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덕삼거리 |
09 : 10 |
서봉(935.5m) |
12 : 54 |
47번 지방도 |
10 : 20 |
애기봉 |
13 : 01 |
바위전망대(649)) |
11 : 00 |
틀린 이정표 |
14 : 34 |
절암재 |
11 : 27 |
(구)노채고개 |
15 : 29 |
운악산전망대 |
12 : 06 |
원통산(567m) |
16 : 00 |
절고개(점심) |
12 : 13 |
(신)노채고개 |
16 : 20 |
동봉(937.5m) |
12 : 46 |
청계약수 |
16 : 40 |
<사람도 나무처럼>
나무는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굽은 나무든 반듯한 나무든 곁에 선 나무를 탓하지 않고 자기 모습대로 산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어울리고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숲을 이룬다.
사람도 나무처럼 숲을 이뤘으면 좋겠다.
오래 살아 경험 많은 사람이,
힘들지만 좌절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가람을 격려해 주면 좋겠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아직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가진 것이 추억밖에 없는 사람을 위로해 주면 좋겠다.
그리하여 고목과 새싹이 어우러지는 울창한 숲을,
정신을 맑게 해 주고 마음을 다독여 주는 청정한 숲을 이루면 좋겠다.
- 좋은 생각 조정욱(미술사가)님의 글에서 -
<명덕삼거리>
<탄약고 철조망을 돌아 47번 도로로 향하며>
<잘 닦여진 47번 지방도>
퇴계원을 빠져 나온 버스는 진접을 지나 47번 지방도를 신나게 달린다. 예전 비좁은 차로에 볼품없는 군부대만 즐비했던 도로는 갖가지 상점과 식당 그리고 숙박시설들로 빼곡하다.
아울러 갖가지 공장들과 주유소 그리고 다양한 업종의 건물들이 연이어 포천까지 이어진다.
멀리 화천을 향해 달리는 도로는 차로도 시원하고 시멘트로 포장된 튼튼함으로 중부 전선 주축도로의 위치를 확고히 한다.
지난날 군인들과 면회객 그리고 간간이 연인들이 애용하는 데이트 코스는 유통 물량이 증가하고 주민들의 생활 터전으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일명 굴 고개로 명명된 명덕삼거리는 포천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언덕인데 한북정맥이 북으로 향하면서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다.
오늘도 일곱 번 째 종주를 위한 대원들의 의지는 어느 한 명 낙오도 없이 출발점에서 의기양양하다.
녹음이 깃든 숲을 지나 종주 일행은 군부대 탄약고 철조망을 따라 숨 가쁘게 정맥을 달린다. 사람 모형만이 철조망을 지키지만 규모로 보아 대단한 탄약고임을 느낄 수 있다.
예전 군 시설 탄약고에서의 추억도 떠오르고 지겨웠던 그 시절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삼엄하고 긴박했던 당시가 떠오른다.
이제 핵폭탄 실험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 실험으로 한반도를 위험 지구로 들끓게 하는 김정일 정부의 아슬아슬한 정국 운영도 불안감을 더해 준다.
특히 전임 대통령의 무책임한 자살 죽음과 회오리바람처럼 터져 나오는 정국 불안 그리고 노동운동의 격화된 양상이 불안하고, 쌍용차와 GM 대우의 쓰러짐이 한국 경제의 핵폭탄으로 중량감을 더한다.
잘 닦여진 47번 지방도를 보며 군 시설과 전방이라는 예전의 포천을 넘어 경제 회복과 국가 중흥이라는 장밋빛 좋은 소식이 도래하기를 바래본다.
<47번 도로에서 본 운악산 전경>
<탄약고 울타리를 지나는 대원들>
<이정표에서 우회전>
<운악산>
<47번 지방도>
<정맥 허리를 자르고 골프장 들어서고>
<649미터 바위 조망터를 향해 오르면서 본 능선 모습>
<바위 조망터>
<운악산 가는 산줄기 모습>
<운악산의 암봉과 능선이 초하(初夏)를 수놓다>
47번 도로를 횡단하여 능선을 따라 오르니 중간에 바위 전망대를 만난다. 주변 도로와 산들이 한 눈에 보이며 지나온 정맥의 산줄기가 조망된다.
