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준석 시인의
詩로 읽는 세상이야기 2
붉은 보석같이 가슴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절 밖 길가에서 피고 지는 동백꽃 사연
ㅡ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밖에서
선운사 동구
서 정 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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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고창 땅, 질마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미당문학관이 우뚝 서 있다. 그곳 계단에는 서정주 시인 사진이 크게 붙어있다. 사진 속 시인의 눈빛은 신기神氣로 가득하다. 순간, ‘저 양반은 시를 쓰지 않았으면 박수무당이 되었겠다.’고 혼잣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신기는 시신詩神이라는 말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물론 시로 다 증명한 일이다. 시 쓰는 사람은 시로 증명하면 된다. 다른 그 무엇으로 필요하랴.
고창 선운사로 오르다보면 오른 편에 ‘선운사 동구’ 라는 시비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력만큼이나 수난을 당해 친일 행각과 군부권력에 협력한 일로 시비도 잠시 피신하여 보이지 않다가 다시 길가에 나와 서있다.
작품만으로 따진다면 선운사 동구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창 땅이 어디인가. 붉은 흙이 속살을 드러내고 붉은 동백꽃이 지천으로 터져 나오며 슬프고도 처연한 붉은 사연들도 덩달아 마구 피어나는 곳 아니던가. 그 붉은 사연을 누가 노래할 것인가. 시인 한 명은 하늘의 별 하나와 같다더니 서정주 시인은 고창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선운사 동구 한 편으로 다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절 안 보다 절 밖의 사연에 치중하고 있다. 절 안 풍경은 동백꽃 피고 지는 소리와 스님의 염불하는 소리가 차분하게 흐르는 피안의 세계라면, 절 밖 사연은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차안의 세계이다. 그 펼쳐지는 일들이라는 것이 동백꽃 보다 더 붉고 진하게 아리고 처절하다. 그래서 절 안과 절 밖, 동백과 육자배기, 만남과 헤어짐, 생과 사, 이러한 이중주가 시 속에서 슬프게 연주되고 있다.
전라도 지방을 휩쓰는, 전라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두 소절 흥얼거릴 수 있는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의 혼이 담긴 남도 잡가가 육자배기 아니던가. 민족 비극의 6.25 동란 후 다시 절 앞을 찾아가지만 전쟁 통에 막걸리집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만 동백꽃처럼 붉게 피어나고 이 땅에서 전쟁으로 스러져간 수많은 사연들도 저 선운사 대웅전 뒷마당에 가득 피어나고… 붉은 땅 더듬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아픈 사연도 붉게 물들어 해마다 봄이 오면 저렇게 선운사 동백은 피는 것이다. 예전에 들었던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도 함께 피어나는 것이다.
아직도 이 땅에 붉은 심장 뚝뚝 떨어지는 아픈 사연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봄이면 잊지 않고 먼저 뛰어나와 저렇게 동백꽃으로 피는 것이다.
(배준석 / 시인. 문학이후 주간)
우리 집에 놀러와
2021. 5. 13
김 정 희
-우리 집에 놀러와 정원에 봄꽃들이 한창이야
어느 화창한 봄날 네 초대를 받았어
-와, 너희 집에 정원도 있어?
정원 딸린 넓은 집에 살고 있는 네가 부러웠어
네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지
너는 집 가까이에 있는 대학 캠퍼스 한 바퀴 돌고
집에 가서 차를 마시자고 했어
캠퍼스는 갓 입학한 새내기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고
온갖 꽃들이 앞 다투어 피고 있었지
작고 예쁜 연못도 있고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나니 등에 땀이 약간 났어
우리는 함께 연못 가 벤치에 앉아 쉬었어
-여기가 우리 집 정원이야
소유
2021. 5. 13
김 정 희
어느 공간이든 한쪽 벽이 아무런 장식 없이 비어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장식이든 물건이든 온통 꽉 차있는 장소에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빈 공간을 가지려면 물건을 잘 버려야 하는데 나는 오래된 물건도 잘 버리지 못한다. 포장 상자나 쇼핑백 같은 것도 언젠가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모아둔다. 예쁜 소품이나 기념품 같은 것도 서랍 구석구석에 넣어둔다. 입지도 못하면서 결혼 전에 입던 옷까지 장롱 속에 걸어두고 있다. 몸무게 변화가 별로 없어 작아지지는 않았으니 언젠가는 다시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인터넷 서핑을 자주 한다. 그러다가 갖고 싶은 물건이 보이면 주문을 한다. 클릭 몇 번이면 다음날 집 앞까지 배달되어 온다.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으니 별 고민 없이 주문한다. ‘오늘 하루만’ 코너에 올라오는 상품을 보면 오늘이 지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사두면 언젠가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또 주문한다. 조금 큰 금액은 무이자 할부로 결제한다. 카드 한도가 초과되어 결제에 실패하면 친절하게도 고객센터에서 즉시 전화를 걸어 한도를 올려준다.
