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일찍 죽마고우를 만나기 위해서 울산으로 향했다. 남들이 똥차라고 부르는 필자의 십년넘은 천리마 훼밀리 지프를 몰고 가니 혹시 중간에 고장이 나진 않을까 하는 조금의 걱정을 앞세우며 여섯 시간을 운전해서 친구와 오랜만에 마주했다. 거리에는 장마비가 내리고 있었고 친구는 울산 시청 부근의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필자의 친구는 그래도 잘나가는 대학교 교수님이기도 하며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 잠시 소개 되었던 인물이다. 필자의 죽마고우인 임박사의 자랑을 조금 하자면 임박사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다닐수 없게되자 고등학력을 검정고시로 수료했고 또한 대학교는 직장생활을 하며 야간 대학을 다녀서 졸업했으며 세계 기능올림픽에서 전자용접부문 은메달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이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아서 삼년전 대학교 전임교수로 임용된 인간승리의 대표적인 표본이 되는 친구이다. 필자와 임박사는 여섯 살 소시적에 만나서 지금껏 의리 변치않으며 친형제 처럼 지내고 있는 죽마고우 이며 필자의 친구는 강원도 시골태생으로 구김없으며 술좋아하고 한가지일에 매달리면 끝장을 보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복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친구의 후배인 김모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김원장을 불러내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김원장은 예전에 친구의 소개로 한번 만난적이 있지만 필자와는 조금 서먹한 사이 이기도 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서로의 살아가는 담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자리는 한참이 되어서야 끝이났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무렵 소주병을 세어보니 그새 다섯병을 해치웠다. 세사람이 모두 한주당하는 사람들이라서 술을 보니 게눈 감추듯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식사와 함께 술자리가 끝나자 차한잔을 마시자는 김원장에 제의가 들어왔다. 그럼 그럽시다. 했더니 찻집이 아닌 룸싸롱으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라고 했더니 이곳 아가씨를 보면 그런생각 없어질 것이니 잠시만 있으라는 것이었다. 얼마후 미모를 겸비한 갓 스무살 쯤이나 되어보이는 듯한 어린 아이들이 들어와 앉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아가씨 한사람은 나가도 된다고 했더니 김원장이 섭섭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그러냐고 물으니 권선생에게 술한잔 대접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이러시면 자신의 성의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러면 이집에서 제일 나이 많은 아기씨를 불러 달라고 했더니 업소의 주인이라며 삼십대 중반의 여성이 들어와 유희민족 답게 잠시 음주가무에 젖기도 했다. 필자는 이러한 술자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도시의 부유층들은 이런 술자리를 만들어 주면 대단한 호대접을 하는 줄로 착각을 하기도 한다. 양주는 양만큼 마시라고 했으니 필자는 이만 술을 못먹겠다고 했더니 억지로 권하는 술두어잔을 더마시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와 계산을 물어보니 이미 김원장이 계산은 했다는데 술값이 엄청난 액수였다. 그래서 김원장에게 내있는 강원도로 놀러오면 아가씨 있는 술집은 데려갈 형편이 못되서 이런곳은 못가더라도 내 빈대떡에 막걸리 한사발을 대접할 것이니 나중에라도 꼭 들리라고 했더니 좋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런 술자리가 아닌 포장마차에 가서 쇠주나 너댓병 더마셨으면 좋았을 텐데... 김원장과 헤어지고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 오는길에 허름한 호프집에 들러서 맥주 두어병을 더마시고 사경(새벽1-3시)이 되어서 친구의 집으로 들어왔다.