특히 절암재를 지나 운악산 정상에 이르는 수려한 산줄기는 정맥의 명분을 일깨우는 대단함으로 다가온다.
운악산은 일반적으로 운주사와 대원사 쪽에서 바위 암능을 지나 정상에 이르고 다시 현등사로 내려가는 코스가 유명하다.
하지만 정맥 코스는 남에서 북으로 횡단하므로 기암절벽과 멋진 루트를 빗겨간다.
산줄기 장관을 이룬 능선을 따라 원통산에 이르는 긴 흐름은 지금까지의 한북정맥의 자그마한 모습에서 웅장하고 수려하며 늠름함을 연출한다.
운악산(雲岳山)은 경기도의 동북 산간 지역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한북정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북한강이 동서로 흐른다.
한북정맥은 포천군과 가평군이 경계를 이루는데 운악산을 중심으로 하여 국망봉(1,168m), 강씨봉(830m), 청계산(849m), 원통산(567m), 주금산(813m) 등이 솟아 있다. 한편 한북 정맥의 본줄기에는 속하지 않지만 운악산과는 조종천을 경계로 하여 명지산(1,267m), 매봉(927m), 수덕산(749m) 등이 별도의 산줄기를 이루며 뻗어있다.
운악산(雲岳山)은 해발 935.5m의 동봉과 937.5m의 서봉으로 이루어지며 산세가 아름다워 소금강이라고도 불려 왔다. 또한 천연고찰인 현등사가 있어 그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으며, 주봉인 만경대를 중심으로 우람한 바위들이 봉우리마다 구름을 뚫고 솟아있고, 골짜기 마다 하늘을 가리는 활엽수림은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들어 만산홍엽을 이룬다. 4월 중순의 자목련, 5월경 진달래와 산 목련이 계곡과 바위마다 수놓은 꽃길은 정말로 장관이다. 또한 관악, 치악, 화악, 송악과 더불어 중부지방의 5대 악산 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산원후기(山圓後記)에는 ‘한양 동쪽에 있는 모든 산은 현등산으로 중조(中祖)를 삼으니 운악산은 뭇 산의 조종(祖宗)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꼭대기에 옛 궁예왕성을 지칭하는 궁터가 있는데 운악산성을 이른다.
봉래(逢萊) 양사언의 시에 이르기를 "꽃 같은 봉오리는 높이 솟아 은하수에 닿았고"에서 화현면과 궁예왕성의 지명이 되는 단서가 보인다. 운악산은 이름그대로 뾰족한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서 그 모습이 마치 瑞氣(서기)를 품은 한 떨기 향기로운 꽃과 같다. 그래서 지명이 雲岳山이다.
유적지로는 궁예성터, 궁궐터, 만경대, 신선대, 병풍바위, 미륵바위, 코끼리바위, 눈썹바위 등이 있고 주봉 만경대를 중심으로 산세가 험하다. 기암절벽으로 산을 이루고 있어 그 경치가 절경이며, 구름이 산을 감돌아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화학산, 감악산, 관악산, 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 중 하나로 경기 소금강으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운악산은 현등산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주춧돌만 남은 절터 석등에서 불이 꺼지지 않고 있음을 보고 중창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일설에는 보조국사가 도봉산 원통암에 있을 때 동방에서 3주 야간동안 빛을 발하고 있어 찾아 왔더니 우거진 곳에 관음당이 있었고, 그 곁의 석등으로부터 빛이 나왔다고 한다.