코로나로 외출이 힘들어지면서 간편하게 인터넷 쇼핑을 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통장에 마이너스 숫자가 점점 커져갔다. 어느 날 카드 사용액과 통장의 마이너스 금액을 더해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는 결혼하는 나에게 꼭 수입 한도 안에서만 돈을 쓸 것을 신신당부 했었다. 나름 꼭 필요한 곳에만 지출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쓰기로 했다. 체크카드는 통장 잔액이 없으면 결제할 수 없으니 주문에 제동이 걸린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만으로 주문하지 않게 된다. 구매 기준도 바뀌었다. ‘갖고 싶다’가 아닌 ‘지금 당장 삶에 지장이 있는가’로. 몇 달이 지나면서 통장에 마이너스 표시가 없어지더니 잔액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처음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된 것은 카드 영업을 하는 친구의 부탁을 받아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서부터다. 친구는 여러 회사의 카드를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하지도 않은 신용카드를 세 개나 발급을 받았다. 친구는 처음 석 달간만 사용하고 잘라버려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갖고 있다 보니 사용하게 되고 사용하다보면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신용카드라는 것이 얼핏 보면 소비자를 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지출할 금액이니 카드로 결제하고 다음 달에 통장에서 빠져나가면 마찬가지인 것 같고 할부도 선심 쓰듯 ‘무이자’ 몇 개월을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 과소비를 부추기는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직접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서 돈을 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는다. 사용액의 몇 퍼센트인가를 캐시백으로 돌려준다는 말에 넘어가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면서 스스로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들어오는 돈은 몇 천원에 불과했다.
잘 버리지 못하는데다가 갖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사들이는 바람에 좁은 집이 더 좁아 보인다. 우리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조만간 이사를 해야 한다. 삼십년 넘게 한 집에 살아서 구석구석 버릴 것 천지다. 버려도버려도 끝이 없다. 추억이 깃든 물건은 버리려다 다시 담아놓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은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필요와 미래에 예상되는 필요를 한꺼번에 소유하고 있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다시 읽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심에서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소유한다는 것은 그것에 얽매이게 만든다는 스님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새긴다.
남편 이기사
김 정 옥
부부의 외출이 있거나
나만의 볼일있어
나드리 나갈때면
남편은 언제나
자칭 운전기사가 된다
출발전 먼저
주차장을 나서며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요
독촉이나 채근은 없다
준비 마치고 현관나서면
외출 구두나 신발은
나를 반기며 싣기편하게
가지런히 가지런히
웃고있다
무더운 여름엔 시원하게
꽁꽁추운 겨울엔 따듯하게
차안을 데워놓고
이기사는 나를맞이한다
감미로운 음악은
듣기좋게 흐르고
방향제 향기는
감상에 취해있다
참 맘에드는
이기사
평생 채용 할까 싶다
미련
신명 희
성년이 한참 지난 해묵은 책을 꺼내 든다. 서예 동아리 선배가 준 것이다. 한 손에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문고판이다. 보통 선물한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바로 읽을 텐데 책꽂이에 꽂아놓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일 년쯤 지나 읽었다.