밤늦은 시간에 초인종을 누르며 현관으로 들어오자 친구의 아내는 남편 걱정에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였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원통 촌놈이 와서 잠시 부군을 빼앗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취기에 농담을 하니 친구의 아내는 무슨말이냐며 빨리 옷을 갈아 입으라면 친구의 옷을 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시런닝과 옷을 바닥에 놓아두고 친구와 함께 안방에서 잠을 잤다. 친구의 와이프는 아침에 아이가 울어서 손님이 잠을 못주무신다며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있다가 한참이 되어서야 들어오는 듯 했다. 친구의 와이프는 고등학교 선생으로 재직하고 있는 성실한 교직자이기도 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황태와 콩나물로 해장국 끓여서 속풀이 하라고 조찬을 차려주기에 맛있는 아침밥을 얻어 먹었다. 그리고 다른곳에 볼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려고 옷을 갈아 입으려 하니 런닝이 없어져서 한참을 찾으니 친구의 아내가 깨끗하게 빨아서 옷걸이에 걸어 놓은 필자의 모시런닝을 건내주는 것이었다. 참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친구의 아내에게 너무 감사 했다. 멀리서 찾아온 남편의 친구를 극진히 대접하니 어찌 이것이 사대부 교가의 여성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친구가 너무도 부러웠다. 저놈이 장가를 늦게 가면서 까지 그렇게 여자를 고른 것이 분명 이유가 있었다.... 친구는 필자가 간다고 하니 하루 연가를 내놓았으니 더있다가 가라고 꼭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였다. 그래서 울산에 있는 몇군데에 볼일을 보고 친구와 함께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으로 함께 돌아 다니면서 횟감에 술을 엄청 많이 마시고 밤늦게 친구와 필자가 귀가하니 친구의 아내는 그래도 반가이 맞이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취기 섞인 진담으로 친구의 아내에게 내 집지으면 최고 먼저 부를 것이니 한달이든 일년이든 내집에 와 계시면 내 손수 밥도 해주고 찬도 해줄테니 친구와 함께 놀러 오라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그러죠 하는 것이었다. 울산에서 이틀밤을 지내고 아침나절 친구와 못다이룬 첫사랑의 아쉬운 이별을 하며 두손을 꼭잡고 서있다가 잘있어라 전화할께 라는 한마디 말을 서로에게 남기면서 필자는 경남함안으로 향했다.
경남 함안에서 약초 판매업을 하고 싶다기에 몇가지 약재의 활용법과 가공 방법등을 알려주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대구에 있는 이사장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반가이 맞이하며 필자가 있는 곳으로 금새 달려 왔다. 한참 동안 이사장님과 소담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사장님께서 필자에게 투자를 하고 싶다는 솔직한 심경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전에도 이런 제안을 하려고 몇 번을 망설였는데 오늘에서야 말을 할 수 있겠되었다 고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이사장님은 대구 금호공단에서 수십명의 직원을 고용해서 내실있는 중소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대구시내에 부지를 구입해서 모텔을 짓고 있다고 하셨다. 이사장님과 친분이 있은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필자의 약초요법을 이용한 처방을 사용해보고 몸이 많이 좋아져서 필자의 중요한 고객이 되신 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에게 투자를 해보고 싶다며 필자에게 기능성 식품 공장을 해볼 생각은 없냐는 제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솔직히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두쪽이 전부이고 아직까지 집도 절도 없는 놈인데 저를 무엇을 믿고 자본을 투자 하십니까 라고 말했더니 이사장님은 자신은 절대로 자본 투자를 하고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 공장을 하면서 필자가 개발한 유황오리 사리간장 건강장아찌 사리된장 등을 생산하면 소비자들에게 굉장히 반응이 좋을 것이라며 동업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생각을 해보죠 라고 말하며 아직까지는 돈욕심은 없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생각을 잘해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여간 고맙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고 헤어져 서울로 오는 길에 풍기 쪽에서 버려진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던 박목사님에게 인사차 잠시 들렀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지라 목사님이 필자를 알아 보지 못하시기에 예전에 혜산당 한약방 하던 권입니다. 말하니 그제서야 알아보시면서 너무도 반가워 했다.. 그래서 근자에 생활을 물어보니 말이 아니라 면서 경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에 발길이 거의 없어서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보조금으로 병든 노인들을 모시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분의 약을 보내 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차후에 다시들리겠다 말하고 서울로 발길을 향했다. 박목사님은 5년전 무릅관절염을 심하게 앓다가 필자를 찾아와 유황오리약탕을 복용하고 치병한 분으로 목회자 양심으로 세상의 어두운곳을 밝히는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이시기도 하다. 이런분을 만날 때 마다 느끼는 것은 돈욕심을 져 버린 필자 이지만 가끔은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좋은일 하시는 분 들에게 사과상자에 담아서 한상자씩 나누어 주고도 싶은 심정이다 .. 돈도 좀 벌어서 이런분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또한 상당히 의미있지 않을까...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젖어 보기도 한다..... .
