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길
바다는 온통 푸른 세상이다. 오월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늘 처음으로 도보여행 길에 나서기로 하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홀어머니가 젊은 날 걸어갔던 그 길을 따라 나서면 될 일이다.
7번 국도를 따라 속초에서 청간포구까지 도보여행을 시작하였다. 그 옛날 양양군 양양읍 속초리 2구 고향집 모퉁이에서 출발하여 영랑호를 지나 모래기 언덕에 올랐을 때 아치형 대형 간판이 손짓한다. ‘금강산은 부른다. 어서 오십시오. 고성군입니다’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해파랑길. 멀리 왼쪽으로 설악산 울산바위가 돌기한 백두대간 아래 위용을 드러내고 있고 그 오른쪽으로 미시령 고갯길이 푸르름 속에서 허연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 길을 걸으며 깊은 사념의 나래에 빠진다.
미시령 고개 마루길,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저 고갯마루를 넘어 강원도청으로 발령받고 간 것이 어제일 같은데 …, 전세 단칸방에서 홀어머니와 다섯식구가 올망졸망 생활하던 춘천에서의 기억의 편린들이, 이제 반백이 다 된 은퇴자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곳에서 보낸 30여년 세월이 언제 이리도 속절없이 흘러갔는가 …
적막을 깨뜨리는 것은 4차선 국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굉음이었다. 문득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럽다. 해풍 속에서 어린 시절 즐겨 맡았던 해조류 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고향바다의 향기, 어머니의 비릿한 체취이다.
느티나무 가로수 푸른 잎새도 간지러운 듯 나풀거리며 미소 짓는다. 모내기 준비를 위해 써레질을 마친 논에서 아침 개구리들이 마구 울어댄다. 용촌 삼거리에 이르렀을 때 도로 표지판이 방향을 가리킨다. 직진은 통일 전망대, 왼쪽은 세계잼버리수련장, 파인리조트, 대순진리회.
길가에는 나무와 풀과 꽃들이 서로 뒤엉킨 채 아우성이다. 키 큰 버드나무들 속에 수양버들과 아카시아 나무 수풀더미에서 노랑 애기똥풀꽃들과 칡나무 순들도 경쟁하듯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아카시아 나뭇잎에는 오월을 알리듯 희끗희끗 흰 눈이 수북이 내려앉았다. 꿀 내음 그윽한 아카시아 꽃들의 향연이 한창이다.
어느새 봉포 어촌이다. 캔싱턴 리조트 마당에서 공사 중인 대형기중기가 허공을 찌르고 있고, 고성군이 조성한 ‘해당화공원’에서는 드문드문 새빨간 꽃이파리들이 요염하게 고개를 내밀며 해변의 길손을 유혹한다.
봉포해변 벤치에 홀로 앉아 물끄러미 수평선을 바라본다. 수평선 … 언제나 그렇듯 바다에 오면 하늘은 슬며시 수평선으로 내려앉고 그녀 앞에서 하늘은 한없이 작아진다. 하늘과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면 바다에 와서 지그시 수평선을 바라보면 된다. 하늘빛이 수평선에 스펀지처럼 빨려 들어가 푸른빛으로 동화되기 때문이다.
오월의 바다는 다소 적막하기까지 하다. 철썩! 철썩! 눈앞에 와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아니라면 주위는 한없이 고요한 적멸의 보궁이다. 간간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탓에 비상하던 제비 한 마리 날갯죽지가 꺾인다. 생의 추락이다.