쑥 이파리 뒷면처럼 옅은 색 표지에 깃털펜을 든 손 모양이 소묘처럼 그려져 있다. 게다가 제목이 팥죽색 한자로 적혀있다. 당시 인기 도서였으므로 눈에 띄는 자리에 놓여 선물용으로 쉽게 고르던 책이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약간의 반감과 더불어 고루하게 느껴졌다. ‘무소유’라는 제목에서 나와 상관없는 책이라 여겼을 것이다. 통장에 돈 불어나는 재미를 느껴보라는 말에도 시큰둥하고 특별히 욕심내는 물건도 없어서 좀 가지면 안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의미가 그때는 와닿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매달 문화생활비를 지원해주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을 때는 책을 샀다. 옷 고르는 건 정신없고 귀찮아하면서도 회사 옆 작은 서점에 가서 뒤적이며 책을 고르는 시간은 여유로 느껴졌다. 책을 포장해주던 때였다. 책 모퉁이가 헤지지 않게, 어떤 책인지 드러나지 않도록 은밀하게 하나씩 포장을 할 때 새 옷을 산 듯 부풀어 올랐다. 선물하는 책은 받을 사람이 좋아할 것을 상상하며 행복하고 집으로 데려오는 책들로 책꽂이가 채워지는 만큼 마음도 가득 찼다.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을까.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 도서관이 없었다. 이야기라고 하면 교과서가 전부였기에 학기 초 새 책을 받으면 국어책부터 다 읽었다. 이모네 세계문학전집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5학년 때 모둠 발표 준비를 위해 친구 집에 갔을 때 번쩍거리는 금장이 박힌 백과는 부럽기 그지없었다. 학창 시절에 시험 때만 되면 청개구리처럼 책이 보고 싶었다. 시험을 생각하면 끝나고 봐도 늦지 않을 텐데 그 유혹에 꼭 넘어가고야 만다. 그럴 때는 붙박이처럼 앉아 다 읽곤 했다.
회사 다닐 때부터 책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을까. 학원이나 과외보다 최고의 교육은 독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딸을 가졌을 때부터 태교를 위해 꿀벌처럼 분주히 책을 사 모았다. 딸은 책 가지고 놀면서 목욕하고 동화책으로 한글 떼고 집 지으며 쌓고 놀았다. 밤새워 책 읽어주는 날이 선물이었으니 보리밥 알로 잉어 낚은 격이다. 딸이 안 보는 책은 지인들에게 부지런히 나눠 주었지만 백과와 자연 관찰, 애착이 가는 동화책은 여전히 함께 이사 다녔다. 딸이 보는 게 아니다. 주로 내가 보려고 놔둔 것이다.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고 무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딸에게 사 주었지만 실은 어린 나에게 준 것은 아니었을까. 백과는 두께가 부담스러워서 그런지 별로 보지 않았다. 거기에 일반 책까지 더해지니 오죽할까.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데 하물며 귀한 대접 받으며 모퉁이 한 번 접은 적 없다. 책마다 사연이 있고 소중하다. 수십 년 지난 책 중 어떤 것은 세월에 빛바래어 고서처럼 누렇게 변하고 특유의 냄새도 있지만 버리지 못하는 갖가지 이유가 따라붙는다.
큰 책장 하나 비우기가 얼마나 어렵던지. 딸이 어릴 때 읽던 전집인데도 송도 부담짝 여기듯 귀하게 여기던 책들을 떠나보내기가 못내 아쉬웠다. 이사 오고 방 하나는 서재로 꾸몄다.
보통 이사를 하면 버릴 것을 추려내니 정리가 된다고 하는데 결혼 후 여섯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도 여전히 복잡하다. 지난번 집에서 상자에 넣어 놓고 다시 이사할 때까지 못 찾아서 헤매거나 없는 줄 알고 새로 산 물건도 있다.
이사를 할 때 업체에서 화분과 책이 많은 집을 가장 꺼린다. 별로 반기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든다. 포장이사를 할 때 덩치가 있는 가구류는 담요로 싸서 옮기고 대부분 바구니에 넣고 쌓아서 옮긴다. 화분은 무겁기도 하고 쌓을 수 없으니 하나씩 옮겨야 하고 책은 무거워서 바구니를 채울 수 없어서 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것이다.