필자는 개인적인 신앙이나 종교는 없지만 신부님 목사님 스님 철학자 여러분을 알고 지내고 있으며 가끔씩 만나서 따뜻한 차한잔과 담소한 대화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필자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졌을 때 잠시 성당엘 다닌적이 있는데 당시 신부님께서 필자에게 세레를 받으라고 권고 했지만 필자는 아직 완전한 믿음이 없으므로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세레를 받지 않고 다음날부터 성당을 다니지 않은적도 있다. 이유는 껍데기만 교인이 아닌 진실한 성직자가 되지 못하는 자신의 거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년시절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출가해서 불자의 길을 가려고 했던 한때도 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책은 불경의 기본교서로 알려진 노자의 도덕경과 기독교의 성서이다. 성서를 한번읽고 너무 감명깊은 이야기가 많아서 다시 한번 더 읽었던 적도있다. 그래서 필자가 알고 있는 목사님에게 목사님 저는 성서를 두 번 읽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저에게 어떤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할 것이냐고 물어온다면 성서와 도덕경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목사님께서 너무도 반가워 하시면서 그러면 내일이라도 자신의 교회를 나오라고 말했던 적도있다. 필자는 신앙생활은 하지 않지만 나약한 인간들이 깊이 얽메이지 않는 내실있는 종교적인 믿음을 통해서 자신의 평안과 위로를 얻는다면 그것 또한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박목사님과 헤어져서 서울 방향으로 올라오는데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필자의 바로 뒤에 화물차량 한대가 따라오고 있었고 그런데 필자의 느낌이 이상해서 룸밀러로 뒤따라오는 차량을 주시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화물차량이 굉음을 내며 우측 시멘트 방호벽을 들이 받더니 다시 중앙분리대로 튕겨쳐 2차 충돌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라서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후진을 해서 사고현장에 내려보니 운전자는 안면에 피투성이가 된채 차량 밖으로 기어나와 있었다. 그런데 사고자를 구호하려는 사람들에 손길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사고운전자를 피해 차량들은 고속으로 제갈길만을 가고 있었다. 그래서 환자를 갓길로 끌어내려고 하니 차량들이 좀처럼 서행하지 않고 꼬리를 물고 달려오는 것이었다. 너무도 화가 나서 " 이런 금수만도 못한년놈들이 세상 천지에 어디있냐" 며 소리를 버럭 버럭지르며 환자를 부축해서 일차선을 지나 이차선으로 나오니 그제서야 차량의 행열이 정지되고 잠시후 핸드폰으로 사고신고를 하자 차량 두 대가 섯는데 젊은 부부 한쌍과 오십대 중년의 남성이 괜찮냐고 물어오는 것이었다. 잠시후 고속도로 순찰대가 오면서 교통정리를 하고 구급차에 실려 환자는 후송되었다. 다행히도 환자는 많이 다치지는 않은 듯 했다. 경찰관이 사고 경위를 물어오기에 사실대로 말해주자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채 십분도 않되는 사이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입은 옷에 신경을 쓰지 않고 환자를 부축했더니 모시 저고리에 핏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강원도 원주에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의 집에 잠시들러 입었던 옷을 세탁소에 맞기고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 뒤 저녁무렵 옷을 찾아입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도심의 무심한 어둠이 내리고 한참동안 길을 묻고 물어 동생이 있는 서울대학 병원으로 들어와 동생의 얼굴을 마주하니 병색이 거의 가신 듯 했다. 그래서 괜찮냐고 물으니 담당의사가 내일 퇴원해도 된다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잠든 병실에서 오빠라는 존재는 그동안 동생에게 너무도 무심했던 죄책감에 사로잡혀 내심 회한의 소용돌이가 가슴속을 적시고 있었다. 불쌍한 녀석 같으니 객지에서 홀신으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사랑하는 나의 막내 동생..스물여덟살 어린 여동생의 잠든 볼에 입마춤을 하자 아이에 측은함은 물보라 처럼 밀려오고 있었다....다음날 오전 대구에 계시는 이사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으니 너무 죄송하다는 것이었다. 권선생의 생각을 전혀 무시하고 자신이 생각을 깊이하지 않고 말을 해서 실수를 한 것 같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래서 아닙니다. 저는 고마울 뿐입니다. 저같은 사람을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게 저로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소중한 행복중에 하나입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라고 했더니 재차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필자의 소견이 조금 짧았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에게 투자를 하겠다는 이사장님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공장을 짓고 내실있게 운영하면서 수익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생활하는 것 또한 인생을 매우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방법중에 하나인데 그저 내자신이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타인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많은 죄를 짖고 있는 듯 했다.....그리고 한편으로는 필자와 같이 못난 사람을 믿고 자본을 투자 해주시겠다는 분이 곁에 있다는게 필자로서는 너무도 감사할 뿐 이다............