운악산에 관하여는 고려시대의 『여지도서』, 『세종실록』, 『택리지』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조선 중종 25년(1530)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1권 가평현 불령조(佛寧條)에는 용천사, 영통사, 현등사, 영취암, 영제암, 혜수암 등이 화악산에 있고 미라암, 지장암 등이 운악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평군에서 펴낸 참고 자료에 의하면 운악산(雲岳山 935.3m)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운악산은 가평군과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세가 험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서울의 북악(北岳), 개성의 송악(松岳), 파주의 감악(甘岳), 가평의 화악(火岳)과 함께 경기 오악(五岳)으로 불리었으며 여기에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가평군의 현등산(縣燈山)과 포천군의 운악산(雲岳山)이 그것으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현등산은 옛날 도선(道詵)대사가 양평의 용문산(龍門山)에서 바라보니 다래 덩굴 속에 옥등(玉燈)이 켜져 있어 단숨에 달려왔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도선대사가 용문산에서 달려왔다고 한 것은 현등산 자락에 있는 괘등혈(掛燈穴)의 혈처에서 보면 용문산까지 보인다는 것을 바꾸어서 설명한 것이며 다래덩굴의 의미는 주변의 산이 다래덩굴과 같이 겹겹이 감싸 안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둘째, 운악산은 이것은 포천군 화현면 쪽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구름 속의 학이라는 운학(雲鶴)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어 생긴 이름이며 운학산(雲鶴山)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현재 현등사가 있는 산을 운악산이라 부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화악산이라고 한 것이 주목된다.
<운악산 채석장 모습>
점심을 먹던 절골은 하산 지점으로 갈리는 중요한 장소인데 절골(사곡)은 가운데 갈기와 영중면 금주리의 문아리 사이의 고개이름으로 갈기가 상징하는 말(馬)의 고삐인 사리를 절사(寺)자로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하며 산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는 장소이다.
<남근석과 신선대>
<운악산에서 47번 도로에 이르는 능선 모습>
<누군가 자신들의 단합을 기리려 새긴 각자>
<운주사에서 운악산 오르는 암릉>
<남쪽 능선>
<현등사>
<운악산 정상 부근>
<운악산 릿지 코스>
<정상에서의 운악산>
동봉과 서봉을 지나며 만나는 운악산의 정기는 동서남북 그 위치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보통 서에서 동으로 또는 동에서 서쪽으로 산행을 즐기는데 거기에는 기암과 멋진 산봉우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기슭에 위치한 절의 위치 때문 이기기도 하다.
운주사와 대원사가 기점이고 현등사가 종점이 되는 산행 방법이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으로 연결된 정맥의 종주도 환상적인 운악 산행이 된다.
동물로 연결된 간지의 동서남북 방위는 동(東)은 토끼(卯), 서(西)는 닭(酉), 남(南)은 말(午), 북(北)은 쥐(子)로 표현되는데 그런 위치 명칭이 곳곳에 보여 재미있다.
雲岳山深洞(운악산 깊은 계곡에)
懸燈寺始營(현등사 처음으로 지었네)
遊人不道姓(노는 사람들 성을 말하지 않았는데)
怪鳥自呼名(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沸白天神壯((용솟음치는 흰 기운 폭포수 장대하고)
橫靑地軸傾(푸른 산 빗긴 섬에 지축이 기운 듯)
慇懃虎溪別(은근히 호계에서 이별하니)
西日晩山明(석양 속에서 저문 산 밝아오네)
동봉에 적힌 백사 이항복의 오언절구 한시의 매력이 운악산의 우아한 모습을 일깨워준다.
<궁예성터>
<애기봉>
<병풍바위>
<기암괴석>
<전망대>
<원통산 가는 능선>
<기암>
<잘못 설치된 이정표-운악산 정상에서 2시간 종주 후 만난 이정표>
<위험 지대를 우회하여 원통산을 향하여 달리는 긴 종주>
두 개의 봉우리 동봉과 서봉을 지나 애기봉이 있는 암봉 지대를 만난다. 위험한 절벽과 험로를 돌아 우회하여 지난 후 긴 정맥 산줄기를 따라 찌는 듯 한 더위와 피로를 견디며 산길을 간다.
몇 몇 힘든 대원들이 있어 후미를 확인하였는데 정보가 잘못 전달되어 착오가 생겼다.
일부 어려운 여건의 대원들이 운악산 휴게소 쪽으로 하산한줄 알았는데 7명의 후미가 우여곡절 끝에 원통산으로 가는 능선을 따라 산행을 계속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모든 일행이 종주를 마쳤지만 그들의 발길에 잘못된 이정표와 긴 능선의 힘든 노정이 원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간간이 휴식처를 제공하는 바위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피로를 풀지만 사전 준비가 덜 된 산꾼들에게 긴 정맥의 종주는 호된 시련을 준다.