‘청정 동해 어촌마을 봉포, 안녕히 가십시오!’ 다시 해안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어서 한 구비 해안선을 돌아들자 곧 천진리 너머로 청간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침내 청간이다. 청간마을은 어머니의 친정이었고, 청간 앞바다는 그 옛날 우리가족의 생명 터이었다. 매년 봄이 오면 열두 살 막내의 생계를 위해 30십리나 되는 이 길을 아침저녁으로 걸어 다녔던 마흔 넷의 홀어머니 … 미역을 널어주고 대신 받은 품삸이래야 고작 보리쌀 됫박이었고 덤으로 가져 온 참미역 줄기를 작은 누이와 고추장에 찍어 주린 배를 채우고 나면 속이 따갑고 쓰려왔던 유년의 아린 기억들 …
어머니, 당신이 손수 고단한 이 길을 발바닥이 다 닳도록 걸으면서 키워낸 막내아들, 꿋꿋이 장성하여 지방행정의 목민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이제 환갑을 넘은 나이에 찾아온 불효자식을 …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저 청간정 소나무 숲 하늘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오월이 오면 왠지 기쁘지 않다. 산 빛은 초록으로 물들지만 마음은 슬픔으로 물든다. 오랜 병고 끝에 육신의 고통과 마지막 남은 속살까지 다 내리어 형해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던 4남매, 형은 차마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없어 눈을 감아버렸고 흐느껴 우는 두 누이를 달래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는 일 밖엔 달리 없었다.
겨우 내내 긴긴 밤, 복수로 부어오른 배를 움켜잡고 만성간경화의 질곡처럼 깊은 절망 속에서 반곱슬머리에 옹니뱅이 고집불통 아버지가 열한 살 막내둥이를 혼자 놔두고 떠나간 날도 오월이었다. 스무 살 한 때는 그런 무책임한 아버지를 원망하였지만, 서른이 되어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하였다.
예순이 넘어 찾아 나선 어머니의 길 위에서 생각한다.
그 옛날, 먼지가 풀풀거리는 비포장 신작로 길을 걸어 친정 가는 이 길 위에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못난 남편을 원망하였을까, 어린 막내아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했을까, 아니면 당신의 쇠잔한 삶의 속박을 한탄하였을까.
길 위의 여정에서 내가 본 것은 무엇인가. 바다에서 불어 온 오월의 싱그런 바람도, 새들의 지저귐도, 푸른 바다와 흰 뭉게구름도 7번 국도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굉음 속에 묻혀버리고 길 위에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은밀하게 다가오는 오월의 바닷바람 결을 타고 어머니의 영혼을 따라 어디론가 떠돌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월이 오면 생각나는 어머니. 어머니의 길은 척박했던 삶의 끈질긴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길. 언제 다시 이 길을 걸어 갈 수 있으리.
이아침 어머니는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가 와 막내아들의 가슴 속을 마구 두드리고 있다.
첫댓글 회장님의 글을 제가 올리게 되었네요..
그리움을 가득안고 어머니의 길을 따라 걷고 계셨을 울 회장님의 애잔한 모습이,
글을 읽는 내내 스치며 지나갑니다.
막내아드님의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그 대견함에 웃고 계실거예요.
.아픈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회장님
어머님께서 오가시던 길위에서 “목 놓아 터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 애닮게 부르신 눈물의 사모곡!
아아 하늘이시여! 유년의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7번 국도의 포도 위에 한줄기 소나기를 세차게 내려주소서,
온 몸이 다 젖도록...
잠시혼돈스러웠습니다ㅋㅋㅋ 하늘에계신 어머님이 무척이나 반가워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변환경은 바뀌었어도 언제나 그자리에있는 동해바다는 어머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왜 문장에 태그같은 것이 나타나나요? <!--[if !supportEmptyParas]-->
좋은 독후감 고맙구요...어머니는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큰 형님의 어렵던 유년시절의 애잔한 마음과 평소 부모님이 걸어오셨던 그 길을 다시 걸으면서 이젠 명예로운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멋진 인생을 살고계신 아드님을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계실 어머님의 흐믓한 미소가 떠오르는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형님 수고하셨습니다.
춘천오면 벙개하게 미리 연락주시게...건강조심하시고.
네 알겠습니다. 형님 건강하세요
회장님 글이 넘 감칠 맛 나요.. 정말 잘쓰신다.. 부러워요,,,난 핑계만 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