입산한지 하루만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에서 손님들이 왔는데 약을 지으러왔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어보니 작년에 천종산삼을 가져간 00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 이라고 한다. 이사람은 작년 가을에 필자에게 천종산삼을 가져가서 자신의 친구에게 장뇌삼 이라고 엉터리 감정을 받고 난리를 친 사람 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으니 다음에 들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람의 양심을 돈으로 저울질하는 사람과는 사실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 필자가 선호하는 인간적인 대인관계이다. 작년 가을에 중국산삼을 이천만원에 속아서 살뻔한 것을 필자가 감정을 해줘서 재산 보호를 해준적이 있는 사람인데 필자에게 부탁을 해서 천종산삼을 한뿌리 구해 줬더니 그것을 들고 천종산삼 구경도 못해 본 사람에게 물으니 장뇌삼이라고 하기에 어이가 없어서 " 나는 처자식 굶기면 굶겼지 이날 이때것 살아오며 남 속여가며 물건 팔아본적없고 남들한테 받을 돈은 많아도 줄 돈은 십원짜리 한 장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빌려주고 못받은 돈만해도 선생들 계시는 동네 아파트 한채 살정도는 될겁니다." 그리고 필요치 않은 물건이라면 지금이라도 돌려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기분 나쁜 어투로 말을 흐리면서 전화를 끊었더니 다음날 산삼감정을 전문으로 한다는 학계에 꾀나 알려진 사람을 찾아서 감정을 받아보니 한국 천종산삼인데 매우 희귀종 이라는 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미안하다는 것이다. 이후 이산삼을 복용한 사람은 몸이 너무 좋아져서 한뿌리를 더구해 달라고 했지만 이일이 있은후 필자는 이사람들에게 다시는 천종산삼을 구해주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천종산삼은 돈을 떠나서 인간적인 연이 닿아야 복용할 수 있는 신초 이므로 사람의 기준을 돈의 잦대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영약에 기운이 쇠하는 영초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몇 번을 필자에게 찾아와 천종산삼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럴 때마다 필자는 물건이 나오면 전화드리죠 라고 말을 흐리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시간 쯤 지났을까 산중에 자동차 소리가 들리더니 마누라가 앞장을 서서 사람들을 데리고 내 있는 곳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하고... 내가 왜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놈에 돈이 뭔지... 마누라는 한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필자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산중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상을 찡그리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으니 대충 물어보고 약을 해서 며칠 있다가 보내준다고 말하고 빈말로 " 사람들이 싫어서 산속에 와 있는데 이곳 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네요".. 라고 했더니 무슨말 뜻인지도 모르고 천종산삼 한뿌리를 더구해 달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았다 말하고 돌아서서 막사가 있는곳을 발길을 돌렸다. 필자는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내면의 채취가 아닌 돈냄새가 나는 사람들은 정말로 싫어한다. 사람에게서 구수한 고향집 된장 냄새와 같은 인정이 묻어 나오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얼마전 알 게 된 서울에 계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있는데 이분과 마주하면 나의 어머니와 같은 모성애와 인간적인 채취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분이 오셨다고 연락이 오면 산중에서 곤한잠을 자다가도 달려오고 싶을 정도이다. 오후나절 산중에서 낯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휴대폰에 십여통의 전화번호가 찍혀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까 말까 상당히 고심하다가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보니 반가운 분이 와계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른 산에서 내려와 그분과 만나서 작고 소담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너무도 고맙게 약초를 많이 팔아주기 까지 하니 나에게는 최고의 고객이면서 좋은분이시기도 하다. 아니 약초를 팔아주지 않아도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유지 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분을 항상 모시고 다니는 따님 또한 어머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정성으로 느껴지며 두분의 모녀를 보고 있으면 자신 스스로 행했던 작은효에 대한 깊은 감명이 물결 치기도 한다. 필자는 어려서 조부님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구학문을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조부님 덕분에 밥술이나 먹고 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때 필자는 심오한 삶의 깊이에 빠져 번뇌하며 스므살 청년시절에 왜사는가 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산속에서 일년간 은둔한 적 도있다. 아직도 왜사는가 라는 질문에 답은 찾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답을 알기 위해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왜사는가 오늘도 또한 내일도 해답은 없다. 라는 명언 한구절이 생각 나기도 한다. 필자가 텐트를 치고 있는 곳 주위에는 묘지가 세 개 있다. 그래서 어떤이는 밤에 혼자있으면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는 이도 있다. 그럴 때면 묘지에서 잠을 자보면 알겠지만 아주 편안해요. 내말이 맞는지 아니면 틀린지 한번 자보세요 라고 하면 기겁을 하는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예전에 남들이 귀신이라고 하는 헛것을 본적도 있다. 팔년전 어느 겨울밤에 시골에 있는 지인의 집으로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날 사람들 대여섯명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필자는 술이 먹기 싫어서 한잔도 마시지 않고 그냥 동석을 하고 있다가 소변을 누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지인의 집옆에 흙을 쌓아둔 공터가 있어서 그곳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집주위에는 가로등불이 있어서 주의가 훤히 잘보였다.