피로와 음주는 먼 종주에 큰 재앙으로 다가오므로 절대로 종주 전에는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포천시와 가평군에서 설치한 한북정맥 이정표는 그 의지와 뜻은 고마운데 설치 후 이정표 위치의 확인이 잘 되지 않았는지 거리가 엉터리다.
특히 운악산 정상을 떠난 지 2시간이 지난 지점에 서있는 이정표는 그 거리를 0.62km로 표시하고 있어 산꾼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다만 설치가 목적이 아닌 정확함이 생명인 이정표의 제 모습이 아쉽다.
아울러 원통산까지의 거리만 표기되고 노채 고개까지의 표시가 없어 답답함도 상당하다.
혹여 이 글을 읽는 담당자가 있다면 조속히 재설치하는 성의를 보여주기 바래본다.
원통산을 오르는 조망터에서 보이는 운악산의 웅장한 모습이 정말 멋있다. 남북으로 이어진 긴 능선도 훌륭하지만 동서로 뫼 山 字 모양의 운악 정경은 늠름함과 안정감을 준다.
원통산에 오르는 지점에는 노채 고개가 있다. 물론 지방도가 지나는 노채 고개도 있지만 산길의 노채 고개는 예전 주민들 생활 근거의 중요지점이다.
<예전 노채고개>
노채 고개는 청계저수지 우측으로 약수터를 지나 가평군 상판리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름이다. 이 고개를 노채 고개라 부르게 된 것은 이 고개 맞은편에 금반옥배형(金盤玉盃形), 즉 술상과 술잔모양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안주를 집어먹는 놋쇠 젓가락 즉 노저(놋저)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라고 한다.
노채 고개를 지나 20분 정도가면 오늘 노정의 마침표격인 원통산이 있다. 해발 567m의 원통산은 운악산에서 북으로 향하는 한북정맥의 아름다운 모티브인데 47번 도로를 달리며 음미하는 원통-운악 모습은 장관이다.
특히 그 우아한 흐름과 굴곡은 그 어떤 산줄기에서 볼 수 없는 명품이다.
원통산(圓通山)은 유동리와 화현면의 동쪽에 위치한 표고 567m의 산으로 이산의 서쪽 기슭에는 높이 8m, 폭 4m의 3단계의 층암폭포를 이루고 있는 원통폭포가 있다. 폭포소리도 우렁차지만 기송노수(巨松老樹)로 우거진 숲의 경치도 아름다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하게 한다. 이러한 폭포가 영평 8경에서 빠진 것이 원통해서 원통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노채고개에서 원통산 오르다 본 운악산 원경>
<운악산>
<다음 구간 청계산 모습>
<노채고개>
<노채고개 동물 이동 터널>
<청계약수>
<노채 고개에서의 느긋한 휴식과 풍성한 뒤풀이>
노채 고개에서 골프장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동물들 이동 터널이 있고, 청계약수가 위치한다.
이 고장에서 유명한 약수터인데 많은 차량들이 몰려와 약수를 떠간다.
신학약수(神鶴藥水) 즉 청계약수는 노채 고개로 오르는 중턱에 위치한 약수 이름으로 10여 년 전 한대사(韓大師:한동준)라는 분이 이곳을 개발하고 약수터의 뒤 봉우리가 학(鶴)의 부리처럼 생겼다 하여 지은 이름이며 지금도 약수터 상단에는 그분의 친필로 새겨진 조그만 비석이 새겨져 있으며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지금은 일동지역은 물론 서울, 인천 등지에서 약수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골프장을 지나 내려가면 호수가 있는데 청계호수라고 한다. 이곳 청계호수의 청계는 청계(淸溪)라고 적으며, 청계산 자락 서쪽지역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며 소의 마구간에 있는 닭장을 말한다.
청계의 의미는 푸른 닭 즉 靑鷄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닭의 색깔은 실재의 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동시내에서 볼 때 이곳의 위치가 동쪽이며 동쪽은 청룡(靑龍)을 말하는 것으로 靑鷄라는 말이 맑은 시내라는 뜻으로 잘못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대동여지도》에는 靑溪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靑鷄와 淸溪의 중간단계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청계저수지 아래에 위치한 대원사(大願寺) 절 뒤의 뾰족한 바위봉우리가 닭의 벼슬에 해당된다고 한다.