문화센터나 평생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 정리 수납이 화제다. 특강도 인기 있고 정규 강좌에 전문가 과정까지 생겨났다. 새집처럼 변신한 모습을 보면 강의를 들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정리 전 뒤죽박죽인 모습을 공개해야 하니 바로 꼬리를 내리게 된다. 찾아가서 집 정리를 해주는 방송도 시청률이 높다. 쇼핑을 하다 보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고 수납하는 물품들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보여준다. 정리를 못 하는 나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알뜰한 편이지만, 깔끔하지는 못하다. 정리를 못하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해서다. 똑부러지는 이미지의 한 아나운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흔적들을 역사이고 분신 같아서 버리지 못한다고 하는데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정리의 달인이 등장한다. 필요한 물건도 많고 다 이유가 있지만 제대로 쓸 수 있게 정리를 해야 과거를 쉽게 볼 수 있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우는 것이 먼저라고 하는 데 그것도 공감이 간다.
정리 수납의 첫 번째는 비우기이다. 쓰지 않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버리면 공간이 넓어지고 바로 찾을 수 있으니 시간도 아낄 수 있다. 모르고 새로 사는 낭비도 줄일 수 있고 깨끗해지니 마음까지 정갈해지는 것이다. 이해는 되는데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어렵다.
우리나라는 방송으로 소개되는 정도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꽤 알려져 있다. 정리 수납 전문가는 가정이나 회사에 찾아가 문제를 찾고, 수납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주는 일을 한다. 정리 전문가는 공간이나 물건에 더해 시간과 인맥까지 정리해 준다. 나도 정리만 못하는 게 아니라 시간, 인맥 관리도 힘이 드니 조언을 받고 싶다.
* 배준석 시인의
詩로 읽는 세상이야기 102
배고플 때 보이던 하얀 꽃
쌀밥인양 배부르던 하얀 꽃
ㅡ 나태주『아카시아꽃』
아카시아꽃
나 태 주
쑥죽 먹고 짜는
남의 집 삯베의
울 어머니 어질머리.
토담집 공방의
숯불 화로 어질머리.
수저로 건져도 건져도 쌀알은 없어
뻐꾸기 울음소리 핑그르르 빠지던
때깔만은 고운 사기대접에
퍼어런 쑥죽물.
꽃이라도 벼랑에
근심으로 허리 휘는
하이얀 아카시아꽃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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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익을 때면 유난히 하얗게 피는 꽃들이 지천이었다. 이팝나무 꽃도 쌀밥같이 소복하니 피었다. 고슬고슬한 쌀밥 먹은 지가 언제인지, 아니 보리타작할 때가 언제인지. 낮이면 뻐꾸기도 배가 고파 뻐꾹 뻐꾹 한나절 울다 지치고 밤이면 소쩍새가 소쩍 소쩍 솥이 텅텅 비었다고 울어대던, 딱 이맘때였다. 배고파 굶어죽는다는 말이 떠돌던 보릿고개 넘던 시절이.
너나없이 가난하여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 그나마 아카시아꽃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찔레새순 꺾어 껍질 벗겨 먹던 이야기는 이제 전설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난이 자랑은 아니지만 잊지는 말아야 한다.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사람이 풍족한 시절에도 잊지 않는 법, 먹고 남기고 버리는 일이 지천인 세상에 아카시아꽃을 다시 바라본다. 어떻게 그 향기는 세월이 변해도 그대로인가. 남의 집 삯베 짜던 어머니 모습도 세월만 지났을 뿐 아직 그대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처럼.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쌀 한 톨, 보리쌀 한 줌 아끼는 마음은 이 시대에 더 절실하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여유로울 때 아끼는 것이 지혜이다.
요즘은 배가 불러서인지 뻐꾸기, 소쩍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보리 익어가는 냄새는 더구나 맡을 수 없다. 가끔 아카시아꽃 흩날리는 길 따라 꿈처럼 걸어 본다. 아카시아 향기는 십리를 간다던가. 그 십리는 과거로 가는 거리이다. (배준석 시인)
향충
김 소 운
깨물면 기막힌 향기를 풍긴다는 ‘향충香蟲’이라는 벌레 얘기를 어린 시절에 들은 적이 있다. 어느 사전에도 이런 명사는 나와 있지 않으니 어쩌면 따로 이름이 있는지도 모른다. 호화스런 중국요리의 연석宴席 - 그것도 2,30명 이상의 큰 연회에 단 한 마리만 쓰인다는 이 향충 이야기는 어린 마음에도 퍽이나 신기하게 들렸다(워낙 비싸고 귀한 벌레라 어떤 사치스런 연회에서도 두 마리까지는 못 쓴다고 했다).