그리고 소변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옆에 누군가 와있는 것 같은 섬득한 느낌이 들어 옆을 쳐다보니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단발머리를 한 소복을 입은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키는 160 센치정도 되어 보이고 얼굴이 둥근편 이고 피부가 보름달 처럼 매우 희었다. 그래서 깜짝놀라서 방안을 뛰어들어와 이상한 것을 보았다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뭘 봤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여자의 인상착의를 상세히 말해주자 집주인은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그러냐고 물으니 십년전 옆에 집이 있었는데 부부싸움을 하고 여자가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말한 여자의 인상착의가 죽은 여자와 너무 똑같다고 하면서 이후에 아내가 죽자 집을 부숴 버리고 남편과 아이들은 타동으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헛것이나 귀신을 믿지 않는데 이상하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해서 한시간 뒤 다시 그 자리로 나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필자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귀신이 없다 그렇다고 있다 소리도 못하겠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인데 필자가 알고 있는 지인은 내가 한말이 너무도 무서워서 거의 일년 가까이를 해가 지면 문밖으로 나오질 못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필자에게 이야기 한적도 있다. 필자는 예전에 산중에서 일년간 은둔한적이 있는데 방안에서 구렁이와 며칠간 함께 잠을 잔적도 있다. 이상하게 잠을 자면 몸으로 뱀이 기어가는 꿈을 며칠간 계속 꾸어서 분명히 뱀이 방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뱀을 찾아야 하는데 이놈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비가 몹시 많이오는 날이였다. 밤 늦도록 문밖에서 우산을 들고 서있다가 밤열시가 넘어서 방안으로 들어와 랜턴을 비춰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랫묵에 또아리를 틀은 것이 큰 냄비만한 먹구렁이가 한 마리 가 있었다.
요놈 때문에 며칠간 뱀꿈을 계속 꾸었구나 하는생각이 들어서 뱀을 집게로 잡아서 자루에 넣은 다음 집에서 멀리 떨어진곳에 뱀을 풀어준적도 있다. 그리고 또한 번은 공동묘지주위 연못에서 낚시를 하다가 술이 취해서 잠이 들었던 적도있다. 한참 잠을 자다가 비가 오길래 눈을 떠보니 산중 공동묘지에서 필자가 혼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였다. 비가오는데 저벅저벅 묘지 사이를 걸어 나오니 이토록 처량한 신세가 또있었을까 필자는 산중에서 혼자 있으면 너무도 편안하고 행복하다. 인간의 가장 편하고 안락한 사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은 무뇌(無腦)의 사고를 가지고 있을 때이다. 아무 생각없이 멍청하게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때가 너무도 많다. 한의학은 나름대로 어려서 조부님 슬하에 배워서 그런대로 편하게 이해하고 있는데 중간에 접목시킨 본초학 대체의학 생약학 등을 병증에 짜 맞추어 사용하려면 이럴 때 마다 머리는 터질 듯이 아프다. 그리고 새로운 약초를 발굴하러 산에 올라야 하고 환자들을 상대로 전화상담 사업구상 약재구입 등등 필자의 주변 사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편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 필자와 다툼이 일어난 날에 아내는 항상 자신이 약재를 포장하느라고 힘들다는 불평과 불만을 호소한다. 그러면서 돈욕심은 많이 부리니 이럴 때마다 아내가 너무 야속할 때가 많다 이럴때면 차라리 사람을 고용해서 쓸테니 당신은 집에서 그냥 생활비나 타다 쓰라고 하면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한다. 나는 차라리 그냥 별 생각없이 육체적으로 힘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업무를 바꾸어서 해보자는 제안을 하지만 아는 것이 있어야 면사무소 일용직 서기 라도 해먹는다 고 아내가 아는 것이 라고는 약재 이름 몇가지 정도가 전부니 모든 약재관련 업무는 나의 몫인 것이다. 차라리 혼자 살았으면 좋으련만...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는 한구절이 떠오른다.....우리는 너무도 상반된 수평선 끝에서 서로에 등을 마주한채 달음질 하며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뇌여 본다....
