녀나 그에 준하는 밑바닥 인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하나의 서사적 축인 '광주'는 잘못된 역사의 제유에 해당한다.
그녀의 소설에는 5월이면 발작을 일으키거나 정신적인 분열증에 사로잡혀 있거나 혼자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남자'들이, 그만큼의 여자들과 함께 출연한다. 이들은 대부분 부부 관계이거나 연인 사이로 설정된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역사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성과 이러한 남성에게 버림받는 여성이라는, 두 가지 틀이 결합하게 된다. 공선옥의 소설은 이러한 두 개의 틀을, 서사의 축으로 혹은 문학적 화두로 삼아 전개시키는 일종의 수난기인 셈이다.
수난기라는 말에서 암시되듯이, 초점화자로 설정되는 여자들은 남자와 역사로부터 가해지는 고통과 번민을 감지하는 존재이다. 가령 '씨앗불'의 아내는 5 ·18 시민군 출신의 남성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 무언지 모를 안타까움에 휩싸인다. '목숨'의 '혜자' 역시, 동지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살아온 남편 '재호'의 삶을 추적하다가 '빨치산'이었던 재호의 아버지의 삶과 만나게 된다. '목마른 계절'에는 무식하지만 통렬한 목소리로 근현대사의 역사적 쟁점들을 서로 연관시키는 여자가 등장하며,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에는 봄이 되면 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여성이 나타난다.
공선옥의 소설적 특징은, 이러한 여성들을 삶의 한 측면에서 당당하게 일으켜 세운다는 점이다. 역사적 상처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대책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고 여성성의 작위적인 강조로 인해 어긋난 페미니즘의 잔해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고 할지라도, 공선옥의 여인들은,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역사의 기억에 감금되지 않으며 현실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가열참과 당당함을 보여준다. 이는 공선옥 소설이 보여주는 가장 커다란 힘일 것이다. (김남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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