즉 풍수지리에 의하여 방위별 동물과 색깔은 동(東)쪽은 청색(靑)이며 용(龍), 서(西)쪽은 백색(白)이며 호랑이(虎), 남(南)쪽은 붉은색(朱)이며 공작(孔雀). 북(北)쪽은 검은색(玄)이며 현무(玄武)로 표시하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뒤늦게 완주한 일행을 태우고 47번 지방도를 신나게 달리는데 원통산에서 운악산에 이르는 산줄기의 모습이 화려하다.
신나게 뻗은 산줄기를 보며 오늘 종주를 되짚어보며 진접 오리구이 집으로 향한다.
청계 고문님의 푸짐한 뒤풀이로 힘들고 지친 육신들이 적당한 취기와 푸짐한 오리 구이로 허기진 배를 빵빵하게 채운다.
몇 순배 잔이 돌고 건배 그리고 대전으로 향하는 대장정 마무리!
한북의 발길이 재미있고 즐거운 것은 무한한 팀웍과 동료들과의 뒤풀이가 압권이다.
좋은 산과 멋진 동료들 그리고 화합이 함께하는 귀연산행이 의정부-포천으로 안성맞춤 명품 루트가 된다.
고생하고 함께한 귀연식구들 모두에게 무한한 감사의 정을 느낀다.
첫댓글 자세하게도 쓰셨네. 아쉽게도 한북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록을 남긴다는 자세로 많은 자료 찾아서 넣어봅니다..특히 지명의 유래나 유적에 대하여 더 많이 찾아 보려 애씁니다..
등산로에 마사토가 많아 미끄러워 걷기가 불편했지만 모두가 안전하게 마무리를 잘해 주었네요...수고들 했습니다.
앞에서 정맥 루트 찾느라 고생이 많아요..그래서인지 후미들은 너무 편하게 길을 가구요..
산행기 중간에 비춰지는 회원들의 지친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더운 날씨에 힘들어 하는 후미 7명 뒤의 빈 자리가 내 자리인데... 남은 구간 힘내세요... 꽃도 피어날 땐 아프답니다...
함께 할 땐 몰랐는데 안 계시니 회장님 존재가 더 느껴집니다..한북에서 본격적인 산줄기 행진이 시작되니 꼭 백두대간 하는 기분이 듭니다..
다섯번째 주의 정맥길은 먼저 약속된 산행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만 청산님의 산행기를 통해 이어갑니다^^
궁금했구요...얼릉 나아서 정맥 합류하세요..다음 구간이 길기도 하구 고도도 엄청 높아요..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조언을주시는 청산님이 계셔서 맘놓구 진행합니다...감사합니다..
애쓰는 우리 대장님...길을 가이드하랴 코스 읽을랴 문주한 모습...벌써 한북이 얼마 안 남았네요..계속 홧팅하길 기대합니다..
A 팀은 B팀이 오뚜기령까지 간다기에 느긋하게 내려왔는디 너무 늦게왓나 기다리느라고 수고들하셨수...
험로를 우회하며 정고문님 걱정 많이 했어요..운악산 정상에서 하산했다길래 속도를 냈는데 나중에 후미로 온다기에 걱정 많이 했습니다..오리 고기 뒤풀이 넘 감사합니다..정말 잘 먹었어요...
청산님의 섬세한 산행기, 다시 한 번 산행의 뿌듯함을 안겨 줍니다. A팀이 끝까지 낙오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보다 늦게 도착할 B팀이 있으려니 하는 느긋한 마음이 있어서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 것 같아요.
산에 다녀 온 후 산행기 정리하는 것도 즐거움입니다..특히 관계된 자료를 찾고 산행 중 모르던 사항을 찾으면 너무 기쁘거든요..우리가 지난 기록이라 여기고 정리한답니다..운악 종주는 좀 멀었는데 무사히 완주하셨네요..다음 코스도 높이가 상당합니다..