연회가 끝날 무렵 해서 한 사람(주빈이거나 아니면 초대자인 주인)이 그 벌레를 입에 넣어 깨물면 향기가 좌중에 퍼져서 모두들 황홀해지지만 정작 깨문 당사자는 그 향기를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값비싼 벌레라지만 산 채로 벌레를 입에 넣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징그러운 노릇을 한 당자는 향기를 모른다니 이것도 중국적인 매우 함축 있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런 벌레가 지금도 중국 연회에 쓰이고 있는 것인지 한갓 고담古談으로만 남아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은 일체 모르지만, 어린 시절에 한 번 귓전을 스쳐간 이 향충 이야기를 나는 칠순이 넘도록 이따금 새김질해 본다. 좌중을 황홀케 한다는 그 향기는 도대체 어떤 향기일까? 중국차에서 물씬하게 나는 재스민 내음 같은 강한 향기는 아닐 거고 아마도 매화꽃이 풍기는 그런 은은한 향기가 아닐까? 향기라면 대개는 식물성을 연상하지만 향기 중에는 사향 같은 동물성 향기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벌레의 향기란 도대체 어떤 향긴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연후宴後에 깨문다는 향충은 이를테면 향기의 디저트겠지만 아이스크림이나 푸딩 같은 양식 디저트보다는 이쪽이 몇십 배 더 고급인 것은 물론이다.
한때 구룡충九龍蟲이란 것이 보약으로 성명盛名을 떨친 적이 있었다. 이것도 유행의 원산지는 중국이었지만 그것이 일본으로 와서 한바탕 판을 치고 여세를 빌려 한반도에까지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 구룡충은 인삼, 녹용 같은 고귀약高貴藥을 먹여서 기른 녹두알만한 작은 벌레다. 인삼, 녹용을 직접 복용하면 되련마는 왜 일부러 구룡충 같은 중간체를 경유해야만 하는지, 그럼으로 해서 약효의 상승작용이라도 노리자는 것인지 그런 연유 곡절은 알 길이 없으나, 살아 있는 벌레를 날것 째로 먹으면 장생불로한다던 그 구룡충이 해방 후에는 쑥 들어가 버린 채 감각 무소식이니 구룡충의 영험도 대단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구룡충은 녹두알만한 작은 벌레지만 깨물어서 향기를 풍긴다는 향충은 내 상상으로는 아무래도 누에나 고구마벌레만한 크기가 아닌가 싶다. 되도록이면 징그러움을 강조하는 것이 내 이미지에 부합할뿐더러 구룡충 같은 작은 벌레로는 그런 은은한 향기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벌레가 크건 작건 그런 것은 별문제로 하고, 다만 상상할 수 있는 이 향충도 벌레 그 자체에 향기가 있다기보다 온갖 향료를 먹이로 해서 인위적으로 향충을 길러 내는 것은 구룡충의 경우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향충 이야기에 굳이 결론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인간사회에도 이런 향충이 아쉽다는 생각은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날이 없다.
인간이란 향기보다도 악취를 더 많이 풍기는 일종이 공해 동물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작자인 스위프트는 마인국馬人國의 우아한 생활에서 인간세계로 돌아온 걸리버가 자기 집 문간에서 반겨 맞는 마누라의 인간 악취에 기절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건 좀 지나친 풍자라 하더라도 우리들의 생활주변에는 욕망과 허영이 풍기는 인간의 악취가 코를 찌를 정도로 충만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100대 1, 1000대 1의 작은 비례이기는 하지만 그런 구질구질한 인간사회에도 뭇 사람의 마음에 눈물과 감동을 불어넣어 주는 향충은 있다.
눈 오는 고갯길에서 술 취한 아버지에게 웃옷을 벗어 덮어 주고 같이 동사한 어느 소년 얘기, 던져진 수류탄 위에 스스로 몸을 덮쳐 부하를 구하고 전사한 월남 전선의 어느 군인 이야기, 반드시 그런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도 이웃의 불행을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가짐 하나면 우리들 자신도 향충이 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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