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역 srt 319 부산행. 앞 의자에는 '새로운 생각이 출발합니다.' 가 적혀있었다. 울산 시사촌 장녀 결혼식에 가는 중이었다.
푸르른 먼 산은 흘러가고, 들판엔 이삭을 피운 벼가 펼쳐져 있었다. 얼마나 빠른지 가벼운 졸음도 없이 대전 지나 울산이다. 어두운 굴속으로 몇 번 들어갔다 나왔다. 어둠과 밝음의 반복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며, 내 결혼생활의 연속이었다. 힘듦과 즐거운 생활이 이어지며, 얼마 전의 너무나 힘들었던 일도 지나고 나니 밝음으로 오는, 그걸 느낄 수 있는 과정일 뿐이었다.
요즘은 집안에 결혼식이 있으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먼 거리를 당일 갔다 오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결혼 할 때 같이 축하객들이 전부 우리 집에 머물면서 전야제를 즐길 수는 없었다. 이번 결혼식에는 일주일 전에 모바일로 문자 하나만 보내고 끝이었다.
시누이 많은 집의 맏며느리인 나는 막내 시누이 결혼식을 안동 우리 집에서 손님맞이를 했다. 아버님은 너 어머니는 옛날사람이여서 요즘 결혼식의 절차를 잘 모른다고 내게 모든 것을 맡겼다. 나는 며느리를 믿어주는 아버님께 고마움을 느끼며 힘들었지만, 한 달 전부터 폐백 음식, 손님맞이 음식을 준비했다.
전국에서 모인 친척들은 20종반에, 그 배우자들, 자식 들, 근 백 여명이었다. 거실에는 큰아버님, 작은아버님, 사촌아주버님들, 사촌형님들, 시고모님, 이모님들, 시누이가족들이 빽빽이 모였다. 손님들의 신발이 너무 많아 종이상자에 담아 앞 베란다에 한 가득이었다.
아버님은 직접 지으신 한시를 읽으시고. 큰아버님은 한시를 노래 부르듯 읊었다. 젊은 사람들은 주방에서 술을 즐기고, 방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가들은 저들끼리 베란다에서 모아놓은 신발을 신어보면서 놀았다.
나는 집안에 큰 행사나 명절이 다가오면 아파트라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모두들 같이 입주하여 가족같이 느껴지지만 밤늦은 시간 까지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하니까, 너무 시끄러웠다. 그래서 음식을 하면 가까운 아래 위층에 먼저 돌리곤 했다.
까마득한 천년 쯤 지난 것 같다.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 밖에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만 들었다. 그 좁고 불편한 집에 아무도 불평 한마디 없이 하루 밤을 같이 보내고, 이튿날 결혼식장으로 갔다.
11시 20분 도착. 평상시 가보고 싶었던 태화강으로 출발했다. 버스로 찾아 헤매느라 거의 해질 무렵에야 태화강 대공원에 있는 십리대숲에 왔다. 4키로나 이어지는 대나무 숲은 그 길이가 놀라웠다. 숲 중간으로 길을 내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았다. 숨을 크게 내쉬며 천천히 걸었다. 음이온이 몸에 가득 들어오는 느낌이 들며 몸이 금방 가벼워졌다. 어둠이 깔리는 태화강 대공원은 텐트를 치는 캠핑 족들, 걷기를 하는 사람들, 분주한 느낌과 함께 여행의 기분을 느꼈다.
낡으면 새로워 질수 있으며, 새로운 생각은 낯 설은 환경을 잘 받아들이는 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태화강 대공원 십리대숲에서 한 일 년쯤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히 머물러 있고 싶었다.
완전 어두워져 태화강 주변 식당에서 보리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주변에 잠 잘 곳을 찾아다니니 조금은 손해 보는 것 같다. 요즘같이 결혼은 선택이라고 하는 시대에 이것은 낡은 생각이란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와서 모바일로 검색하여 찾아가니, 그렇게 힘들었던 그때가 생각이 나고 손님들에게 소홀하지 말라고 당부 하시던 아버님이 그립다.
하룻밤 묵고, 결혼식이 12시니까 그 동안 어제 갔던 태화강 대공원으로 다시 갔다. 영남의 대표적 누각 태화루에 올랐다. 일요일 아침 열시 경. 누각에서 내려다보는 태화강의 물은 그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잔잔했다. 혼자만의 하루를 보낸 차분한 지금의 내 마음과 같다. 이따금 고요한 수면위로 물고기가 솟았다. 강 주위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고, 저 멀리는 십리대숲이 보였다. 옆을 보니 할아버지 한분이 신문을 읽고, 한 젊은 남자가 나같이 태화강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용하다 못해 정적을 느낄 정도다.
예식장에 도착. 많은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 큰 집 둘째 형님이 나를 보고 걱정을 했다. 살이 많이 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 아프냐고 묻기도 했다. 몸은 아프지 않는데, 마음이 불편한 걸까. 일상의 하잘 것 없는 낡은 생각들이 많아서 이렇게 살이 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낡은 생각들이 넘치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겠지. 내 생각은 늘 변하여 한곳에 고요하게 머물러 있지를 않았다. 맞은편 의자에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는 작은집 형님께 그동안의 안부로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날려 보냈다.
첫댓글 여행문화에 보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