어제는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동네에 조그마한 절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다니는 보살이 암이 걸려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하니까 주지 스님이 필자를 찾아가서 매달리면 도와 줄거라며 필자를 소개 해주었다며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서 환자의 보호자를 만나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는 신해생으로 올해 서른세 살 이고 사주를 보니 군살이 하나도 없는 아주 평탄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인데 말기암 진단을 받아서 병마로 고통을 받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는 사실 병원비 낼 돈마저도 없어서 좋다는 것을 사용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약초의 사용방법과 필자와 함께 민속약초 연구회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회원 한사람을 오게 한 다음 이사람에게 일당을 주고 내가 알려준 약초를 채취하게 해서 음용수로 사용하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니 그리 하라 이르고 필자의 막사가 있는 산으로 향했다. 우리내 산하에는 모든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있다. 그러나 인간의 무지(無知)가 그것을 찾아내지 못할뿐이다. 그리고 산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순화하고 도량깊게 하는 삶의 청신함이 있고 모든 소유로 부터 가벼워져야 한다는 무욕(無欲)의 청빈함이 자리하고 있다. 청빈이란 비단 물질의 소유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 마저도 비워야 하는 것이다. 요즘시대에 청빈한 사람을 만날수만 있다면 몇날 며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보름전 서울에 있는 장로교회 목사님이 몸이 아파서 산삼을 사서 먹으려고 하는데 가짜가 많으니 산삼을 캤다는 사람에게 강원도 원통에 있는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가서 산삼을 보여주고 필자의 자필감정서 한장을 받아오면 고가를 지불하고 사서 먹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감정서 한장을 부탁하며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럼 산삼을 채삼하신분이 자신있게 천종산삼이라고 생각 된다면 필자에게 가져오면 감정료 받지 않고 감정서를 써드리지요 그러면서 만약 장뇌삼일 경우는 그삼은 다른 곳에 산삼이라고 팔지 못할 것이니 자신 있으면 가져 오십시요 라고 했더니 삼을 채삼했다는 사람과 채삼자의 부인에게서 몇 번의 회유와 부탁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이내 산삼은 가져오지 않았다.... 근래에는 사립 산삼 감정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과연 이사람들이 진품 천종산삼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많이들기도 한다. 나물 뜯으러 다니 다가도 산삼전문가가 되고 농사를 짖다가도 회사원을 하다가도 산삼전문가가 되는 것이 요즘 자칭하는 전문가들이다. 필자가 이곳 원통에서 천종산삼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고 하니까 초창기에 이곳 장뇌삼 장사꾼들이 비웃으며 천종이 어디있냐고 뭘 알긴 아는 사람이냐는 둥 불쾌한 잡음이 들려오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진실은 시간이 말해줄 뿐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 그렇다 때묻지 않은 보배스러운 진실은 시간이 흘러야 진정한 가치를 알수있는 것이다. 빈곤했던 시절에도 사람 속이지 않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상도(商道)를 걸어온 것이 그나마 필자를 타인들이 대접해주는 소중한 재산인 듯 하다. 인간관계를 맺음에 있어 필자는 만남에 대한 소중함을 늘 되 새긴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사람들과 대인관계를 맺어야 더욱 깊이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인데 그속에 돈을 목적으로 대인관계를 회복 하려고 만 한다면 그것은 퇴색하는 잿빛 노을처럼 너무 슬픈 것이 아닌지.... 필자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약초카페 : http://cafe.daum.net/yourgreenlife
- 대암산 비애골에서... 잠시 속세의 삶을 져 버린 남자가...... 글. 약초연구가 권혁조
첫댓글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카페에 가입했읍니다 이글을읽고나니 권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 지는거 같네요 ...
요즘 권선생님 같은 분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존경합니다 맑은 또랑물처럼 싱그러운 느낌으로 글 잘읽었습니다
내 마음도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향기소리와 함박웃음이 만개한 매순간이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